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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을 도와주는 것은 자신을 제고하는 과정이다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7월 15일】 최근 우리 지역의 한 동수에게 엄중한 병업상태가 나타났다. 어떻게 그를 도와줄 것인가에 대해 많은 동수들의 의견이 달랐다. 현재 진상을 알리는 시간이 긴박한 정황하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을 지체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수련생을 잘 도와줄 것인가 하는 이것에 대해서는 인터넷의 매우 많은 문장들에서 이미 토론이 있었다. 여기에서 나는 단지 우리 현지의 정황과 결부하여 자신의 인식을 이야기하려 한다.

우리 현지의 신체에 “병업”이 나타난 이 수련생은 대법이 박해받은 이 몇 년 간 견정하게 법을 수호하는 대열 앞에 섰다. 그녀는 몇 번이나 감금당하였으며 사악의 눈에는 그녀를 한 “명인(名人)”으로 본다. 이 수련생은 또한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다. 매번 수련생이 박해당하면 그녀는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면서 최선을 다하여 도와주었다.

올해 초 이 동수에게 엄중한 병업상태가 나타났으며, 생명이 위급하였다. 어떻게 수련생을 도와줄 것인가 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여러분 동수들은 표현이 각각 부동하였다.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여러 동수들은 그녀가 개인적으로 누락이 있었던 원인에 의해 틈을 타게 되었다고 하였으며, 반드시 자신의 제고에 의거해야 한다고 여겼다. 또 어떤 이는 반드시 그녀를 도와주어야 함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제기했다. “나는 그녀의 집에 가서 발정념할 수 없다. 그녀도 우리집에 와서 발정념하지 말라. 나는 집에서 그녀에게 발정념을 해주겠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집은 그녀의 집과 매우 가깝다. 내가 집에서 발정념하는 것과 그녀의 집에 가서 발정념하는 것은 같다. 모두 근거리 발정념이다.’ 그리고 어떤 집은 모두 다 수련하는 사람인데, 오직 한 사람만 “대표”로 한번 가보면 된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말한다. 나는 그녀를 도와줄 수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의 일을 지체할 수 없다. 이런 말을 하는 대다수는 이 동수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다. 현지에서는 지금까지도 이 동수에게 효과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수련생은 지금도 난관에서 걸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마난중의 수련생은 명혜주간의 “구세력에게 동수의 생명을 빼앗기게 하면 안 된다” 라는 문장을 혼자 눈물을 흘리면서 보았다. 그녀는 괴로워하면서 말하였다. “내 신변에는 왜 이런 수련생이 없는가?”

거대한 난중에서 동수에게는 도움이 수요된다. 우리는 하나의 정체이다. 사람을 구도하는 것을 지체하지 않는 정황하에서 수련생을 도와주도록 안배하는 것은 완전히 가능하다. 단지 동수들의 두려운 마음과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의 저애하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수련생은 사악이 박해하는 “중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집에는 “위험”이 있다. 그녀의 집에 가서 법공부하기보다 자신의 집에서 법공부하는 것이 편안하다고 여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그녀의 일을 자신의 일로 볼 수 있겠는가? 이 몇 년 간 바로 여러분이 하나의 정체를 형성하지 못하여 우리 지역의 여러 동수들은 장기적으로 “병업”의 마난중에 처해 있다. 우리는 마비된 중에서 하는 수 없이 구세력에 의해 “각개돌파”를 하였다. 동수들이어, 청성하라. 우리는 하나의 정체이다!

자신의 깊은 마음속을 캐어 보면 무슨 마음이 있어서, 우리들로 하여금 수련생을 도와주지 않도록 하였다.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 어떻게 이처럼 담이 쥐처럼 작을 수 있으며 이기적일 수 있는가? 사실 수련생을 도와주는 과정이 바로 자신을 제고하는 과정이다. 아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해주신다. 우리는 단지 수련생을 도와 정념을 일으키게 하면 되는데,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바로 우리의 정념이다.

문장완성 : 2008년 7월 14일
문장발표 : 2008년 7월 1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7/15/1820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