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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을 버리지 않으면 정진하지 못한다

글/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10월10일】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는 신경문을 읽으면서 사부님께서 1996년에 『휴스턴법회에서의 설법』때 하신 이야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주 일찍이 인도에 한 바라문의 제자가 수련하고 있었는데 수련에 아주 정진하였으며 산 속에서 그는 단독수련(獨修)하였다. 어느날, 한 사냥꾼이 사슴 한 마리를 쫓고 있었는데 이 사슴을 쏘아 맞혔다. 이 사슴이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자 그는 사슴을 숨겨두고 보호해 주었다. 그는 산에서 혼자 있기에 매우 적막하여 나중에 이 사슴을 길렀다. 사람이라 집착심에 주의하지 않으면 매우 심각한 것이다. 이런 속인의 가련한 마음, 사람의 마음이 정에 대한 집착을 모두 이 작은 사슴에 쏟아부었다. 나중에 그는 이 사슴에 대하여 매우 집착하게 되었다. 최후에는 이 사슴이 그야말로 그의 가장 친밀한 친구가 되었다. 결국 그는 많은 정력을 이 사슴에 두다보니 그가 가부좌를 할 때 사상도 조용해질 수 없었으며 사슴에게 무슨 먹이를 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의 정진을 느슨하게 하였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이 사슴이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리자 그는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늘 이 사슴을 생각하느라 더욱 정진할 수가 없었다. 이 때 그의 나이도 이미 많이 들었다. 당신이 수련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생명을 연장시킬 수가 없는데 그가 수련할 수 없으므로 그의 생명도 결속되었다. 그의 생명이 결속될 때 그는 아직도 그의 불법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는 여전히 그 사슴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죽은 후에 그는 사슴으로 환생하였다. 사람이 죽음에 임했을 때, 집착스럽게 무엇을 생각하면 그는 아마 무엇으로 환생할 수 있으므로 그는 단번에 한 마리 사슴으로 환생하였다. 이것은 매우 슬픈 것이다. 한 수련하는 사람이 수련을 매우 잘하였는데 최후에는 하루아침에 망가지게 되었다.’

수련인은 수련하여 삼계를 벗어나야 한다. 삼계 내의 정을 내려놓지 못하면 최후의 결과는 지금까지의 고생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며 너무 슬프고 애석하게 된다.

왜 정을 내려놓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그것은 사람은 엄마의 배속에 있을 때부터 이미 정에 잠겨 있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관념과 후에 양성한 관념들은 정의 작용하에 더욱 강화, 확대되었고 사람은 시시각각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관념으로 모든 사물을 가늠한다. 이렇게 하면 좋을까, 저렇게 하면 좋을까? 사람은 살아서 인생가치를 실현해야 하며 남보다 뛰어나 선조와 가문을 빛내야 하며 대를 이어가야 한다. 또 떳떳하게 사회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 수련자도 한 보통 사람으로부터 대법을 인식하고 점차 수련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기에 이런 사람의 관념을 가지고 수련하게 된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중에서 점차 자신의 본성과 이런 후천적인 관념을 똑똑히 분별하게 되고 자신의 진념으로 일거 일동을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후천적이고 저능한 관념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수련의 길을 개변시키고 심지어 수련의 기회를 놓지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관념은 정말 토대가 튼튼하여 표현되어 나올때면 수련인 자신은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예를 든다면 나는 해외에서 학위를 얻은30여세인 남자 청년이다. 집식구들과 친척들은 모두 내가 남보다 뛰어나서 일찍 좋은 인연을 맺기를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속인 사회의 직장이 때론 끊길때도 있어 경제가 매우 어렵다. 자신의 대법 항목도 바쁘고 사업환경이 특수하여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가 적다보니 절의 중보다 더 적막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혼인은 더 아득하여 집식구들이 독촉할때면 응락하고 허락할 수 밖에 없다. 때론 한 시기 바삐 보내고 나면 또 마음을 안착시키고 법공부를 할 수 없이 사람의 마음이 번진다. 자신을 너무 고생시키는 것은 아닌가(고생은 실상 좋은 일이다. 정진하지 못하기에 고생스럽다고 여길 뿐이다.) 나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바삐 보내야 하는가? 다른 사람은 집이 있고 직장이 있으며 적어도 아내와 아이 등 동반자들이 있지 않은가? 나도 자신을 위해 많이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대법 사업은 다른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적게하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시간이 나면 속인 사회에 가서 한바탕 분투해 볼까? 심지어 귀국하면 지금의 곤경을 개변시킬 수도 있을 것이 아닌가, 대학 동창들마냥 귀국하여 교수도 되고 가정도 이루고 ……?

이때면 법공부도 잘할 수 없다. 책은 한장 한장 읽는다지만 눈은 바쁘고 마음도 급한데 생각하는 것들은 앞에서 말한 그런 일들 뿐이다. 눈 깜빡할 사이에 한 시간이 지났지만 책은 머리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아침 연공도 많이 느슨해져 한주에 한번이나 할 정도이고 아침 시간은 모두 자버린다. 일어나기만 하면 또 컴푸터에 앉아 바삐 돌아친다. 하루하루 이렇게 보내다 보니 대법사업이 속인 직장이 되버렸고 법공부는 관례에 따른 공무로 되었고 연공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때때로 해야하는 심성 제고는 생각할 겨를이 없게 되었다.

장기간 이렇게 하다보니 심성이 제고 되지 않았고 시간이 없다는 핑게만 대고 안에서 찾아보지 않았고 동수들과의 간격이 점점 늘어갔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밖으로 밀면서 자기 주견만 세우면서 다른 사람을 포용하지 못하였다. 시끄러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밀어버리고 자신은 즐기면서 익숙해진 일만 찾아 하려 했으며 현상태에 만족하면서 의기양양해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사업은 많이 했으나 시끄러움과 교란이 적지 않았고 자신이 질질 끌며 버리지 못한 관념과 사람의 마음이 대법의 진정한 저애가 되었다.

왜 자신은 때때로 이런 관념의 교란을 받아 의지가 소침해졌는가?

실상 이것은 자신이 사람의 행복을 아직 똑똑히 보아내지 못한 것이다. 비록 속인들의 명리는 담담히 보나 내심 깊은 곳에는 아직 한가닥 집착이 남아 있어 이런 성적은 그래도 추구할만 하고 의의가 있다고 여긴것이다. 박해가 심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사업이 긴장할 때는 대법 사업에만 바삐 돌다보니 자신의 이런 집착에 눌리어 잠시 나타나지 않았었다. 비록 바쁘지만 의지가 소침해져 정진하지 못하였는데 실은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다.

목전 대법의 형세가 급변하여 여러가지 환경이 좋아졌고 법을 실증하는 일도 그리 긴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사람의 마음이 또 살아났다.

잘 살고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관념은 자신이 생각한 것이 아니고 후천 의식의 침전물로서 실상 사람을 속박하고 사람들이 이렇게 해야만 가치가 있는 인생이라고 느끼게 한다. 나는 이것도 역시 낡은 세력이 의식적으로 사람들에게 안배한것이고 오늘의 수련인들에게까지 영향주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이 신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 막는 한 개의 관이고 속박하는 자물통이다. 내가 이것을 중히 보지 않고 내려놓지 못한다면 속인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것을 위해 바삐 돌아치고 살다보면 나중에는 오히려 모든것이 허무해진다. 관직이 높고 돈이 아무리 많으면 무엇할 것인가? 오직 수련하여 올라가야만 진실하고 허위가 없게 되며 우리가 인간들속으로 오게된 진정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수련인으로서 법에 동화되어야 이런 것을 통찰할 수 있고 관념의 속박에서 해탈될 수 있다. 이것은 속인의 직장생활이나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집을 금으로 만든 벽돌로 짓고 침대는 돈으로 깔아도 개의치 않고 예전대로 수련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 여기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속인의 직장과 생활은 단지 생존하기 위한 수단이고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좋은 장소일 뿐이다.

내가 사업을 잘하여 많은 노임을 타고 승진하게 되는 것은 분투하여 얻은 것이 아니고 자연적으로 얻게 되는 것이고 가정과 세인을 자비로 대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를 실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인연에서 오며 중생을 구도하기 위함이다. 나는 속인의 득실을 중히 여기지 않으며 고생을 낙으로 삼을 것이다. 실상 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일생을 바삐 보내는 것이야말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나는 아직도 수련하고 있기에 부족함을 인식하게 된 것이 바로 첫 발자국을 내디딘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을 실증하는 정념이 항상 자신의 일사일념을 주도할 때만이 정진한다고 할 수 있는데 앞으로 법공부를 하고 심성을 제고하면서 점차 이 점을 깨달으려 한다. 우리는 법에 동화되고 속인의 정과 관념의 지배를 받지 않고 청성하고 이지적으로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제일 바라는 바이다.

문장 완성: 2005년 10월 9일
문장 발표: 2005년 10월 10
문장 갱신: 2005년 10월 10 02:43:42
문장 분류: [제자 절차]
원문 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5/10/10/1121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