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수련에 들어선 지 이미 10여 년이 됐지만, 여전히 제거하지 못한 많은 마음이 있음을 종종 발견한다. 많은 경우 자신의 어떤 관념이나 행동 이면에 집착이 숨어 있다는 것을 갑자기 깨닫곤 한다. 게다가 그것은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 진작 지적해주신 아주 뚜렷한 마음인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현재 중국 내 어느 대학에서 일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대학 캠퍼스에서 교사의 수준과 능력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는 수업량이나 학생 성적이 아니라, 교사 본인의 학술적 산출 능력이다. 즉 논문을 얼마나 발표하고, 프로젝트를 얼마나 많이 따내며, 어떤 등급의 인재 양성 공정에 평가되는가 하는 것들이다. 악당의 거짓되고 과장되며 텅 빈 내용,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동시에 신전(神傳) 문화를 악의적으로 파괴하는 교육 및 연구 방향하에, 중국 학계는 수십 년간 온갖 쓰레기들을 숨겨오며 조작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연줄을 만들고 파벌을 형성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으며, 자신만의 관점이 있고 진정한 학문적 실력이 있는 사람은 흔히 묻히거나 심지어 탄압을 받았다. 반면 대인 관계를 잘 관리하고 수시로 아부하며 심지어 속임수를 쓰는 사람들은 오히려 각종 자원을 쉽게 얻어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학업 성적이 비교적 좋았고, 각 단계의 학업 과정에서 만난 스승들은 기본적으로 진지한 연구 태도와 뛰어난 학술적 수준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 역시 내 앞에서 학계의 온갖 흑막과 불공정을 자주 비판했으며, 그들은 내게 세상 흐름에 휩쓸리지 말고 진정한 실력으로 성과를 거두며 정직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어떤 마음가짐이 생겼다. 분명 학술적 능력이 없으면서도 온갖 속임수와 기회주의적인 수단을 통해 성장한 사람들을 마음속 깊이 얕보게 된 것이다. 나는 줄곧 이런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주로 그런 경멸받는 자들의 행동 자체가 확실히 올바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정직하지 못한 수단을 통해 학술적 성과를 얻었으며, 이를 이용해 이익과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깨닫지 못한 것은, 이런 마음가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일반적인 시비 판단의 범위를 넘어서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애초 스승들이 가르친 대로 자신을 잘 관리해 기회를 엿보거나 속임수를 쓰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얕보거나 심지어 혐오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마침내 그것은 일종의 오만함, 심지어 음침한 심리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점차 변해갔다. 이 바닥에서 이름이 꽤 알려진 누군가가 실제 수준은 아주 평범하다는 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그가 정말로 속임수를 썼든 안 썼든 상관없이 나는 무의식중에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얕보기 시작했다.
비교적 전형적인 예로 내 동료가 한 명 있다. 그녀는 석사 학위만 있었지만 비교적 일찍 입사해 직함 평가가 수월했던 마지막 몇 년의 시기와 맞물려 아주 평범한 성과만으로 부교수가 됐다. 하지만 아마도 박사 과정의 연구 훈련을 거치지 않고 충분한 연구 기초를 쌓지 못한 탓인지, 이 동료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학계 생태계에 직면해 자주 내게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녀는 연구하기가 너무 힘들며 학부생 수업을 하는 것조차 부담감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입으로는 그녀를 위로하고 아이디어를 짜냈지만, 속으로는 이미 그녀를 얕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능력이 부족하며 직함을 딸 수 있었던 건 단지 경쟁이 덜 치열했던 시기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법공부를 할 때,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이치를 말해 주겠는데, 속인이 인식할 수 없는 이치다. ‘당신이 보기에는 당신이 무엇을 해도 다 잘하지만 당신의 명(命) 중에는 없으며, 그는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지만, 그의 명 중에는 있기에 그는 간부가 되었다.’ 속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속인의 생각이다. 더욱 고급적인 생명이 볼 때, 인류사회의 발전은 다만 특정한 발전법칙에 따라 발전함에 불과하므로, 사람의 일생 중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그가 당신의 능력에 따라 당신에게 안배해 주는 것이 아니다”(전법륜)라는 단락을 읽었을 때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겉보기에 ‘명실상부하지 않은’ 학자들을 향한 나의 ‘얕보는’ 태도 이면에도 일종의 질투심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갑자기 깨달았다. 속인이 특정 학문, 특정 분야에서 가진 능력이 반드시 대우, 지위, 직함 같은 것들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 한 사람에게 ‘진정한 실력’이나 ‘학술적 능력’이 있는지의 여부는 단지 속인의 생각이며 속인의 평가 기준일 뿐, 고급 생명이 속인 사회를 안배할 때의 기준은 아니다. 내가 기회를 엿보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얕본 것은, 사실 내가 힘들게 노력해 성과를 얻은 반면 다른 사람들은 더 쉬운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고 심지어 나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룬 것을 보며 내심 불공평함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런 질투심은 진정한 실력을 긍정하고 속임수를 반대한다는 관념 속에 숨어 있어, 내가 마치 정직하게 학술적 도덕 규범을 수호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이런 거짓된 정의감 이면에 있는 진짜 마음이 바로 질투심의 작용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반성해보니, 나의 질투심을 감춰주던 그 겉보기에 정당해 보이는 ‘정의감’ 역시 사실 단순한 것이 아니라 명예와 이익에 대한, 그리고 내가 종사하는 연구 업무에 대한 나의 집착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해야 하며 거짓으로 꾸며대서는 안 된다. 하지만 대법제자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수련시키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업무에서 착실하게 임하는지 여부가 한 생명이 이 순간 진정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지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요소도 아니다. 만약 그저 어떤 사람에게 진짜 능력이 부족하거나, 혹은 확실히 속임수를 쓰고 기회를 엿보는 일을 좀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얕보는 마음이 생기고 나아가 그를 멀리한다면, 이는 법의 요구에 따라 타인을 선하게 대하지 않은 것일 뿐만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게 해 돌이킬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길 수 있다. 하물며 현재 중국 대학에서 많은 사람이 명예와 이익을 위해 스스로 존엄을 포기했다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다고 볼 수 있다. 각급 지도자들이 업적을 추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높여놓은 평가 기준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좋지 않은 방식으로 연구 성과를 얻기로 선택한 것이다. 생존에 내몰린 이런 사람들에게 헛된 명성은 생존만큼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그에 비해 나는 오히려 그런 ‘진정한 실력’과 ‘진짜 능력’을 지나치게 중시했다. 사실은 동종 업계 사람들에게 진정한 실력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던 것이 아닌가? 이것 역시 명예에 대한 집착이 아니겠는가?
이 밖에도 각종 수단을 동원해 온갖 자원을 얻어내는 학자들에 대한 나의 불만 이면에는, 자원이 그들에게 선점당하지 않았다면 내 개인 능력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발전과 보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역시 사실상 명성과 이익에 대한 집착이 아닌가? 내가 이 문제와 관련해 본질적으로 속인이 정한 ‘학술 도덕’과 ‘학술 기준’을 지나치게 무겁게 여기면서도, 나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고 남의 입장에서 타인을 위해 배려하지도 않았으며 중생구도를 최우선에 두지도 않았다. 이는 곧 내가 대법의 기준이 아닌 업무 분야의 준칙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주며, 내가 종사하는 이런 속인 업무에 대해 여전히 아주 강한 집착을 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찬찬히 정리하고 나서야, 나는 이 문제에 그토록 많은 집착과 수련의 누락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발견했다! 사부님의 일깨움과 자비에 감사드린다. 제자는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신성한 책임을 더 잘 짊어질 것이다.
개인의 작은 수련 체득이니 수련생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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