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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위신의 이야기

글 / 대법수련생

[명혜망] 위신은 2000년 7월 21일에 태어났는데, 다행히도 그의 부모 모두 대법수련생이다. 그런데 다른 수천 명의 파룬따파(法輪大法)수련생 가족들처럼, 위신이 태어났을 때 가족은 박해를 받고 있었다. 1999년 10월 위신의 어머니가 막 임신을 했을 때 지역 읍 정부에서는 그녀에게 강제로 낙태시키려 했다. 왜냐하면 당국이 말하는 대로, “파룬따파 수련생으로서 그녀는 강제 낙태수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박해와 낙태를 피해 억지로 집을 떠나게 되었고, 다행히 위신의 생명은 구제될 수 있었다.

파룬따파에 대한 박해는 위신이 태어났을 때 이미 일 년이 지나 있었다. 아주 갓난 아이였지만 위신은 잘 처신했다. 아빠가 사부님의 강의 테이프를 듣고 있을 때는 그도 조용히 들었으며 사부님의 사진을 보여주면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말을 배울 무렵에는 『홍음』을 가르쳐주면 따라하는 것이었다.

2001년 4월 25일, 마을 당국과 지역 파출소에서 나온 관리들이 다시 한 번 파룬따파 수련생들에 대한 박해를 점진적으로 확대했다. 일부 경찰들이 벽돌담장을 넘어 위신의 집 뒤뜰로 들어왔다. 그들은 8개월 된 위신을 엄마 팔에서 떼어내어 아기와 엄마를 함께 끌어갔다. 시의 빌딩으로 가는 도중에, 위신은 전혀 울지 않았는데 빌딩으로 들어갔을 때 관리들은 결국 엄마에게 위신을 돌려 주었다

연이은 박해와 벌금으로 위신의 아빠는 이미 기울어져 가고 있던 사업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가족은 더욱 어려운 삶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푼돈을 모아 진상 자료를 프린트하는데 썼다. 그러다보니 다른 어린아이들과 같지 않게, 꼬마 위신은 맛있는 음식도 먹지 못하고 좋은 옷도 입을 수 없었다. 꼬마 위신이 고기를 달라고 울었고, 다른 수련생들도 그의 부모에게 아이를 잘 먹이라고 말했지만, 가족은 몇 달에 한 번 약간의 고기를 먹을 수 있을 뿐이었다.

2001년 7월 20일, 위신의 엄마가 드디어 위신을 위해 만두를 만들려고 약간의 돼지고기를 사서는 만두 빚기를 거의 다 끝냈을 무렵 경찰이 들이닥쳤다. 그녀는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아기를 그녀의 할머니 집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위신의 엄마도 경찰에 납치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지역 정부에서 나온 리 푸창과 창 완구이가 이끄는 사람들이 위신의 할머니 집에서 위신의 엄마를 불법으로 체포했다. 바로 위신의 첫 돌날에 꼬마 위신은 다시 한 번 엄마를 잃은 것이었다.

아는 사람의 배반으로 위신의 아버지도 체포되어 2004년 밀 수확 시기에 세뇌반으로 끌려갔다. 동수들의 정념과 사부님의 보호로 위신의 아빠는 세뇌반을 걸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포기하지 않고 위신의 집에서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채 위신의 부모는 또 한 번 강제로 집없이 떠도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들의 노부모와 네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위신만이 뒤에 남겨졌다.

2005년 9월 1일 위신이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선생님이 그에게 연필, 공책, 연필깍이, 그리고 필통을 사라고 했다. “필통을 사야겠지?” 하고 엄마가 말하자 위신은 “필통을 왜 사요? 전에 아줌마가 쓰던 것을 쓰면 되잖아요? 조금이라도 돈을 모아야죠.” 낡고 녹이 슨 필통을 바라본 위신의 부모는 감동하여 눈물이 났다.

엄마와 아빠가 다른 사람들에게 9평 공산당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탈퇴하라고 설득하는 것을 보고, 위신도 그의 꼬마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더욱이 그들에게 파룬 상징도 주었다.

2005년 10월 9일, 현의 610 사무실은 또 한 차례의 파룬따파 수련생들을 체포했다. 당국은 세뇌반에 30명을 채울 계획을 세웠다. 다시 한 번 위신의 부모가 명단에 올랐으나 다행히 일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들은 걸어 나올 수 있었다. 그동안 위신은 또 다시 그의 조부모와 살았다. “위신아, 너는 사는 게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니?” 엄마가 돌아와 그에게 물었다. “전혀 안 그래요. 수련을 잘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에 돌아가는데요. 이 길만이 사악이 우리를 다치지 않을 거예요!” 꼬마 위신은 견정하게 반응했다. 분명히 그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훨씬 성숙한 어린아이를 응시하면서, 위신의 엄마는 다시 한 번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위신이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했지만 그의 엄마는 단 한 번의 생일만 2위안을 주고 작은 생일 케이크를 사줄 수 있었다.

발표일자: 2005년 11월 8일
원문일자: 2005년 11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10/21/112854.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5/11/8/6665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