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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업 고비를 넘은 나의 경력

【명혜망 2009년 10월 23일】나는 30대 여대법제자이다. 대략 반 년 전부터 핏물이 섞인 하혈을 했는데, 처음에는 간혹 피가 섞였지만 나중에는 소량의 피가 날마다 흘렀다. 하지만 신체는 특별히 불편함을 못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매일 3시 50분 아침 연공, 하루 두 강의 법공부를 견지하고 있었으며, 발정념 차수도 하루 8, 9번 이상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스스로 세 가지 일도 괜찮게 한다고 여겼으므로 이런 나쁜 상태가 나타난 후에도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장시간의 병업 상태는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누락을 안으로 찾아보기도 했고, 아울러 발정념으로 나의 육신을 파괴하는 일체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해체하며 오직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로만 갈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효과가 뚜렷하지 않으면서 점차 마비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어느 날 나는 한 동수의 집에서 노인 동수 갑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우리를 만나자 자기의 병업고비를 하소연 하면서 바로 하혈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 가슴이 꿈틀 하였다. 나는 사부님께서 갑 수련생을 보내어 나를 일깨워 주고 계심을 즉각 알게 되었다. 갑수련생은 말을 이어 내려갔다. 막 시작에는 그녀도 그다지 대수로워 하지 않았지만 후에 남편이 끊임없이 독촉해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의사는 즉시 그녀에게 큰 병원에 가서 수술 하라고 하였다. 결국 가족의 강박으로 수술을 했고, 수술 후 집에 왔으나 온 몸은 참을 수 없이 아픈데다 전혀 힘이 없었고 길을 걸어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했다. 후에 단체 법 공부, 연공, 발정념을 통해 상황이 호전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온 몸이 아프다면서 수련생은 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나는 진지하게 안을 향해 찾아보았다. 얼마 전에 나도 동요한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 피임용 링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나 검사해 볼까? 라고 하자 수련생이 어찌 병원에 가서 병을 보인단 말인가?고 했다. 그렇다, 속인이 어찌 대법제자의 명을 볼 수 있겠는가? 또한 이는 병도 아닌데! 정말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가령 나도 병원에 갔더라면 의사가 뭐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내가 더욱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곧바로 구세력이 배치한 길로 가게 됐을 것이다. 차분한 마음으로 안을 향해 찾으니 그야말로 적지 않은 집착심을 찾아낼 수 있었다. 최대의 집착심은 바로 육신에 집착하는 마음이었다. 이 육신이 고생할까 안일을 추구 하였고, 잘 먹고 잘 자고, 추워도, 더워도, 목말라도 안되며, 어쨌든 갖은 방법을 다 해 이 육신을 편안하게 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 육신은 우리 진정한 자신이 아니다. 다만 속인 가운데서 수련하고, 법을 실증하며,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데 쓰기 위해서일 뿐인데 어찌 마음을 여기에 쓸 수 있는가? 또 색심, 두려운 마음, 명리심 등 어느 한 가지도 내려놓은 것이 없었고, 또 날마다 상황이 호전되었는지에 대해 걱정하였는데 마치 일체는 모두 그가 좋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얼굴을 맞대고 알려주는 진상도 잘 하지 못하였다. 이런 것을 찾아낸 후 나는 강대한 정념을 발하여 이 집착, 그리고 이 집착을 빌미로 나의 육신을 박해하는 모든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해체 하였다. 이 육신은 진정한 나의 신체가 아니긴 하지만 그는 아직도 속인 가운데서 수련하고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써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아무 생각도 않고 사부님 배치만 들었다. “병원에 가서 고비를 넘는 것을 포기하거나 혹은 마음을 끝까지 내려놓고 당당한 대법제자처럼 바라는 것도 없고 집착도 없이[無願無執], 사부의 배치에 따라 떠나거나 남고 이 한 점을 해낼 수 있다면 바로 신이다. 。”(《 로스앤젤레스시설법》)이렇게 며칠이 지나갔지만 상황은 여전히 호전되지 않았다.

그때에 나는 2009년 10월 13일《정견주간》중의 문장 《치통으로부터 “선해”하게 된데 대하여》를 읽게 되었는데 이 글은 나에게 아주 큰 계발을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하반신에 이런 상태를 조성해 준 다른 공간의 생명에게 한 번 또 한 번 사부님 법을 묵념 하였다. “우주는 정법(正法) 중에 있는데 내가 법을 실증하는 것을 교란하지 않는 것이라면, 나도 너희들에게 모두 합리적인 배치를 해주어 미래의 생명이 되게 할 것이다. 선해(善解)하려고 하는 자는 나를 떠나 나의 주위의 환경 중에서 기다려라. 만약 정말 나를 떠날 능력이 없는 자는 어떠한 작용을 발휘해서 나를 교란하려고 하지 말라. 장래에 내가 원만할 때면 내가 너희들을 선해(善解)시켜 줄 것이다. 완전히 나쁜 것들, 아직 나를 교란하고 있는 그런 것들은, 표준에 따라 남길 수 없는 것들은 제거할 수밖에 없다. 내가 제거하지 않아도 우주의 법 역시 너를 남겨두지 않는다 .”。”(《2004년 뉴욕국제법회설법》)가부좌 결인하거나 머리가 비었을 때를 막론하고 나는 늘 그 구절을 읽었다. 내가 그렇게 읽기 시작한지 이틀째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는 또 그것(그것들)에게 읽어 주었다. 드디어 (그것들)이 선해하는데 동의하고 나를 이미 떠났다는 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확정할 수 없었다. 또 이틀이 지나자 일체 모두가 이미 정상이 되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놀라움과 기쁨이 없었고 다만 사부님께 대한 감사와 동수에 대한 감격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병업 고비를 넘긴 경력을 써냄으로서 동수들에게 거울이 되고자 한다.

이상은 내가 병업고비를 넘긴 경력이다. 옳지 않는 곳은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9년 10월 2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9/10/23/2109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