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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사람의 관념을 바꾸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것은 관념이다. 어떤 자는 가짜 이치를 위해 생명을 바칠지언정 개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관념 자체는 오히려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정진요지』「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나는 수련과정 중 자신의 그 완고한 관념을 발견했는데 정말 각종 방면에서 표현됐다.

예를 들면, 문제에 부딪히면 보통 사람의 각도에 서서 옳고 그름을 보고 수련인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사고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에 부딪히면 안을 향해 찾을 때 여전히 철저하지 못하며 늘 자신의 사람 마음을 위해 회피한다.

나는 직장을 잃어버린 대법제자로 지금 다른 도시에서 하는 일이 있고 여유가 있는 수련 환경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순리롭지 못한 일에 부딪히면 원래 지역으로 돌아가 다시 직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이전에 직장이 온정하고 수입도 높기 때문인데 법에서 세간의 명리집착을 내려놓고 구세력이 안배한 것을 부정해서가 아니다. 일념지차가 곧 사람과 신의 구별이다. 또 생활이 순조로울 때는 자신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위해 구실을 찾으면서 원래 회사에 가서 직장을 찾으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돌아가서 진상을 알리고 수련을 견지한다면 붙잡힐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해서다. 사실 이것은 붙잡힌 이후 형성된 관념으로 수련을 견지하면 소란 등등 시끄러움이 있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일념 자체가 이미 구세력의 안배를 승인한 것이다.

구세력은 무엇 때문에 대법제자를 박해하는가? 경찰은 왜 감히 대법제자를 붙잡는가? 사실 우리가 수련해서 붙잡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진상을 알리기에 잡히는 것만도 아니라, 우리들이 각종각양의 집착심이 있기에 구세력이 틈을 타고 기어들어오므로 종종 마난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내가 반드시 직장 일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고, 내가 생각하건대 응당 어디에 있든지 더욱 잘 법을 실증할 수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내가 있는 이곳은 이미 온정 한 법공부 소조가 있고 참답게 수련하는 동수들과 함께 있어 자신이 생각하건대 이곳에서는 법공부를 비기고 수련을 비기면서 제고가 매우 빠르다고 생각되며 자료점도 스스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전 환경은 안락하고 편안하지만 주변에서 수련생을 접촉할 수 없었고, 자료점 도 없었다. 그러므로 법을 실증하는 데는 불리하다. 물론 오직 내가 사람 마음을 내려놓은 후 이 일체는 응당 개변될 수 있지만 때로는 이 집착, 이런 관념을 내려놓으려면 정말 일종 두렵다는 느낌이 있으며 내심 그 무엇을 잃을까 봐 두렵다. 내심에서 오는 이런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때로는 이러한 사람 관념에 투항하게 된다. 사실 나는 지금 와서 명백해 졌다. 두려워하는 자체는 결코 내가 아니며 그것은 그런 관념이 제거되기 직전 발출한 두려움으로서 내 두뇌에 반영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산 것이기 때문이다.

수련한다 해서 붙잡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집착심을 장기간 버리지 않아 시끄러움을 가져 오게 되는 것이다.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만든다 해서 붙잡히는 것도 아니라 우리들이 진상을 알릴 때 정념이 없이 허튼 생각을 하기에 시끄러움을 가져오게 된다. 수련인은 병에 걸릴 수 없다. 장기적으로 병업관을 넘지 못하는 것은 어느 방면에서 잘하지 못하고 자기를 진정하게 수련하지 못해 심성을 제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수련인에게 가져 오는 시끄러움은 바로 우리들이 장기간 갖고 있는 것,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인 것이다. 예를 들면 색심, 욕망, 쟁투심, 과시심, 수구하지 못하는 것, 질투심, 두려워하는 마음, 사람의 마음이 너무나 많은데 이러한 난잡한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해 조성한 시끄러움이다.

나는 한 가지 문제를 발견했는데 옳은지 잘 모르겠다. 사실 우리들에게 집착이 있는 것은 결코 두렵지 않다. 만약 우리들이 그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모두 무조건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의 집착을 제거하면서 자신을 부단히 제고한다면, 구세력도 감히 와서 박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비록 집착이 있다하더라도 법속에서 부단히 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집착이 있고 문제에 봉착할 때 밖을 향해 찾는다면, 심지어 자신의 집착을 의식하고도 내려놓지 못한다면 곧 위험하다. 우리는 자신의 집착을 질질 끌면서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지 생각해보고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면서 되도록 한 번에 그 관을 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자신에 대해 엄격히 요구하지 않는다면 사실은 구세력에게 구실을 찾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아마도 “당신들이 보라. 저 수련인은 집착이 있으면서도 내려놓지 않고 인식하고도 포기하지 않는데 그렇게 하면 되겠는가? 우리는 난을 배치해 그를 도와 그 집착을 버리게 하겠다!” 듣기에는 허울 좋은 간판이지만 사실은 대법제자들에 대한 파괴성적인 검증이다. 이러한 검증은 중생을 훼멸하며 자신을 회멸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것들이 안배한 이러한 난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우주 표준에 도달할 수 없다. 사부님의 법은 이미 매우 명백하므로 우리는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진정으로 정정당당한 대법제자는 결코 우리들이 말하는 것처럼 담이 얼마나 큰 것인가가 아니라 이지적이고 정념이 아주 강한 생명이다. 우리들이 이 점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무조건 안을 향해 찾고, 그 어떤 일에 봉착해도 모두 자신의 부족함을 찾고 대법에 대조해 과감히 자신의 형성한 사람 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을 위해 회피하는 것이 아니고 구실을 찾는 것이 아니다. 과감히 사람의 관념을 내려놓고 주동적으로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비로소 이 한 장의 인피를 제거하고 신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

개인의 체험이고 층차의 제한이 있으므로 부족한 점에 대해 동수들의 자비로운 시정이 있기를 희망한다.

문장완성: 2010년 11월 24일

문장 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24/放下怕心,转变人的观念-2328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