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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남쪽 잔디밭 사건과, 사건이 유발된 후 효과를 구분하자

글/미국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4월 23일】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소리친 사건이 발생한 후, 그 행동의 옳고 그름을 두고서 미국 수련생들 중 같지 않은 의견을 많이 교류하였다. 어떤 동수들은 이 사건이 그가 본 가장 위대하고 가장 휘황한 행동 중의 하나라고 말하는가 하면, 특히 서방 매스컴이 어쩔 수 없이 몇 년 간의 침묵을 깨고 파룬궁을 보도하는 것을 보면서 일부 수련생들은 이런 행동을 맞게 했다고 느꼈다. 속인 중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는바, 왜냐하면 속인 중에는 그런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련인은 사실상 본질적으로 속인과 다른 것이며, 반드시 수련의 이치로 자신을 요구하고 사람과 일을 대해야 한다.

* 사건 후 효과가 좋다고 하여 애당초 일을 완벽하게 꼭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한 사건 자체와, 그 사건이 유발된 후 효과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정법 중에는 이번 박해가 없다. 이번 박해는 낡은 세력이 강제로 가한 것이다. 하지만 기왕 발생했으므로 사부님께서는 그것으로 우주 중의 모든 중생들의 심성을 보는데 사용하셨다. 제자는 누락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박해를 당하는 것이지만 사부님께서는 오히려 우리에게 박해진상을 폭로하여 세인들의 양지와 착한 생각(善念)을 불러 일으켜 이로써 그들을 구도하게 하셨다.

그러나, 중생들의 심성을 가늠할 기회가 있다고 하여 우리는 낡은 세력이 배치한 박해가 맞다고 여길 수 있는가? 많은 속인들이 잔혹한 박해 사건을 보고 비로소 대법제자에 대한 동정심이 생겼다하여 우리는 박해를 엄중하게 받은 제자만이 가장 많이 대가를 치르고 가장 잘 수련했다고 여길 수 있는가? 답안은 확연한 것이다.

정법수련의 7년을 되돌아보면 많은 일들이 처음에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사부님께서는 늘 무량한 자비로써 우리에게 지혜와 이지로 그것을 좋은 일로 변하게 하여 이로써 세인을 구도하게 하셨다.

내 생각으로 이번 백악관 외침사건도 마찬가지다. 대법제자와 기자로서 백악관의 그런 의식에 들어갈 수 있었다면 완전히 더욱 이지적이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국제사회로 하여금 파룬궁이 받은 박해에 주목하게 할 수 있었다. 적절하지 않은 거동은 확실히 일부 부면(負面)적인 효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기왕 이 사건이 발생했으니, 그럼 우리 여러 사람들은 마땅히 전력을 다해 이 시기를 잘 파악하여 그것을 이용해 진상을 밝히고, 최대한으로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그러나 수련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마땅히 마음속으로 명백해야 하는바, 늘 사건 후의 효과로 당초에 가장 잘하고 가장 적절하게 했는지를 판정해서는 결코 안 된다. 하물며 이번 사건 후 효과는 사후에 많은 대법제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여 함께 정념으로 대처함으로써 생긴 반영이다.

* 완벽하지 못하게 한 일도, 그것을 가장 좋은 사건 후에 달하는 효과를 얻도록 해야한다.

현재의 효과는 결코 정법이 중생을 구도하는데 필요한 정도에 도달하지 못했다. 서방매스컴은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적출하는 것을 아직 광범위하게 보도하지 않았으며 중공의 모든 노교소·감옥·수용소를 긴급히 조사하는 일에도 아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직 중공이 노교소·감옥·병원과 관련 시설을 이용하여 대법제자를 감금하고 박해하는 일이 하루라도 중지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루도 맘을 느슨히 해서는 안 되며, 또한 속인처럼 마음을 과다하게 돌발사건 자체와 개인의 행위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로스엔젤레스시의 설법》중에서 우리에게 “절대로 사회중에서 어떤 한 가지 일이 출연했다 하여, 심지어 대법제자의 박해를 반대하는데 유리한 일일지라도 대법제자는 수련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 일을 가서 한다면 그건 절대로 안 된다! 수련은 곧 수련이다.” 라고 법리를 말씀해 주셨다. 수련의 심성표준은 법으로 가늠하는 것이지, 한 사건 후의 효과가 좋고 나쁨으로 개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건 후 효과가 어떻게 좋고 어떻게 나쁘든 우리 여러 사람들은 계속 노력해야 하며 각자 최대한 역할을 발휘하여 생체장기적출 사건을 되도록 빨리 전 사회로 하여금 알게 해야 하며, 모든 노교소·감옥·병원에서 더 이상 감히 대법제자를 감금하고 잔인하게 살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중대한 사명을 한 수련생이나, 혹은 한 수련생의 수련에다 걸어도 안 된다.

사실 지금 이미 갈수록 많은 대법제자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대법제자 혹은 대법제자의 일부 사회단체 명의를 이용하여 이번 뉴스사건을 계기로 매스컴 취재에 응하고 있으며, 사회단체에도 진상을 하고 있는데 얻은 효과는 모두 바르다. 그러나 만약 여러 사람들이 모두 한 사람만이 가서 하기만을 기다린다면 의지하는 상태가 나타나기 쉽고 이 수련생의 수련상태에 대한 요구도 높아 낡은 세력이 틈타기 쉽다.

문장완성: 2006년 04월 22일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4/23/1259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