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2021년 연말 어느 날, 운송업을 하던 남편이 30여 톤의 화물을 싣고 정상 속도로 운전하던 중 잠이 들어 앞에 정차 중이던 화물을 가득 실은 대형 트럭과 충돌했습니다.
대형 트럭은 사고가 나지 않으면 괜찮지만, 한번 사고가 나면 속도, 무게, 관성, 충돌력이 모두 크기 때문에 보통 큰사고가 됩니다.
남편 트럭의 운전석 앞부분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남편은 병원으로 이송됐고 쇄골 골절, 경추 두 마디 이탈, 여러 곳의 갈비뼈에 실금이 가고 골반이 벌어졌으며, 오른손목 골절, 양쪽 종아리뼈가 부러졌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남편은 대법을 수련하지는 않지만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대법 진상 호신부(護身符)를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대법 사부님 보우 아래 남편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의사는 몇 년 동안 이렇게 심각한 교통사고 환자는 본 적이 없다면서 우리에게 보험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우리는 농촌 합작 의료보험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그것은 소용없고 자비로 부담해야 하며, 20~30만 위안(한화 약 4~6천만 원)이면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시련이 왔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장 밑바닥까지 가라앉히고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해야 했습니다. 수련인의 기점에서 볼 때 매일 만나는 모든 것은 제가 수련해야 할 것이며, 무조건적으로 사부님과 대법을 믿고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해야 합니다.
당시 전염병 때문에 남편의 병실은 1인실이었고 저는 매일 남편에게 대법을 읽어주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가 주인공이며 주변의 모든 것은 대법제자의 마음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했기에, 제 마음을 지켜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법 외의 어떤 생각이라도 인간 세상의 이치로 형성된 관념이고, 그런 관념이 나타나면 그것을 분별하고 제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필사적으로 사람의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했기에, 사람의 생각이 생겨난 후에 다시 정념과 사람의 생각을 구분하고 그것을 수련해 없애는 번거로운 과정을 겪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기고, 제가 매일 직면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제게 주신 수련의 길이며, 사부님께서는 제 마음을 보시므로 저는 제 마음과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겼습니다.
남편의 첫 수술은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가 넘어서 끝났고, 수술 후 그는 거의 전신 마비 상태였으며 발만 좌우로 움직일 수 있었고 다른 부위는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의사는 매일 방귀가 나왔는지 물었지만 남편은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사석에서 “방귀가 안 나온 것이 아니라 아마도 신경 어딘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표면 현상에 동요하지 않았고 사람의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해체했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나중에 마비가 될까?’, ‘아이는 아직 학교에 다니는데 집안의 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우리 가정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등등의 생각들입니다. 저는 이것이 사람의 생각이며, 인간 세상에서 형성된 이치라는 것을 알았기에 사람의 관념으로 형성된 이 껍데기를 해체해야 했습니다. 남편의 표면적인 상태가 어떻든 저는 사부님과 대법을 믿고, 법에 부합하지 않는 일체의 생각을 수련해 없애고, 수련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렇게 심한 부상을 입은 남편은 두 번의 큰 수술을 겪었고, 26일 만에 퇴원했습니다. 기적 같지 않습니까! 의사는 “모두 외상이고 내장은 괜찮으니 집에 가서 요양하세요. 신경 부위가 어떻게 회복될지는 보장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베이징의 유명한 운동선수도 지금 휠체어를 타고 있는데, 베이징의 기술도 신경 부위는 보장할 수 없다고 예로 들었습니다.
남편이 퇴원한 후 시련이 닥쳤습니다. 그는 누워 있어야 했고, 밥도 먹여줘야 했으며, 대소변도 모두 처리해줘야 했습니다. 그런데 연말이라 작은 가게의 장사가 매우 바빠서 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신을 차렸습니다. 이것은 저의 수련의 길이며, 원망이 없어야 하고, 그를 위해 선(善)을 수련하고 마음의 용량을 수련해야 했는데, 제가 매일 접하는 모든 것은 밀라레파가 집을 짓고 허무는 과정과 같았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수련해 없애고, 자신이 수행의 길을 걷는 과정입니다. 저는 절의 어린 스님처럼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했습니다.
남편이 퇴원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제가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해 이미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오빠에게서 혈압이 높고 몸이 좋지 않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응급차를 불러 오빠를 병원 응급실로 보냈습니다. 결국 오빠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말 설상가상으로 집에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누워 있었습니다. 저는 제 마음을 지키고 무조건적으로 제 수련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았습니다.
오빠는 이혼 후 제가 집을 마련해 주기 전까지 오랫동안 저와 함께 살았습니다. 오빠의 발이 차에 치였을 때 제가 돌봐야 했고, 난방비를 낼 돈이 없었을 때 제가 대신 내줘야 했으며, 사회 사람들이 오빠를 찾아와 싸우려 할 때 제가 막아야 하는 등등의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와 오빠가 어떤 인연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카딸과 올케는 다른 성에 살았고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지만, 저는 수련인의 기점에 서서 정(情)과 이익을 내려놓고 조카딸과 협력해 오빠의 장례를 잘 치렀습니다. 오빠의 집값, 땅값, 휴대폰에 있던 돈을 모두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오빠의 돈을 한 푼도 탐내거나 갖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가 수련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사부님의 요구대로 실천했습니다.
큰 시누이와 작은 시누이가 와서 남편의 교통사고 이야기를 시아버지에게 말하지 말고, 어른께 돈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가 제고해야 할 때임을 알았습니다. 저에게 이익심, 남들이 저를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고, 이런 마음들을 내려놓고 원망하거나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야 했습니다. 밤에 꿈을 꾸었는데 큰길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길을 완전히 막고 있었지만, 제가 길에 나서자 그들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제가 올바른 길을 깨달았음을 알았습니다.
화물 터미널 사장이 사람을 시켜 차가 부딪친 후 화물에 파손이 있었지만, 차마 돈을 요구하러 오지 못했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저는 직접 사장에게 연락해 얼마나 손실이 났는지 확인했습니다. 사장은 자신이 직접 쓴 장부를 휴대폰으로 찍어 보내면서 1만 위안(약 200만 원)만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수련인은 빚을 지면 안 된다는 한 가지 점을 알고 있었기에 1만 위안을 이체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도 파손이 이렇게 가벼웠으니 사부님의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시아버지는 남편이 20년 넘게 농사지은 땅값을 갖고 계셨습니다. 평소에도 저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과 치료비를 모두 우리가 자비로 부담하고 있는데도 시아버지는 상관도 안 하고 묻지도 않으며 땅값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시아버지의 경제적 조건은 마을에서 소문날 정도로 좋았습니다. 저는 마음이 불편했고 설날에는 누워 있는 남편을 간호한다는 핑계로 찾아뵙지 않았습니다. 정월 대보름에 작은 시누이가 우리집에 와서 “어른들을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가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내가 잘못했구나, 설날에 집에 가서 어른을 뵙는 것은 전통이다. 잘못했으면 고쳐야지’라고 생각하고 선물을 사서 어른을 찾아뵈었습니다.
안으로 찾다
일반인과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기점 자체가 사람이라는 것인데, 제가 어떻게 이렇게 형편없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남을 원망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제가 구원해야 할 사람들인데 그들이 저에게 잘하든 못하든 저는 선(善)으로 대하고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수련인과 일반인의 표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글을 쓰면서 더 깊이 안으로 찾아보니 저에게 원망하는 마음, 억울한 마음, 불공평하게 느끼는 마음, 일반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사부님이 계시는데 세상의 무엇을 또 구하겠습니까? 이 마음들을 서둘러 제거해야 합니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 둘째 시누이는 문병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아보았습니다. 몇 년 전 둘째 시누이가 저에게 시아버지 댁의 택지에 집을 지을 생각이 있냐고 물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저는 별생각 없이 “지어도 되고 안 지어도 돼”라고 말하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가 집을 짓고 싶었던 것입니다. 당시 제가 반응하지 못했기에 이제는 이 원한을 선(善)하게 풀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큰 시누이와 작은 시누이에게 이 일에 대해 먼저 말했습니다. “둘째 시누이가 짓고 싶으면 짓도록 하세요. 저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자발적으로 포기하자 둘째 시누이가 오빠를 문병하러 왔습니다. 온 가족이 화해했습니다.
남편의 몸도 나날이 변해갔습니다. 다리에 점점 힘이 생기고, 움직이지 못하던 팔도 움직일 수 있게 됐으며, 4개월 만에 땅에 내려와 걸을 수 있게 됐고, 반년 후에는 거의 정상으로 완전히 회복돼 조금의 후유증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는 이미 2년간 일하고 있으며 아무도 그가 한때 전신 마비였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사부님께서 제 남편에게 이 기적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작은 시누이가 올해 차량정비팀에서 연금보험을 납부할 때 의무적으로 산재보험도 납부하도록 요구했는데, 오빠의 상황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일깨워주었습니다. 그래서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산재보험에서 1차 의료비로 10만 위안(약 2천만 원) 이상을 보상해 주었고, 헌혈증, 백만 의료보험, 상대편 차량의 제3자 면책 조항, 산재 감정 비용 등을 계산해보니, 남편의 교통사고 모든 비용을 전부 보상받았습니다. 저는 제자가 정말로 사부님의 요구대로 착실히 수련했을 때,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결과는 틀림없이 가장 좋은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남편은 인터넷에서 의료 보조금이 있다는 것을 보았고 자신의 상황이 신청할 수 있다고 했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으며 말했습니다. “당신 몸은 이미 다 나았고, 당시에는 전액 자비로 냈지만 지금은 의료비를 전부 보상받았으니 이미 아주 좋은데 너무 탐내서는 안 돼요.” 남편은 “이 일은 합리적이고 합법적이야. 내가 서류를 제출하고, 사람을 찾거나 연줄을 쓰지 않고, 주면 받고 안 줘도 강요하지 않을게”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처리했습니다. 결과 다음 달에 11만 위안(한화 약 2200만 원) 이상을 보상받았습니다. 저는 ‘그 이익심을 내려놓으면 당신의 것은 잃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니 저에게 행복하고 온전한 가정을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생활에 대해 걱정하지 않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시련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줄곧 이끌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명혜망 제22회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13/50230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1/13/502309.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