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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련자가 너무 일찍 세상을 뜬 것을 보고 생각한 것 – 수련은 아이들 장난이 아니며,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아야 세인을 구도할 수 있다.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9월 18일】나의 사촌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허난(河南) 정저우(鄭州) 사람으로 97년부터 수련한 노수련생이다. 그러나 그녀는 정법노정이 곧 법정인간에 도달할 무렵 세상을 떠났다. 지난 그녀의 수련과정을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교훈이 될 만한 것이 많이 있다.

언니는 어려서부터 다재다난(多災多難)하였다. 친부모는 많은 아이들를 키울 수 없어 그녀가 태어나자마자 나의 이모에게 보냈다. 이모는 남존여비사상이 강하고, 또 사촌언니가 어려서부터 몸이 좋지 않아 늘 그녀를 박하게 대했다. 심지어 몽둥이로 때린 적도 있었다. 언니 말에 의하면, 자신은 어려서부터 몸이 안 좋았고,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해 이미 여러번 죽다 살아난 사람이라고 하였다. 언니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 당뇨병을 앓았고, 신체 각 부위가 다 좋지 않았기 때문에 피부가 거무스름했다. 그래서 언제나 목욕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97년에 법을 얻은 후 점차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 전신의 피부가 광택이 있을 뿐만 아니라 활기가 넘쳤다. 이전에 몸에 배어있던 나쁜 습관도 점차 사라졌으며 이전에 이기적이고 이것저것 따지던 천성도 서서히 너그럽게 변해갔다. 수련하기 전에 당뇨병이 아주 심했는데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4~5개의 +가 있었다고 한다(역주: 당수치가 높다는 의미). 그녀는 수련 후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했기 때문에 신체 표현도 정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점점 더 좋아지기 시작한 99년 7월, 장××는 질투심으로 인하여 방대한 국가기구를 이용하여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는 거짓말을 구실로,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을 증거로 삼았다. 중화(中華)의 대지는 순식간에 살벌한 바람이 불어닥쳤고 마귀무리들이 날뛰었다! 파룬궁에 대한 인식이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혼란을 느꼈고 어리둥절했다. 문화대혁명시기 大비판처럼 여러가지 매체와 여러가지 사악한 거짓말 선전 앞에서, 많은 중국인들은 “법(法)”만 말하면 얼굴색이 변했고, “공(功)”만 들으면 도망쳤다.

나의 사촌언니의 남편은 학교 교장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언니가 연공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99년 7월 이후 정부의 여러가지 ‘정부명령’과 융통성 없는 ‘심사’ 지표의 압력하에 그는 언니가 수련하는 것을 반대하기 시작했다. 사촌언니가 전에 내게 알려준 것에 의하면 언니의 남편은 언니가 연공하는 문제로 늘 집에서 이성을 잃고 사부님과 대법에 대하여 악담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러한 직접적인 결과는 2000년 여름에 나타났다. 온 집안 식구가 저수지에 가서 수영할 때 언니의 남편은 물에 빠져 죽었다. 이후 언니의 말에 의하면 남편이 물에 빠진 곳은 물이 아주 얕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순식간에 사망했다고 한다. 신체 7개 구멍에서 모두 피가 흘러나왔고, 폐가 파손되었는데 마치 폭발한 것 같았다고 한다.

슬픔이 점차 가라앉은 후, 사촌언니도 남편의 죽음은 선악보응의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언니가 이것을 교훈으로 삼아 정진실수(精進實修)하고, 심성을 제고하며, 사부님과 대법의 표준에 따라 했더라면 이후의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기에 언니는 수련의 길을 채 걸어가지 못했는가? 이 원인 중에서 어떤 것은 내가 일찍이 알고 있었던 것이고, 어떤 것은 내가 안 지 얼마 안되었다.

사악이 제일 광기를 부리고 포악했던 2000년 당시, 세계인권대회가 열릴 즈음, 장(江)씨 정부는 전세계를 향해 현재 인권상황이 ‘가장 좋은 시기’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중국사회의 각개 방면, 구석구석에서 거짓말을 퍼뜨리고 증오심을 일으켰다. 그 중 교육계통이 앞장섰다. 당시의 교육부장 천즈리(陳至立)는 중앙의 ‘발걸음’을 바짝 ‘따라가기’ 위해 전국의 교육계통에서 소위 “×교 파룬궁 반대”라는 서명활동을 벌렸다. 언니도 교사였고 전교의 선생님들 거의다 언니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언니는 ‘중점대상’이었으며, 각 방면의 압력도 언니가 대법에 대한 확고한 정도를 고험하고 있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언니는 자신을 잘 주관하지 못하고 대법을 비방하는 현수막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나중에 내가 이 일을 안 후 언니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당시, “난 비록 서명했지만 집에 돌아가서 계속 확고하게 실수(實修)할 거야”라고 했다. 당시 들은 후 난 초조해졌다. 한 진정한 대법제자가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만약 대법의 ‘진선인(眞善忍)’ 표준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확고’할 수 있고, 어떻게 ‘실수(實修)’할 수 있는가? 우리 수련하는 사람마저 ‘진선인’을 해내지 못하면, 어떻게 세인들을 향해 대법을 실증할 수 있겠는가?

비록 2000년도에 ‘조사정법(助師正法)’, ‘진상 알리기’, ‘중생구도’의 함의에 대하여 이해가 그리 깊지 않았지만, 우리 대법제자가 하고 있는 일체의 좋고 나쁨은 대법이 세인 마음속 형상에 영향주고 있으며, 게다가 중생이 이로 인해 구도될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결정해주고 있는 것이지, 절대로 제자 개인수련의 승패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도 사촌언니 마음속의 내려놓지 못한 집착을 보았다. 핍박에 못이겨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고, 아들이 엄마를 잃을까 두려워하고, 자신이 수련을 견지한 원인으로 사악의 ‘중점보호대상’이 될까 봐 더욱 두려워하였다. 비록 이 문제를 가지고 사촌언니하고 여러번 교류하고 언니도 자기가 잘못한 일을 시정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언니가 시종 그런 마음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는 것과 어떤 것은 깊이 감추어두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01년, 나는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610악경에게 불법적으로 납치되어 강제적으로 노동징역 2년을 당했다. 이 2년 사이에 나는 사촌언니와 소식이 완전히 끊어졌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속으로 사촌언니를 생각했으며 다시 상봉하는 그때 견정하고 두려움을 모르며, 새롭게 변한 사촌언니를 볼 수 있기를 희망했다.

2003년,나는 집에 돌아왔고, 또다시 정법의 거센 흐름 속에 가입했다. 거대한 마난(魔難)을 겪은 후, 대법에 대한 이해, 대법제자가 짊어진 사명에 대하여 더욱 심각한 체득이 있게 되었다. 나는 자신이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겪은 일체를 언니에게 들려주었으며 자신이 잘하지 못한 점을 언니와 함께 분석하고 대법에 비추어 자신의 부족점을 찾았다. 그러나 언니는 자신에 대하여 말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말하더라도 거의 아들이나 사업 이야기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신체도 2000년처럼 그렇게 건강하지 못했고, 당뇨병 증후군의 증세가 나타났다. 치아도 거의 빠졌으며, 신체가 여위었고, 눈도 나빠져 물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으며, 길 걷는 모습은 노인과 같았는데 40여세 되는 사람 같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녀의 그때 신체상황은 이미 아주 좋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께 왜 이렇게 되었냐고 여쭈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사촌언니는 여태껏 자신의 신체적 변화를 말하지 않았으며 매번 다른 사람이 물으면 언제나 괜찮다고 하였다. 동수들과 함께 교류할 때도 그녀는 말하지 않았으며 마치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잘하지 못한 것을 알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촌언니가 자신의 신체적 변화를 말하기 두려워한 것도 사실상 자신의 내려놓지 못한 관념이 작용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의 마음으로 다른 하나의 마음을 덮어 감추고, 층층이 덮어 감춘 것이다. 사촌언니는 이로 인해 동수의 도움을 받아 심성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많이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병업에 시달린 정황은 바로 심성상에서 마귀한테 빈틈을 준 표현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원인 외에도 또 하나의 더욱 중요한 원인이 있었는데 나도 언니가 세상을 뜬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녀는 2000년에 사이가 아주 좋은 동수와 함께 베이징에 갔었다. 본 뜻은 세인들에게 대법이 좋다는 것을 실증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려운 마음 때문에 천안문 광장에서 자신을 붙잡는 경찰 앞에서 대법과 사부님에 대해 불경한 말을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붙잡히지 않았으며 돌아온 후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 몇 년동안 그녀는 줄곧 모든 사람을 속였으며, 그녀가 세상 뜬 후에야 그 수련생이 이 일을 어머니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어머니께 사촌언니가 사악의 압력하에 서명한 사건에 대하여 엄정성명을 한 적이 있는지 여쭈었다. 그녀는 세상 떠나기 하루 이틀 전에야 동수와의 교류 중에서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식하였고, 보도원에게 엄정성명을 해줄 것을 부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그녀가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말씀하셨다. 명혜망에 성명을 발표하여 이전에 잘못한 일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하나의 형식이 아니며 제자의 심성이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사촌언니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병원에서 사촌언니의 마지막 길을 전송하다가 사악의 거짓말에 독해 받은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보라구, 바로 파룬궁이 수련하면서 약을 먹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거야.” 어머니께서는 그들의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고 하셨다. 사악은 가장 흔적을 남기지 않는 수단으로 목적에 도달했는데, 사촌언니의 죽음으로 얼마나 많은 연분이 있는 세인들이 깊은 미혹 속에 빠져들어 구도받지 못하게 되었는가! 사촌언니의 죽음이 조성한 결과가 바로 낡은 세력의 사악한 배치가 도달하려고 하는 효과가 아닌가? 사촌언니도 생전에 적극적으로 일했다. 사부님의 새 경문이 발표될 때마다 그녀는 제일 빠른 시간 안에 동수들에게 가져다 주었고, 동수들이 무슨 일이 있으면 열정적으로 도와주었다. 그러나 그녀 신변의 직장동료들, 학교의 학생과 교사들은 그녀가 아직 수련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나는 그녀에게 물은 적이 있다. 학교에서 언니가 여전히 수련함을 알고 있느냐고. 그녀는 누구도 모른다고 하면서, 만약 알려지면 강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아직도 수련하는걸 다른 사람이 모른다면 어떻게 또 정정당당하게 세인들에게 대법을 실증할 수 있겠는가? 세인들은 또 어떻게 당신의 몸에서 대법이 인심을 개변시키는 힘을 감수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자기가 수련자라는 신분을 표명하는 것은 현재의 중국에서는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법 속에서 얻으려고만 하고 대법을 위해 바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사부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던 “법을 훔치는” 자가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거듭하여 제자들에게 집착심을 내려놓으라고 경고를 주셨고, 속인의 집착을 내려놓는 것은 수련인이 속인을 초월하는 제일의 관건이라는 것을 우리도 알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촌언니는 세상 뜨기 전, 온 여름방학 동안 아들의 전학을 위해서 아는 사람을 찾고 수속을 하는 등의 일로 바쁘게 보냈다. 그녀가 아들에게 너무 집착한다고 어머니께서 여러번 말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아이의 아버지가 없으므로 아이가 더 섭섭해하면 안된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도리대로 말하면, 한 속인이 이렇게 죽었다면 크게 비난할바 없다. 그러나 한 대법 수련자로서, 속인의 물건을 잃을까 두려워, 심지어는 속인의 수단을 써가면서 그걸 얻는다고 할 때, 이런 심성의 층차가 대법이 제자에 대한 요구와 얼마나 많이 떨어져 있는가? 만약 엄격하게 대법의 요구에 따라 심성을 제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세가지 일’을 잘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사촌언니는 더욱 많은 일을 하는 것으로 이왕에 잘못한 일을 미봉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는 자기가 아직도 수련하기에, 사부님께서 꼭 자신의 몸의 병업을 없애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 현재 나는 비록 사촌언니의 생각을 알 방법이 없지만, 그녀가 세상사람들에게 남겨놓은 인상 속에서, 그녀가 나에게 남겨준 기억에서 얻은 교훈은 그렇게 심각하고 무거운 것이었다. 요즘 사촌언니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자신에게 밀어버릴 수 없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그때 나는 사촌언니와 수련의 더욱 깊은 층면에서 교류하고 싶었었지만, 혼자서 외롭게 아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매번 마음속의 정(情)의 저울추가 무거워지곤 해서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도로 삼키곤 하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자비심으로 사촌언니를 대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게 하지 않기 위하여(이전에도 유사한 일들이 각지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내 신변에서 발생한 일체를 진술하여 동수들이 감계(鑑戒)로 삼기를 희망한다.

문장완성: 2004년 9월 15일
문장발표: 2004년 9월 18일
문장갱신: 2004년 9월 18일 01:25:05
문장분류: [제자절차]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9/18/8444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