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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감” 과 “일하는 마음[干事心]”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7월 10일] 나는 두 차례나 법을 실증하는 일을 더 많이 하려고 하여 어떤 수련생이 나에게 “절대 일하려는 마음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이 말을 들은 후 기운이 쫙 빠졌다. 만약 하는 과정에서 저애력을 다시 더 만난다면 더더욱 동수의 말을 인정하여 자신이 ‘일하는 마음[干事心]’ 이 조성된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법 공부를 통하여 나는 이 문제에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북미 순회 설법》중에서 사부님께서는 “때문에 대법제자의 책임은 개인의 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대법제자의 역사적 사명이며 그것이야말로 대법제자의 진정한 위대함이 있는 것이다.”고 말씀 하셨다. 《도항》〈워싱턴 DC 국제법회에서의 설법〉중에서 사부님께서는 “대법의 노정[進程]을 따를 수 있는 매개 대법제자, 당신들은 당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모두 하였다. 집에서 아직도 걸어 나오지 못하고 아직도 자신은 수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사람들은, 비교하건대 어찌 여전히 수련이라고 여길 수 있겠는가?” 고 말씀 하셨다.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우리의 위대한 사명이며 아주 먼 역사 중에서 신의 장엄한 서약이다.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마땅히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며 구도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더욱 많은 일을 하려 하고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하려는 것은 대법제자가 수련해낸 자비이며 역사가 부여한 위대한 사명감인데 어찌하여 일하려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럼 무엇을 ‘일하는 마음’이라 하는가?

사부님께서는 “만약 여러분이 이 한 부의 대법을 잘 배우지 못한다면 당신 자신의 원만은 보증 받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한 모든 대법의 바른 일(正事)은 모두 마치 속인이 한 일과 같은데 속인의 그러한 생각과 속인의 기점에서 한다면 그것은 바로 속인이며 기껏해야 속인이 대법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는데 불과하다.”(《각지역 설법3》〈대(大)뉴욕지역법회 설법〉)고 말씀하셨다. 법에서 알 수 있는바: 법 공부를 중히 하지 않고 대법으로 자신의 행동을 지도하지 않으며 대법의 일을 할 때 “속인의 생각으로 속인의 기점에 서서 일을 하고” 일하는 과정에서 심태를 바로 잡지 못하며 신념(神念)으로 자신의 언행을 주도하지 않고 일하는 자체를 수련으로 간주하고 일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야 말로 일하는 마음[干事心]이다.

개인의 체득으로는 “일하는 마음”은 일하는 심태를 일종 속인화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지 일을 많이 하려 한다고 해서 “일하는 마음[干事心]”인 것은 아니다. 정법은 우리 매개 대법제자들이 되도록 많은 사람을 구도 할 것을 필요로 하며 우리들로 하여금 사람을 구하는 일을 많이 할 것을 필요로 한다. 만약 우리 매개 대법제자가 매일 더 많은 사람을 구도하고 더 많은 일을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사부님께서 기대하는 것이다! 진일보로 말하면 만약 진정으로 한 속인이 대법의 일을 한다고 할 때 그래도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다! 우리는 일을 할 때 부적합한 심태를 없애야 하는 것 뿐이지 일하는 자체는 아니다.

최근 나는 어떤 동수들이 일종” 성취감”이 표현되어 이미 한 일에 만족해하며 어렴풋이 “도도하여 남들 위에 있는[高高在上]” 모양을 나타내며 또한 자신이 “정력(定力)”을 수련해냈고 “무위(無爲)”를 수련해낸 것으로 여기는 것을 발견하였다. 더욱이 어떤 수련생은 누가 구도 될 수 있고 누가 도태됨은 일찍이 결정된 것이기에 우리는 “무작위(無作爲)”로 하면 된다고 여기며 구도 될 것은 반드시 구도 될 것이니 동수들이 주동적으로 가서 하거나 조급해 하면 “집착”이라 보고 “미혹”이라고 하며 “일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이런 동수들은 대법의 일을 함에 있어서 긴박감이 결핍하여 시간이 있으면 많이 하고 시간이 없으면 적게 하거나 하지 않는 대법을 제일 크게 여기지 않고 중생구도를 제일 큰 일로 간주하지 않는다.

내가 보건대 이런 사람들은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고 본다. 우리 함께 안일한 마음을 버리고 법을 잘 이해하고 최후의 관건적인 시각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잘 하여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말자!

개인의 소견이니 부당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이 자비로 지적하기 바란다.

문장완성: 2009년 7월 9일

문장발표: 2009년 7월 10일문장갱신: 2009년 7월 16일 18:51:38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7/10/20426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