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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

– 사람 마음과 박해에 대한 약간의 인식

글/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갑 수련생은 무고하게 파출소에 붙잡혀 갔다. 그러나 그 수련생은 두려워하지 않고 진상을 알리고 몇 시간 후 순리롭게 나왔다. 다음 날 ‘어찌 이렇게 쉽게 나올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주변의 다른 수련생들도 그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좀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게 쉽게 나올 수 있다니!”

수련생이 경찰에 잡혀갔다면 한바탕 실랑이를 거쳐야 하고, 어떠어떠하게 엄중한 고험을 통과한 후에야 나오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순리롭게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줄곧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고, 오직 당신이 법의 요구에 부합되고 정념이 족하면 모든 박해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다른 공간의 사악이 청리되면 이쪽은 바로 정상이다. 마치 그 병과 같이 다른 공간의 영체가 제거되면 그 병은 즉시 나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의 표면상으로 그것을 보면 정말로 이상해 보이는 것이다. 그걸 다른 공간에서 보고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매우 정상인 것이다. 수련은 바로 이렇게 초상적인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사유방식에 있다. 수련생이 붙잡혔다가 순리롭게 나온다면 이것을 우리는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사악의 어떤 ‘고험’을 통과한 후에야 풀려 나오는 것을 우리는 정상으로 여긴다. 이것은 뒤바뀐 논리로 매우 황당하고 웃기는 일이다. 그러면 왜, 나 자신을 포함한 일부 수련생들은 이런 변이된 사상을 갖고 있을까?

우리는 법리에서는 다 알고 있다. 구세력이 강요한 것으로 박해 그 자체가 틀린 것이다. 마땅히 부정해야 한다. 그러나 사상 중에 왜, 기어이 어떠어떠하게 엄격한 고험을 통해야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바로 당신이 박해를 승인하고 박해를 구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 어떤 고험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우리의 깊은 사상 속에 형성된 일종 잘못된 관념이다. 물론 이 잘못된 관념도 구세력이 강요한 것이다. 이런 강요는 많은 수련생들이 박해당한 사례를 통하여 일종의 가상을 조성했다. 반복적으로 이런 잘못된 논리로 강화하고 당신 자신이 몸소 경험하고 혹은 주변의 수련생이 몸소 경험한 이런 잘못된 논리로 귀결 시킨 것이다.

이런 논리는 바로 당신이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면 붙잡힌다는 것을 초래하고, 붙잡히면 바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자료를 몰수당하고, 바로 박해를 당하는 증거가 되어 당신은 바로 판결당하고 혹은 노동교양처분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 외 당신이 풀려나려면 타협 또는 전향을 하거나 혹은 간고한 각종 고험을 거쳐야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거의 우리의 경험인데 그건 효과가 좋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모두 잘못된 인식이다.

이런 잘못된 논리와 경험은 바로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한 것이다. 법에서 우리는 인식했는데, 사람을 구하는 것은 박해당하지 않고 더욱 더 마땅히 붙잡히지 않는 것이다. 자료는 사람을 구하는 법기이고 박해당하는 증거가 아니다. 사악한 각종 고험을 통해야 당신이 박해를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오직 당신 정념이 족하고 정말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으면 당신은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할 수 있다. 일체는 사부님께서 책임지시는 것이다. 관건은 우리의 심성이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좋은 것을 나쁜 것으로 말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사당(邪黨)의 사유방식으로 문제를 보는 전형적인 잘못된 논리로 본다. 당신이 매를 맞으면 당신이 꼭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왜, 다른 사람들은 매를 맞지 않는가?” 이런 잘못된 논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올바르게 시비를 가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때리는 자를 질책하지 않고 오히려 무고하게 매를 맞는 사람을 질책한다. 중공사당이 정권을 탈취한 후 역대로 사람을 괴롭히는 많은 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이미 이런 사유방식으로 사고하는 데 습관이 되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다 이렇게 문제를 보는 것은 확실히 잘못된 것이다. 이는 거짓말은 천만 번을 중복해도 거짓말이고 노루를 말이라고 가르치는데 노루는 말이 아니다. 대법제자는 정법에서 깨달은 미래의 각자다. 그러니 이런 착각에 빠져들면 안 되며 이런 잘못된 여론에 좌우지 당하면 더욱 안 된다.

우리의 수련은 직지인심(直指人心)이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에 따라 간다. 어떤 구세력의 고험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고 박해를 승인하는 중에 반 박해를 하는 것이 아니며, 수련과 박해는 근본적으로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홍음2 – 슬퍼하지 말라’에서 “조용히 생각해 보니 집착한 일 얼마이더냐.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 ‘정진요지2 – 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에서 “만약 한 수련자가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생사의 염두를 다 내려놓을 수 있다면 사악은 틀림없이 두려워한다. 만약 모든 수련생들이 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사악은 자멸(自滅)할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다.

박해당하는 것은, 경찰이 어떻게 악하고 인간의 형세가 어떻게 복잡한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각종 발생하지 말아야 할 일을 초래하고 마땅히 나타나지 않아야 할 국면이 나타난다. ‘현재 우리는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는가? 그러면 우리는 언제 내려놓을 수 있는가? 이렇게 계속 끌고 갈 것인가?’ 하는 점을 우리는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한다.

사람의 관념을 바꾸기란 어렵고 사유방식마저 변이가 되었다. 그러므로 사유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대뇌를 통해 가공해 낸 사유는 모두 틀린 것이다.

이상은 자신의 과거의 잘못된 사유논리에 대한 분석이다. 잘못된 점은 수련생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12년 6월 1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6/13/2587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