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심태를 바로 잡고 진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견지하다

글/대만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2월 15일] 최근의 한차례 교류모임에서 한 수련생이 인터넷을 통해 ‘삼퇴’를 권할 때의 이야기를 했다. 그는 매 번 인터넷 친구에게 탈당을 하라고 권유하는 관건적 시각에 늘 축구경기에서 마지막 슛을 잘 못넣는 것처럼 무엇인가 모자라는 감을 느끼는데, 결국 성공하지 못하여 지금까지 한 사람도 ‘삼퇴’ 시키지 못했다고 했다. 수련생은 이로 인해 기가 죽고 좌절감을 느낀다고 했는데, 여기서 이 문제를 제기하여 동수들과 교류하려 한다.

사부님은 “어떤 수련생들은 진상을 밝히는 중에 듣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심지어 반대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여러분들은 한 사람의 반대로 인하여 당신의 마음이 좌절을 당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중생을 구도하는 용기를 잃게 해서는 안 된다. 대법제자, 무엇이 대법제자인가? 가장 위대한 법이 육성한 생명이다. (열렬한 박수) 반석같이 견고하고, 금강불파(金剛不破)한 것이다. 속인 중의 나쁜 사람의 한 마디 말이 다 무엇인가? 네가 아무리 사악하여도 나를 변하게 할 수 없는 것으로 나는 꼭 나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할 것이고, 나는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2003년 워싱턴 DC법회에서의 설법》)

나는 그전에 진상을 이야기 할 때는 늘 그런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었다. 시간이 길어지고 같은 상황이 많아지니 속인의 관념이 곧 정념이 부족한 틈을 타서 강해졌으며 자신에게 대법제자로서의 요구를 늦추었다. 그때 나는 “ 내가 이렇게 말하고 당신도 많이 들었는데 왜 이렇게도 깨닫지 못하는가?”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급해지니 심성을 지킬 수가 없었으며 심태도 바로 잡을 수가 없었다. 집착심이 대번에 일어나 신심이 없어지고 진상을 더 이야기 하기가 싫어졌다. 후에 부단한 법학습과 안을 향해 찾는 과정에서 깨달았는 바 이런 생각은 모두 자신의 사람의 일면이며 낡은 세력이 사람 마음의 빈틈을 탄 것이었다. 바른 것과 사악한 것의 겨룸인 진상을 이야기 함에는 매 번마다 그만두는가 아니면 견지하는가 하는 고험이 있다. 오직 진정하게 내심으로부터 중생을 구도함은 대법제자의 사전의 큰 염원임을 깨달아야 비로소 더욱 이지적으로 견정하게 믿음과 정념을 견지해 나갈 수 있다. 오직 이렇게 하여야만 중생들은 비로소 구도될 수 있으며 동시에 우리도 중생을 구도하는 사명을 완성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진상을 밝혀 중생을 구도(救度)하는 것은 낡은 세력은 감히 반대하지 못하는데 관건은 일을 할 때의 심태(心態)가 그것으로 하여금 빈틈을 파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2002년 보스턴 법회에서의 설법) 나는 여러 번 진상을 이야기 할 때 시간이 부족하므로 모두 빨리 말해주려는 생각이 자꾸 나면서 대충하여 끝냈는데 결과는 물론 성사되지 못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냉정하게 사고해 보면 우리가 진상을 이야기 하는 매 한걸음마다 모두 그렇게 쉽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응당 수시로 심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자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는바 우리는 사람을 구함에 결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급히 성사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면 설사 그 일념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 가기만 하여도 모두 사악이 빈틈을 탈수 있다.

사부님께서는“만약 수련인의 사상이 법을 이탈한다면 사악은 파고들어 올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미국 플로리다 법회에서의 설법)만약 우리가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매우 쉽게 낡은 세력이 만들어 놓은 올가미에 빠지여 그것이 배치한 길을 걷게 된다. 사악의 목적은 대법제자로 하여금 이 일은 할수 없다고 느껴져 포기하게 하는 것이고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는 신심과 정념을 약하게 하는 것인데 이로 인해 중생을 훼멸시키는 목적에 도달하려 한다. 만약 우리가 전반적으로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하지 못한다면 관건적 시각에 진상을 이야기 함에 교란과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사부님의 요구에 쫓아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함으로써 우리의 심태를 바로 잡고 낡은 세력의 배치를 돌파하며 중생을 구도하겠다고 한 사전의 큰 염원을 실현해야 한다.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인바 모두가 부동한 형식을 이용하여 공동히 진상을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매 한차례 진상을 이야기 함은 모두 중생구도를 위해 기초를 닦는것이며 누적하는 것이다. 비록 한 속인이 지금 이 순간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가 그에게 진상을 이야기 함은 헛하지 않는 것이다. 진상을 들은 중생은 그의 아는 일면이 꼭 점차적으로 우세를 차지 할 것이며 기회가 있어 다른 수련생을 만나 또 한 번 진상을 듣게 되면 진상을 요해하는 것을 가로막던 간극이 타파될 것이며 부단히 그 배후에 있는 그를 조정하는 사악의 인소를 해체시켜 진일보로 진상을 알아 구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예는 인터넷이거나 전화로 진상을 이야기 할 때 매우 많다. 그럼 이 생명이 구도되는 과정에 일으킨 작용 중에 당신의 한 몫도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각도를 바꾸어 말하자면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자비이다. 당신들은 최대한도로 가서 중생을 구도하라. 당신들이 사람을 절반 구할 수만 있다면 사부는 정말로 당신들을 위해 기뻐할 것이다!”(《2005년 샌프란 시스코에서의 설법》)때문에 위의 제일 출발점은 바로 어떻게 하여야 중생을 제일 많이 구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오직 구도된 중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마지막에 그 어느 수련생이 그 사람을 ‘삼퇴’ 시켰든지 설복하였는지가 중요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우리가 정신정념(正信正念)으로 가득 차고 견지하여 나간다면 꼭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의 것은 개인의 층차에서 깨달은 것이므로 자비롭게 지적하여 주기를 바란다.

문장완성 : 2006년 02월 14일
문장발표 : 2006년 02월 15일
문장갱신 : 2006년 02월 15일 00:49:48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6/2/15/120845.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