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념 모두 수련이다

글/ 일본 대법제자

[명혜망] 추석이 다가오면서 원래는 사부님께 명절 인사를 올리는 사진 촬영 행사일 뿐이었으나, 저에게는 심성을 시험하는 매우 깊은 과정이 됐습니다.

행사 전날 밤, 남편(수련자)은 다음 날 가고 싶지 않다며 사진 촬영은 그저 형식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일의 중요성을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때 제 첫 번째 생각은 이러했습니다. ‘이것은 사부님을 존경하지 않고 대법을 공경하지 않는 거야. 명절에 사부님께 축하 인사를 올리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이 일이 막상 제 자신에게 닥쳤을 때, 저는 입으로는 마땅히 가야 한다고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진정으로 확고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저는 날씨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찍을 수 있을까? 못 가는 것 아닐까? 차라리 가지 말까?’ 지금 돌아보면, 당시 저는 사실 이미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날씨를 보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가지 않을 이유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생각은 매우 은폐돼 있어서, 만약 나중에 이 일이 계속해서 제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면 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또 남편이 가지 않으니 저 혼자 가는 것도 별로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수련자에게 물어보니 그녀는 가고 싶지만 집이 멀어 늦지 않을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또 B 수련자에게 물어보니 비가 많이 와서 역시 가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 마음은 또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계속해서 꼭 가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제 정념이 단번에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험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 가지 않으면 나는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다른 사람이 수련하지 않으면 나는 수련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 순간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하지 않으면 저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정진하지 않으면 저도 따라서 흔들린다면, 저는 도대체 누구의 기준에 따라 수련하고 있는 것일까요? 수련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보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순간에 자신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이 일념이 바뀐 이후, 저는 더 이상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을 때 엘리베이터가 마침 4층에 멈춰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저는 제가 옳게 행동했음을 알았습니다.

가는 길에 저는 지각할까 봐 조급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뻐하기도 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남편에 대한 원망을 품기도 하는 등 각종 속인의 생각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이미 촬영 장소로 가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도중에 다른 수련자가 있는 곳이 제가 있는 곳보다 비가 더 많이 온다는 생각이 떠올라 우쭐해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바람에 정류장을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제가 타야 할 차가 눈앞에서 지나가는 것을 보고 다시금 괴로움과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차를 타려면 20분을 기다려야 했고, 게다가 이때 비도 더 굵어져 수련은 정말로 일사일념 사이에 있다는 것을 더욱 깊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큰일을 만나야만 시험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가는지 안 가는지, 지각하는지 안 하는지, 다른 사람이 가는지 안 가는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하는지, 심지어 무심코 스쳐 가는 생각 하나까지도 자신의 집착을 비춰낼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은 또한 제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제 안의 많은 사람 마음을 보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선택 때문에 자신이 흔들리곤 했는데 여기에는 의존심이 있었습니다. 날씨가 나빠져서 가지 않을 이유가 생기기를 바랐는데 여기에는 안일함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늦을까 봐 조급해했는데 여기에는 조급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가지 않아서 기분이 상했는데 여기에는 남을 원망하고 요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일이 순조로울 때는 또 기뻐하고, 순조롭지 않을 때는 괴로워했는데, 이 모든 것이 다 닦아버려야 할 사람 마음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사진 찍으러 가는’ 이 일을 완수해야 할 하나의 임무로 이해했을지 모르지만, 이번에 저는 더욱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일 자체가 얼마나 떠들썩하고 순조롭게 진행되는지가 아니라, 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제 마음이 법 위에 있는지의 여부입니다. 만약 그저 환경을 따라가며 다른 사람이 가면 저도 가고, 다른 사람이 가지 않으면 저도 가지 않으며, 날씨가 좋으면 기뻐하고 날씨가 나쁘면 꽁무니를 뺀다면, 그것은 사실 속인의 기준으로 수련 중의 일을 가늠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다른 사람을 보지 않고 환경을 보지 않으며 오직 자신에게 ‘나는 수련자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었을 때, 그 순간 비로소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자의 위치에 놓은 것이었습니다.

이번 경험은 또한 저에게 정념은 일이 발생한 후에야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끊임없이 법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만약 법리가 진정으로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면, 약간의 환경 변화만 만나도 사람의 생각이 아주 쉽게 튀어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번의 평범해 보이는 사진 촬영 경험에 매우 감사합니다. 그것은 제게 제 자신에게 여전히 제고하고 닦아버려야 할 많은 부분이 있음을 보게 해 주었고, 수련에는 작은 일이 없으며 진정한 수련은 매 순간, 매번 한 생각이 떠오를 때에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알게 해 주었습니다. 한 가지 생각이 나타날 때, 저는 그것을 따라가는가, 아니면 법으로 그것을 가늠하는가?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때 저는 여전히 흔들림 없이 확고할 수 있는가? 주변 환경이 복잡할 때 저는 여전히 정념을 지킬 수 있는가? 일이 순조롭지 않을 때 저는 여전히 원망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아마도 이것이 이번 경험이 저에게 가져다준 가장 깊은 일깨움일 것입니다.

추석은 단란하게 모이고 감사하는 명절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사부님께 인사를 올리는 것은 단지 형식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해 진정으로 격차를 찾고, 심성을 제고하며, 자신의 매 일념을 단정히 해야 합니다.

제가 향후의 수련 길에서 더 이상 환경으로 자신을 가늠하지 않고, 더 이상 다른 사람으로 자신을 가늠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법을 통해 자신에게 요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 부닥치든 모두 정념을 지키며 자신의 수련 길을 잘 걸어가겠습니다.

작고 얕은 견해로서 교류하기 위함이니 수련자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9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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