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안을 향해 찾는 것은 사실 결코 어렵지 않다

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7월 1일] 요즘 겪는 각종 압력은 태어난 이래 종래로 있어 본는 준엄한 것이다. 처리할 필요가 있는 문제 역시 매우 복잡하고 크기가 서로 다른데 이 일체는 다른 사람으로서는 체험하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법을 공부하면서 안을 향해 자신의 부정확한 상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찾았다.

대법이 손실을 보아 조급할 때, 수련생이 박해를 받게되어 조급할 때, 이 조급함의 배후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가? 속인의 각도에서 본다면 이것은 이른바 책임감이지만 대법 수련자의 각도에서서 본다면 이것은 기본상 사부님과 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

내가 박해 받는 동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견해에 신경을 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태도에 신경을 쓰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원인은 모두 마찬가지인데 그 것은 모두 ‘정(情)’을 위한 것이다. 모두 정 속에 서서 문제를 고려하는 것이다. 나는 우주 심처에서부터 층층 내려오면서 모든 마난을 겪고 삼계까지 온 것은 무엇 때문인가를 자신에게 물었다. ‘그래 이 삼계의 정을 위해서란 말인가? 이러한 얽히고설킨 정을 틀어쥐기 위하여 자기 수련의 시간을 방해한 단 말인가? 삼계는 사람을 미혹시키기 위하여 창조해 낸 것이 아닌가?’

삼계는 절대로 대법제자를 미혹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삼계의 일체는 사실 모두 가상인데 내가 본 대법제자들이 사람 속에서의 모든 표현을 포함한다. 사실 대법제자들의 잘 수련된 일면만이 비로소 진상이지만 이 진상은 삼계 내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 것은 자신의 관념에 부합되거나 부합되지 않는가를 막론하고 모두 가상이 아닌가? 모두 가상이라고 한다면 내가 자신의 관념에 부합되고 부합되지 않는가를 판별하여서는 무엇 하겠는가? 자신에 대해 좋게 대하는 사람과 좋지 않게 대하는 사람은 모두 마찬가지가 아닌가? 반드시 같은 심태로 모든 사람을 대해야 한다. 만약 생각과 정력을 이런 표면적인 가상 중에 쓴다면 그 것은 조사 정법의 의지를 희석시키지 않겠는가?

나는 마땅히 시시각각 신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고려해야 하며 사람의 사유로 문제를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에 부딪쳤을 때 내가 생각하는 것은 마땅히 하나의 신, 하나의 부처가 이런 문제에 부딪쳤다면 그가 처리할 방식이어야 하며, 사부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처리하도록 희망하시는 것이어야 하며, 사부님께 근심을 적게 끼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수련이란 곧 바로 타인을 위하는 생명으로 수련하는 것이 아닌가? 항상 자신의 처지, 자신의 곤난, 자신의 감수만 생각하는 이것은 자아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모두 위사(爲私)한 것이 아닌가? 어느 때 가서야 사람이 사람의 인식을 고수하는 이런 상태를 개변할 수 있는가 ? 이것은 한 수련인이 지금까지도 가부좌를 틀지 못해 하늘의 보살들마저 입을 가린 채 웃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실 안을 향해 찾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오직 결심만 있다면 사부님께서는 수시로 제자들에게 점화해주신다. 내가 생각하건대 관건은 자신이 사람으로부터 걸어 나오려 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진수(眞修)하려 하는가 하지 않는가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묵묵히 그처럼 많은 것은 감당하셨는데 나는 어떻게 사부님께 보답할 것인가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사부님께서 적게 심려하시게 할 것인가? 사부님께서는 무엇을 보시려 하시는가? 내가 생각하건대 사부님께서는 우리 제자들이 용맹정진하는 것을 희망하시며 보다 많은 중생을 구도할 것을 희망하신다. 대법제자인 우리가 어찌 사전의 서약에 대한 기억을 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찌 사존의 부탁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저층 관념을 내려놓았을 때 나는 비로소 청성하고 가벼움을 느끼게 되었고 더는 저층 요소에 의해 끌려가거나 속박 받지 않게 되었으며 신체와 사상도 더는 그처럼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문장발표 : 2008년 7월 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8/7/1/1812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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