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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의 몸에서 본 것

문장/ 청풍

【명혜망2008년7월7일】행복은 사람마다 동경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은 사실 욕망의 만족이며 또 부단히 노력을 통하거나 혹은 그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고 개인목적과 이상의 목표에 도달하도록 쟁취하는 것이다. 이런 행복은 짧으며 너무 길지 않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익을 위하며 어떤 사람은 정을 위해 행복을 느낀다. 사실 진정한 행복은 세속에 있지 않다.

한번은 동수와 우연하게 이야기하던 중 이익의 마음에 대한 문제를 담론하였다. 이 수련생은 농촌사람이다. 여러분은 모두 농촌의 일이 매우 바쁜 것을 알고 있다. 오직 겨울이 되어야만 한가해지기 시작한다. 농사일이 매우 바쁠 때 이 수련생은 자신의 집에 일을 다그쳐서 끝낸 후 또 다른 사람네 집에 가서 품삯일을 한다. 품삯일하여 벌은 돈은 한푼도 남김없이 모두 중생을 구도하는데 사용한다. 수련생이 지불한 매일, 매 년마다 조금씩 저축한 것이다. 그것은 뙤약볕을 무릅쓰고 혹독한 더위를 무릅쓰고 자신의 땀으로 바꾸어 온 것이다. 동수도 가정이 있고 아이가 있다. 나는 동수의 노고와 간고함을 깊이 느꼈다.

수련생이 무의식중에 제기한 이런 무사, 무아(无私,无我)하며 마음을 중생에 둔다는 말을 듣고 나의 마음은 감동을 받았으며 나의 눈은 적셔졌다. 여기에서 나는 동수의 위대함에 대해 너무 많은 찬미를 하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이기적인 것과 탐욕을 보았다. 동수와 비기면 거리가 얼마나 큰가!

정법이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다. 우리는 중생이 구도되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그렇게 마비되었다. 아직 자신의 생활 중의 아름다운 꿈을 만들고 있다. 속인 중에서 좀 행복하게 살아가려 하고 자신을 다듬어보고 가정을 장식하며 미래를 동경하며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이런 이기적인 마음은 또 어떻게 태연자약하게 버리겠는가? “버림은 속인의 마음에 집착하지 않는 것의 체현이다. 만약 정말로 능히 탄연(坦然)하게 버릴 수 있으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자라면, 실은 이미 그 한층에 있는 것이다.”(《무루无漏》)

현재 우리가 행하고 생각한 것을 뭇 신은 모두 자세하게 관찰하고 있다. 우리의 매 하나의 사고, 매 일념을 잘 장악해야 하며 자신의 휘황한 수련의 과정에 그 어떤 유감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하나의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해야 할 것이다.

층차가 제한되어 부족한 점이 있으면 동수님들이 자비롭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원고발표:2008년07월07일
문장분류:[수련마당]
원문위치:http://minghui.ca/mh/articles/2008/7/7/1815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