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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에 대하여 말해 보자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9월 24일] “7. 20” 사당이 박해를 시작한 후 법을 실증하는 가운데서 여러 사람이 마굴에서 제일 많이 한 것이 바로 단식이다. 북경에 상소하러 가서 붙잡히면 단식했고, 악경에게 납치되어 구치소에 갇히면 단식하였으며, 간수소에서, 노동교양소에서, 감옥에서 단식하였다. 왜 이렇게 했는가? 많은 사람들은 법리상에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며, 자신이 이런 작법을 선택한 것이 필경 법 속에 있는가 없는가, 무슨 효과가 있는가, 응당 이렇게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그다지 명백 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느끼건대 많은 사람들은 모방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하는 와중에 어떤 사람은 단식을 통해 구치소, 노교소를 벗어날 수 있는 작용이 있었고,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앞사람이 쓰러지면 뒤 사람이 이어가면서 단식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나온 사람은 아주 적을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은 나왔다가 다시 잡혀 들어갔다.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법을 배우고 수련 하는 것은 개인의 일이다. 하지만 흔히 많은 수련생은 늘 다른 사람을 본보기로 삼고 있으며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곧 어떻게 한다. 이것은 속인 중에서 양성된 좋지 못한 행위이다.”(《법륜불법ㅡ정진요지(2) 길》)

나에게 한가지 생각이 있는데 줄곧 말하기 싫었다. 자신의 인식이 옳지 않아 수련생을 해칠 것 같은 두려움에서였다. 나는 노교소에 줄곧 3년을 있으면서 많은 동수들이 단식을 하여 악경의 강박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하는 것을 보았다. 단식 본신은 신체에 거대한 고통을 주는데 만약 우리가 또 동수의 이런 행위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란 정말이지 마음이 아픈 것이다. 사부님은 늘 우리에게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고 알려 주셨다. 발정념 하고 “대법은 좋습니다”를 외치는 등 정념은 사악을 제압할 수 있다. 어떤 경문은 심지어 어떻게 정념과 공능을 운용할 것인가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하지만 정법이 이미 최후에 이르렀는데도 옥중의 많은 동수들은 여전히 단식만 알고 있다. 나는 이 문제를 반드시 제출하여 교류를 함으로써 여러 사람들이 법에서 제고하도록 해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가 법리상에서 제고하는 것만이 비로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며, 비로소 일체의 마난과 박해를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풀려 나가기 위하여 단식을 한다. 내가 알건대 목적에 도달한 사람은 극소수다. 뿐만 아니라 신체는 거대한 손상을 당한다. 그들은 당신한테서 생명위험이 나타나야만 비로소 당신을 내보낸다. 정정당당한 대법제자에게 어찌 생명 위험이 나타날 수 있는가? 당신은 어떻게 대법의 병을 떼고 몸을 건강히 하는 효력을 실증할 수 있는가? 뿐만 아니라 사악도 정말로 우리의 빈틈을 타고 들어와서 부르짖는다. 너희들 사부는 너희들 병을 떼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어떤 때 우리는 정말로 대꾸할 말이 없다. 무얼 말하겠는가. 오직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단식을 하여 정정당당하게 노교소를 나갔다고 하나 나는 확실하지 않다고 느낀다. 당신은 말하지 않았는가. 너희들이 나를 내보내지 않으면 나는 곧 단식을 한다. 나를 못가게 하면 나는 곧 밥을 먹지 않겠다. 당신의 신체가 안되기에 당신을 돌봐서 집에 가서 신체보양을 하라고 내보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암암리에 단식을 한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하는가? 두려워 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면 무엇을 하든지 효력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박해는 사람이 속인에 대한 박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공간의 사악은 당신의 두려워 하는 마음을 아주 똑똑히 보고 있기에 비로소 감히 박해를 하는 것이다.

사부님은 설법 중에서 말씀하셨다. “가급적으로 자신의 길을 바르게 걸어가야 하며 가급적으로 일체 환경 속에서 발생한 일체 일 속에서 정정당당하게 할 수 있어야 하며, 너그럽고 도량이 커야 하며 다른 사람을 이해 할 수 있어야 하고, 가급적으로 전면적으로 문제를 사고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생각 하건대 아주 많은 일을 모두 아주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보스턴법회에서의 설법)
만약 당신이 정정당당하게 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나갈 수 있다해도, 이 문제에서 누락이 있어 사악이 곧 틈을 타고 들어올 것이다. 만약 줄곧 정정당당하게 발정념, 진상 알리기를 견지 한다면 악인들은 감히 우리를 이렇게 대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후의 사악한 인소들은 끊임없이 제거되고, 제거되고 있기 때문에 뻗치고 있었대야 견지하지 못할 것은 그것들이지 대법제자가 아닌 것이다!

감옥에서 나온 동수의 입을 통해 알았는데 학강시의 대법제자 쉬즈청은 바로 단식기간에 음식물 주입을 당해 사망된 것이다. 노교소에서 병업으로 하여 나왔다가 또 병업으로 생명을 잃은 이가 얼마나 되는가? 우리 이 지역에만 해도 여럿이다. 그중 한 노년 여 수련생이 바로 몰래 단식하여 나온 사람인데 금년도 초반에 외출하였다가 사악에게 암해 되었다. 정정당당한 대법제자를 사악이 어찌 감히 암해할수 있겠는가? 이것은 누락이 아닌가? 생각하면 괴롭다. 나는 아주 괴롭다. 나는 그와 함께 지냈기 때문에 그의 작법을 나는 동의 하지 않았으나 나는 도리여 그와 교류하지 않았다. ㅡㅡ 나에게는 사람마음이 존재하여 자신이 깨우친 것이 옳지 않아 접수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에서, 수련생이 그렇게 많은 고생을 했는데 또 ‘무슨 다른 말을 하랴’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후에 그가 암해를 당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내가 더는 입을 다물고 침묵해서는 안되며, 응당 나의 인식을 말해야 한다고 느꼈다. 나에게 다른 인식이 있음에도 말하지 않는 것은, 바로 동수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병업으로 생명을 잃은 수련생이 그렇게 많은데 이는 이젠 작은 문제가 아니므로 안을 향해 찾아보기를 중시해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누락이 없다면 사악이 어찌 감히 우리한테 손을 쓸수 있겠는가! 우리는 사부님이 보호해 주는 사람들이다. 당신에게 누락이 있다면 사악은 곧 비집고 들어 올 것이다. 당신이 장기적으로 대법제자의 조건에 부합되지 못한다면 사부님은 상관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박해를 반대하며 박해를 감소시키려 한다. 단식할 때 마음이 순정하지 못하면 신체가 파괴될 뿐만 아니라 환경도 그에 따라 더욱 악화된다. 매번의 대규모의 단식은 모두 경문이 빼앗기고 서로간에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어떤 사람은 단식은 법을 실증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것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서인데 중생이 어떻게 구도될 수 있는가? 그는 그 이치를 알아야만 그는 구도될 수 있는데 당신이 밥을 먹지 않으면 그가 곧 도리를 알수 있는가. 어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중생을 구도하려 생각 한다면 오직 그더러 진상을 요해하게 해야지 그 누구에게 당신의 도리를 접수하라고 협박하지는 못한다. 사부님은 말씀 하셨다.”우리는 오직 연분을 말하고 선을 권할 뿐이다. 사람을 강박하는 것은 수련이 아니다.(《법륜불법(미국에서의 설법)》)

우리의 행위는 사람을 구하고 박해를 반대하며 사악을 제거하는 것이다. 정법이 수요하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단식을 해야한다는 이유가 없다. 예를 든다면, 우리는 집체로 법을 암송하고 정념을 가강하거나 혹은 끊임 없이 발정념하는 것은 단식보다 더욱 법을 실증하고 사악을 제거하며 박해를 반대하고 박해를 해체시킬수 있는 효력이 있다 . 그렇지 않는가?

이상은 개인의 약간의 인식을 가지고 동수들과 교류하오니 동수께서 지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6년 9월 2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6/9/24/13845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