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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성명’을 엄숙히 대해야만 진정으로 박해를 부정할 수 있다

글/ 충칭 대법제자

[밍후이왕] 위대하고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사악의 압력 하에 길을 잘못 걸은 제자를 구하기 위해, 밍후이왕에 ‘엄정성명’을 발표할 기회를 주셨다. 10여년 간, 많은 대법제자들은 밍후이왕에 ‘엄정성명’을 발표해 새롭게 수련의 길을 걷고 구세력의 배치와 박해를 타파했다. 또한 매우 많은 수련생들은 ‘엄정성명’을 엄숙히 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밍후이왕에 교류했으나 일부 수련생은 진정으로 ‘엄정성명’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고, 비록 ‘엄정성명’을 썼지만 그 중요성을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최근 한 가지 일로 인해 나는 ‘엄정성명’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그 당시 나는 노동교양소에서 박해가 종결되어 나온 후 몇 달이 지나서야 밍후이왕에 ‘엄정성명’을 보냈는데 그 중 한 가지 방면은 자신을 반성하고, 또 ‘두려움’의 요소로 인해서였다. 지금까지 이미 7,8년이 지났는데 줄곧 일종 좋지 않은 상태가 존재하고 있는데 바로 수련생에 대해 일종 경계심이 있다. 누가 일을 하는 것이 이지적이지 못하고 누구는 또 비정상적이며 누구는 또 안전을 주의하지 않는 것을 주시한다. 외출과 수련생을 만나는 것과 혹은 수련생이 있는 곳에 가면 늘 약간 영문을 모를 긴장감이 있었고 머릿속에는 좋지 않은 염두가 뒤집어 나오고, 심지어 사악을 어떻게 직면해야겠다는 생각 등등이 있었다. 늘 정정당당, 평탄하게 하지 못했다. 얼마 전 한 수련생이 나를 초청해 법공부에 참가하라고 했는데 나는 표면적으로는 매우 차분하게 대답했지만 머릿속에는 그런 좋지 못한 것들이 또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는 단번에 깨달았다. ‘이런 생각은 내가 아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몇 년간 이런 것들이 줄곧 버리지 못하는가?’ 겉으로 보기에는 사악이 박해가 여전히 지속되니 대법제자의 안전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인데 실질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이 사악의 검은 소굴에서 사악에게 타협하고 사악에게 쓴 ‘3서’ 중에 ‘기타 파룬궁 수련생과 연계하지 않고, 연락하지 않겠다’의 내용이었다. 자신은 사악의 음험한 속셈을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구세력의 배치와 박해를 진정으로 철저히 전부 부정하지 못했기에 이런 좋지 못한 상태를 조성했고 뿐만 아니라 줄곧 이렇게 긴 시간을 견지했다. 무엇 때문에 지금에야 이 점을 인식하게 됐는가. 자신이 수련의 길에서 정진하지 못했는데 사부님께서 자비로워 번번이 나에게 기회를 주셔서 자신을 장애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명백히 알게 하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우리는 검은 소굴에서 나온 적지 않은 수련생들이 있는데 오늘까지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것은 엄정성명을 진정으로 중시하지 않았고 사악의 박해를 진정으로 부정하지 않았는지, 모두 마땅히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 예를 들면 수련생은 검은 소굴에서 나온 후 연공할 때 가부좌를 할 수 없다든지(혹은 가부좌 시간을 길게 견지하지 못함), 참장을 반시간 견지하지 못하든지, 연공을 하지 않는(혹은 공개적으로 연공을 하지 않는다) 등은 그것이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가? ‘밍후이주간’ 혹은 기타 자료를 보지 않고 전달하지 않고, ‘널리 알리지 않고, 배포하지 않는다’란 요소가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또한 수련생 사이의 간격과 쟁론, 또 어떤 수련생은 매우 긴 시간을 의기소침한 상태에 처해 있는 등등, 매우 많은 일들에서 사악의 ‘3서’ 배후의 마의 그림자(魔影)를 볼 수 있다. 사악의 목적은 바로 대법제자를 파멸시키는 것이다.

밍후이왕에 ‘엄정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새롭게 바르게 걷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길을 잘못 걸은 대법제자마다 모두 반드시 이 전대미문의 기회를 아끼고 진정으로 ‘엄정성명’을 엄숙히 대하며, 진정으로 근본적으로 사악의 박해를 철저히 부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최후의 길을 잘 걸을 수 있다.

부당한 곳을 수련생들이 시정해 주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9월 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9/4/2462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