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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수련생이 어떻게 해야 박해를 전면 부정하고 마난에서 걸어 나올 것인가

글/제남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5월 6일】 납치된 수련생은 어떻게 마난에서 걸어 나올 것인가? 표현 형식상 어떤 사람은 단식을 통하고, 어떤 사람은 대법이 좋다고 높이 외치며, 어떤 사람은 줄곧 진상을 알리는 것을 통해 걸어 나왔다. 우리는 이런 구체적인 방법의 표면을 제외하고 수련생이 어떻게 박해를 전면 부정했는지 분석해보자. 왜냐하면 오직 박해를 전면 부정해야만 마난에서 걸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이해로는 납치된 동수에 대한 법의 요구는 엄격한 것이다.

1. 자백과 서명을 하지 않는 것은 박해를 전면 부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와 기초

‘자백을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사악한 무리들의 어떠한 질문에도 직접적으로 정면 대답을 회피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악경의 불법 심문에 직면했을 때, 대부분의 경우 줄곧 직접 대답하거나 정면 대답을 하는 것은 바로 협력하는 것이며 자백을 형성하게 된다. 자백은 문장으로 된 자백과 말로 하는 자백이 있는데, 문장으로 된 자백에는 또 서명한 자백과 서명하지 않은 자백이 있다. 문장으로 되지 않은 자백, 서명하지 않은 자백은 다만 이 공간에서 사악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데 직접 이용하기에 좋지 않을 뿐 다른 공간에서는 모두 전면 부정하지 않은 표현 형식이다. 어떠한 한 마디 말, 일사일념이든 다른 공간에서는 모두 물질이 아닌가! 형성된 자백을 전면 부정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배합한 물질이 아닌가!

나는 일찍이 노교소에서 악경에게 전기 충격기로 박해를 받았는데 왜 이런 박해를 부정하지 못했는가? 그 중의 한 원인은 바로 악경의 질문에 협력했기 때문이다 (문: 비디오를 보지 않을거야? 대답 : 거짓 비디오는 이미 여러 번 봤으니 보지 않겠다!) 비록 이런 대답은 당시로선 일종의 용기였지만 당신이 직접 대답하기만 하면 바로 일종의 협력이 되는 것이다. 당시 사악의 사나운 질문을 덮어버리고 그에게 진상을 말해 주지 못했다. 비록 서명을 하라고는 하지 않았어도 사악은 이미 전기충격기로 박해할 구실이 생겼다고 여겼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어떤 동수들은 여전히 무엇을 물으면 무엇을 대답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데 이는 진(真)이 아니고, 당당한 것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사악에게 협력한 것이라고 부른다. 사악의 어떠한 질문이든 직접 대답하는 것은 모두 협력이다. 생각해 보라. 당신은 가장 신성한 일을 하고 있는데 사악이 무슨 자격으로 당신을 심문한단 말인가? 동수의 자백은 자신을 훼멸하는데 자신이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동수에게도 영향을 준다. 특히 부부 동수들은 사악의 질문에 직면하여 자기가 다 끌어안을 수 없으면서도 이른바 자신이 감당한다고 한다. 상대방의 몸에 미루지 못하고, 하나를 희생해 하나를 보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미루거나 도맡는 것이 모두 협력이다.

“대법제자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사악의 요구, 명령과 지시에 협력하지 말아야 한다.”(『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는 것이다』)

2.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이 마난에서 걸어나오는 만능 열쇠

납치에 직면하여 연금 당하던가 납치 당하던가 막론하고 대법제자는 마땅히 냉정하게 대해야 하며, 마음이 평온해야 하며, 두려운 마음과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또 악경의 박해에 절대 협력하지 않는 동시에 일체 기회를 이용해 자비롭게 진상을 알려 그들을 구하기에 힘써야 함과 동시에 선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불법적인 심문을 당할 때면 두려운 마음을 버리고, 득실을 따지지 말며, 자신이 가장 좋은 상태라는 것을 잊지 말고 사악의 어떠한 질문도 덮어 버리고 그들더러 당신이 말하는 진상을 듣게 하여 사람을 구해야 한다.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엄숙하게 알려줄 수 있다. “당신들이 하는 일은 대법에 죄를 짓는 것이며, 선량한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당신들이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 행위로서 장래 인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선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따른다는 것은 천리인바, 당신들은 이 한 점을 알고 당신들의 사업을 그만 두라. 당신들은 쓰거나 기록하지도 말라. 나는 듣지 않을 것이며 당신들의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며 서명은 더욱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이 하는 일체는 다 쓸모없으며, 나는 당신들이 한 일체를 전면 부정한다. 물론 기왕에 당신들이 왔으니 나도 당신들의 선한 일면과 친구로 사귀어 서로 한담을 나눌 수는 있는데 당신도 진상을 알아야 한다.”

만약 모두 자비롭게 그들에게 진상을 말해줄 수 있다면 잠시 악경을 구할 수 없다 해도 악경은 대법제자 앞에서 사악해지지 못할 것이다. 갈 때 그들에게 분명히 알려줄 수 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 하오를 꼭 기억하여 자신과 가정에 훌륭한 미래를 선택하라. 이는 대법제자의 자비를 체현하는 것으로서 악경이 무엇을 선택하는가는 그 자신에게 달렸다.

자비란 무엇인가? 자비는 사악에게 빌붙는 것이 아니며, 사악에게 매를 맞거나 욕을 먹은 다음 악경의 땀을 닦아준 후 악경에게 감사드리는 것이 아니다. 바로 수련생이 말한 것처럼, “무엇이 자비인가? 자비는 위에서 아래를 대하는 것이며 존귀함으로 비천함을 대하는 것이다. 자비는 위엄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좀 겸손한 태도로 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사부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또 대법제자의 존귀함을 알아야 한다. 노비처럼 굽신거리는 것은 자비가 아니며, 억지로 참고 버티는 것이 자비가 아니며, 악경이 우리를 좋다고 말하게 하는 것도 자비가 아니다.”

3 . 일사일념에서 박해를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 마난에서 걸어나올 수 있는 근본

법은 납치된 동수에 대해 엄격한 요구가 있다. 자백을 하지 않고, 서명하지 않으며, 자비롭게 진상을 알려 주는 외에 또 하나의 근본 문제가 있는데 바로 자신의 일사일념이 박해를 철저히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바로 정념정행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박해 중에서 우리는 의연히 신의 길을 가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만약 대법제자들이 모두 정념정행 할 수 있고 어떠한 정황 하에서도 모두 정념으로 문제를 사고한다면 매 하나의 대법제자는 모두 박해를 마주하고 두려운 마음이 나올 수 없는데 누가 감히 와서 당신을 박해하는가 보라! 완전히 법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데 이는 자신을 보호할 능력을 갖춘 것이 아닌가?”

“사부는 박해 중에서 대법제자를 보호하지 한 속인을 보호하지 않는다.”(『2005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

어떤 수련생은, 납치된 것은 대법제자가 아니라 대법제자의 사람 마음과 집착이라고 여긴다. 박해란 무엇인가? 박해란 악경이 야만적인 방식으로 대법제자의 집착과 사람마음의 틈을 탄 것이다. 이런 인식은 일정한 도리가 있다. 물론 우리는 마땅히 사악의 이런 박해 방식을 철저히 부정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말씀하셨다. “사실 역시 모두 낡은 세력이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여 대법제자(大法弟子)의 심성(心性)을 향하여 고험(考驗)하려고 온 것이다. 반드시 이런데 만약 이렇지 않다면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황을 향하여 대법제자(大法弟子)는 자신을 바르게 걷도록 하고 가급적으로 사악(邪惡)과 낡은 세력이 빈틈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하며 정념(正念)을 견정(堅定)히 하는 것은 바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진상을 밝혀 중생을 구도(救度)하는 것은 낡은 세력은 감히 반대하지 못하는데 관건은 일을 할 때의 심태(心態)가 그것으로 하여금 빈틈을 파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其(『2002년 보스턴 법회 설법』)

확고한 정념으로 시종 법에 있는 대법제자를 사악은 박해할 자격이 없으며, 박해할 수 없는 것이다.

정법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바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경고하신 것과 같다. “당신들의 길을 여러분은 이미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아주 좁은 것이다. 당신이 약간 빗나가기만 한다면 당신은 대법제자의 표준에 부합되지 못하게 된다. 오직 한 갈래 매우 바른 길 만이 우리들이 능히 갈 수 있는 것으로 조금만 빗나가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가 요구한 것이며 그것은 미래 우주 중생의 생명이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대 뉴욕지역법회 설법』)

4. 법정에서 대법제자가 변호하는 기점은 법을 실증과 사람을 구하는 것

악당 사악이 대법제자를 불법 심판할 때, 대법제자가 변호하는 기점은 절대 자신을 위한 변호에 있어서는 안 되며, 자신의 변호를 위해 대법실증을 적게 하거나 하지 못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점은 마땅히 대법제자가 한 일체는 모두 가장 바르고, 모두 가장 신성하며,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라는데 놓여야 한다. 기력이 충족하고 떳떳하고 당당하면 두려운 마음이 사라진다.

법정에서 대법제자가 변호하는 기점은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는 것이며, 일체 기회와 시간을 이용해 법정에서 진상을 알려 현장에 있는 세인을 구도해야 한다. 이는 법정에 오른 대법제자의 책임이자 천직으로 법정은 이 부분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무대이며, 절대로 사악이 마음대로 시비를 전도하는 낙원이 되게 할 수는 없다.

생각해 보라, 대법제자는 가장 신성한 일을 하고 있는데 당신이 만약 자신의 변호를 위해 적게 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옳겠는가? 정법의 이치에 부합하겠는가? 당신은 법을 실증하고 있는가? 물론 또한 자신이 얼마나 했다고 대답할 수 없는데 그것은 또 일종의 협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정에서 사악이 심문할 때, 대법제자가 대답은 마땅히 아주 이지적이어야 한다. 협력하지 말아야 하며 또 바르게 걸어 절대 사악에게 꼬리를 잡혀 소위 자백을 증거로 삼지 못하게 해야 한다.

오늘, 사악이 대법제자를 판결하는 것은 소위 증거가 얼마 없는 것으로, 대부분 법원의 사악한 판결은 단지 자백에 근거해 불법 판결한 것이다. 바로 수련생이 “자백하거나 서명하지 않으면 절대 올가미에 걸려들지 말자”란 문장에서 쓴 것처럼, “한 수련생이 불법 판결 받은 이유란, 사악이 기록한 내용에 근거하여 판결한 것인데 수련생은 불법 가택 수색한 물건을 기록에서 승인했던 것이다.” “나는 자백하지 않고, 서명하지 않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여긴다. 이는 박해를 부정할 때 속인 층차면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설사 집에서 수색해 낸 물건일지라도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그것은 범죄의 증거가 아니라 우리의 법기로서 모두 정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법제자 중생구도의 도구이지 사악이 우리를 박해하는 증거가 아니다.

우리 대법제자는 공산사령의 사악한 본질을 모두 알고 있으며 그것이 제출한 매 하나의 문제마다 모두 함정으로 당신을 그것의 올가미로 끌어들일 것이며, 당신더러 박해받게 하고 ‘범죄’를 승인하게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것의 조그마한 것에라도 부합하기만 하면 당신을 박해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물론 나는 어떠한 상황 하에서라도 모두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박해를 인정하지 않으며, 절대로 박해에 배합하지 않을 것이다.”

문장발표 : 2009년 5월 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9/5/6/2002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