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머니와 저는 모두 1999년에 법(法)을 얻은 오래된 수련생입니다. 당시 어머니는 갓 30대 초반이셨고, 저 역시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손을 잡고 이 27년의 정법시기 수련 여정을 걸어왔으며, 가족이자 동료이고, 나아가 동수(同修)이기도 합니다. 오늘 명혜망이라는 이 소중한 플랫폼을 빌려 사부님과 수련생 여러분께 우리의 수련 심득을 보고하고 교류하려 합니다.
어머니는 사업을 하시는데 고객층이 비교적 특수합니다. 바로 공검법(公檢法, 공안·검찰·법원) 사법부 직원들입니다. 저는 졸업 후 어머니 회사에 들어가 일했습니다. 우리 회사는 규모가 아주 작아 직원이 몇 명에 불과하지만 모두 수련인입니다. 우리는 평소 생활과 업무 속에서 엄격하게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하고, 고객을 위해 배려하며, 탐내거나 속이지 않고 땀 흘려 정당하게 돈을 벌었습니다. 고객들 사이에서 평판이 아주 좋아 고객사들의 인정을 받았고, 대부분의 고객이 기꺼이 새로운 고객사를 소개해 줬으며, 심지어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더라도 후임 동료를 소개해 우리와 알게 해줬습니다.
지면이 제한되어 있어 지난 몇 년간의 일화 몇 가지를 골라 적어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고 사부님께 보고 올립니다.
경찰에게 진상 자료를 보내고 스티커를 붙인 경험
어머니는 업무 중에 경찰 A를 접촉한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그가 지역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노동수용소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본인 역시 악행으로 명혜망에 폭로된 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적합한 진상 자료를 한 부 정리해 A가 사는 아파트로 가져가 입구 경비원에게 주며 A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후 A가 파룬궁(法輪功) 박해에 가담했다는 소식은 다시 듣지 못했습니다.
2000년 초, 어머니가 성(省) 감옥 관리국에 영수증을 갖다주러 가셨을 때, 핸드백 안에 진상 스티커 몇 장을 챙겨 가 그중 한 장을 관리국 엘리베이터 안에 붙였습니다. 어머니는 올라가서 일을 마친 후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셨습니다. 나오자마자 총을 든 특공대 무리가 뛰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은 “오늘 이 파룬궁을 잡으면 때려죽여 버리겠어!”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가지(加持)와 보호를 청하며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이때 핸드백 안에는 여전히 진상 스티커가 남아 있었고, 1층 로비를 지날 때 당직을 서던 한 여성 감옥경찰이 일어나 어머니의 핸드백을 계속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여경은 마치 제자리에 고정된 것처럼 멍하니 있다가 비로소 정신을 차렸으나, 어머니는 이미 자전거를 타고 떠난 후였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위험천만해 보였지만 사부님의 보살핌 아래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다실에서 진상을 알리며 인연 있는 사람을 구하다
우리 회사에는 다실이 하나 있습니다. 평소에 고객을 접대하는 것 외에도 우리는 그곳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가끔 사부님의 법상(法像)을 모셔 향을 피우고 과일을 올리기도 해서 에너지가 아주 강합니다. 많은 속인 친구들이 기꺼이 와서 앉아 있고 싶어 하며 아주 편안하다고 느낍니다. 봄이 가고 가을이 오며, 이 다실은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아주 좋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업무상 공검법 사법부 직원, 공급업체, 안전국이나 안전청 직원 등 각양각색의 온갖 사람들을 접하게 됩니다. 우리는 마음가짐을 바르게 했습니다. 우리 곁에 오는 이들은 모두 인연 있는 사람이며, 모두 사부님께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라고 안배해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제조사에서 파견 나온 30대 초반의 지역 매니저 B가 있었습니다. 그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가 수년간 모은 돈으로 산 집이 미완공 상태로 방치되어 골칫거리가 산더미 같았습니다. 우리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화제를 서서히 진상 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고향 기차역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파룬궁 진상)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련생이 미리 길을 닦아놓은 덕분에 B는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의 의미를 금방 이해하고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이어서 파룬궁 진상을 말해주자 더 이상 배척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습니다. 이후 B는 순조롭게 결혼해 쌍둥이를 낳았고 생활이 단번에 순탄해졌습니다. 그는 직장을 그만둔 후에도 우리 쪽에 자주 놀러 오겠다고 말하곤 합니다.
우리는 업무 중에 안전청 경찰 C를 접촉한 적이 있는데, 그는 이미 퇴직한 간부의 소개로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C를 처음 만나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공산당이 파룬궁에 너무 지독하게 구네요”라고 말했습니다. C를 알게 된 지 반년 남짓 되었을 때, 저와 어머니는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성 전체 합동 박해 작전 중에 납치돼 24시간 동안 불법 심문을 받은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C는 계속해서 우리와 업무적으로 왕래했습니다. 나중에 명혜망에서 검색해 보니, C가 성 ‘610’ 책임자와 이름이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직감적으로 이 사람이 바로 그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C를 마지막으로 본 것도 다실로 기억합니다. 당시 그는 빨간색 휴대폰을 들고 왔는데 다실 안으로 가져오지 않고 입구 쪽 선반에 멀찍이 두었습니다. 우리는 그때 간접적으로 그에게 진상을 알렸고, 불가(佛家)에서는 살생하지 않으며 자살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는 들으면서도 입으로는 자기 할 말을 하더니, 마치 임무를 완수한 것처럼 할 말을 다 하고는 일어나 가버렸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C를 다시 보지 못했고, 그는 관련 업무를 다른 젊은 경찰 D에게 넘겨 저와 연락하게 했습니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주관하시고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당시 제가 안전청에 물건을 배달하러 갔을 때, 정문 안에서 한 무리가 강적을 맞이하듯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돌아설 때조차 새로운 담당자 D가 저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불친절한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대법 실증을 최우선으로 삼고 계속 그들과 거래했습니다. 어떤 물건은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차라리 이윤을 남기지 않거나 적게 남기더라도 정성을 다해 납품을 마쳤습니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에게 적합한 물건을 골라주었습니다.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도 점점 우리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물건을 배달하러 가면 그들도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담당자 D 역시 처음의 차가운 겉치레 인사에서 진심 어린 감사로 바뀌었고, 기꺼이 저를 자신의 동료들에게 소개해 주려 했습니다.
어머니의 신분증은 중공 악당이 조작해 놓아 평소 고속철도를 탈 때마다 승무 경찰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비행기를 탈 때도 악의적인 검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2년 전쯤 한번은 어머니가 업무상 속인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베이징과 아주 가까운 도시로 가야 했습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검문소에서는 모든 사람이 차에서 내려 신분증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차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내려서 검사를 받았지만 어머니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정념(正念)을 발하며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자신으로 인해 차에 함께 탄 속인 친구에게 대법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남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검사를 마치고 차에 타자, 경찰은 그제야 차 안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습니다. 이때 운전기사가 액셀을 밟아 차를 출발시켰고, 경찰은 차가 떠나는 것을 그냥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또 한 차례의 박해를 해소시켜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한번은 수련하지 않는 아버지가 우리 모녀를 나무라며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가뜩이나 사업하기도 힘든데 또 그런 짓을 하고 다니다니(우리가 진상을 배포하는 것을 가리킴), 앞으로 누가 감히 거래를 하겠어?”
사악은 우리가 출근하는 곳에 CCTV 두 대를 설치했고(나중에 한 대는 철거됨), 집안 친척들도 연루될까 두려워 감히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심문실에서도 사악은 경찰을 사주해 우리를 협박했습니다. “이런 사업을 하면서 아직도 그 모양이냐?(우리가 파룬궁을 연공하는 것을 가리킴) 앞으로 장사 안 할 생각이냐?”
저와 어머니는 이런 협박 앞에서도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다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거리가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 하면 그만입니다. 대법을 수련하니 사부님께서 주관하시고 사부님께서 결정하십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 역시 수련의 과정
2년 전, 우리는 뜻밖에 큰 프로젝트 하나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본래 우리 같은 소기업에는 차례가 올 리 없었고, 그들도 처음에는 실력이 부족하다며 우리를 얕보았지만, 결국 우연찮게 우리에게 떨어졌습니다. 속인들은 다들 신기해하며 우리가 엄청난 인맥이 있거나 접대에 상당한 공을 들여 이런 프로젝트를 따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접대하러 다니지 않았고, 단지 식사 때가 되면 예의 바르게 식사를 대접하여 사람들이 배를 곯고 가지 않게 했을 뿐입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우리 외에도 두 명의 중간 연락책이 있었습니다. 먼저 접촉한 첫 번째 연락책 E는 어느 고위 간부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금만 순조롭지 않은 부분이 생기면 E는 일손을 놔버렸고,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에도 답하지 않으며 증발한 것처럼 굴었습니다.
똑똑히 기억나는데, 한번은 E가 또 손을 떼고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와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E가 이러는 것을 보고 당시에는 이 프로젝트는 가망이 없고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이미 초기에 수만 위안을 잇달아 투자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함께 법공부를 하고 교류했습니다. 저 역시 제 안의 득실을 따지는 마음,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의식하게 되었고, 이것들은 모두 집착심이니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말을 하고, 참된 일을 하고, 참된 사람이 됨으로써”(전법륜)라고 요구하셨기에, 우리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며 아무런 보답이 보이지 않을 때도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일을 했습니다.
바로 이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E의 배후에 있던 사람이 인터넷에서 우리 번호를 찾아 먼저 연락해 온 것으로, 아주 진정성 있게 협력을 원하며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자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오늘 저녁에 반드시 기획안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당시 임신 7~8개월이었고 매일 밤 10~11시까지 일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오직 법공부만 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이 저에게 지혜를 주어 매우 어려워 보이는 일도 사부님께서 해결 방법과 아이디어를 제 머릿속에 넣어주셔서 그대로 해냈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프로젝트가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 E는 우리에게서 수백만 위안을 속여 빼앗고는 또 실종되었습니다. 이 돈에는 정부의 선급금도 포함되어 있었고, 우리가 전 재산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도 섞여 있었습니다. 이 돈은 물품을 구매하는 데 써야 했는데, 제때 납품하지 못하면 아주 심각한 처벌을 받을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일은 잘 해결되었고, E와의 협력 계약도 종료되었습니다.
두 번째 연락책 H는 우리와 정식 계약을 맺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때 만약 우리가 H를 인정하지 않고 쳐내버리면 1천만 위안이 넘는 이윤을 더 챙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이고,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공평하게 거래하고, 마음을 바르게 놓으면 된다”(전법륜)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H와 계약을 체결하는 데 동의했고, 사전에 합의한 비율에 따라 남는 돈은 모두 그에게 주었습니다. H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여러분을 만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우리는 연락책 E와 H 모두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E가 자기 어머니 몸이 편찮으시다고 하길래 우리는 “파룬궁은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효과가 아주 좋으니, 어머니도 한번 연공해 보시라고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E는 “누님, 무서워서 못해요, 국가에서 못하게 하잖아요”라고 답했습니다. 이 E는 나중에 자신에게 우리를 소개해 준 친구에게 우리가 파룬궁을 연공하지만 확실히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두 번째 연락책 H와는 접촉이 많지 않았는데, 당시 제가 갓 출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식사 자리에서 그에게 신앙에 대해 언급하며 간접적으로 진상을 말씀하셨습니다. H 본인은 기독교 신자라서 사람에게 자신만의 신앙이 있어야 한다는 데는 깊이 동의했지만,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려 하자 조금 얼버무리며 피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에 대해 뒷조사를 해보았기에 아마 우리가 대법 수련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단지 자신의 위치가 있다 보니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 마음속으로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대법을 수련하는 데는 진정한 복이 따른다
이 프로젝트는 속인 사회의 ‘사람을 구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사람을 구하는 데’ 쓰이는 물품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이 프로젝트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이 과정에서 우리 자신을 수련하고 대법을 실증하게 하심이며, 속인들에게도 대법을 수련하는 이들에게는 진정한 복이 따르며 악당이 선전하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의 성공은 친척들 사이에서도 파장을 일으켰고, 그들은 뒤에서 수군거렸습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아직도 저렇게 큰 프로젝트를 해서 돈을 버는 거야?”
아버지도 우리 때문에 연루되어 사악에게 두 번이나 박해를 받으셨고 파출소에서 인신의 자유를 제한당한 적이 있어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제 남편은 수련하지 않고 본래 불임증이 있어서 저는 결혼한 지 7년이 다 되어가도록 임신하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설날에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그렇게 믿는데 왜 너희 사부님께 아이 하나 점지해 달라고 안 하냐?”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임신했습니다. 아버지는 속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한번은 지역 경찰이 어머니를 구류소로 압송해 가던 중, 경찰차 안에서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아줌마, 사업도 그렇게 잘나가면서 왜 아직도 이런 걸 하는 거요?” 어머니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일선에서 사건을 처리한 지 수년인데, 그동안 나쁜 짓 한 사람을 수도 없이 봤겠지만 그중에 파룬궁을 연공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나요?” 그는 몇 초간 멍하니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습니다. “확실히 없었습니다.”
20여 년의 수련 과정을 돌아보면 우리에게도 부족한 점과 아쉬움이 많았고, 두려운 마음과 우려하는 마음 때문에 인연 있는 사람을 구할 기회를 놓치기도 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공산사령(共産邪靈)이 사람을 이용해 미행하고 감시하는 바람에 우리가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기에, 우리는 반드시 악당의 교란과 박해를 돌파해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구하는 이 길에서 더욱 안정적이고 훌륭하게 걸어가며, 원만(圓滿)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 것입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교류의 장을 마련해 준 명혜망에도 감사합니다! 허스(合十)
(2026년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0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28/51571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28/515716.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