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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을 다시 논함

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1월 26일】 ‘7.20’ 이전에 나는 “최대한 속인상태에 부합해야 한다” 는 대법 수련형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업신여기기 쉬운 사람’이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익마저 견지하지 못하고 모순에 봉착하기만 하면 소극적으로 양보하려 했다. 그리하여 가족들의 바르지 못한 사상 요소를 청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팽창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내게 “당신은 파룬궁을 연마하기에 내가 무엇을 하든 당신이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위적으로 사악한 마를 자양(滋養)한 것이다”(『정진요지』「도법」)

박해가 시작됐을 때 이렇게 자양된 사악한 마들이 이 점을 이용해 조금도 거리낌 없이 나를 박해했고 결국 내가 이혼하게 만들었다.

지금 내가 이해하기에 대인지심(大忍之心)이 있다는 것은 사악이 멋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다. 부당한 대우 앞에서 대법제자의 ‘인(忍)’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개인 이익의 득실 앞에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지 세간의 일체를 반드시 포기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이 ‘좋은 사람’임을 나타내기 위해 죽은 듯이 살며 외압을 참고 버티는 것은 더욱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과 생존하는 조건이 있어야 하며 또한 수호해야 하는 것으로, 사람은 여전히 생명을 유지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전법륜』)

우리는 속인 중의 일체를 내려놓아야 할 뿐만 아니라 속인 중의 정당한 일체를 과감히 수호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인간의 이익에 개의하지 않는다 하여 우리가 반드시 이런 일체 이익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며 바르지 못한 요소의 업신여기는 말을 들으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불공정한 대우에 직면해 우리에게 불공평을 강요할 때 우리는 청성한 인식으로 대법을 파괴하는 사악한 요소를 없애야 하며 인간 사회에서 대법의 표현 형식을 보호해야 한다. 대법제자는 바로 인간 세상에서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체현이다.

완전히 대법의 각도에서 문제를 볼 수 있는가는 정법시기 매 대법제자의 기본적인 소질이다. 다시 ‘대인지심’으로 자신의 나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덮어 감춘다면 깨달음이 너무 부족한 것이며 철저하게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사람의 표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관건은 우리에게 진정 대법에 대한 그런 견정한 믿음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정정당당하게 대법을 수련하고, 악당이 우리 머릿속에 부어 넣은 ‘당은 일관되게 광명하고 위대하며 정확하다’는 독소를 숙청한다면, 그럼 무엇 때문에 자신의 정당한 이익이 다른 사람에 의해 무리하게 침범당할 때 당당하게 견지하는 것도 하지 못하는가? 설마 대법제자가 침범 당하고 기만 당하는 경지에 이르러야만 옳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우리는 “불법적인 소란을 당하고 불법 감금을 당하고서도 현 상태에 만족하면서 자신이 많은 사람들이 공경하고 우러러 보는 세계의 주역이 될 생각을 하지 못하는가? 우리가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정당한 이익을 포기하며 주눅들 때면 사악에게 하나 또 하나의 생명을 부지할 공간을 주는 것이 아닌가?

이상은 사부님이 다섯 편 평어 문장을 다시 학습한 후의 개인적인 소견이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 사부님 평어 문장 5편: 『삼언양어:좋은 사람』, 『대법의 위엄』, 『무엇이 진정한 선인가』, 『악을 제거할 때 정법수련을 잊지 말자』, 『마성을 제거하자』

문장발표 : 2009년 1월 2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26/1941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