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2008년에 법을 얻어 수련을 시작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18년이 지났습니다. 이것은 제가 처음으로 쓴 교류 문장이니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1. 기쁘게 대법을 만나 탕자가 개과천선하다
저는 제대 군인 출신으로 성격이 난폭했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이후 적당한 일거리를 찾지 못한 데다 돈을 벌고 싶어 서서히 삿된 길로 빠져들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범죄 소탕 캠페인에 걸려 노상강도 갈취 혐의로 붙잡혀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며칠 갇혀 있지도 않고 10여만 위안을 써서 무마했고 전과 기록도 지웠습니다. 하지만 이 실형 선고는 제게 아주 큰 타격을 줬는데, 돈을 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내도 저와 이혼해 가정이 파탄 났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저는 늘 흐리멍덩하게 지냈고 때때로 사회에 보복하려 했습니다. 몇 년 이후 또 패싸움을 벌여 한 명에게 중상, 두 명에게 경상을 입힌 탓에 체포를 피해 달아났고, 다른 가담자들은 모두 붙잡혔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법을 얻기 전의 간단한 경력입니다. 저는 전형적인 ‘건달’로서 생명의 방향을 볼 수 없었고, 희망도 보이지 않았으며, 사람이 왜 사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 저는 쓰촨성으로 도망쳐 한 작은 부동산 사장을 따라 막일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특히 짧은 머리를 좋아했고 일도 아주 한가해 시간이 충분했기에 매주 고정적으로 한 이발소에 가서 이발을 했습니다. 오가다 보니 이발소 사장과 자연히 아주 친해졌습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이발을 하러 갔는데, 사장이 일이 있다며 제게 자기 집에 가서 놀면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의 부모님이 저와 대화를 나누며 사회의 어지러운 현상, 관리들의 부패, 중국공산당(중공)의 사악함에 관해 이야기하며 제게 중공의 사악한 조직(소년선봉대, 공산주의청년단, 공산당)에서 탈퇴할 것을 권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약간 반감도 들었지만 듣다 보니 이치가 명백해져 즉시 제가 가입했던 소년선봉대와 공산주의청년단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탈퇴를 마친 이후 두 노인은 또 제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진상을 이야기해 줬고, 마지막으로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꺼내 보여줬습니다. 책을 한번 보니 모든 것이 명백해졌고, 그때부터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저는 ‘전법륜’을 제4강까지 읽고 ‘마음(心)’이라는 글자를 깨달아 마음속에서부터 자신을 변화시켜야 함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다시는 사회에 보복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됐고 자신의 인생을 반성하기 시작했으며, 이전의 여러 꼴불견인 행동들로 인해 뒤늦게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만약 법을 얻어 수련하지 않았다면, 만약 대법의 인도가 없었다면 저는 정말 자신이 어디로 향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십중팔구 계속 나락으로 떨어지고 갈수록 타락해 최종적으로 자신을 파멸시키고 많은 사람에게도 상처를 줬을 것입니다.
대법이 제게 새 생명을 줬고, 대법이 제 선량한 본성을 일깨워 줬으며, 대법이 저를 환골탈태하게 했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대법에 감사합니다!
당시 저는 여전히 도망 중인 무호적자였습니다. 법을 얻은 이후 저는 이대로 계속 지내면 안 되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반드시 결말지어야만 당당하게 수련할 수 있음을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붙잡힐 위험을 무릅쓰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알아보니 저는 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아직 온라인 수배령은 내려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자수를 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지 저 자신도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먼저 이를 해결할 수 있는지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기하게도 큰 어려움 없이 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해 줬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가 이를 해결하도록 도와주셨음을 알았습니다.
2. 고통을 참으며 업을 소멸하고 신체를 정화하다
제가 늦게 법을 얻었기에 개인 수련과 정법 수련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체적으로도 비교적 큰 정화와 소업(消業, 업을 소멸)하는 과정을 몇 차례 겪었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도움하에 모두 정념으로 극복해 냈습니다. 인상이 비교적 깊었던 두 번의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번은 법을 얻은 이후 1년쯤 지났을 때 왼쪽 눈에 갑자기 극심한 통증이 생겼습니다. 제가 12살 때 심각한 눈병을 앓은 적이 있었는데, 진찰을 받을 때 의사는 30분만 늦게 왔어도 두 눈이 모두 실명돼 시각 장애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번에 사부님께서 이전에 눈 안에 억눌러두었던 병을 다시 끄집어내어 뿌리를 뽑고 철저히 정화해 주시려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심하게 아파도 저는 이것이 병이 아님을 굳게 믿고 참아내려 했습니다. 때로는 너무 아파서 바닥을 뒹굴며 이리저리 몸부림쳤지만 모두 이를 악물고 견뎠습니다. 이번 신체 정화는 꼬박 일주일이 지나서야 끝났는데, 약을 한 알도 먹지 않았습니다. 고생을 적잖게 했지만 지나고 나니 눈이 아주 맑고 밝아졌습니다.
또 1년이 지나 오른쪽 눈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유난히 통증이 심했는데 눈도 아프고 머리도 아팠으며 바닥을 뒹굴어도 완화되지 않았고 손을 눈앞 15cm 거리에 두어도 손바닥 주름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저는 사부님 법상 앞에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제 죄업을 참회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제자가 죄업이 깊고 무거워 이번에는 정말 버틸 수 없으니 사부님, 제자가 하루빨리 병업 고비를 넘기도록 도와주십시오. 제자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일을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법에 대한 저의 확고함과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을 보시고 제 통증을 덜어주셨고 저는 마침내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소업은 꼬박 보름이 지나서야 끝났습니다. 그때부터 제 눈은 철저히 나았고 지금까지도 예전처럼 밝습니다.
3.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해 사람을 구하다
이번에 소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 사장이 제게 전화를 걸어 다시 와서 함께 일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쓰촨으로 갔고, 그때부터 제가 지금까지 꾸준히 견지해 온, 직접 자료를 배포하고 대면해 진상을 알리며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해 사람을 구하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돌아가서 저는 사장의 조수가 됐는데 일상 업무가 아주 한가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틀림없이 사부님의 안배라고 생각했고 이를 충분히 활용하려 했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자료를 배포하고 삼퇴를 권하는 것이 제 일상 과제가 됐습니다.
저는 자료를 배포할 때 모두 직접 사람들과 마주했는데 두려움을 몰랐고 마음속에 두렵다는 개념도 없었습니다. 소책자, ‘9평 공산당’, ‘션윈(神韻)’ DVD 등 무엇이든 매일 큰 가방 하나를 메고 때로는 골목을 누비고, 때로는 공원에 가며, 때로는 공사장에 갔고, 때로는 교차로에서 초록 불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배포했으며, 교통경찰에게도 줬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자료만 배포하다가 아주 빨리 직접 대면해서 삼퇴를 권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10여 년간 제가 대면해서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하면서 한 번도 위험에 처한 적이 없었습니다. 삼퇴를 권할 때 당연히 탈퇴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신고하겠다고 위협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단지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어느 해 저는 청두 기차역에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표를 사고 나니 아직 2시간 남짓 남아 시간이 귀중하니 낭비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돌아다니며 인연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은 같은 성에 사는 고향 사람이었는데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당원이었습니다. 그는 대화 시작부터 현재가 얼마나 좋은지, 공산당이 어떠어떠한지를 과시하며 말했는데 분명 적잖게 기만당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악한 세력이 그가 진상 듣는 것을 가로막고 있으니 사악의 오만한 기세를 타격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바로 이어서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탐오 부패하고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는 사람들은 모두 당원이죠.” 그는 단번에 기가 꺾였습니다. 이어서 저는 삼퇴 상황을 소개했고 최종적으로 그도 알아듣고 중공의 3대 사악한 조직에서 탈퇴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이번 차편에서는 기차역에서부터 기차 안까지 포함해 총 8명에게 삼퇴를 권했습니다.
10년 이후 저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진상을 알리는 발걸음이 또 고향의 모든 마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몹시 춥든 덥든 진상 알리기를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스쿠터를 타고 먼 곳까지 가서 알리고 장터에도 갔으며, 시간이 적으면 읍내에서 알렸는데 은행 입구, 병원, 파출소 호적실은 제가 자주 가는 곳이었습니다. 삼퇴를 권하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대략 계산해 보니 총 2~3만 명 정도를 탈퇴시켰습니다.
처음으로 쓴 교류 문장이라 수련생이 도와서 정리한 것이니,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6/5130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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