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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무엇을 조사정법이라 하는가』를 학습한 약간의 체험

글/가오샹(高翔)

[밍후이왕] 어제 밍후이에 들어와 사부님께서 신경문을 발표하신 것을 발견하고 속으로 기쁜 생각이 들어 서둘러 클릭해 읽어보았다. 하지만 신경문의 제목 ‘무엇을 조사정법이라 하는가’를 보고 마음속으로 알듯 모를 듯한 괴로움이 밀려왔고 이는 사부님께서 방할(棒喝)하시는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전문(全文)을 다 읽어보니 과연 사존께서 철이 강이 될 수 없는 것을 한탄하시며 간곡하고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신 것이었다! 아, 사부님 당신께선 얼마나 어렵고 힘드셨겠습니까!

파룬궁 수련생으로서, 사부님의 제자로서, ‘조사정법(助師正法)’이란 이 구절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 구절을 말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는 거의 매일같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왜 지금에 와서 단독으로 이 법을 말씀하셨을까?

과거 사부님께서 알려주신 법리(法理) 중에서 우리는 만약 일반적인 문제, 개별적인 문제로 전체 국면에 연관되지 않는 문제라면 사부님께서 공개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기왕 이 법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셨다면 문제가 아주 심각함을 설명한다. 이는 또한 정법노정이 이 일보까지 추진되어 최후에 가까워졌음을 설명한다. 더 분명히 말씀하지 않거나 더 고치지 못한다면 아주 많은 수련생, 많은 대법제자들이 이 일겁을 넘기지 못하고 구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렇다면 천만년의 윤회와 기다림은 수포로 돌아가고 헛고생을 한 것이 아닌가?

지금의 정황은 마치 졸업을 앞둔 한 대학생이 사회에 진출하기 전임에도 교수님이 여전히 간절히 타이르고 설명하면서 왜 학습을 잘해야 하고 왜 학과수업과 같은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잘 해야 하는지 신신당부하는 것과 같다. 이는 교수님의 노파심 때문인가 아니면 학생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인가? 사부님의 신경문을 학습하면서 나는 진땀이 흐르고 얼굴이 붉어졌으며 마치 등에 가시가 박힌 것 같았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단지 방할하셨을 뿐만 아니라 노파심에서 거듭 기회를 주셨고 나아갈 방향을 지시해주셨다!

나도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무엇을 조사정법이라 하는가?” 뜻밖에도 마음이 잠시 망연해졌고 뚜렷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보아하니 우리가 평소 ‘조사정법’이란 문제를 제기하거나 혹은 ‘조사정법’이란 구절을 말할 때 대부분 호언장담으로 간주하고 남이 말을 하니 덩달아 따라말하는 것에 불과했다. 또 진정하게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못했으며 자신이 진정으로 수련하고 착실히 수련하는 이 문제와 연관시키지 못했다. 마치 법공부가 마음속에 들어가지 않고 물이 지나가자 땅이 다시 말라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신경문의 내용은 비록 길지 않지만 법을 학습한 후 나는 마음속으로 일종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어제 저녁 밖에 나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때 나는 줄곧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무엇이 조사정법인가?” 밤에 정공을 연마하면서도 이 일을 생각하느라 조용해질 수 없었다. 오늘 아침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릴 때에도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이 문제를 생각했다. 돌아온 후 나는 신경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으며 비로소 약간의 천박한 깨달음이 있었다. 이에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부족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진정으로 법리상에서 ‘조사정법’이란 이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하며 또 잘해야 한다. 내 생각에 가장 먼저 해결할 것은 신사신법의 문제이다. ‘신사신법(信師信法)’을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입으로 말하는 것은 수련과 같은 것이 아니다. 내 생각에 마땅히 두 가지를 해야 하는데 사부님께서 신변(身邊)에 계심을 믿어야 하며 또 대법이 무소불능(無所不能)함을 믿어야 한다. 진정으로 이 두 가지를 해낼 수 있다면 사악이 연화한 통제하는 교란, 병업 등의 가상에 미혹되지 않을 것이다. 두려운 집착이 갈수록 적어지고 3가지 일도 할수록 잘하고 할수록 순조로울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생으로서, 조사정법하려면, 단지 사부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잘 원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만이, 비로소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다.”(『무엇을 조사정법이라고 하는가』)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사람을 많이 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머리를 쓰고 방법을 생각하며 어떻게 3가지 일을 모두 잘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하고 어려움이 크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재미가 있고 자신의 뜻에 맞으면 하고 기분이 나쁘거나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하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천방백계(千方百計)로 사람을 많이 구하길 원하시는데 이 문제에서 우리는 일시적으로 하거나 가볍게 하거나 시험 삼아 해보고 관두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생을 많이 겪으려 하지 않고 많이 책임지려 하지 않으며 많은 일을 하지 않으려 해서는 안 되며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圓容)해야 한다.

셋째, 조사정법의 역사적 사명을 잘 완수하려면 우선 마땅히 두려움의 집착과 이익심(利益心), 안일한 마음을 닦아 버려야 한다. 이익심이 너무 강하면 하늘로 되돌아갈 수 없으며 안일한 마음이 너무 중하면 신으로 수련 성취될 수 없다. 당신이 인간의 이익에 집착하고 인간의 향수에 미련을 둔다면 그럼 당신은 남겨져 사람이 될 수 있다! 지금 눈앞의 일각(一刻)은 천금(千金)의 가치 만금(萬金)의 가치가 있다. 당신이 주요 정력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당신은 곧 그곳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힘써 실행해야 하며 착실하고 착실하게 해야 하며 꾸준히 용맹정진 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조사정법이다.

이외에도 사부님께서는 또 일부 동수들에게 사부님의 가족을 찾아가 구실을 찾고 그런 후 수련생 중에 전파하는 문제에 대해 경고하셨다. 사부님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이것은 일부 대법제자들의 편애이다. 사부님을 뵐 수 있는 이들 동수들은 왜 소중히 여기지 않는가, 사부님의 가족을 찾아가 귀찮게 하고 이를 통해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교란하는가? 사부님의 가족은 사부님과 같지 않다. 동수 사이에 수구(修口)하지 않는 이것은 동수 개인의 수련원만에 이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법노정의 전체적인 추진을 저애하며 구세력이 틈을 타게 하기 쉽다.

우리는 늘 사부님께 위안을 많이 드리고 근심을 덜어드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사부님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우리 동수들은 반드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해야 하며 마음을 닦고 수구하며 멋대로 전하거나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사람마음의 집착을 방종하고 사부님께 근심을 더하게 되며 심지어 정법의 뒷다리를 잡아당길 수 있다. 장차 곧 원만할 대법제자들이라면 깨닫지 않거나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작은 깨달음을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하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시정을 바란다. 허스.

문장발표 : 2011년 6월 1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6/13/2423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