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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 출산하신 전후 공을 전수하시고 설법하신 과정 중의 일부 경력을 회억하며 (2)

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1월25일】(윗 문에 이어)

6.“마음을 조용히 하고 다른 사람이 말을 끝까지 듣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이다”

사부님의 공개 교공(敎功)을 따라 다니기 시작할 때 心性이 제 위치에 닿지 않아, 그리고 젊고 성급하여 다른 사람과 말을 할 때 서두르고 독단적이라 다른 사람의 말을 쉽게 끊어버렸다. 또한 자기의 인식과 정서를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주입하였으며 가끔은 체면 때문에(실질은 허영심이었음)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 하였다. 나의 정황에 대하여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은 남을 존중함이요 동시에 다른 사람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조용히 듣고 법에 부합되는지를 법으로 가늠하여야 한다. 자세히 분석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더는 조급하게 말해내지 말며, 되도록 적게 말하고 많이 듣고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조용히 들으면서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하는 즉 이것은 일종 예의이고 수양이다. 고 하셨다.

사부님과의 이 한 단락 담화는 나를 깊이깊이 영향주었다. 십 여년동안 나는 늘 이 한 단락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었는데, 나는 동수들 중에 특히 일부 젊은 남자수련생들이 조급하고 독단적이어서 가끔 사람과 접촉하고 담화하는 중에 일부 예절에 주의하지 않을 때 나는 조용히 사부님의 이 한 단락 말씀을, 나를 겨냥하게 하신 말씀을 그들에게 들려주었고 수련생들은 모두 아주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강의하실 때 설법을 제외하고 사부님께서는 내려오시면 아주 적게 말씀하셨다.

7. 매번 사부님께서는 제자 혹은 손님을 바래줄 때 항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하고서야 비로소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가셨다

사부님께서는 평소에 다니고(行), 머물고(住), 앉고 눕는 것이 단정하여 쉽게 또한 지극히 사람의 위엄을 자아내셨다. 그렇게 오랫동안 같이 있으면서 나는 사부님께서 쇼파나 의자에 앉으실 때 다리를 꼬고 앉거나 몸을 뒤로 젖히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나이가 많은 수련생에 대하여 사부님께서는 좀처럼 거드름을 피우시지 않으셨으며 이름을 부르실 때 어투상에서 아주 존중하셨다. 매번 수련생 혹은 손님을 문 밖으로 바래다줄 때 사부님께서는 문 어구에 서서 손님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으로 바래다 주고 비로소 몸을 돌려 방에 들어가셨다. 이 하나의 세세한 부분도 이렇게 오랫동안 나의 머리에 새겨져 있다.

8. 사람을 가르치실 때 실증내지 않으셨지만 어떤 사람은 욕을 하면서 강의실에 들어와 강의를 들었다

사부님께서 공을 전수하시고 강의하실 때 일반적으로 문제를 해답해 주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 제10강의에서 사부님께서는 전문적으로 수련생들의 질문에 대답해주셨다. 수련생들은 매번 모두 아주 많은 쪽지를 제기하였고 일부는 반복하여 말씀하신 문제지만 계속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각 지역에서 학습반을 여실 때 신수련생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사람들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일부 문제는 중복하여 해답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만 여전히 중복되어 제기되었으며 사부님은 또 인내하시며 세세하게 해답해주셨다. 특히 각 지역의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항상 일부 유사한 문제들을 제기하였고 아주 초급적인 문제였다. 가끔 노수련생들도 모두 참지 못하였지만 사부님께서는 몇 년 동안 각 지역에서 학습반을 여시면서 그렇게 많은 수련생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시종 번거롭다고 실증내지 않고, 인내하시고 세세하게 해답해주셨다. 그러한 자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가끔씩 자신은 각종 정황에서 정말로 화를 내고 싶었다. 예를 들어 처음 배우는 수련생이 항상 나더러 동작을 교정해달라고 하였다. 시간이 길어지자 정말로 귀찮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사부님의 인내심을 생각하면 자신의 원망은 단번에 없어졌다. 어떤 사람은 신수련생과 접촉하면 배울 것이 없다고 하며 늘 노수련생과 “높이 닦은” 이들과 접촉하려고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진정한 수련자는 어떠한 환경 속에서 모두 자신의 수련을 촉진하며, 신수련생과 교류할 때의 인내심, 착한 마음, 자아를 내려놓음을 잘하는 등등이 자신의 수련제고에서 체현된다. 오늘날의 진상 알림,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깊은 독해를 받은 많은 중생을 마주하고 진상을 알릴 때 나쁜 사람의 저항력, 중생의 오해, 자기 마음 상태에 대한 파악, 대선대인(大善大忍)의 포용 모두다 일개 진수제자가 자아를 돌파하고 정진 제고함을 체현한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비는 수련해낸 것이지 표현해내는 것이 아니며,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지, 해서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은 영원히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시간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2003년 워싱턴DC 법회에서의 설법))매번 이 한 단락 설법을 볼 때마다 사부님께서는 그 당시 사람을 제도하시고 전법하시던 자비와 인내 하심은 나를 감동시킨다.

9. 사부님께서 침묵하시던 위엄을 목격하였다

1993년,기공연구회의 어느 한 사람이 사부님을 초청하여 그들의 고향인 산둥 랴오청에서 학습반을 열었다. 좋은 공법을 고향사람들에게 알린다는 명의를 내세웠지만 실은 현지 기공협회와 공모하여 돈을 벌어 나누자는 것이었다. 학습반이 결속된 후 계약에 따라 행하기 때문에 그 당시 사부님께서 전국 각지에서 학습반을 여는 조건과 계약은 똑같았다.즉 사부님께서는 10분의 3, 4를 가지고 현지 주최측이 10분의 7,6을 가진다. 아울러 사부님의 비용이 너무 낮아(그 당시 파룬궁은 전국 각 유형의 기공반 중에서 가격이 가장 저렴한 바, 입장료가 40위안이고 노수련생은 절반 가격인 20위안이었다. 실제로 매번 모두 노수련생들이 대량으로 학습반에 참가하였다) 매 번마다 학습반을 열고, 장소를 빌리고 식사, 투숙 등 비용을 제하면 거의 한푼도 남지 않았다.

산둥 현지기공협회의 주최인은 사부님의 입장료가 너무 낮다고 원망하였다. 사부님을 지난(濟南) 기차역으로 호송하는 차 안에서 40여세되는 여 주최인은 마구 욕을 하면서 한시간이 넘도록 떠들었는데 전부 사부님에 대한 원망이었다.

나는 뒤에 앉아서 듣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겨우 참았지만 천천히 끝내 참을 수 없었다. 그녀가 계속 이렇게 사부님을 비방하는 것을 더는 용인할 수 없어 저도 모르게 한마디 하였다:”입을 다무시오. 당신이 계속 이렇게 말하려면 차를 세우고 우리를 호송하지 마세요. 우리는 차에서 내려서 우리들끼리 갈 것이오. “사부님께서는 즉각 고개를 돌리어 나를 한번 보셨다. 한 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나무라는 뜻이 조금 있었다. 바로 나더러 말하지 말고 그곳에 앉아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부님의 자비하시고 엄숙한 표정이 가져온 위엄은 단번에 나의 격동된 정서를 평온하게 만들었다. 그 사람도 일종 위엄에 마치 단번에 제압된 듯 하였다. 몇 마디 더 떠들더니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 후 사부님께서는 또 아무 해석도 없었다. 전반 과정에서 사부님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지만 오히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 주최인을 포함하여, 단번에 자신의 부족함과 착오를 인식하게 하였다.

나의 지금의 체험은, 더는 참을 수 없다(忍無可忍)는 대법제자의 신의 일면에게 말씀하신 것으로써 그로 하여금 악을 제거하고 정법하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사람의 일면, 아직 제거되지 않은 집착을 방종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자기 사람의 일면을 잘 속박하고 시시각각 심성을 잘 닦아야 만이 자신의 신의 일면은 비로소 충분히 작용을 발휘하여 사람의 일면에 억제되지 않아 진정으로 신위(神威)가 크게 나타날 수 있으며 정법에 참여하고 악을 제거할 수 있다.

10. 사부님께서 한번 보시기만 하면 밝은 거울(明鏡)처럼 자신의 모든 좋지 않은 생각이 단번에 여지없이 폭로된다

1994년 정저우(鄭州)에서 학습반을 열 때 수련생 인원수가 그렇게 많으리라곤 생각지 못하였다. 그러나 주최측이 대여한 장소는 또 아주 낡아서 무대 위의 벽돌마저 모두 드러나 있고 일부 창문은 유리가 없었다. 나는 이를 보고서 조금 조급해져 주최측과 교섭하여 장소와 음향효과가 좋은 곳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였다. 그 당시 나는 씬씽(心性)을 지키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화를 냈으며 말할 때 또 조급하게 서둘렀다.

사부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나는 공법을 배운 후 시종 사부님의 곁에 있었는데 사부님께서 미소를 짓지 않고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나는 이번에 처음 보았다. 사부님께서 입을 여시기 전에 나의 두 다리는 저도 모르게 후들거리면서 사부님의 비할 바없는 위엄을 느끼었다. 사부님께서 한번 보시기만 하면 밝은 거울(明鏡)처럼 자신의 모든 좋지 않은 생각들이 숨을 여지가 없이 적나라하게 폭로되어 나왔다. 이전에 인식하지 못했던 문제에 대하여 단번에 자성하기 시작하였다. 사부님의 그 위덕과 위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 당시 화를 낸 후 20분 뒤에 나의 목소리가 쉬어버렸다. 무대에 올려 공법을 가르칠 때는 목이 괜찮다가도 내려오면 여전히 괴로운 것이 4, 5일 동안 지속되었다.

11. 사부님께서 갑자기 몸을 돌리시더니 엄한 눈길로 나의 눈을 보셨고 족히 10여초 동안 나의 눈을 보시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1993년 여름 사부님을 따라 우한에 가서 학습반을 열었다. 낮에 시간을 짜내어 사부님을 따라 한커우의 귀운사에 가서 참관하였다. 석가모니 불상 앞에서 사부님께서 가슴 앞에 단수(單手) 입장하셨으며 기색은 장엄하고 숙연하였다 .나는 사부님의 우측 뒤에 서서 사부님께서 하신 대로 가슴 앞에 단수 입장하였다(사실 나는 마땅히 두 손으로 합장해야 했다). 불상을 마주하고 서서 나의 머리는 오히려 온갖 잡생각을 하였다. 즉 석가모니불은 단지 여래이고 더욱 높은 층차에서 여래를 보면 모두 속인이다. 나는 어떠어떠하다… … 저도 모르게 가슴 앞에 입장한 손이 배 앞으로 미끌어졌다. 내가 두 눈을 게슴츠레 뜨고 헛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사부님께서 몸을 돌리시더니 엄한 눈길로 나의 눈을 주시하셨다. 족히 10여초 동안 한 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단번에 놀라서 온 몸에 식은 땀이 쫙 났었고 단번에 명백해졌다.

대학 교과서를 배우고 자신이 대학생이 된 줄로 여긴다. 자아 팽창이 발전하여 자심생마(自心生魔)하는 자신은 오히려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일부 노수련생들은 바로 이 한 점에서 훼멸되었는데 나중에 사부님도 승인하지 않게 되는 즉 교훈은 아주 심각한 것이다.

12. 이른 바 “죽는 것을 보고 구하지 않음”에 대한 진상

매번 학습반을 시작할 때 사부님께서는 모두 현지에서 주최하는 기공협회에 “병이 중한 사람은 받지 않고” 강의할 때 우리는 사람들에게 치료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병 치료 관념을 안고 놓지 않는 사람이 이름을 올려도 우리는 그 돈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주최측인 현지 기공협회는 돈벌이에 급급하여 이런 것들을 상관하지 않았다.

1994년 하얼빈 4천명 학습반에서 진저우(錦州)에서 온 몇몇 사람이 50여세 되는 뚱뚱한 남자를 들어서 학습반에 데려왔다. 그 사람은 정신이 온정치 않고 행위능력을 완전히 잃었다. 매번 모두 그의 가족 5, 6명이 학습반으로 들어왔다. 심지어 그 사람은 고개를 옆으로 가누지 못하는데도 안으로 들어와 누워서 강의를 “들었다”. 사부님께서는 강의하실 때 병이 중한 사람은 떠나라고 여러 번 요구하셨고 “여기서는 병을 치료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한사코 듣지 않았다.

어느날 오후 그 사람이 자신이 머무는 여관에서 죽었다. 그 가족들은 시체를 설법장소 밖으로 들어와서 사부님 보고 구해달라고 하였다. 그 당시 사부님께서는 한창 설법하고 계셨고 일꾼이 사부님한테 다가가서 몇 마디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즉시 빠른 걸음으로 나가더니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온 후 사부님께서는 ‘며칠 전에 사람이 이미 죽었는데 기어코 구해달라고 하다니. 만약 사람이 아직 살아있다면 괜찮은데 사람이 죽었는데…. ..’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 몇몇 가족은 사부님을 질책하기 시작하였고 “죽어 가는 것을 보고 구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몇몇 소위 “수련생”들도 따라서 사부님을 질책하며 또한 ‘나는 연마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파룬장(法輪章)을 뜯어서 바닥에 던졌다. 사부님께서는 땅을 구르시며 한마디 하셨다: “당신은 자격이 없소!” 이 후에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물론 이 사람은 통제 당한 것이다. 만약 진수제자였다면 나는 정말로 상심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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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이 문장의 작가는 아주 일찍이 사부님을 따라 공을 배웠지만 오랫동안 법공부를 중시하지 않아, 박해가 전면적으로 진행된 이 몇 년 동안 아주 큰 굽은 길을 걸었으며 심지어 사악한테 참여하여 일부 대법제자들을 전향시켰다. 최근에 그는 깨어나기 시작하였고 이 한 단락 회억을 적었다. 우리가 발표해 냄은 더 많은 수련생들과 세인들이 사부님의 언행 속에서 가르침을 받고 사부님을 더욱 존경할 줄 알고, 대법이 세간에 널리 전해지는 이 한 단락의 천재난봉(千載難逢: 역주-천년의 긴 세월 동안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기회)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어,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를 져버리지 말고 자신의 위치를 바로 잡게 하기 위함이다.

본문의 작가에 대하여 우리는 이 수련생이 교훈을 받아드리고 법공부를 다그쳐, 법을 잘 배워 하루 빨리 엄정성명을 발표하기 바란다.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모든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이 반드시 잘해야 하는 세가지 일을 착실하게 잘 하고 결손을 메워 나가면서 금후의 길을 바르게 걷기 바란다.

문장완성:2005년 01월 24일
문장발표:2005년 01월 25일
문장갱신:2005년 01월 25일 14:11:29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1/25/94172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