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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부는 실제 효과를 중시해야 하며 수량과 속도를 추구하지 말아야

【명혜망 2009년 4월 27일】

현재 대법제자들이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가운데 시간이 긴박하고 소중하다. 그럼 어떻게 매일 소중하고 제한된 법공부 시간 내에 진정으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여 대법 속에 용해되며 법에 동화될 것인가 하는 것은 모든 대법제자들이 다 정확히 대해야 하는 것이며 아울러 회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우리는 표면의 도구만 볼 수 없으며 그것의 실제 효과를 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법공부를 할 때 확실히 하나의 실제 효과(實效)라는 문제가 존재하는데 이 실제 효과는 동일한 시간에 배우는 것이 빠르고 많다는 것(마음을 조용히 하는 전제 하에서 공부를 빨리 많이 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이 아니라 매일 소중하고 제한된 법공부 시간 내에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법공부 상태에 도달하고 최대의 법공부 효과를 거둘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아래에 나는 이 방면에서 자신의 인식을 말해보고자 한다.

1. 법공부를 교란하는 요소를 똑똑히 알아야 하고 주의식이 강해야 한다.

매 대법제자는 모두 법공부할 때 진정으로 마음을 조용히 하고 공부하려 하며 모두 가장 좋은 법공부 상태에서 최대의 법공부 효과를 거두려 한다. 그런데 왜 어떤 때는 일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가? 내 생각에 사상업력과 부동한 경지에서 전생할 때 형성된 후천적인 요소를 포함하여, 우리 대뇌 속의 후천적인 관념과 집착 및 사악의 요소가 우리의 주의식을 교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대법수련은 주의식이 공을 얻는 것으로 우리가 연공할 때 늘 주의식이 명명백백하게 연공함을 알아야 하며 우리가 어떠한 계층이나 연령의 세인을 만나든지 모두 진상을 똑똑히 알리고 삼퇴를 잘해야 한다. 또한 정체협력에 참여하거나 기술이나 자료점 일을 책임진 동수들은 모두 대법을 실증하려는 하나의 마음에 의해야 하며 주동적이며 주의식이 고도로 청성하고 명백한 상태에서 해야 한다.

그럼 법공부할 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환경에서나 능히 주의식이 명명백백하며 고도로 청성하며 최대의 실제효과를 거두지 못하는가? 우리는 명확히 인식해야 하는데 우리가 법공부할 때 사상이 조용해지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은 우리가 아니며, 우리는 강력한 주의식으로 우리의 대뇌를 통제해 그것을 억제하고 배제해야 한다. 이렇게 배제하고 억제하는 과정이 바로 그것을 깨끗이 제거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공부한 법을 분명하고 명백하게 대뇌 속에 반영하는 것이다.

2. 우리에 대한 사악의 교란과 박해는 우선 법공부를 교란하는 것부터 착수한다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전제는 법공부를 잘 하는 것이다. 우리에 대한 사악 요소의 교란과 박해는 모두 우선 법공부를 교란하는 것부터 착수한다. 만일 우리가 법공부를 중시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더러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지 못하게 할뿐만 아니라 심지어 교란을 통해 점차 우리더러 법공부를 소홀히 하고 담담하게 만들며 심지어 나중에 법에서 벗어나게 한다. 내 생각에 법공부에서 출현되는 어떠한 형식의 교란이든 모두 가장 심각하고 가장 사악한 것이다.

현재 여전히 일부 동수들은 법공부할 때 교란을 받는데, 예를 들면 법공부할 때 늘 틀리게 읽으며 생각이 다른 데로 흐르는데 책을 읽을 후에도 자신이 무엇을 읽었는지 모르는데 피곤하거나 심지어 몽롱하게 존다. 상술한 교란은 일부 동수 중에 이미 장기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어떤 법공부팀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부동한 정도로 존재하고 있다. 이리하여 어떤 수련생은 법공부에서 장기간 교란을 받아 아주 곤혹스러워 하며 이미 비자각적으로 일종 어쩔 수 없다는 소극적인 상태가 형성되었으며 심지어 이미 ‘습관’이 되어 법공부만 하면 생각이 다른 데로 흐르거나 피곤하여 졸음이 온다.

법공부는 절대 형식에 흐르지 말아야 하며 오직 배우기만 한다면 자신의 주의식이 고도로 청성하게 공부해야 한다. 설사 시간이 적어 단지 한 절을 공부할지라도 한 절을 공부한 실제효과를 거두어야 할 뿐만 아니라 법 속에 용해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일사일념은 대법의 정념에서 내원한 위력을 구비하게 될 것이다.

3. 실제효과를 중시하고 끊임없이 제고해야

장시간 나는 매일 법공부할 때 몸과 마음이 대법의 무변한 내포와 에너지 마당 속에 용련되는 그런 느낌과 깨달음이 있었는데 정말로 우주 중에서 가장 수승하며 가장 아름다운 영광이었다. 때로 사부님께서 법에서 한층 높은 층의 이치를 깨닫게 하실 때면 신체의 극히 미시적인 입자로부터 줄곧 가장 표면의 분자까지 관통되어 스며드는 강렬한 진감(震撼)을 느낄 수 있었고 이때 제고가 된 후 나는 마치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 같았고 사유가 명석하고 순정하며 신체는 씻은 듯이 맑고 투명해졌다. 나는 법공부에 대한 실제 효과를 중시하기에 발정념을 하고 진상을 알리며 삼퇴를 할 때 상태가 아주 좋으며 기본적으로 교란이 없다.

교류를 통하여 모두들 공동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법공부상태가 좋지 않거나 심지어 교란이 있던 많은 동수들은 사실 매일 법공부 시간과 수량이 적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매일 일정한 법공부 시간을 보증하고 있었으며 어떤 때는 법공부 양도 아주 많았다. 그러나 상태가 좋지 않고 수확이 적었는데 그 근본원인은 마음을 조용히 할 수 없었고 실제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줄곧 속도와 수량을 추구해 왔다.

또 어떤 수련생은 『전법륜』의 내용은 이미 아주 익숙하여 『전법륜』을 공부할 때면 형식에 흐르며 익숙하다는 ‘염두’와 ‘기억’을 지니고 통독하기에 앞 구절을 읽을 때면 다음 구절이 모호하게 대뇌 속으로 반영된다. 또 어떤 수련생은 주의식이 대뇌를 단단히 통제하지 못하기에 앞 구절을 읽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다음 구절을 연상한다. 또 어떤 수련생은 읽는 속도가 너무 빨라 입은 위 구절을 읽고 있으나 눈은 이미 다음 구절에 가 있다. 또 어떤 수련생은 속인중의 한눈에 10줄을 보는 독서 방식과 관념을 운용해 법공부를 한다. 상술한 상태 표현은 모두 법공부의 실제효과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어떤 수련생은 법을 읽는 속도가 너무 빨라선 안 된다고 인식하지만 읽는 속도가 빠르면 생각이 다른 데로 흘러가지 않으나 속도가 느리면 오히려 생각이 다른 곳으로 빠진다고 여긴다. 교류를 통해 동수들은 이것은 일종 정확하지 못한 법공부 상태라고 인식했다. 왜냐하면 속도가 빠를 때 주원신이 완전히 ‘독서’에 사용되어 대뇌를 단단히 통제하고 있는 것이지 “마음을 조용히 하고 공부”하여 대뇌가 통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기왕 빨리 읽고 유창하게 읽으며 틀리지 않는 것은 이때 주원신이 완전히 ‘독서’에 집중한 것이지 ‘공부’에 집중한 것이 아니다. 때문에 이것은 일종 부정확한 ‘독서’상태로 다른 일종의 부정확한 상태인 생각이 다른 데로 흘러가는 것을 덮어 감추는 것이다.

제기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교란받는 수련생은 법에서 깊은 교류를 통해 교란받는 실질과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정확히 인식한 후, 법공부할 때 주의식을 강화하고 아울러 완만하게 읽는 방식을 채용했는데, 비록 처음에 생각이 다른 곳으로 흐르긴 했지만 수련생이 끊임없이 주의식을 강화하자 읽은 매 한 구절의 법이 모두 명확하게 대뇌 속에 반영되었으며(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실행할 수 있다”는 정사(正邪)대전을 거쳐 아주 빨리 교란이 점차 약해지거나 심지어 소실되었다. 교란이 깨끗이 제거된 후 수련생은 법공부할 때 마음을 조용히 한 법공부의 실제효과도 거둘 수 있었을 뿐더러 정체적으로 제고되는 상태가 점점 좋아졌다.

문장발표 : 2009년 4월 2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4/27/19977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