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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내려 놓고 정체를 이루어야만 진정 누락이 없게 된다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2월 20일] 복사기가 고장이 나서 오랫동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반복적인 법공부와 마음을 닦는 중에 나는 다시 한번 사부님의 《호주수련생에 대한 설법》을 경청하고 나서야 비로소 문득 발견하게 되었다. 원래 사부님께서 진작 우리에게 알려주셨던 것이다. 자아에 대한 집착을 철저히 내려놓아야 하며 정체를 형성해야 한다. 오직 그래야만 우리는 비로소 법을 실증하는 사업을 잘할 수 있고 일할 때 비로소 기적이 나타날 수 있으며 비로소 더욱 많은 중생들을 구도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전 한 단계의 수련을 반성해 보노라니 그야말로 늘 “자아”의 울타리에서 맴돌았다. 구체적인 표현으로는, 자신이 하는 일을 법공부, 마음수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 – 날마다 바삐 보냄으로써 자신이 아주 정진한다고 여겼고, 복사 자료 수량이 많으면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한 것으로 여기면서 다망한 가운데서 씬씽(心性)을 수련하는 것에 주의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신 한 분이 내려와도 모든 대법제자들이 하는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신이 내려오지 못하게 하는가? 왜냐하면 우리는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사부님은 우리가 수련하여 올라가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씬씽이 수련되어 올라가기만 하면 일체의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닌가? 일 속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으로 법을 실증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닌가?

개인수련에 대한 중시를 주변 동수의 수요보다 더 중시한다. – 동수에 대한 불량한 상태는 자비심이 결핍한 것으로서 그(그녀)는 응당 스스로 잘 수련해야 하고 나는 다만 “선을 권고”할 뿐이라고 여기며 개인 견해를 말하는 것을 책임지지 않는 일로 여긴다. 상태가 나쁜 동수와 교류할 기회가 있다 해도 진념으로 도와줄 때가 드믈며 “바른 요소로 책임”지는 책임감이 적다.

개인의 좋고 나쁨을 중생의 부동한 수요보다 더 중시한다. – 자료 복사를 할 때 전문적으로 자신이 즐기는 것을 선택한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것은 일률적으로 복사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은 법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다고 여긴다. 채색 전단지를 찍는데만 집착하면서 인쇄기에 문제가 생겨 아주 오랜동안 자료가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보건대는 인쇄기에 대한 기능 요해가 없는 것 같지만 실제상으로는 그 자아에 대한 집착이 지혜를 바깥에서 막아놓은 것이었다.

개인 깨우침, 하는 일에 대한 중시를 정체를 원용하는 것보다 더 중히 여겼다. – 수련생이 법을 실증하는 일에 있어서 협조를 요구할 때, 나는 도리어 현수막을 거는 것은 사람 마음을 지닌 과시심이며 쟁투심일 뿐만 아니라 경찰을 쉽게 격노시키는 사람의 일면이므로 문자 자료를 배포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알게 하기보다 못하다고 여겼다. 다만 자신이 이런 방법을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합하길 거부하였고 발정념으로 수련생을 가지해 주지도 않았다.

개인 능력에 대한 중시를 정체의 힘에 대한 중시보다 더 중하게 여겼다. – 내가 해야할 일을 묵묵히 잘하는 것을 수련을 잘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런 심리는 바로 “자아 집착” 심태의 발로라는 것을 더욱 몰랐다. 이것은 곧바로 동굴에 들어가 혼자 수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개인수련을 아무리 잘했다 해도 입자 하나일 뿐이다. 가령 정체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입자와 입자 사이에는 틈새가 있을 것이고 그러면 사악이 교란하고 파괴하는 이유가 되며 사악이 존재하는 구실이 될 것이다. 지금은 사부님께서 정법을 하고 계시며, 모든 대법제자는 장래 우주의 부동한 천체의 왕으로 각자 일부분 천체를 책임질 것인데, 오직 모든 대법제자가 함께 뭉쳐야만 “무맥무혈”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고, 법의 위력이 비로소 최대한도로 나타날 수 있어,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무루(無漏)”에로 수련할 수 있으며 사악은 자연히 숨을 곳이 없게될 것이다.

반성 한 후 바로 ‘명혜주간 매표특간’이 발표되었다. 읽고 나서 나는 깊이 느꼈다. 뉴욕 매표 이 일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전체 대법제자들은 반드시 철저히 “개인수련”의 작은 울타리에서 걸어나와야 하며 철저히 자아를 내려놓고 신속히 정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私)”는 구우주 생명의 근본 속성이다. “개인수련”을 고층차에서 보면 여전히 하나의 “사(私)”로써 정법수련 중 “자아”에 대한 집착은 사실상 아직도 “개인수련”의 울타리에서 완전히 걸어나오지 않은 것이며 똑같이 하나의 “사”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신우주의 표준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법을 실증하는 중에 수련생이 한 일이 많을수록 아주 강한 자아를 더욱 쉽게 형성할 수 있다. 자아적 경험, 자아적 능력, 자아적 인식, 자아적 배치, 자아적 일, 자아적 습관,…… 이는 일종 유감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을 실증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용기와 힘이 수요된다. 이런 “자아”는 사람 중에서 어떤 때, 더욱이 초기에, 우리를 좀 도와주어 우리로 하여금 여러가지 교란 중에서도 확실히 움직이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수련을 하고 있다. 우리는 더욱 높은 경지로 수련해 가려 하며 우리는 사람의 일체 집착을 철저하게 내려놓으려 하고 있다.

법정인간이 눈앞에 다가 왔다. 중생은 우리가 가서 구도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동수들이여, 우리 철저하게 “자아”를 내려놓고 무너뜨릴 수 없는 금강불파의 정체를 형성하여 사악이 형체를 감출 곳이 없게 하자. 그렇게 해야만 진상은 비로소 천하에 밝혀질 수 있고 중생도 비로소 최대 범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

문장발표 : 2007년 12월 2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7/12/20/1686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