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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부를 잘해야 함을 논함

글/ 호주 대법제자

【명혜망2009년 8월 30일】 동수들이 많은 교류와 체험을 말할 때 항상 논하는 게 있다. 즉 정법시기인 오늘날 대법제자는 스스로 신의 상태에 들어가 법을 실증해야한다면서,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우리가 중생을 구도함에 더욱 신성하고,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신의 상태는 장기적인 정진 중에서 걸음걸음 걸어 온 것이며, 자신으로 하여금 신의 상태가 갈수록 많아지고 사람의 상태가 갈수록 적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자신에게 더욱 강한 정념과 더욱 많은 신의 상태에 있을 수 있겠는가?

『전법륜』에는 연공하여도 공이 자라지 않은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즉 “고층차 중의 법을 모르고는 수련할 수 없으며, 안으로 수련하지 않아 心性(씬씽)이 수련되지 않으면 공이 자라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셨다. 고층차의 법을 알려면 우리는 법을 잘 공부해야 한다.

나는 십여 년간 수련하면서 늘 새롭게 기억나는 한 가지 일이 있다. 1998년 좌우의 일이다. 당시 북경에서 사업을 하던 나는 퇴근 후 늘 동수 집으로 법공부를 하러 갔다. 이 동수의 가족은 모두 수련을 했는데, 대체로 매주 두 번 자신의 집에서 단체 법공부를 했다. 저녁 7시 30분에 공부를 시작하기에, 나는 회사에 일이 많아 어떤 때는 20분 늦게 도착했다. 내가 문을 두드리면 누구든지 와서 문을 열어주면 서로 알고 있다는 듯 웃고 난 뒤에, 자리에 앉으라고 의사표시를 했다. 그들 법공부팀은 대개 10명 좌우였는데 한 사람 한 사람 순번대로 돌아가면서 법을 읽었으며, 읽는 속도는 비교적 느렸다. 매번 내가 늦게 들어갈 때마다 그들은 한 사람도 머리를 들어 나를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느 사람도 책에서 눈을 떼고 나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고 한사람만 책을 읽었으며 그 장은 너무나 조용하여 바늘 한 개가 떨어져도 들릴 것만 같아 만약 자신이 자리에 앉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이 평온을 깨뜨릴 것만 같았다. 나는 매번 들어갈 때 마다 자신의 마음과 몸이 이 장에 녹아드는 것만 같았다. 나는 지금까지 살며시 앉아 어떤 소리도 내고 싶지 않았다. 앉은 후 자신도 움직이려 하지 않고 온 정신을 다하여 책만 보았으며 옹근 한 시간 남아 신체 어디 근질거리거나 혹은 옷 정리하려는 염두가 없었다. 나는 이것이야 말로 진정 신이 법공부를 하고 있음을 느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자신의 법공부 상태를 주시한다면 곧 부족함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이는 앉은 자세가 바르지 않으며 어떤 이는 가위다리를 치켜들고 어떤 이는 읽다가도 입이 말라 물을 둬 모금 마인다……….정말. 만약 자신이 정말 신의 상태에서 법공부하면 이럴 수는 없다.

『전법륜』제 5강에서 “석가모니는 정념(正念)을 말했는데,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경을 읽어 진정하게 그가 수련하는 그 한 법문의 세계를 진동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각자(覺者)를 불러 올 수 있다. 그 각자의 법신이 하나 올라가야만 비로소 개광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라고 했다. 만약 우리가 일심불란(一心不乱)으로 경을 읽지 못하면 책의 배후의 불, 도, 신들이 어찌 우리를 점화할 수 있겠는가? 어찌 더욱 높은 법리를 우리에게 알려 주겠는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법에 대해 이성상의 승화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나는 자신이 장기적으로 그런 좋은 법공부 상태를 지속하면, 나 자신도 대법의 일을 할 때 비교적 순정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며, 또 주의해서 순정한 장(场)을 지키게 된다. 예를 들자면 지금 해외 대법제자들은 수많은 항목을 해야 한다. 매번 우리가 이런 큰 활동을 할 때 곧 하나의 순정한 심태에 주의해 보존하며, 만약 주위 동수들이 속인의 일로 잡담하면 즉시 이 마당과 어울리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데 왕왕 이때 표를 팔거나 삼퇴를 권하면 효과가 별로 좋지 않다.

문장발표: 2009년 8월 30일

문장분류:【수련 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8/30/207391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