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기 힘든 이 수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다

글/ 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자비로우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다 보면, 이따금 법을 얻어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 잊곤 합니다. 과거에 잘해내지 못한 저희 같은 수련생들은 남은 매 순간의 수련 시간을 진정으로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는 너무 오랫동안 쥐고 있던 완고한 집착을 내려놓을 기회를 얻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게 남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인내심이 강하시고 저희를 다독여 주십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이란 점진적인 과정이라고 알려 주셨으며, 시련을 통해 저희가 나아갈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희가 실패하거나 진전이 아주 적을 때도 끊임없이 더 많은 기회를 주시며 결코 저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동시에 저희가 반드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고도 알려주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이란 서서히 해야 하는 것이기는 하나, 당신은 느슨하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말한다. “스승님께서 수련은 서서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우리는 서서히 하자.” 그건 안 된다! 당신은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해야 하며 불법(佛法) 수련에서 당신은 용맹정진(勇猛精進)해야 한다.”(전법륜)

최근 몇 년간 저는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그것을 수련의 기회로 여기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기회를 놓치고 나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마치 사부님께서 저희에게 유예 기간을 마련해 주실 수는 있지만, 이 기간 내에 나아가지 못한다면 처지가 아주 험난해질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난 1년간 겪은 시련은 마치 경종과도 같았고, 제가 제고할 수 있도록 확실히 도와주었습니다.

지난 1년간의 시련은 마치 구명줄 같아서 제가 깨어나 계속 수련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고통은 확실히 가장 귀중한 선물이었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저희를 지켜주시고, 저희 모두에게 수련할 기회를 내려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업력이 극에 달하다

저는 몇 년간 오랫동안 병업 고비를 겪었지만, 자신을 제고할 기회로 여기지 않고 그저 묵묵히 견디기만 했습니다. 저의 주의식(主意識)도 흐릿해졌습니다.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수련 속에서 끊임없이 업력을 없애야 했음에도, 실제로는 안일에 대한 집착과 그 집착에서 비롯된 중독적인 행동으로 인해 오히려 업력을 더하고 있었습니다.

업력과 관련해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흑색물질과 우리 우주특성은 격리된다. 만약 이런 흑색물질이 많아질 때면 그것이 인체 주위에서 장(場)을 형성해 사람을 에워싼다.”(전법륜)

제 주변이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법리에 대해 아주 잘 알고,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분명히 알면서도 주의식은 아주 연약했습니다. 업력장이 저를 법과 떼어놓았고, 제 행동은 집착에 이끌려 움직였습니다.

이런 짙은 안갯속 같은 상태에서, 저는 진정으로 안으로 찾아 병업의 근원이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저 담담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여기며, 고통을 인내하며 업을 없애는 것은 좋은 일이고 이 역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기 위한 시험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몸의 증상에 대한 두려움을 억누르지 못했고, 두려운 나머지 이런 문제들을 회피하고 무시하려 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담담하게 대하지도 못했고,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제 생각은 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둥둥 떠다녔고, 만약 병원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기로에 선다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멈출 수 없을 때면, 또 저 스스로 이런 바르지 못한 생각 때문에 병원 치료를 자초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마음속은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가득 찼고, 이 시련들이 모두 제 잘못이며 저의 부족함과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이것 역시 일종의 집착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알려 주셨습니다. “당신이 수련 중에 어느 관(關)을 잘 넘기지 못했다면 당신은 그럼 후(後)의 일을 잘하도록 하고, 다시 관(關)을 만나면 당신이 그것을 잘 넘기면 그만이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은 그것을 일부 오점이라고 느껴 스스로 심리적 압력이 아주 중한데, 그것 또한 집착이 아닌가?”(각지 설법 12-2012년 미국 수도 국제 법회 설법)

저는 이 부분에 대한 사부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죄책감과 후회 때문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습니다. 제 건강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이런 압박 속에서 저는 표면적으로는 더욱 정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두려움에서 비롯된 정진이 아니었을까요? 제 수련이 그저 병의 환상을 없애고 죽음이 두려워서 한 것에 불과할까요? 비수련인인 남편조차도 제가 갈수록 정진하는 모습을 알아채고는, 아플 때만 연공할 것이 아니라 매일 꾸준히 연공해야 한다며 다정하게 충고했습니다.

죄책감 탓에 다른 수련생들과 교류할 수 없었고, 감히 사부님께 도움을 청할 용기도 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저를 위해 이토록 많은 것을 해주셨는데 저는 이토록 형편없이 해내고 있었습니다. 구세력은 이 집착을 이용해 저를 박해했고 그들이 제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어버릴 뻔했습니다. 저는 제 수련으로 닦아낸 능력과 정념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수련인에게 병이 있어서는 안 되며, 제가 제고해 올라간다면 이런 환상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라는 점을 알았습니다. 무수한 수련생이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통해 이런 시험을 이겨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쩌면 나는 더 이상 수련인으로 여겨질 수 없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제가 사부님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저희에게 수련의 엄숙함을 일깨워주셨습니다.

2012년 저는 처음으로 법회에 참가했는데, 뉴욕법회였으며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이 설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 자신이 하는 것이 바르지 못하다면 사부가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 자신이 한 것이 틀렸는데 사부가 그것들을 없애버린다면 이게 될 일인가? 당신이 잘하지 못하였는데 마난이 있다고 부숴버린다면 우리가 누구를 구도하겠는가? 안 된다.”(각지 설법 11-20년 설법)

한편으로는, 수련은 무척 엄숙한 것이라서 더 이상 수련인으로 볼 수 없는 지경까지 미끄러져 내려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실패 때문에 지나친 심리적 부담을 짊어지는 것 자체가 일종의 집착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머릿속이 흐릿하고 마음속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돌파구를 찾기 무척 어려웠습니다.

12월에 이르자, 저는 거의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입을 열어 말하기만 하면 기침이 나와 법을 읽거나 진상을 알리고 일상적인 업무를 하는 능력에 지장을 받았습니다.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제 모든 기력을 소진하게 만들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침대에 누워 잠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숨길 수 없었고 가족과 동료들 모두 몹시 걱정했습니다.

마침내 수련생들에게 이 상황을 털어놓고 나서야 제 처지는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단기 집중 항목에 참여하고 있었고, 함께 일하는 이들은 모두 오랫동안 협력해 온 수련생들이었습니다. 항목을 진행하는 동안 저희는 자주 저희를 교란하는 병마의 환상을 깨뜨려야 했습니다. 제가 극도로 악화된 건강 상태에서도 억지로 항목을 추진하려 했을 때, 시련은 극에 달했습니다. 저는 온몸이 떨릴 정도로 추웠고 아무리 해도 따뜻해지지 않았습니다. 항목의 가장 중요한 이틀 사이 어느 날 밤, 저는 숨을 거의 쉴 수 없어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딸에게 흡입기를 가져다 달라고 했지만, 딸은 제게 제가 사실 그걸 원하지 않는다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저는 이를 악물고 버텼고 항목의 둘째 날을 넘겼으며, 이어진 나눔 전화에서 마침내 제가 겪은 모든 일을 여러분께 털어놓았습니다.

깊이 있는 법공부와 수련생들의 믿을 수 없는 지지를 통해, 저는 짙은 안갯속에서 출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수련의 본보기가 없는 상황에서 죽음과 직면하다

저는 두 달 동안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했습니다. 일부 수련생들은 상황이 아주 심각하니 굳건한 정념을 품고 그것을 없애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당연히 맞는 말이지만, 만약 제 정념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면 병원에 가봐야 할 수도 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다른 한 수련생은 이에 대해 아주 담담하게, 제가 수련을 하고 싶은지 묻고 죽음이 두려운지 물었습니다. 그는 제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설령 죽더라도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가장 좋은 미래를 열어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두려웠고, 병원에 가는 순간 죽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과거에 병업 중인 여러 수련생을 병문안하러 병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라고 재촉했을 때, 저는 심지어 병원에 가면 오히려 더 쉽게 죽을 것이라고 남편에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이 시련을 극복할 유일한 방법은 더욱 정진하고, 강력한 정념을 발하며, 사부님과 대법의 위력에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고통을 견뎌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는 것뿐이라고 여겼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저 자신을 채찍질하며 정진했지만, 여전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원동력이었습니다. 저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수련했습니다. 비록 수련인에게 병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제가 사부님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믿기는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싸움이었습니다. 저에게 공이 있다는 것을 믿을 것인가, 사부님께서 저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믿을 것인가, 저의 정념이 충분히 강하다고 믿을 것인가에 대한 다툼이었습니다.

이 모든 느낌이 무척 복잡했습니다. 저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습니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 죽을 수 있고, 병원에 가더라도 여전히 죽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선택하든 저는 두려움에 쫓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경험 교류 글에서 읽었던, 정념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수련인이 되기를 갈망했습니다. 하지만 수련에는 이미 만들어진 본보기가 없었습니다. 오직 저 스스로 깨달아야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 제4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수련자가 되려고 하면, 전적으로 당신 자신의 그 마음에 의거해 닦아야 하며, 전적으로 당신 자신에 의거해 깨달아야 하는데, 본보기가 없다.”

제 내면에서 가장 강렬했던 생각은 바로 수련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수련인이 되는 것은 유일하게 중요한 일이며, 생사보다도 더 중요했습니다. 저 자신이 맞는지 틀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결국 저는 이 갈등을 내려놓았습니다. 수련하고자 하는 염원을 품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전부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안배해주신 가장 좋은 결과일 거라 믿으며 저는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들은 제가 이런 상태인데도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이는 사부님께서 줄곧 저를 보호해주시며 제 생명을 연장해 깨달을 시간을 더 주고 계셨다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마음속으로 되뇌었습니다. “‘스승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셨구나!’”(전법륜)

의사들은 수술을 고려했지만, 제 몸이 견뎌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모든 믿음을 사부님께 기댄 채 두려움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의사의 최종 결정과 제가 수술을 버텨낼 수 있을지를 포함한 모든 것이 사부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제 수련 경지가 사부님께서 어느 정도까지 해주실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는 것을 이해했기에, 병원에 있는 동안 줄곧 법공부를 하고 안으로 찾았습니다.

매 단계마다 시간이 길게 늘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늘 지연이 생겼고, 한 가지 문제가 막 해결되면 또 다른 지연이 잇따랐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부님께서 제게 집착을 내려놓을 시간을 더 주고 계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도대체 왜 그런지 몰랐지만, 아마도 제 마음이 충분히 흔들림 없지 못해서, 만약 이런 지연들이 없었다면 사부님께서 제가 수술을 버텨내도록 도와주실 수 있는 그 경지에 제가 아직 다다르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확신한 것은 사부님께서 줄곧 저를 보호해 주셨고, 바로 사부님이 계셨기에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죄책감이라는 집착을 내려놓다

병원에서 수련하는 기간 동안, 한 수련생이 문자를 보내 나누어준 생각은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녀는 제게 저 자신에게 자비를 품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오직 당신 자신만이 중요해요. 오직 당신, 사부님, 그리고 당신의 길뿐이에요. 지금은 다른 사람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사부님께서 당신을 본마음으로 이끌어 돌아가게 하세요. 매 순간 당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당신이 안배에 따르게 하세요. 그리고 짐을 좀 덜 짊어지고 과감하게 자신의 요구를 내세워, 항목 임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세요.”

이 모든 이야기가 제게는 아주 터무니없게 들렸고, 늘 자신을 더 다그치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고 자책하던 제가 줄곧 해온 방식과는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저는 수련이 나태해진 탓에 지금의 상태를 초래했는데, 어떻게 그 해답이 조금 긴장을 풀고 자신을 선하게 대하라는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당신이 하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고, 제가 이해할 때까지 당신의 조언을 반복해서 읽을게요.”

결국, 그녀의 나눔은 제 마음속에 줄곧 짊어지고 있던 죄책감을 녹이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저는 우리의 실패조차도 구세력의 잘못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것들의 안배이고 사부님께서는 그중 어느 하나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하려 하십니다.

비록 제가 비틀거리며 걸어왔을지라도 저는 여전히 안개를 떨쳐내고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하여 저의 서약을 실현하고 싶었습니다. 이 수련의 마음은 아주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저는 진정한 제가 선량하고 순수하며, 이 세상에서 형성된 후천적인 관념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고, 구세력이 이러한 관념들을 이용해 교란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책임질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그들의 안배를 인정하지 않으시니 저 역시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 정념은 더욱 맑고 또렷해졌으며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저는 구세력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저의 목숨을 앗아갈 수 없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저는 후회와 죄책감을 내려놓기 시작했고, 저 자신이 사부님의 자비로운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점차 느끼게 되었습니다. 만약 사부님께서 모든 중생을 구하고자 하신다면, 사부님께서는 당연히 저 또한 구하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저 자신이 사부님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돌파구를 찾은 이후에도, 저는 여전히 사부님께 도움을 청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 관념들을 완전히 없애지 못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세력의 안배를 제거하려는 제 정념은 더욱 강렬해졌고, 점차 제 생각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본성을 감지하다

이 힘든 시기에 저는 신묘한 체험을 한 번 했습니다. 제 본래의 진정한 자아를 느낄 수 있었고, 제 본성을 마음 깊은 곳에 묻혀있던 속인 관념과 구별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평소 목소리가 크고 힘이 있지만, 여성의 목소리 중에서는 약간 낮고 굵은 편이었습니다. 업을 없애는 중에 입을 열어 말하려고만 하면 기침이 나왔는데, 나중에 저는 좀 더 부드럽고 톤이 높으며 더 여성적인 목소리로 법을 읽으면 평소 목소리로 읽을 때보다 기침 횟수가 적어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법을 읽는 소리는 제 마음에 새롭고 다른 느낌을 불어넣었습니다. 그것은 평온한 상태와 넓고 큰 자비로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저는 이 평온하고 자비로 가득 찬 부드러움이 제 본성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 속에서 형성된 제 ‘개성’이 이런 부드러운 본성과 얼마나 다른지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안으로 이런 개성의 형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제 할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굳센 군의관 간호사였습니다. 제 어머니는 1960년대 여성 인권 운동 시기에 젊은 여성이었고, 당시 아버지에게 꽤 억세게 굴었습니다. 저는 또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나무를 오르고 암벽 등반을 하며 보냈던 시간도 떠올랐습니다. 제가 했던 다른 ‘선머슴’ 같은 활동들도 생각났고, 도심 속 위험한 동네에서 살아가는 소녀로서 강인해져야만 했던 시절도 떠올랐습니다. 이러한 성찰은 저의 본성과 이번 생에 제게 덧붙여진 것들을 구별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또한 이런 요소들이 제 잘못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것이 아닌, 여성성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 방식들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근본 집착을 파헤치다

이와 동시에, 한 수련생이 어떤 견해를 나눠주었는데 처음에 저는 꽤 저항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제게 스스로를 ‘슈퍼맘’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으며, 이러한 정체성이 사실은 일종의 자아라고 지적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저는 저항감을 넘어 심지어 다소 모욕감마저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통찰은 결국 제가 저의 주의식을 약하게 만든 근본 집착을 똑똑히 인식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확실히 어머니가 되었다는 사실을 무척 자랑스러워했습니다. 3년 안에 저는 아이 셋을 낳았고 전부 조산사가 아이를 받아주었으며, 스스로 자연분만의 고통을 견뎌낸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이는 저 스스로 아주 굳세다고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어린 세 아이를 키우며 제 삶은 언제나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생계, 진상을 알리는 항목, 인생의 위기, 경제적 궁핍, 결혼 생활의 시련, 아이들의 학교 문제, 가족의 건강, 뜻밖의 사고 등 일일이 다 꼽을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내내 압박감 속에 살았습니다. 이 모든 혼란을 ‘다스릴’ 수 있다는 사실은 제게 ‘슈퍼맘’이라는 자아 정체성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강하고 유능하다는 그 느낌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이들의 칭찬을 듣기 좋아했습니다. “와, ○○씨, 정말 많은 일을 해내시네요. 믿기지 않아요. 어떻게 이 모든 걸 다 해내시는 거죠? 당신은 정말 좋은 엄마예요. 당신은 정말 강인한 여성이군요.” 어머니라는 신분은 이미 수련인이라는 신분보다 더 중요해져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 대한 감정적인 집착을 조절하려 애썼지만, 제 압박감이 사실은 이기적이며 ‘슈퍼맘’이라는 자아가 팽창하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근원을 깊이 파고든 후, 저는 그 지속적인 ‘압박’감이 하루 일과를 마칠 때 제가 ‘당연히’ 쉬어야 하고 안락함에 대한 갈망을 ‘당연히’ 채워야 한다고 느끼게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때로는 문자 그대로 스트레스성 폭식이었고, 때로는 TV 시청이나 과도한 수면, 그리고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내려놓아야 하는데도 여전히 깊이 빠져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행동이나 중독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시간이 길어지자, 당신의 형상과 똑같은 당신이 누적되었는데, 오히려 그것으로 구성된 것으로, 당신을 통제했다.”(각지 설법 15-2019년 뉴욕 법회 설법)

이런 근본적인 집착들이 바로 저와 대법 사이의 두터운 장벽의 근원임을 깨달았을 때, 저의 주의식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고 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통제력도 강해졌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도록 저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훨씬 쉬워졌습니다.

저는 변하기 시작했고, ‘압박을 느낀다’와 ‘당연히 쉬어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았습니다. 최근에는 만약 제가 아주 바쁘고 압박이 크다는 것을 발견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저 자신에게 말합니다. “야, 더 이상 이러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조절해야 할까?” 때로는 더 나은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 사실 아주 간단해서, 기나긴 출퇴근길에 대법 음악을 듣고 따라 흥얼거리거나 대법을 소리 내어 외우기도 합니다. 그 하루가 아무리 바쁠지라도 이런 것들은 제 내면 전체의 상태를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수련생을 소중히 여기다

올해의 이런 교훈들을 거치며, 제가 인식한 관념과 집착들을 이미 완전히 이겨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랍니다. 하지만 저는 때때로 여전히 흔들리고 수련하는 길에서 또다시 같은 문제에 걸려 넘어지곤 합니다. 이 심득체험을 쓰는 것이 제게 이런 교훈들을 마음속 깊이 기억하도록 돕고, 이런 면에서 계속 제고해 나갈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지난 한 해 고비를 넘기며 얻은 또 다른 큰 깨달음은 바로 다른 수련생들을 소중히 여기고 수련 심득을 나누는 것의 힘입니다. 제가 죄책감 때문에 감히 다른 사람과 나누지 못했을 때 저는 고립에 빠졌고, 수련생들 역시 제가 자신의 잘못된 관념을 제대로 인식하도록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희가 서로 곁을 지키게 하셨고 단체 법공부, 단체 연공, 심득 교류라는 수련 형식을 내려주셨습니다. 저희는 마땅히 서로 가까워지고 진정으로 서로 지지하고 서로 의지하며, 서약을 이행하는 과정 속에서 굳건한 정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맺음말─남은 시간 동안 흔들림 없이 수련하다

저는 올해 겪은 시련이 제게 더 이상 천천히 할 시간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각 집착을 닦아내거나, 아니면 더 이상 집착을 닦아낼 기회가 없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이것이 그저 제 개인의 상황인지 아니면 저희가 겪고 있는 정법시기를 반영하는 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근본적인 집착을 닦아 없애기를 줄곧 피해 온 분들께, 이 순간을 붙잡으시라고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수련은 몹시 엄숙한 일입니다. 과거의 실패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잠에서 깨어나 안으로 찾으십시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연공(煉功) 중에 이런 교란, 저런 교란이 나타나면, 당신이 아직도 무엇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지 당신 자신이 원인을 찾아야 한다.”(전법륜)

저는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올해 저를 지지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저와 함께 정념을 발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보내주신 격려와 조언에도 감사드립니다.

(2026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0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28/51590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28/5159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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