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명혜망] 줄곧 저는 사부님과 법을 아주 굳게 믿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9년 전, 아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수련생이 제게 진학 축하연에서 법을 실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전에 박해를 받은 적이 있어 두려운 마음이 매우 컸습니다. ‘너무 어렵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수심 가득한 얼굴로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진학 축하연에 참석할 40여 명의 아이 동급생들이 곧 각지로 흩어질 것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대법이 좋다는 것을 꼭 알려야만 했습니다! 사존의 가지(加持) 아래 자비심이 두려움을 이겨냈고, 진학 축하연에서 직장 동료와 아이의 동급생, 그리고 친척과 친구 등 200여 명 앞에서 자비롭게 말했습니다.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워 자신을 위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세요.”
또 한번은 어떤 남자 수련생이 자주 ‘610’에 가서 법을 실증했는데, 현지에서 수련생들이 자주 박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가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그 남자 수련생에게 “저도 좀 데려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안 됩니다, 스스로 가야 합니다. 제가 데려가면 수련해서 그 경지에 도달해 가는 것이 아니라, 제 정념의 장에 이끌려서 가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 자신이 직접 가야 하며 수련생 뒤에 숨어서 수동적으로 가서는 안 되고, 능동적으로 이 두려운 마음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법 속에서 자신을 바로잡아 마음이 막 안정돼 ‘610’에 진상을 알리러 가기로 결심했는데, 우리와 함께 가기로 한 여자 수련생이 오늘 성(省) ‘610’에서 우리 시(市)로 검열을 나온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부담이 더해져 갈지 말지 갈등했습니다. 원래 오늘 언니, 그리고 그 여자 수련생과 함께 며칠간 상태를 조절하고 오후 출근하자마자 가기로 결정했었는데, 이 말에 또 두려운 마음이 올라온 것입니다. 저희는 모두 안으로 찾으며 정념을 강화했고, 경찰 역시 구원받을 생명이라고 생각해 마음을 굳게 먹고 저 자신을 사부님께 맡겼습니다. 저희는 각자 정중하게 사부님께 절을 세 번 올리며 사존께 도움을 청한 뒤, 예정대로 ‘610’에 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성 ‘610’이 검열을 오는 일은 전혀 없었고, 저희는 자비롭게 경찰에게 진상을 알려 그들이 진상을 깨닫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저는 업무상의 편의를 이용해 매일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 비교적 정념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또 한번은 업무 중(저는 의사입니다)에 질투심이 있어 말할 때의 마음가짐이 수련인에 부합하지 않아 구세력이 틈을 타게 했습니다. 환자를 수술할 때 출혈 현상이 나타났고, 지혈 도구도 잘 듣지 않았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아 법에 부합하지 않는 저의 언행을 법 속에서 바로잡았고, 어느새 상처에서 출혈이 멈췄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상처 부위가 도무지 봉합되지 않아 마치 천공이 생긴 것 같았고, 간호사마저 손발이 맞지 않아 갈팡질팡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간호사를 원망했습니다. ‘연수받을 때 자꾸 집에 가더니 지금 문제가 생겼잖아!’ 저는 그녀를 얕보고 무시하는 마음, 그리고 원망심, 불평하는 마음, 질투심을 찾아냈습니다. 시간은 1분 1초 흘러갔습니다. 30분이 지나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고, 장의 상처 부위가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아주 얇아졌으며, 장강(腸腔)은 물론이고 상처 부위조차 똑똑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저는 냉정을 되찾았습니다. ‘환자에게 천공이 생길 리 없어. 이건 내게 연화(演化)된 가상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에게 반문했습니다. ‘너는 사부님을 믿는가, 법을 믿는가?’ 저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사부님께서 제 뒤에서 제자를 보호하고 계시니 이 모든 것은 가상입니다! 저는 구세력의 배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합니다! 구세력 자체도 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사부님의 대법 속에서 수련하는데 너희 구세력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 모든 것은 그저 가상일 뿐이다!’
저의 정념이 충만해졌습니다. 저는 간호사에게 “됐어요, 상처 부위를 봉합하지 않아도 돼요. 문제 될 일이 아니라면 절대 문제 되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수술을 멈추고 환자를 20여 분간 쉬게 했습니다. 이때 또 생각했습니다. ‘환자가 잠시 쉬었으니 지금은 장이 아까보다 훨씬 나아졌을 거야. 아까는 경련이 일어난 걸지도 몰라.’ 저는 다시 환자의 장으로 진입했고, 여전히 사람의 방법으로 상처 부위를 봉합해야 더 안심이 될 것 같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환자의 수술 부위에 접근하니 아까와 똑같이 바람을 넣은 풍선처럼 한 덩어리로 뭉쳐 있어 앞의 통로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가시적인 공간조차 전혀 없었습니다. 상처 부위마저 숨어버려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주 큰 절개 부위였는데, 속인이 보기에는 이렇게 큰 상처를 봉합하지 않으면 출혈이나 천공이 생겨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아까보다 더 악화돼 환자가 끊임없이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아파요! 어떻게 된 거예요? 아까는 멀쩡히 안 아팠는데 다시 수술하더니 지금은 왜 이렇게 아픈 거죠?” 저는 제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또 사람의 사유를 움직였고 상처 부위를 봉합해야만 안전하다는 속인의 사유에 마음이 불안정해져 여전히 사부님과 법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다시 사람의 사상을 움직이자 인간 세상의 이치가 저를 제약했는데, 인간 세상의 이치는 큰 상처를 봉합하지 않으면 출혈이나 천공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출혈과 천공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모든 증상이 천공처럼 나타나게 한 것입니다.
저는 안으로 찾았습니다. 이 환자는 직장 동료의 친척인데 만약 천공이 생기면 전 직원이 다 알게 될 텐데, 그럼 누가 감히 저에게 진료를 받으러 오겠으며 어떻게 사람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저에게는 업무 중에 진상을 알리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안일심, 의존심, 명예욕이 있었습니다. 의료사고가 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의료사고를 구하는 것이고, 의료분쟁이 생길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의료분쟁을 구하는 것이며, 돈을 배상할까 봐 두려워하는 이익에 대한 마음과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등, 근본적으로는 여전히 100% 사부님과 법을 믿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수술하기 전 저는 수구(修口)하지 않았고, 질투, 교만, 자만, 남을 무시함, 사람에 대한 편견, 자아에 대한 집착 등 이 모두가 법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이 마음들은 모두 제가 아니니 원치 않으며, 그것을 해체하고 법 속에서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당시에도 저는 환자가 나아지기를 바라며 찾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법 속에서 바로잡으며 목적성을 가지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 마음과 집착을 찾아낸 후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사부님, 오늘 이 환자에게 출혈이 생기든 천공이 생기든 저는 사부님의 배치에 따르겠으며 저 스스로 배치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저 자신을 사부님께 맡기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가상입니다! 환자에게 그렇게 큰 업력이 없다면 절대 그렇게 큰 시련이 없을 것이며, 모든 것은 업력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술을 마치고 환자를 부축해 제 사무실로 데려갔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가상이며 환자는 진상을 들으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사이는 구원하고 구원받는 관계이지 교란하고 파괴하는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눕게 한 뒤 진상을 알렸습니다. 대법의 신기함과 비범함,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기적적인 효과,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어떻게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지, 그리고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는 것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어째서 사람의 업을 없앨 수 있는지, 왜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해 평안을 지켜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었습니다. 환자는 점점 정념이 생겼고, 진심으로 삼퇴를 해 평안을 지키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저는 환자와 그의 아내에게 “우리 함께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워봅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외우다 보니 환자의 안색이 점점 붉어지고 윤기가 돌았습니다. 제가 “아직도 아프세요?”라고 묻자 그는 “훨씬 나아졌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괜찮을 겁니다”라고 말하고, 이어서 그들에게 약간의 대법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만약 환자가 다시 아파하면 체면 깎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에게 CT를 찍어주자. 정말 천공이 생겼다면 명예를 잃을까, 돈이 들까 두려워하지 말고 차를 구해 성(省)에 있는 큰 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 대법제자는 이기적이어서는 안 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 일념은 옳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개인 수련의 길을 걷는 것이며, 모든 시련은 자신의 사람 마음과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개인 수련이라면 만약 저와 환자가 선한 인연이 아닌 악연일 경우 빚진 것은 무엇이든 갚아야 하고, 목숨을 빚졌으면 목숨으로 갚고, 빚을 졌으면 빚으로 갚아야 합니다. 이 역시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는 것입니다. 구세력은 거대한 고비와 시련 속에서 어떻게 잘하게 할 것인가, 그것밖에 모릅니다. 저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모든 것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것을 기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은 사존께서 제게 배치해주신 길이 아니므로 저는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전면 부정했으며, 환자는 그저 진상을 들으러 온 것이었습니다. 대법제자의 운명은 사부님께서 모두 바꿔주셨기에 저는 환자에게 절대 아무 일이 없을 것임을 더욱 확신했고 마음이 아주 평온했습니다.
이때 환자가 많이 좋아졌다며 가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사의 말을 몇 마디 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임을 알았습니다! 제자의 거대한 고비와 시련을 풀어주신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제자로 하여금 업력을 없애고 심성을 제고하도록 하셨으며, 사람도 구하게 하셨습니다. 이때 감격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두 손 모아 합장합니다.
저는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저의 정념이 아주 충만해졌다고 여겼고, 제가 사존을 따라 끝까지 확고하게 수련해 반드시 수련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수련생과 교류하는 중에 제가 “수련을 하면 할수록, 바로 사부님과 법에 대한 반석같이 확고한 믿음을 닦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하신 하나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과거에 한 수도(修道)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거리를 지나다 갑자기 한 사람을 보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자신이 찾고 있던 도를 닦을 만한 사람이었다. 수도인은 이 사람을 제도하려고 그를 도제(徒弟)로 삼고자 했다. 수도인이 이 사람에게 물었다. “나를 따라가 수도할 생각이 있는가?” 이 사람은 오성(悟性)과 근기가 아주 좋기에 대답했다. “수도하고 싶습니다.” “자네가 나를 따라갈 용기가 있는가?”라고 하자 그는 대답했다. “있습니다!” “내가 어디를 가든, 자네가 다 따라올 수 있겠는가?” “예.” “좋아, 그럼 자네가 나를 따라와 보게!” 그가 말하면서 그 손바닥만 한 술 주전자를 땅에 놓고 마개를 열더니 단번에 술 주전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는 사부가 뛰어들어간 것을 보고 역시 사부가 하는 대로 따라서 술 주전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미국서부법회 설법)
저는 이 단락의 법에 큰 충격을 받았고, 도가 제자의 믿음과 오성에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난 아직 수도를 하지 않은 육안범태(肉眼凡胎)이고, 사부님께서는 신통이 있으니 뛰어 들어가실 수 있지만, 내게 어디 그런 재주가 있겠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만약 사부님께서 지금 내게 술병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수련 성취할 수 있다고 하시면, 난 뛰어 들어갈 수 있을까?’ 저의 대답은 ‘사부님, 제자가 수련을 잘하지 못해 지금 공능(功能)이 나오지 않아서 커지거나 작아질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은 안 되지만 나중에는 틀림없이 할 수 있을 겁니다’였습니다.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요? 표면적으로는 꽤 겸손하다고 느꼈지만, 실제로는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것과 너무나 거리가 멀었던 것입니다. 만약 사존께서 “제자야, 밑이 천 길 낭떠러지인데, 네가 뛰어내리면 수련 성취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주저하지 않고 뛰어내렸을 것이며, 그럴 때 저는 사부님에 대한 반석 같은 믿음을 닦아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술병 속으로 뛰어 들어가라고 하실 때는 사람 마음으로 사고할 것입니다. ‘술병은 너무 작고 내 몸은 너무 커서 들어갈 수 없어. 나는 사람 마음과 집착을 모두 제거하고 공능이 나와서 몸이 커지거나 작아질 수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어.’ 하지만 낭떠러지는 공간이 커서 공간적 장애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 아닙니까?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을 무엇이든 하고, 에누리 없이 무조건적으로 실행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까? 사부님께서 수련을 시작하면 곧 공능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저 자신을 되돌아보니 사부님과 법을 믿는 것이 크게 에누리돼 사부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대로 믿지 못했습니다. 사람 마음이 가로막고, 사람의 시신경이 가로막아 나뭇잎 하나가 눈을 가리듯 사물의 본질을 똑똑히 보지 못했으며, 감지한 공간감으로 가로막히며 사람 마음으로 궁리하고 사고했습니다. 사람의 사유를 움직이고 사람의 생각을 움직이며, 배운 지식으로 가늠하고 사람 마음과 관념으로 가늠했던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은 살아서는 곧 사고(思考)하게 마련이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사고하고 궁리하기만 하면 우리는 바로 사람이며, 사람 마음으로 일을 생각하는 것이고 사람 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물질의 입자가 미시적일수록 그 층차의 면이 광활하고 커진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미시적인 입자의 층차에서 술병의 표현 형식은 사람이 보는 형태가 아닙니다.
문제에 부딪히면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합니다. 내 탓이든 아니든 모두 자신을 찾아야 하며,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사람의 이치를 따지는 것입니다. 수련하는 사람은 마땅히 높은 층차의 이치를 써서 법리로 가늠한 후, 사람 마음과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굳게 먹어 모든 것을 사부님의 배치에 맡겨야 합니다. 집착심에 이끌려 일을 하는 것은 바로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는 것이고, 스스로 일을 배치하는 것 역시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는 것입니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오직 안으로 찾고 법 속에서 자신을 바로잡아야만 비로소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시련에 부딪혀도 진심으로 법 속에서 자신을 바로잡고 안으로 찾기만 하면 됩니다. 시련이 없기를 바라는 목적을 갖고 안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과 집착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사부님의 법리에 따라 자신의 매 일사일념(一思一念)을 닦고, 마지막으로 마음을 굳게 먹어 생사를 내려놓으며 자신을 무조건 사부님께 맡기면 사부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며, 아무리 큰 시련도 사부님께서는 모두 해결해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사부님께서 계시고, 사부님은 위대하시며 법은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서 설파하신 우주대법을 어찌 사람 마음으로 궁리하고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대법을 경시하고 대법을 모독하는 것이니 제자는 마땅히 무조건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어야 합니다.
현재 저는 연공 측면에서 나태해져 사흘은 고기를 잡고 이틀은 그물을 말리듯 하다 말다 하고 있으며, 무조건 안으로 찾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속인과 갈등이 생겼을 때는 저 자신을 찾을 줄 알면서도 수련생과 부딪칠 때는 수련생에게 법을 요구하고 수련생을 대조할 뿐, 무조건 저 자신의 어느 부분이 법에 부합하지 않는지 찾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시련이 왔을 때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또 내게 제고할 기회를 배치해주셨구나’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어느 부분을 잘하지 못해 구세력의 교란과 파괴를 당하고 틈을 타게 한 것일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수련생)에게 병업 고비라는 가상이 나타났을 때, 그것이 좋은 일이며 어머니에게 제고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80대가 넘은 어머니에게 고비를 넘을 만큼 강한 정념이 없을까 봐 걱정했고, 다른 수련생이 어머니의 공간장(空間場)에 물질을 던질까 봐 걱정했습니다. 또 식탐이 있어 맛의 집착을 끊어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옷차림을 중시하고 완벽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색욕심도 있었으며, 그 밖에도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앞으로는 깊이 파고들어 사람 마음과 사람의 생각을 제거하겠습니다.
앞으로 법공부를 잘하고,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며, 사람 마음과 집착을 제거하고 무조건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겠습니다. 대법에 동화해 대법제자의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사명을 잘 완수하며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겠습니다. 사존께 더없이 감사드리며, 자비로운 도움을 주신 수련생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11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1/2/50975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1/2/509758.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