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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하면 오히려 박해받는다’고 여기는 수련생과 교류

글 / 미국대법제자 이옌(一言)

【명혜망2004년 9월30일] 나는 “정진”하면 박해 받지 않고 박해 받으면 “정진하지 못한 것이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진하면 오히려 박해를 받는다”혹은 “정진하면 번거로움이 더 많다” 이러한 규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정진” 이 두 글자는, 사부님과 혹은 대법에 대가를 따지지 않고 시시각각 한 수련인의 “노력”(이런 단어를 찾지 못하였고 정확하지 않다)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또한 정법 노정을 따라갈 수 있으며, 사부님의 말씀대로 법공부와 발정념, 진상알리기를 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평소 한 수련생을 보고 아주 “정진한다”고 말할 때, 항상 그의 어느 한 단계 혹은 어느 한 방면에서 그가 아주 노력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나, 사실 이러한 인식은 간혹 그렇게 전면적이고 객관적이지 못할 수 있다.

수련은 사람으로 하여금 신이 되게 하는 길이므로, 한 사람의 사상과 오늘날 이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는 아주 복잡한 것으로서 이는 철저히 순정해져야만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은 다른 사람이 표면에서 모두 볼 수 있고 똑똑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 어떤 수련생은 어느 한 방면에서(예를 들어 우리가 늘 말하고 있는 대법일) 정말로 아주 노력하고 아주 헌신적이지만 심성수련의 어느 방면에서는 오히려 제고가 없고 심지어 다소 방임하였다.

– 어떤 수련생은 어느 방면의 법리에 대하여 인식이 비교적 똑똑하지만 일부 방면에서 오히려 사람마음으로 대법을 대하면서 마음 속에 감추고 말하지 않아 남들도 쉽게 보아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썩은 귀신은 다른 공간에서 오히려 똑똑히 보고 있었다.

– 어떤 수련생은 아직까지도 근본적으로 무엇이 대법이고 무엇이 대법 수련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초상적인 법리에 대하여 믿지도 않지만 사람으로서의 생각에 의해 反박해에 참여하고 또한 사악을 폭로하는 일을 하였다. 또한 가끔 비교적 적극적이고 주동적이지만, 그는 일종 “혁명지사”가 박해에 반대하고 老백성이 박해에 반대하는 심태로, 속인의 정의를 좇는 마음으로 행하였다.

– 어떤 수련생은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일찍이 알고 또한 책을 보면서 진심으로 수련하려고 했지만, 오랫동안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법에서 수련하지 않으며, 무엇을 법에서 법을 인식한다고 하는지를 잘 알지 못하였다. 아울러 다른 사람을 모범으로 간주하고 배우면서 이성적으로 사고함에 소홀하였다. 자기 마음 속의 “리더” 혹은 “모범”이 무엇을 하면 자신은 생각 없이 따라 한다(사실 이때는 기본적으로 속인이 일을 하는 것으로, 마난 속에서 대법의 초상적인 일면은 당신의 몸에서 펼쳐지기가 아주 어렵다. 이런 상태 속에서 계속 나아가면 항상 속인 속의 번거로움을 초래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가족이 지나칠 정도로 박해에 연루되어 이 때문에 당신을 이해하지도, 계속 지지하지도 못하게 되고 이에 결국 가족이 구도됨에 영향을 준다).

– 또 일부 지역에서는 소수의 수련생들만 아주 노력하여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할 뿐, 오히려 적지 않은 이들은 좋지 않은 형세 하에서 각종 사람마음 때문에 집에서 가만히 연마하거나 혹은 스스로 포기하고 심지어 반면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잘 하지 못한 사람 때문에 현지의 원래 좋지 못한 환경이 더욱 복잡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어 진정으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노력하는 소수의 수련생들은 현지 사악의 무리들이 집중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이 되었으며 동시에 일에 따르는 압력도 증가하였다. 인원 수가 적고 일에 대한 압력이 증가한 정황 속에서 일단 수련 중에 누락이 생기면 아주 쉽게 박해를 당한다. 이러한 박해는 그들의 정진이 조성한 것이 아니라 마침 잘 하지 못한 사람들의 문제가 암암리에 현지의 사악한 세력을 조장(助長)한 것이다.

이러한 등등이 내가 지금 생각해 낼 수 있는 몇 가지 주요한 정황이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정한 시기에 항상 사악한 세력이 틈을 타게 되며 이로 인해 박해를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주위에서는 생각하기를, 평소에 아주 정진하고 있다고 여겨지던 이 수련생들이 그렇게 정진하는데 어찌하여 또 이들은 박해를 받는가? 라고 의아해 한다. 사실 이때의 박해는 “정진”과 전혀 상관이 없으며 마침 정진하는 못하는 다른 부분이 조성한 것이다.

이 몇 해 동안 아주 잘한 대법제자들 중에서 일부는 비록 좌절과 기복을 겪었지만 아주 빨리 진상을 알리는 정정당당하고 단호한 상태에 들어왔으며 아주 이지적이고 청성하다. 때문에 일찍이 그들은 자신의 생활과 사업을 해가는 가운데 접하게 되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진상을 알리고, 또한 자유롭게 수련하는 환경을 개척해 냈다. 이러한 수련생에 대해 사악은 감히 박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 공간을 놓고 말할 때, 사악의 무리들이 만약 그들을 박해한다면 그들의 회사가 승낙하지 않고 가족이 승낙하지 않으며 이웃도 가만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공간을 놓고 말한다면, 사부님의 법신이 승낙하지 않고 호법신이 승낙하지 않으며 정법을 수호하는 뭇 신들도 승낙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렇게 해나가려는 사악은 스스로 즉시 제거된다.

그러나 표면에서 보았을 때, 전혀 정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붙잡히거나 갇히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워낙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데다 자기 스스로 포기한 것과 같기 때문에(이 역시 낡은 세력이 교란하고 박해한 목적이었는바, 바로 그로 하여금 대법제자가 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낡은 세력들도 더 이상 감금, 고문 등 수단으로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요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실제로 외부환경을 악화시킴으로써 당신이 속인의 정에 빠지게 하거나, 여전히 금전명리와 속인의 향락을 추구하게 하고 혹은 세간의 일에 집착하게 하여 모두 당신이 법공부를 착실히 하지 못하게 만들며 정진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일으킨다. 이 실체가 바로 당신을 박해하고 당신을 없애려는 것인데 당신을 박해하는 것이 아닌가? 단지 이러한 수련생은 집착이 너무 크고 사람마음이 너무 무거워 자신이 의식하지 못할 따름이다.

이번 박해는 역사상으로 있어 본 적이 없는 것으로 지극히 사악하다. 정진하는 수련생을 놓고 말할 때 당신의 내원이 어떠하든지를 막론하고 자신의 정진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매 사람마다 자신이 사부님의 법에 대해 이해하는 정도의 문제와 정법 노정을 따라갈 수 있는가의 문제가 존재한다. 그리고 매 사람마다 대법을 실증하고 사악을 제거하며 세인을 구도하는 데에 대하여 얼마만큼 심혈을 기울였는가의 문제가 있다. 또 자신이 아직 닦아 없애지 못한 사람의 집착이 있고 정법을 인식함에 오해하는 부분이 있으며, 사람마음이 뒤섞여 대법을 일을 하며 , 법공부가 따라가지 못함으로써 가끔씩 수련상태에 큰 기복이 나타나는 문제 등등등등이 있다. 나는 이런 것들이 모두 누락을 조성하고 우리들로 하여금 이번 탄압 속에서 박해를 받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 수련생들은 역사의 眼光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되는 바, 그는 총체적으로 상당히 정진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 자신이 역사의 긴 세월 속에서 조성한 심원한 인연, 심원한 관계, 업력의 크기가 다르고 내원이 달라(일부는 제1 유형의 서약을 한 제자이고 일부는 기타 두 가지 유형의 내원임)사악의 세력이 만약 틈을 보았다면 우리에게 손을 뻗쳐 박해하는 정도 역시 부동하다. 우리가 박해 속에서 벗어나는데 필요한 시간의 길고 짧음과 헌신한 정도 역시 아주 다를 것이며 매 사람마다 걷는, 신이 되어가는 길마저 다르게 된다. 특히 일부 수련생은 세번째 유형인데 역사상에서 계통적으로 소업한 적이 없거나 혹은 오랫동안 법리상에서 인식하고 올라오지 못하여 낡은 세력은 기어코 그들더러 파괴성적인 검증을 받게 함으로써 중대한 업력을 제거하거나 혹은 인식하여 올라온 후에야 비로소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정법제자의 세가지 일을 할 수 있다. 만약 인식이 분명하지 못하다면 박해의 함정에 떨어질 수 있고 겪은 고생과 어려움은 모두 항상 아주 큰 것이다. 어느 한 유형에 속하면 반드시 박해를 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아주 잘한 이들에 대하여 사악의 세력은 감히 움직이지 못하는 바, 그들은 마난 속에서 아주 빨리 냉정하게 대법에 비추어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으며 법에서 깨달아 올라온다. 이들에 대해 사악은 감히 더 이상 박해할 수 없는데 그리하여 손실을 감소시키게 되며,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다.

사실 세 번째 유형의 수련생이더라도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사람의 일생 일세 중에서의 작은 한 단락 시간)신, 불, 도로 수련될 수 있다. 아울러 사부님께서 정법하시는 이 만고에도 없었고 금후에도 더 이상 있기 힘든 진귀한 시기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우리가 오늘날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든지 간에 우리가 장래에 원만하여 제 위치에 돌아간 후 얻을 일체와 비례가 되지 않고 함께 논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 부분의 수련생들은 발생하지 말아야 할 잔혹한 박해가 발생하였다 할지라도, 보기엔 이 한 생에서 아주 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인간세상에 헛되어 오지 않았으며 또한 아주 값지게 산 것이다! 제1 유형의 수련생들이 이번 생에서 당신들보다 겪는 고생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생생세세(生生世世) 법이 오기를 기다리는 과정 중에서 먼저 겪은 고생은 절대로 당신보다 적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 많을 것이다. 단지 이번 생에서 당신이 지금 보지 못할 뿐이다.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이는 우주 중의 절대적인 법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한가지 관건적인 문제를 말하겠다. 바로 우리가 일단 박해당하였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한 수련인의 眼光으로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제거하며 그것을 청리하고 법을 실증함으로써 박해를 감소시키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가 하는 이 과정에서 우리는 여전히 법에서 정진해야 비로소 이를 해낼 수 있다. 조건 없이 대법을 단호히 믿고 박해의 배치를 부정하는 큰 전제 하에서 자신이 어디에 누락이 많이 있는 가를 찾아 그것을 닦아서 없애며 법에서 정진해야 한다. 박해 받아 감옥에 간 일이나, 심지어 박해 받아 일찍이 인간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해서는 일률로 그가 정진하지 못하였다고 말하지는 않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렇지 않으면 쉽게 편파적일 수 있고 동수에 대해 불공평하며 또한 존중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정진하면 오히려 박해 받는다” 혹은 “정진하면 번거로움이 많다” 이러한 규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법리에 대하여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고 심지어 사부님의 법을 오해하고 수련의 진정한 내포를 오해하여 비로소 조성한 것이다. 이러한 오해에 의해 오도된 수련생의 가족을 우리는 마땅히 양해해야 한다. 그러나 정기(正氣)로 진상을 알리고 도리를 알려주어야 한다 (아무튼 박해와 손실은 모두 장쩌민 한 무리가 만든 것이고 우리 모두 피해자인 바 마땅히 다 함께 박해를 폭로하고, 박해 반대에 대한 박해를 폭로해야 하는데, 박해를 당한 사람은 누구를 원망하지 말아야 하며, 더욱이 대법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자신이 새롭게 잘 하여 가족과 함께 난관을 이겨내야 하는 즉 머지 않은 장래에 다 함께 광명의 마무리와 아름다운 시작을 향해 가게 될 것이다.

개인의 체득이며, 만약 적절치 못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문장완성:2004년 09월 29일
문장발표:2004년 09월 30일
문장갱신:2004년 09월 30일 14:54:05
문장분류: [제자절차]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9/30/8536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