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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을 칭찬하는 것에서 생각한 것

글 /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1월 19일】 어떤 수련생은 어느 한 방면에서 수련생이 잘했다고 하여 다른 동수들 앞에서 그치지 않고 칭찬을 하는데, 나는 이것은 아주 이지적이지 못한 행위라고 여긴다. 나의 신변에는 수련생을 칭찬하여 동수의 과시심, 환희심이 생기도록 재촉하고, 그로부터 사악의 박해를 당하여 수련 중에 아주 큰 곤란에 부딪치게 한 실례가 적지 않다. 물론 죄다 이것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고 다른 원인도 그 가운데 있긴 하겠지만 수련생을 칭찬하는 것은 확실히 아주 좋지 못한 작용을 일으킨다.

A는 사람을 칭찬하기를 즐기는데, 특히 접촉한 시간이 길지 않은 동수에 대해서 더 그러하다. A 수련생은 갑 동수에 대해 오성이 아주 좋고 수련도 잘했으며 생김새도 부처 같다고 늘 칭찬하였다. 얼마 안 되어 갑 수련생은 생활상 아주 큰 마난에 봉착했고, 갖은 고생을 다 하고서야 지나 올 수 있었다. 또 A 수련생은 늘 을 동수에 대해 오성이 높고 층차가 높다고 칭찬하였는데, 이틀이 지나 을 동수의 집에 일이 생겨 하마터면 고비를 넘지 못할 뻔 했다. A 수련생은 또 병 동수에 대해 최근 아주 정진해서 보기만 해도 정신상태가 다르다고 칭찬하였는데 일주일도 되기 전에 병 수련생은 불법 가택수색과 납치를 당했다. 여기에서는 단지 이런 몇 가지 예만 들겠다.

병 수련생이 납치당해 나는 심심한 사고 속에 빠져 들었다. 그래 이것은 단지 우연한 일치란 말인가? 사부님께서 수련의 길에는 우연한 일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여기에는 반드시 그것의 필연성이 있을 것이다. 헌데 A 수련생이 그 날 병 수련생을 칭찬할 때, 그 자리에는 병 수련생이 없었다. 이는 나를 곤혹스럽게 하였다. 바로 이 때, 나와 몇몇 수련생이 하나의 새로운 진상 알리기 항목 때문에 함께 있게 되었는데, B 수련생은 만나자 마자 다른 한 동수에게 누구누구가 그(나를 가리킨다)의 심성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고 했다. 당시 나는 얼른 B 동수의 말을 제지했다. 오후에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B 수련생이 나를 칭찬하던 말을 회상하다가 사부님께서 《정진요지》〈수련자는 자연히 그 중에 있다〉에서 하신 한마디 말씀을 떠올렸다. “한 수련자로서 속인 중에서 만나는 일체 고뇌는 다 고비를 넘는 것이고, 만나는 일체 표창(表彰)은 다 고험이다.”

나에게 왜 이런 고험이 있게 되었는가. 필연코 나의 공간장이 순정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좋은 말만 듣기 좋아하였는데, 그럼 나는 지금 그것을 파내어 뿌리로부터 뽑아버려야 한다. ‘사부님 저를 가지해 주십시오. 이런 나쁜 물건은 저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므로 저는 가지지 않으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많이 홀가분해졌고 또 하나의 더러운 마음을 버리게 되었다. 따라서 사부님께서도 나에게 보여 주셨는 바, 비록 나를 칭찬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없더라도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마찬가지로 그것을 나의 귀로 전해지게 하신 것이다. 수련생을 칭찬하는 동시에 그 나쁜 마음으로 하여 형성된 물질이 다른 공간에도 마찬가지로 체현되어 동수에게 교란과 번거로움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느 한 법공부팀에 법을 아주 듣기 좋게 읽는 수련생이 있었는데, 동수들은 그를 찬양하였다. 이 수련생이 집에 가서 법을 읽기만 하면 법을 듣기 좋게 읽는다고 동수들이 칭찬하던 말이 울리면서 오랫동안 교란을 하였다. 아울러 그 수련생은 법공부팀에서 다른 사람이 앍는 것을 듣기 싫어하고 자기가 읽기를 즐겼으며, 할머니들이 법을 읽으면 졸음이 온다고 하였다. 그래서 결국 법공부할 때, 여러 번 책을 떨어뜨리면서 졸았다.

바로 이럴 때, 또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정 수련생이 납치를 당한 것이다. 바로 전날 우리는 만났었는데, 이 두 번의 만남에서 B 수련생은 모두 정 수련생을 어느 한 항목에서 잘했다고 쉼 없이 칭찬을 하였다. 그래서 어떤 동수들은 정 동수에 대해 숭배심이 생겼고, 정 동수도 모르는 사이에 과시심, 환희심이 생겨나 쉼 없이 자기가 어떻게 했다는 것을 말했으며, 말하고 말하다 자신을 실증하게 되었다. 이튿날 정 수련생은 이 항목에서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주어 불법 가택수색을 당하고 납치당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과시심, 게다가 환희심은 마(魔)에게 이용당하기가 가장 쉽다.”(《정진요지》〈정론〉)고 말씀하셨다. 사악은 뚫고 들어가지 않는 구멍이 없으며, 솜씨 역시 잽싸고도 악독하다. 정 동수의 소식을 들은 나의 가슴은 칼로 째는 듯 괴로웠다. 나에게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수련생이 칭찬하는 말을 들었을 때, 사부님께서 나더러 곁에서 칭찬이 동수에게 가져다 줄 위해와 교훈을 보게 하셨고, 자신 또한 일부 법리를 절실하게 깨달았음에도 왜 이런 때에 자비롭고 엄숙하게 동수에게 지적해 주지 못했는가? 동수에 대한 하나의 경종으로 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렸다. 사부님께 죄송스러웠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심이 자신을 장애하였고, 수련생이 나에게 질투심이 있다고 할까 봐, 수련생이 접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동수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실은 자신에 대해 동수에 대해 모두 책임지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동수의 납치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수련생을 칭찬하는 말은 위해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남을 칭찬하기 즐기는데 만나기만 하면 칭찬이다. 이는 수구를 하지 못한 표현이 아닌가? 어떤 동수의 일은 다른 동수들이 모르고 있었지만 그가 이렇게 칭찬하는 바람에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안전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서, 수련생이 잘하게 된 것은 법에서 잘한 것이며, 법에 동화되어 그런 경지에 도달된 것이므로 마땅히 그렇게 잘해야 하는 것이고, 잘하지 못하면 안 되는데, 칭찬할게 무엇인가? 법공부를 잘하면 잘할 수 있을 것이니 어느 누구를 참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남을 칭찬하기 즐기는 수련생은 정말로 자신에게 무슨 마음이 있어서 이렇듯 남을 칭찬하기 즐기는가를 찾아보아야 할 것인데, 수많은 사람마음, 질투심, 쟁투심, 과시심을 찾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두 이미 습관으로 양성된 것들이다. 어떤 때는 칭찬이 너무 과분하다며 자신조차도 이 일이 도대체 이러한 지를 분명히 알지를 못하면서도 무작정 칭찬을 한다. 수련을 이렇게 여러 해 했으니 속인 중에서 양성된 습관을 정말이지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이다.

물론 이상에서 말한 것은 수련생을 이지적으로 고무격려해 주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이상은 이 일에서의 나의 천박한 인식이므로 인식상의 부족이 있을 수 있으니 동수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10년 1월 19일

문장분휴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minghui.org/mh/articles/2010/1/19/2165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