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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심했던 경험과 합심하지 못했던 교훈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4월 21일】인근 도시에 가서 중생을 구도하던 갑 수련생이 사악에게 납치당했을 때, 그 도시의 수련생이 변호사를 선임해 갑 수련생을 무죄 변호하게 하였다. 먼저 인근 도시의 수련생은 우리지역 협조인에게 개정기간에 발정념을 하고, 두 지역의 동수들이 정각에 단체발정념으로 동수의 구출을 교란하는 일체 사악한 요소를 철저히 제거하며, 아울러 변호사가 동수의 무죄변호를 해 주는 것을 통하여 더 많은 세인이 진상을 알고 구원받게 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후 협조인은 즉시 몇 몇 수련생을 불러다 상의하고, 갑 수련생을 구출하기 위한 발정념 내용을 복사하여 나누어 주었다. 그 때 우리 지역의 모든 수련생은 모두 매일 저녁 7,8,9,10시 정각에 정체로 발정념을 하여 현지와 인근 도시의 갑 수련생을 박해하는 일체 사악한 요소를 해체하였다. 발정념할 때 마음이 조용하고 에너지도 아주 강한 감을 느꼈고, 천목이 열린 수련생은 그가 본 정경을 개별적 동수와 교류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매 수련생이 내 보낸 공은 처음에는 오색테이프 같더니 다음에는 즉각 모여들어 하나의 막아낼 수 없는 강대한 광구(光球)로 되어 갑 수련생이 갇혀있는 검은 소굴과 법정의 사악한 요소를 순간에 깨끗이 청리하여 버렸다……”

짧은 며칠 동안의 발정념 후 인근 도시 동수한테서 소식이 왔다. “갑 수련생을 변호한 두 변호사는 법정에서 변호를 아주 성공적으로 하여 법정은 할 말이 없게 되었다. 갑 동수도 동수들이 그녀에게 발정념 해 주는 강대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악은 실패를 달가워하지 않고, 다음 달 어느 날에 다시 개정심리 한다”고 하였다.

바로 두 번째 개정을 앞둔 며칠 전에 우리 현지의 협조인은 또 여러 동수들과 교류를 하면서 먼저 번의 성공한 경험을 총화하고 매일 저녁 7,8,9,10 정각 발정념 외에도 전 세계 네 개 정각 발정념 후 다시 5분 더 연장하여, 이 5분 내에 인근 도시의 갑 수련생을 박해하는 일체 사악한 요소를 전문 청리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때에 현지의 일부 동수들은 협조인이 전한 결정에 의논이 분분하였다. “우리는 인근도시에 수감된 동수에게만 발정념을 해주고 왜 현지에 수감된 동수에게는 전문적인 발정념을 해 주지 않는가? 이건 분별심 (分别心)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전 세계 네 개 정각 이후 또 5분 연장하여 발정념한다는 것은 갑 수련생을 너무 중하게 보는 것이 아닌가? 모두 똑 같은 심태로 박해받는 수련생을 구출해야지 누가 중하고 중하지 않다고 보지 말아야 한다. 또 있는데 우리는 현지 사악도 청리하고 인근도시 사악도 청리하는데 이 공을 도대체 어디로 발해야 하는가? 목표가 집중되지 못했다……” 말 가운데는 협조인이 이미 정한 결정에 원망이 있었고, 내심으로부터 하나의 정체를 이루지 못했으며, 심지어 발정념을 할 때 정력이 집중되지 않아 강대한 정체적 정념을 이룰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며칠 후 인근 도시 동수에게서 소식이 왔는데, “먼저 번 갑 동수 변호를 성공적으로 했던 두 변호사 중 한 사람은 개정 전에 납치당했고, 다른 한 변호사는 사악의 압력에 굴복하여 갑 동수에 대한 변호가 두루뭉술해 졌고, 어떤 곳에 가서는 반대로 변호하면서 완전히 사악의 편에 섰다.” 는 것이었다. 이 두 차례의 심리 결과에 우리는 몹시 놀랐고, 심각한 교훈 또한 얻을 수 있었다.

발정념이란 단지 하나의 표면적인 것일 뿐이며, ‘마음’이 정체를 이룰 수 있는가 없는가가 관건이다. 왜냐하면, 첫 번째 발정념을 할 때는 변호사와 박해 당하는 동수의 상태가 왜 그렇게 좋았을까? 바로 대법제자가 발정념 할 때 개인의 관념없이 정체적 의식이 강했으며, 자아를 고집하지 않고 서로 무조건 협력하였기 때문에 나간 공은 위력이 있었던 것이다. 변호사와 법관 모두 대법제자를 둘러싸고 돌아가는데 대법제자의 심성이 제 위치에 있고, 법리가 분명하면 위력이 크므로 사악은 해체될 것이고 물러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 발정념 결과는 왜 그토록 나빴던가? 그건 바로 우리 내부의 분열이 컸고 협조인이 제기한 발정념의 내용에 대해 의견이 많고 원망하면서 질책을 하였을 뿐, 협조인이 제출한 부족점에 대해 묵묵히 보완하고 원용하지 못하였다. 동수 중에서 불만의 정서를 살포하고, 자기가 어떻게 옳다는 것을 내 세우면서 자기의 ‘옳음’을 위해 다투었다. 사실 당신이 옳다한들 또 어떻단 말인가? 신은 한 가지 일에서 표면적인 옳고 그름을 보지 않고 그저 이 일에서 당신이 자신을 내려놓고 묵묵히 상대방을 원용할 수 있고, 남을 배려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무사무아한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가만 볼 뿐이다. 이는 새로운 우주 생명에 대한 요구이다. 일념지차 (一念之差)가 바로 신구 우주 생명의 부동한 표현이다. 우리는 이번 교훈을 섭취하여 끊임없이 성숙해 나가자. 발정념도 좋고, 아니면 대법 항목을 해도 좋고 모두 무조건적으로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강대한 정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총망히 쓰다 보니 부족한 곳은 동수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4월 2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10/4/21/2218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