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혜심(慧心)
【명혜망 2008년 5월 13일】 인체는 마성(魔性)과 불성(佛性)이 동시에 존재한다. 어떻게 해야 마성의 일면이 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는가? 정법 중에서 수련한 정념으로 사람의 관념을 대체하면 빗나간 구세력의 요소들이 끊임없이 부정 된다.
수련 중에서 우리는 마성을 억제하고 불성을 충실히 하며 수련자의 심성을 제고해야 한다. 정법으로 인해 우리 매 개인은 비로소 미래 우주 중에서 새롭게 위치를 배치하는 만고에도 없었던 기연이 있게 된 것이며 이는 또한 사부님께서 각개 중생들에게 남기신 유일한 기회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아주 중시해야 하며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매번 우리가 한 일이 법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을 때면 표현되는 것은 법을 벗어난 후 심성의 위치이고 우리의 순정하지 않는 일면을 충분히 폭로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타나지 말아야 할 수많은 각종 교란이 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매 수련자의 심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시시각각 일사일념이 대법에 동화되도록 하는 것은 분명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매번 마난에 부닥칠 때 만약 정념으로 일체를 대하고 시시각각 우리에 대한 법의 부동한 층차에서 부동한 요구에 따라할 수 있다면 족히 관을 넘길 수 있다. 그것은 곧 우리 본성의 일념이 법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본성의 일념은 우리가 대법에 동화한 후 수련해 낸 정념으로 사람의 마음을 지니지 않고 사람의 사상관념을 벗어난 것이다. 한 층이 동화되면 한 층의 사람 껍데기를 벗을 수 있으며 층층이 동화되면 층층이 겁데기를 벗을 수 있는바 누락이 없이 집착을 닦아버릴 때까지 수련해야만 비로소 사람 관념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 승화하여 진정한 신이 될 수 있다.
수련 과정 중에서 수련자는 늘 고뇌와 번거로움, 기쁘지 않거나 편안하지 않은 일, 불쾌한 일 ,억제당하거나 고독 및 각종 모순에 부닥치기 마련이다. 이 과정 중에 발생하는 일은 일이 크고 작은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염두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사람과 신은 일념의 차이로 법리가 정반대이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면 이 일체가 모두 나쁜 일이라고 여기지만 신의 마음으로 하면 이 일체는 모두 아주 좋은 일이다.
수련 중에서 사람의 관념을 버리고 고층차의 법리(곧 정법 이치)로 일을 하면 곧 법에 동화되고 표현되어 나오는 것은 견정, 충실, 적극적이고 당당하고 위력이 있는 정념이다. 이렇게 하면 나쁜 일도 좋은 일로 변할 수 있어 자신을 보호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반대로 사람 마음으로 일을 하면 나타나는 것은 소심하고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며, 담이 작고 연약하며, 소극적이고 정정당당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신을 보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교란을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일을 할때 심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구세력이 감히 막지는 못하지만 일을 할때 심태가 바르지 않으면 틈을 타게 한다. 심태가 순정하고 정념이 충족하면 곧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정념정행 할 때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실 수 있는 원인이다. 한 수련생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찰차에 ‘9평’을 놓았는데 뜻밖에도 차안에 경찰이 앉아 있었다. 그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수련생은 당시 두려움이 없었고 태연자약하게 “물건을 주었으면 경찰에게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경찰은 “맞습니다”라고 했다.
수련생은 곧 “그럼 이 책을 당신들에게 드리겠습다.” 경찰은 더 묻지 않고 책을 들어 보았다. 수련생은 순조롭게 떠날 수 있었다. 만약 당시에 동수의 마음이 긴장하여 급급히 떠났다면 아마 경찰의 의심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동한 심태는 부동한 결과를 가져온다. 심태가 좋은 것은 끊임없이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과정 중에 수련해 내고 정념정행 한 결과이며 법 공부를 잘한 표현이다.
다른 한 수련생은 자신이 추적당하는 것을 알고 긴장하지 않고 몸을 돌려 추적자를 마주하고 진상을 알렸다. 동수의 선행이 추적자를 감화하여 상대방은 다시는 대법제자를 박해하려는 생각이 없어졌다. 그가 자신이 미래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남긴 것이다. 또 한 수련생은 추적하는 것을 알고 머리를 돌려 좋지 않는 말로 상대방을 비난하자 상대방은 즉시 전화로 몇 사람을 불러 수련생을 납치했다. 이 사람은 또 대법 수련자에게 죄를 범한 것이다. 우리의 선악의 행위는 세인을 구도하는 효과를 대응하기에 대법에 동화하는 것은 세인을 구도하는 효과에 대응되고 대법에 동화하는 것은 개인의 원만뿐만 아니라 동시에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나 개인의 직접적인 경험 중에서도 확실히 심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체험했다. 한번은 야간에 자료를 들고 집에 오다가 중간에 경찰차의 추적을 당할 때의 일이다. 나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 발정념으로 교란을 배척하고 사부님의 보호를 청했다. 마음속에 불안한 감정이 있었지만 체포당하거나 갈 수 없다는 생각은 없었다. 나는 반드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동수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경찰차는 골목길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으나 내가 골목길을 나설 때 오히려 가버렸다. 사부님의 보호 아래 나는 순조롭게 돌아올 수 있었고 놀람은 있었지만 위험은 없었다.
또 한 번은 내가 길에서 진상을 알릴 때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제보로 110(경찰)이 와서 나를 데려가려 했다. 나는 아주 단호하게 그들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진상을 알리고 전 세계적인 탈당 형세를 말하면서 이것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고 나쁜 일을 한 것이 아니므로 그들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뚱보 경찰이 내가 가지 않는 것을 보고는 악에 바쳐하는 말이 “네가 믿지 못하는가? 네가 차에 오르지 않으면 전화로 두 대의 차를 불러 너를 들어서라도 차에 실을 것이다.” 내가 “당신 말을 믿지만 나는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임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이고 선악의 보응은 천리이니 자신의 장래를 위해 퇴로를 남겨 두어야 합니다.”
당시 분위기가 단번에 온화해지면서 그들은 상의하는 말투로 나더러 차에 오르라고 했다. 동시에 중도에서 둘러싼 군중을 벗어난 후 나를 놓아주겠다고 했다. 내가 거절하고 단호히 따르지 않으니 그들은 젊은 경찰더러 나와 함께 걷게 했고 그렇게 한 동안 길을 걸었다. 뚱보경찰은 차를 몰고 뒤를 따랐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한 후 나를 놓아주겠다고 했다.(의미는 자신들의 체면굴을 봐달라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걸어가면서 젊은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를 도와 삼퇴를 시켰다. 나는 그들에게 “오늘의 일은 당신들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들에게 오늘과 같은 이런 일에 부닥칠 때 대법제자를 체포하지 말고 죄를 범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렇게 어느 정도 길을 걸어간 후 그들은 “당신은 가도 좋고 앞으로는 더 조심하시오!”라고 했다. 나는 “감사합니다!”하고 대답하면서 경찰차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전반 과정을 되돌아보니 내게는 두려워하는 마음은 없었고 경찰차가 왔어도 곧 차에 붙들려 간다는 사람 마음도 없었다. 심태는 평온했고 사람을 구하려고 했지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110경찰차 앞에서 순조롭게 떠날 수 있었던 원인이다. “제자의 정념이 족하니 사부는 회천력이 있다”(『홍음2』「사도은」)의 내포를 진정으로 체험한 것이다. 우리 마음 속에 무사무아하고 정념이 충족하다면 사부님께서는 구세력의 박해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사부님께서 정말로 내 신변에 있다는 것을 감수한 동시에 사부님께서 우리 신변에 계시지만 우리의 정념이 부족하고 사람마음이 중할 때는 사부님께서도 관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자신을 ‘속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구세력을 포함한 다른 생명을 훼멸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일체 중생을 자비로 대하시기 때문이다.
수련 중에서 우리는 점차 신의 사상으로 사람의 사상을 대체해야 한다. 우리의 신신(身神)이 합일(合一)하고 후천에 형성한 일체 관념을 내려놓고 시시각각 법에 입각하고 정법의 이치에 입각해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상태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곧 법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다.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고 법공부하여 자신의 사상이 늘 법에 용해되도록 해야 한다. 비록 표면상에서 최대한도로 사람 상태에 부합해야 하지만 우리 주체의 사상이란 이 그릇에 담는 것은 우주의 근본대법이라면 점차 사람의 잡념을 깨끗이 배척하고 신의 생각으로 사람의 생각을 대체해 진정으로 사람 속에서 걸어 나올 수 있다.
사람의 사상 중에 “무엇을 담으면 곧 무엇이 되며” 행위상에서도 자연히 무엇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외재적인 ‘요구’가 아니고 또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다. 행위는 개변하기 쉽지만 사람 마음은 변하기 어렵다. 사람 마음이 안에서부터 근본적으로 개변하지 않는다면 곧 진정으로 사람에서 신으로 걸어가기 어렵다.
문장발표:2008년 5월 13일
문장분류: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5/13/178363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