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2003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걸어온 수련의 길은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의 보살핌과 떼려야 뗄 수 없으니 제자는 사존께 한없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루빨리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순수한 마음가짐으로 중생을 많이 구해야만 사존께 가장 잘 보답하는 것입니다.
저는 자신의 수련 경험을 써서 수련생들과 교류하며 저 자신이 정진하도록 격려하려 합니다.
1. 대법 수련에 들어서다
1999년 7월, 중공은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 곁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인데 어떻게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것과 같을 수 있는지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이 방송된 후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달려가서 물었습니다. “파룬궁이 도대체 뭐예요? 당신들은 왜 파룬궁을 수련해요? 당신들은 왜 천안문에 가서 분신자살하려고 해요?” 나중에 ‘천안문 분신자살’이 가짜라는 것을 알고 나서 저는 정부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와 같은 근무조에 대법제자인 동료가 있었습니다. 그가 불법적으로 감금됐다가 풀려나왔는데 뜻밖에도 얼굴에 홍광이 가득하고 피부가 아기처럼 매끄럽고 윤기가 나서 적어도 10살은 젊어 보였습니다. 저는 크게 놀라며 농담조로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감옥에 가면 누렇게 뜨고 홀쭉해지는데, 당신은 혈색이 이렇게 좋으니 어디 휴가라도 다녀왔어요?” 동료는 웃기만 했습니다. 그때 회사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교류할 때 제게 심부름을 부탁하면, 저도 기꺼이 그들에게 편지를 전해주었습니다.
당시 저는 인생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시어머니는 우리가 다니는 이 국유기업에서 유명한 드센 분이었습니다. 시어머니에게는 아들 셋과 며느리 셋이 있었는데 다른 두 며느리에게는 잘해주면서 유독 저만 하녀처럼 들볶았습니다. 딸이 어렸을 때 저와 남편은 출근해야 해서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겼습니다. 제가 아이를 데리러 가면 시어머니는 화를 내며 제가 이것도 잘못하고 저것도 잘못한다고 나무라셨습니다. 저는 성격이 무척 유약해서 말대꾸하며 싸우지도 못했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집에 돌아와 혼자 속앓이만 했는데 남편마저 시어머니 편에 섰습니다.
남편은 성격이 호탕하고 부지런했지만 성질이 불같고 화를 잘 냈습니다. 저와 결혼한 뒤, 남편은 일 년 내내 카드놀이를 하며 집에 붙어 있지 못했고 대부분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돈을 얼마나 잃었는지 우리 회사 사람들은 남편을 ‘현금 인출기’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맞벌이 부부였고 복지 혜택도 좋았지만 생활은 쪼들렸으며 집안 돈 대부분을 남편이 잃어버렸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몇 마디라도 하면 그는 화를 내며 손찌검까지 했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저는 되도록 말을 아꼈고 마작을 하거나 책을 보며 저의 답답함을 달랬습니다. 저는 심지어 절에 들어가 수행할 생각도 했지만, 절 안도 조용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고 게다가 아이도 어려서 그 생각을 접었습니다.
2001년 어느 날, 저는 야간근무를 하다가 같은 근무조의 대법제자에게 아주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당신들 파룬궁 책 좀 제게 보여주세요. 제가 직접 파룬궁에 도대체 무엇이 쓰여 있는지 알아볼게요.”
밤에 저는 ‘전법륜(轉法輪)’을 펼쳐 사부님의 약력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이고! 신께서 인간 세상에 오셨구나, 인류에게 큰일이 일어나겠구나!’ 저는 이어서 몇 번이나 읽었습니다. ‘전법륜’을 다 읽고 난 후, 저는 ‘전법륜’을 가슴에 꼭 껴안았고 이것이야말로 제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후 저는 계속해서 사부님께서 1999년 이전에 하신 모든 설법을 몇 번씩 읽었는데, 읽을수록 더 읽고 싶어졌습니다. 매번 법을 볼 때마다 제 온몸과 마음이 그 속에 녹아들어 주변의 존재를 잊었으며, 그런 몸과 마음의 기쁨과 아름다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고 꿈을 꿀 때도 자주 날아다녔습니다.
저는 또한 주변 지인, 친구, 동창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습니다. 어느 날 제가 야간근무를 할 때 회사 구내식당의 젊은 요리사 두 명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는데 그중 한 청년이 듣고 나서 제게 ‘전법륜’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식당 사장은 우리 직장 사무실 건물에서 출근했는데, 곳곳을 다니며 제가 그의 요리사에게 파룬궁 책을 보여줬고 요리사가 그것을 본 후 살생을 하지 않게 됐다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무척 기뻐서 속으로 ‘마음껏 더 많이 말하세요. 더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알게 되는 게 좋으니까요!’라고 생각했습니다.
2003년 3월, 저는 정식으로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수련 후, 저는 대법이 이렇게 좋으니 마땅히 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회사는 국유기업이라 근무가 비교적 한가했기에, 저는 근무 시간에 모든 시간을 다그쳐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법공부를 했고 법이 무척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저는 당직실 침대에 앉아 열어둔 서랍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법공부를 했습니다. 침대에는 동료들도 앉아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카드놀이를 해서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법에 푹 빠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때는 법공부를 하다 뒤를 돌아보면 웬일인지 조용해져 있었는데, 퇴근 시간이 다 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몇 년간 이어졌습니다.
저는 보통 사람일 때 몹시 게을러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저녁을 다 먹고 딸을 데리고 산책을 다녀오면 침대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는 강렬한 생각이 들었고, 정말 당장 올라가 눕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신이 법을 늦게 얻었으니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법공부를 시작하기만 하면 그 생각은 사라졌습니다.
2. 대면해 진상을 알리기 시작하다
우리집은 매우 비좁았지만, 텔레비전의 시끄러운 소리나 남편의 큰 목소리도 제가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하는 것을 교란하지 못했습니다. 수련을 갓 시작했을 무렵,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과 사부님의 법을 생각할 때마다 저는 얼굴 가득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전에는 천상의 왕이나 주였으나 인간 세상에 내려왔고 지금은 인간 세상에서 길을 잃고 대법제자가 구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도 저는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저는 속으로 발원했습니다. ‘나는 나의 선함으로 세상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리라.’ 저는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소속된 지사에는 300명 정도가 있었는데, 교대근무를 하는 사람, 주간 근무를 하는 사람, 사무실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정비공이어서 회사 전체를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업무 편의를 이용해 매일 교대근무를 하는 두 초소의 노동자들에게 진상을 알리자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내성적이고 말하기 싫어하는 습관을 극복하고 속인에게 이끌리는 마음을 억제하며 미소를 띠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다 말한 후에는 어떤 마음이 이끌렸는지 안으로 찾고 다음번에는 잘 해냈습니다. 대답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는 돌아와서 수련생과 교류하거나 ‘명혜주간’ 글을 읽어보고 다음번에 잘 말했습니다.
한동안 진상을 알린 후, 저는 저녁에 지인 두 사람의 집에 가서 진상을 알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대형 국유기업의 직원과 가족을 합치면 만 명이 넘었는데, 그 무렵 세상 사람들은 텔레비전에서 파룬궁을 비방하는 선전에 무척 깊이 중독돼 있었습니다. 제가 파룬궁 진상을 알릴 때 많은 사람이 제게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를 밖으로 내쫓았고 어떤 사람은 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신고하겠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진상을 들으며 제게 반박하는 사람조차 차라리 나은 편이었습니다. 진상을 알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는 참느라 배가 다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어떤 때는 6층까지 걸어 올라갔는데 아무도 없으면 또 다른 건물로 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태도가 어떠하든 저는 대법제자가 중생이 구원받을 유일한 희망이라는 생각만 하면 온갖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계속해서 2년 넘게 끈질기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 생각나는 지인, 동창, 친구, 남편의 동창과 지인, 딸의 선생님 등을 거의 모두 집으로 찾아가 진상을 알렸습니다.
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어느 날 학교에 가기 전에 제게 말했습니다. “내일 정치 선생님이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을 가르치신대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선생님이 학생들을 해치게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정치 선생님의 기숙사를 수소문해 저녁에 그녀의 기숙사로 찾아갔고, 선생님에게 파룬궁 진상과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의 의문점을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올바른 인도는 학생에게 무한한 혜택을 주지만, 잘못된 인도는 학생의 평생을 망칠 수 있습니다.” 다음 날 딸이 하교해서 집에 오더니 말했습니다. “정치 선생님이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을 설명하시지 않고 우리 보고 각자 읽어보라고 하셨어요.” 저는 이 선생님의 선택에 무척 기뻤습니다.
쉬는 날에는 버스를 타고 친척이나 고등학교 동창에게 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혀 왕래가 없었지만 저도 찾아가서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나눠주었습니다. 제 동창 중 한 명은 우리 진(鎭)에서 파룬궁 박해를 담당하는 세 번째 책임자였는데, 저는 그의 집에 찾아가 그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의 아내는 초등학교 교감이었는데 저는 그의 아내에게도 진상을 알렸습니다.
우리 지역에 어떤 수련생 한 명이 불법적으로 구류소에 갇혔을 때, 저는 가족의 명의로 공안국에 가서 진상을 알리며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그 파룬궁 박해 책임자는 제 질문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며칠 후, 수련생은 풀려났습니다.
우리 지역의 또 다른 수련생이 어느 지역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갇혀 단식으로 숨이 넘어갈 것 같았습니다. 수련생 직장의 간부 두 명이 그를 보러 갔는데 우리 몇몇 수련생과 불법 감금된 수련생의 가족도 함께 갔습니다. 차에 타자마자 저는 두 간부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주었고, 두 간부가 줄곧 불법 감금된 수련생이 그들에게 골칫거리를 안겨줬다고 생각하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주었습니다. 사실은 정부의 행위가 직장 간부들에게 골칫거리를 안겨준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차에서 내릴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나눴고 두 간부는 우리에게 무척 우호적이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하에, 수련생들의 정념 가지하에 불법 감금되었던 수련생은 당일에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반년 동안 진상을 알린 후, 우리 직장 사무실 건물의 간부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을 빼고는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제가 여러 방식을 통해 모두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또한 제가 예전에 일했던 근무지, 동창의 직장에도 가서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나눠주었는데 모두 낮에 출근 시간에 가서 자료를 주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출근하지 않을 때면 저는 서둘러 남편의 직장으로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반년 동안 진상을 알리면서 제 마음가짐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말을 잘할 줄 모르다가 나중에는 여러 사람을 대하며 각기 다르게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됐습니다. 참느라 속이 뒤집힐 듯 고통스럽던 것에서 나중에는 마음이 평온하고 부드러워졌습니다. 저는 진상을 알릴 때 두려운 마음이 없었고 오로지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뿐이었으며 아주 태연했습니다.
반년 후, 저는 자전거를 타고 주변 농촌으로 가서 마을마다 돌며 진상을 알렸습니다. 한번은 제가 수련생과 함께 큰 마을에 가서 진상을 알리는데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어느 방 안에서 수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주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면 복을 가져다줄 거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방금 그분들을 떠났을 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는 소리가 들려와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할머니들이 다 함께 외우고 계셨던 것입니다!
10월에 저는 갑자기 몹시 괴로운 상태가 나타나 평소의 웃음기가 사라지고 우울해졌습니다. 저는 법공부를 하고 수련생과 교류해도 깨닫지 못했고 게다가 갈수록 괴로웠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눈물로 하소연했습니다. ‘사부님, 저는 예전에 그렇게 즐거웠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괴로운가요? 이 괴로움은 제가 아닙니다!’ 그냥 무심코 낸 이 일념에 사부님께서는 제자를 도와 저를 보름이나 괴롭혔던 이 물질을 제거해주셨습니다. 순식간에 저는 다시 그 즐거운 상태로 돌아왔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저는 제 수련의 길에 두 갈래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걸으면 즐겁고 평온하지만, 구세력이 안배한 길을 걸으면 시련이 겹겹이고 어려움이 첩첩산중입니다. 이후의 수련 중에서 저는 무엇이 구세력이 주입한 관념인지 분별하는 데 꽤 주의를 기울였고 아울러 그것을 부정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고향에 돌아가 진상 자료를 배포했는데 언니가 전화해서 어떤 사람이 그 자료를 제가 배포한 거로 의심하고 있고 공안국에서 조사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너무 놀라 링거를 맞으셨고 어머니 집에는 사람들이 꽉 차 있었으며 언니는 저를 욕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무척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수련생들이 저를 도와 발정념을 해주었지만 그 며칠 동안 저는 속으로 우울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 대법제자에게 하라고 하신 것이며 구세력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공안 경찰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깨닫자마자 저는 그동안의 수심을 싹 쓸어버리고 홀가분해졌습니다. 그 후에도 아무도 저를 찾지 않았습니다.
3. ‘9평’을 배포하고 삼퇴를 권하다
‘9평 공산당’이 발표된 후, 저는 너무 잘 쓰였다고 생각해서 대량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배포해 보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당시 제 수중에 ‘9평’이 많지 않아 저는 먼저 교대근무 노동자들에게 보여주며 그들에게 빨리 돌려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누가 ‘9평’을 배포하다 발각되면 4년형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저는 멍해졌습니다. 법공부 후 저는 ‘9평’ 배포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것이며 징역형은 구세력의 안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음 날 출근할 때 회사 입구에 많은 사람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저는 아주 담담하게 ‘9평’ 한 권을 세상 사람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나중에 수중에 ‘9평’이 많아지자 저는 대량으로 주간 근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배포했습니다. 그때 몇몇 작업장 사무실에는 모두 닳고 해진 ‘9평’ 책이 있었습니다. 저는 일찍 출근해 회사 입구에 서서 파룬궁 진상 자료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출근할 때 저는 큰 꾸러미의 진상 자료를 건네주어 돌려보게 했습니다.
나중에 또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하기 시작했습니다. 삼퇴를 권하는 과정에서 저는 중공에 얕게 세뇌된 사람은 쉽게 탈퇴하지만 중공에 깊이 세뇌된 사람은 탈퇴하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자신의 수련 체득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탈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붉은 눈의 돌사자’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마음을 다해 탈퇴를 권한 덕분에 아주 빨리 회사 사람 80% 이상이 삼퇴했습니다. 탈퇴하지 않던 사람들도 몇 년간 진상을 알린 끝에 결국 삼퇴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야간근무를 하는데 교대근무를 하던 한 노동자가 제게 아주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누님, 저 예전에 생산대에서 회계를 맡아본 적이 있어서 당원이에요. 저 이제 외지로 일하러 가야 하는데 공산당을 탈퇴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그는 또 자신의 아내와 아들에게도 가입했던 공청단, 소년선봉대를 다 탈퇴하게 했습니다.
2005년 어느 날 제가 야간근무를 하는데 한 젊은 보안 요원이 저를 보더니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자료 나눠주시는데 우리한테도 좀 줘봐요. 우리도 파룬궁 자료 보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 직장의 모든 보안 요원에게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리며 삼퇴를 시켰습니다. 나중에 보안 대대장이 지인이라는 말을 듣고 저도 진상 자료를 가지고 대대장에게 가서 진상을 알렸으며 대대장과 함께 사는 보안 요원들에게도 모두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우리 회사에는 자주 공사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현지 사람도 있고 외지 사람도 있었습니다. 짐 싣는 운전기사, 업무 보러 온 사람, 저와 접촉하는 사람, 새로 뽑힌 노동자 등에게 저는 모두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습니다. 출퇴근길에 본사의 몇 개 큰 창고를 지나가야 했는데 짐을 싣기 위해 기다리는 기사들이 많았고 다들 길가에 정차해 있었습니다. 현지든 외지든 기사들은 모두 제가 진상을 알리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때는 출근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매일 출근해서 줄곧 세 가지 일을 했으며 제가 이 직장을 떠나 다른 직장으로 옮길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쉴 때면 저는 자전거를 타고 농촌에 가서 진상을 알렸는데, 어떤 때는 수련생과 협력했고 어떤 때는 수련생의 협력 없이 혼자 했습니다. 당시 농촌에는 카드놀이판이 많았고 길흉사를 치르는 집이 많았으며 집을 짓는 곳도 많고 도로를 닦는 곳도 많고 벽돌 공장도 많아서 모두 우리가 진상을 알리기에 좋은 장소였습니다.
진상 알리기 경험이 쌓여 정념이 충분했고 두려운 마음이 없었으며 마음이 아주 태연해서 보통 사람의 말에 이끌리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많을수록 마음가짐을 안정시키고 정념으로 상황을 통제해야 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이나 나쁜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저는 즉시 정념이 담긴 몇 마디 말로 받아쳐서 그 나쁜 목소리를 억눌렀습니다. 그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진상 자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그 몇 년간 진상을 알리는 효과가 좋아서 가는 곳마다 특히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중생들이 앞다투어 진상 자료를 받아갔고 저와 중생들은 항상 어떤 자비롭고 상서로운 마당에 휩싸여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한번은 제가 수련생 한 명과 벽돌 공장에 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먼저 벽돌 공장 간부에게 진상을 이해시킨 후에 노동자들에게 알리려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벽돌 공장 사무실에 가자 금방 벽돌 공장 간부 3명에게 진상을 이해시켰고 그들에게 삼퇴를 시켰으며 그들은 여러 진상 자료와 CD를 가져갔습니다. 우리는 또 노동자들에게 알리러 갔는데 일하고 있는 큰 무리의 노동자들을 보고 저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중생들이여, 마침내 당신들을 찾았군요!’ 저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빨리 와서 파룬궁 진상 좀 보세요. 파룬궁은 사람을 구하러 온 거예요.” 노동자들은 신이 나서 자료를 가지러 왔고 어떤 사람은 수레를 끌고 제 앞까지 와서 이름을 대며 삼퇴를 했는데 사람이 많아 다 감당하기 벅찼습니다.
진상을 알렸던 벽돌 공장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새로운 진상 자료를 보내 노동자들이 보게 했습니다. 어떤 노동자는 저를 알아보고 멀리서 저를 보면 손에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와 제 가방을 뒤져 스스로 진상 자료를 꺼내갔습니다.
당시 농촌에 가서 진상을 알릴 때 촌 간부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9평’을 나눠주며 삼퇴시키기를 좋아했는데 촌 간부가 진상을 이해하면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진상을 알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는 제 미천한 생명에게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이처럼 신성한 사명을 부여하시어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하게 하셨다는 생각에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기쁨과 자부심을 느꼈고 말하면 할수록 더 말하고 싶었고 말할수록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4. 박해는 나와 무관하다
2007년 어느 날 제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도로변 집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보았는데 한 명은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가가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자 서류 가방을 든 사람이 제 신분증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평범한 양민인데 신분증을 갖고 다니겠어요?” 그는 또 와서 제 가방을 뒤졌는데 가방 안에 진상 자료가 있었지만 그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당신들 뭐 하는 사람들이에요?” 서류 가방을 든 사람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정(黨政)기관 사람들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마침 잘됐네요. 당정기관 사람들은 평소에 파룬궁 진상 듣기가 어려우니 오늘 마침 제가 당신들에게 좀 얘기해 줄게요.” 저는 파룬궁이 불법(佛法)이며 사람들에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이미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 널리 전해졌으며 장쩌민 마두(魔頭)가 질투심에서 비롯돼 파룬궁을 박해한다는 등등을 말했습니다. 서류 가방을 든 사람과 함께 있던 사람은 오토바이에 타고서 저보고 빨리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두 사람에게 대법 진상 호신부(護身符)를 주었습니다. 제가 보아하니 집 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기에 방 쪽으로 걸어가 호신부를 배포하려 했습니다. 술을 마셔 얼굴이 벌겋게 된 키 큰 남자가 걸어 나오더니 제가 준 대법 진상 호신부를 받아 들고는 파룬궁의 것임을 보자 안색이 싹 바뀌며 말했습니다. “감히 우리한테 이런 걸 줘?! 우리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아?” 이때 서류 가방을 든 사람이 그를 호통쳐 말렸습니다. 저는 또 호신부 몇 개를 배포하고 나서야 걸어 나왔는데 오토바이를 탄 그 사람이 말투를 바꾸며 제게 말했습니다. “빨리 가지 않고 뭐해요!” 저는 자전거를 타고 그들을 떠났고 한 가닥 자비로운 에너지가 저를 감쌌습니다.
2005년, 우리 국유기업은 체제를 개편했는데 실질적으로 국유기업을 사기업으로 바꾼 것이며 기존의 오랜 직원들을 내쫓고 새로 뽑은 직원들로 교체하여 지시에 잘 따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2007년 체제 개편 담당자들은 노동자들에게 출퇴근할 때 노래를 부르도록 요구했고 크고 작은 회의를 쉴 새 없이 열었으며, 고음 확성기로 악당의 붉은 노래를 틀어대 회사 전체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직장은 노동자들에게 저녁에 큰 사무실로 모여 전문 기술을 배우게 했고 시험까지 치르게 했습니다. 그 기간 저는 법공부가 적어서 사람이 몽롱해졌고 이로 인해 수련생과 나가서 진상을 알릴 때 누군가의 악의적인 신고를 당해 납치돼 구류소에 불법 감금됐습니다. 밖에 있는 수련생들이 전력으로 구출했고 우리는 안에서 발정념을 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하에 4일 후 우리는 풀려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제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는 대량으로 법을 외웠고 이후에 나가서 진상을 알릴 때 자신을 조절하며 두려운 마음을 제거했습니다.
우리가 수련생 구출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남편은 매일 출근하러 나가기 전에 항상 제게 말했습니다. “파출소에서 자주 나를 찾아와 당신을 감시하라고 해. 당신보고 다시는 나가서 자료 배포하지 말라고, 발각되면 징역형을 받을 거래.” 저는 듣자마자 ‘이건 구세력이 하는 말 아닌가? 사부님께서 우리 대법제자에게 세 가지 일을 잘하라고 하셨으니 나는 사부님 말씀을 듣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매일 여전히 파출소에 가서 발정념을 하며 사람을 요구했고 수련생이 풀려날 때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어느 날 반장이 제게 신분증을 내라고 했는데 저는 그 말을 듣고 정당하고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큰일 날 소리네요. 내 신분증을 내가 보관하지 못하고 위로 내야 하다니 어디 그런 법이 있어요? 누가 당신보고 나한테 신분증을 내라고 했어요? 그 사람보고 나를 찾아오라고 해요.” 결국 신분증 제출 건은 흐지부지되었습니다.
2008년 7월 어느 날, 제가 야간근무를 하는데 아침에 일찍 출근한 노동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어젯밤에 경찰차 몇 대가 켜져서 곳곳에서 당신들 파룬궁 수련하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녔어요.” 저는 듣고 나서 웃어버렸고 순간 사부님께서 저를 크게 높여주신 것을 느꼈습니다. (아마 이 기간 제가 구세력을 부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는 몇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짐 싣기를 기다리던 운전기사들은 제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다들 차창을 열고 “파룬따파하오!”라고 외쳤습니다. 저는 이 기사들을 위해 기쁨을 느꼈고 그들은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2009년 3월과 7월, 저는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불법 감금돼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습니다. 저는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며 단호히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하에 노동수용소에서는 저를 받기 거부했습니다.
2009년 9월, 저는 몇몇 수련생과 또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습니다. 그때 저는 큰 고비를 하나 넘겼는데, 고비를 넘기는 매 분 매 초의 거대한 감당 속에서 구세력은 제게 한 가지 생각을 불어넣었습니다. ‘나중에 나가서 진상 알릴 때 다시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하지 마. 여기 갇혀 있으니 얼마나 힘들어. 딸이 대학 가려면 돈도 필요하고 주택 대출금도 내야 하고 기업 체제 개편으로 직장도 불안정하잖아.’ 저는 당시 이런 생각들을 부정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비록 사악에게 타협하지 않았고 어떤 서명도 하지 않았지만, 풀려나온 후 집에서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할 때 모두 흐리멍덩했고 사람이 하루 종일 몽롱했으며 두려운 마음이 아주 무거웠습니다. 직장에서 법공부를 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저는 대량으로 법을 외웠습니다. 한동안 조절한 후 제 머리는 맑아졌고 저도 출퇴근길에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것을 회복했습니다.
집에서 쉴 때 남편이 출근하러 나가기만 하면 저는 대량으로 법을 외우고 그런 다음에 보통 사람의 일을 했습니다. 그때의 제게 있어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은 몹시 큰 고비였고 두려운 마음이 가슴을 막았습니다. 또다시 불법 감금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특히 강했고 직장이 불안정할까 봐 걱정하는 등 온갖 복잡한 사람 마음이 나가서 사람을 구하는 것을 가로막았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대법제자인데 어떻게 두려운 마음에 갇혀 나가지 않고 사람 구하는 일을 쉴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에게 두 시간 법을 외우고 한 시간 발정념을 하도록 규정했고, 시간이 되면 주저 없이 션윈 CD 20장을 둘러메고 나가서 배포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조금씩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돌파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퇴근할 때 찐빵을 좀 사서 자전거를 타고 시내로 가 수련생들과 함께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배포했는데 왕복 80리(1리는 0.5km), 심지어 100리가 넘었습니다. 그때는 퇴근할 때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고 자전거를 타고 날아가듯 달렸으며 직장에 앉아 있을 때에야 사람은 비로소 긴장이 풀렸습니다.
나중에 우리는 진상 알리기 팀을 구성했는데 우리 팀에는 몇몇 수련생의 정념이 무척 강했습니다. 그 몇 년간 우리 팀은 자전거를 타고 주변 농촌에 닿을 수 있는 곳은 거의 죄다 진상을 알렸습니다. 한 노년 수련생은 두려운 마음이 거의 없어서 위험에 부딪혔을 때 아주 여러 번 그녀가 막아주고 우리가 몸을 피하게 해주었습니다. 나중에 몇몇 수련생이 나이가 들어 더는 멀리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없게 되자 우리 지역의 남자 수련생이 자진해서 오토바이에 우리를 태우고 더 먼 곳을 향해 진상을 알리러 갔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어서 주변 현과 시의 수많은 농촌과 도시에 우리가 진상을 알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든 뼈를 에는 찬 바람이 불든 우리는 일 년 내내 진상을 알리는 길을 걸었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오며 얼마나 많은 진상 자료를 배포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팀은 진상을 알릴 뿐만 아니라 그 몇 년 동안 수련생이 법을 실증하다 불법 감금되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우리 팀은 현지 수련생들과 협력해 공안국, 파출소, 구치소, 악인의 집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수련생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정념이 바르니 수련생 구출 성공률이 높았고 많은 수련생들이 동참하도록 이끌어 법을 실증하는 환경을 무척 잘 개척했습니다.
5. 사람 마음을 닦아 없애다
2009년, 체제 개편과 인원 감축을 거치며 우리 직장 작업조의 환경에 아주 큰 변화가 생겨 단 세 명만 출근하게 됐는데 남자 동료 두 명과 저였습니다. 그중 책임자인 남자 동료는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자기 사무실에서 나오지 않았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자기 사무실 안에서 늘어지게 자느라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두 사람은 모두 저보다 월급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정비공이어서 전화가 와 일을 하러 갈 때만 나갔고 일하러 가지 않으면 작업조에 머물렀습니다. 매일 거의 제가 전화를 받았고 제가 일하고 돌아와 전화가 울려도 그들은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전화를 제가 일하는 곳으로 연결하게 했고 저는 전화를 받고 또 혼자 계속 일했습니다. 그 무렵 매일 수리 업무는 거의 저 혼자 전부 도맡아 했고 제가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서야 그들이 가서 일했습니다.
제가 일할 때면 자주 제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주입되었습니다. ‘성실하게 일을 잘하자.’ 저는 수련인으로서 등 뒤에서 남을 험담해서는 안 되고 상급 간부에게 가서 고자질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출근해서 저는 이런 환경 속에서 힘들게,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듯이 자신의 강렬한 질투심, 억울하고 불공평하다 여기는 마음, 깐깐히 따지는 마음, 의존심, 일을 무책임하게 하며 요령을 피우는 마음, 남을 얕보는 마음, 고생을 두려워하는 마음, 과시심, 이익심 등 온갖 사람 마음을 제거했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화를 내지 않기란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 몇 년 동안 저는 매일 출근해 순찰하며 기계를 다룰 때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습니다.
우리가 수리하는 일은 일정한 위험성이 있습니다. 이 일이 위험성이 있다고 느껴질 때면 저는 자신이 대법제자이고 사부님의 보호가 있으니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며 정념으로 대했습니다. 여러 차례 큰 숨은 위험을 제가 제때 발견한 덕분에 중대한 사고를 막았습니다. 하지만 책임자는 위험 요소를 발견하면 포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제 과시심과 이익심은 제가 간부층에 가서 보고하도록 부추겼으나 저는 이 마음들을 억지로 짓누르고 저 자신의 마음을 평온하게 했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이 맞는지 틀린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움직이고 화가 나기만 하면 그것은 곧 사람의 것이며 그렇다면 마땅히 닦아내야 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습니다.
2014년 본사 계량소에서 직원을 모집했는데 저는 조용하고 신속하게 지원했고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게 환경을 바꿔 수련하도록 안배하신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금요일에 제게 통보가 왔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계량소에 출근해 보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일요일에 부장이 갑자기 제게 전화를 걸어와 계량소에 출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부장에게 가서 제가 계량소에 출근하면 파룬궁을 알릴 것이라고 넌지시 고자질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듣자마자 극도로 낙담했고 또 남편에게 전화해서 사정해보라고 했는데 남편은 부장과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또 저와 사이가 좋은 지인에게도 사정해보라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며칠간 저는 무슨 일을 해도 기운이 나지 않았고 오로지 계량소에 출근할 생각뿐이었는데 못 가게 되니 기분이 가라앉았습니다.
며칠이 지나 저는 단번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수련은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게 아닌가? 나는 왜 기분이 가라앉고 낙담하는가? 이것은 모두 사람 마음이 장난치는 게 아닌가?’ 대법제자는 어디서든 수련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고생을 두려워하는 마음, 그 책임자를 싫어하고 얕보는 마음, 원망심, 안일심, 억울해하고 불공평해하는 마음 등을 찾아냈고 저는 발정념으로 이 마음들을 제거하고 평온하게 원래의 일터에서 일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단단히 결심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환경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저는 꿋꿋이 수련해 나갈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환경이 아니라면 저는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바라지도 않습니다.’
나중에 부장의 상급자가 부장을 질책하고 계량소에 저를 대신해 갔던 사람을 돌려보냈으며 여전히 저를 계량소에 출근하게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구세력은 단념하지 않고 부장을 조종해 제게 서명하며 “일터에서 업무와 무관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보증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구세력이 제가 계량소에서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해낼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단호히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존의 말씀을 들어야 했고 계량소는 접촉하는 사람이 많아 마침 제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창구였습니다.
사부님의 보살핌하에 한 달 후 저는 결국 계량소에 출근하게 됐고 먼저 작은 계량소로 갔습니다. 작은 계량소에 화물을 실으러 오는 사장, 기사, 짐 싣는 노동자들은 모두 제게 친한 척하며 제가 계량할 때 속임수를 쓰게 하려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며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사람은 바른길을 걸어야 합니다.” 저는 또 그들에게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이치를 들려주었고, 결국 이 사람들은 모두 우리 파룬궁의 인품을 인정했으며 또 삼퇴를 했습니다. 저도 이 계량소에 계량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모두 진상을 알렸고 삼퇴를 시켰으며 진상 자료를 나눠주었습니다.
반장은 저와 겪어보며 저를 무척 신뢰했습니다. 반년 후 반장은 저를 전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계량소이기도 한 대형 계량소에 출근하게 했습니다. 반장은 그곳이 복잡하다고 했지만 저는 진선인의 법리가 저를 지도해 주기에 단순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계량하러 오는 사람들 중 현지의 큰 사장들이 많았고 그들은 기사를 고용해 자신들을 위해 현지 화물을 외지로 실어 나르며 돈을 벌었습니다. 저는 계량할 때 모든 사람을 똑같이 보고 차별 없이 대하여 진지하게 계량했고, 속임수를 쓰지 않았으며, 태도가 좋고 기사들을 위해 생각했습니다. 기사들의 자잘한 호의나 해바라기씨, 과일 등은 일절 사양하며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신앙해서 이런 물건은 안 받아요.” 계량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상황하에서는 제가 기사들에게 편의를 제공했습니다. 어느 때 기사들이 시간을 다투느라 새치기해서 반장도 감히 나서서 중재하지 못할 때 제가 나서서 중재하면 몇 마디 말로 해결됐습니다.
비록 계량소 안에는 감시카메라가 있고 계량하는 문 입구에도 감시카메라가 있었지만 제가 계량소에 온 것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계량소의 감시카메라는 제가 출근할 때 부대에서 제대한 전문 기술자가 설치한 것인데 제가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당을 탈퇴하라고 했지만 그는 탈퇴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외적인 요소에 이끌리지 않았고 기사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면 그런 것들의 존재를 잊었습니다.
계량은 차례대로 한 대씩 하는 것이라서 얼마나 많은 차량이 계량을 하든 간에 저는 우선 기사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며 진상 자료를 나눠주고 다시 계량을 했는데, 시간은 고작 2~3분뿐이었습니다. 제가 진상 자료를 배포한 것은 그들이 화물 싣기를 기다릴 때 보게 한 것인데, 피드백 온 소식을 통해 이 기사들은 대부분 파룬궁 진상을 명백히 알게 됐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외지에서 온 기사가 한 명 있었는데 제가 그에게 탈퇴를 권하고 파룬궁 진상을 알려주자 그는 중공이 좋다고 하며 탈퇴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접촉할 때도 저는 여전히 선의로 그를 대했습니다. 몇 년 후 그는 마침내 삼퇴했습니다. 진상을 듣고도 삼퇴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저는 낙담하지 않고 매번 선의로 그들을 대했습니다. 결국 선한 마음에 감화되어 이 사람들도 삼퇴했는데 젊은 사람도 있고 나이 든 사람도 있었습니다. 계량소에 오는 사람은 기사뿐만 아니라 영업사원, 기술자, 관리자 등등이 있었는데 저는 항상 때를 놓치지 않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어느 날 제 휴대폰으로 메시지 하나가 왔는데 나이 든 사람은 무슨 중대한 질병이 있다고 신고만 하면 퇴직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퇴직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강해 제가 노동수용소에서 벗어날 때 사존께서 제게 연화(演化)해 주신 심장병(가상)을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구세력의 함정에 빠진 것이었고 구세력은 줄곧 여러 방식을 통해 저를 전근시키려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직장 사무원이 제게 전화해서 저보고 다른 근무지로 가서 출근 보고를 하라고 했고, 퇴직은 성사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저를 계량소에서 전출시키려 했습니다.
저는 단번에 깨어났고 저의 경솔함과 수련을 엄숙하게 대하지 못한 것이 자초한 일이며 사존께서 저를 위해 안배하신 수련의 길을 저버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하는 동시에 발정념을 했습니다. ‘나는 오직 사부님께서 내게 안배하신 수련의 길만을 걷고 전반적으로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한다.’ 다음 날 제가 계량소에 출근하자 사무원은 또 전화해서 제게 짐을 싸서 새 근무지로 출근 보고를 하라고 했습니다. 반장도 이 일을 알게 되었고 그는 직접 부장에게 가서 사정하며 오전 내내 제가 어떠어떠하게 좋다고 말했습니다. 반장은 돌아와 제게 이 일을 말하고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전근시킬 수 있어도 당신은 안 돼요. 내 지시를 받지 않고서는 당신 아무 데도 못 가요.” 결국 사부님의 보호하에 저는 계량소에 남았습니다.
저도 퇴직하고 싶은 마음을 철저히 내려놓았습니다. 저는 계량소에서 출근하는 것이 수월해서 세 가지 일을 모두 할 수 있었습니다. 동료들이 일이 있어 근무를 바꾸고 싶어 하거나 명절 때 가족과 모이기 위해 근무를 바꾸려 할 때면 저는 쾌히 승낙해 반장의 난처함도 해결해주고 동료들도 기쁘게 해주어 저는 동료들과 무척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물론 그들은 제가 출근하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출근하면 사람들과 접촉해 진상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삼퇴를 시킨 것이 어느 때는 60여 명에 달했고 50여 부의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저는 오토바이를 타고 수련생과 협력해 먼 곳으로 가서 진상을 알리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으니 어디 가서 이런 환경을 찾겠습니까?
2019년 저는 정식으로 퇴직했는데 반장, 동료들은 모두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6. 안으로 찾으며 자신을 바꾸다
제가 파룬궁을 수련할 때 딸은 아직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처음에 딸은 제가 수련하는 것을 지지했는데, 제가 딸의 친구 집에 진상을 알리러 갔다가 그 친구는 딸의 엄마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게 되었고 그 친구는 딸이 보는 앞에서 반에서 불을 켜고 ‘천안문 분신자살’ 동작을 하며 제 딸을 비꼬고 빈정거렸으며 그 친구는 자주 그렇게 행동해 반의 일부 친구들이 제 딸을 차별하도록 부추겼습니다. 딸은 집에 돌아와 제게 눈물로 하소연했는데 저는 딸을 올바르게 이끌지 못하고 그저 그 친구 말을 믿지 말라고만 해서 딸이 저를 지지하던 것에서 나중에는 저의 수련을 반대하게까지 만들었습니다. 딸은 적대적인 눈빛으로 저를 보았고 거의 매일 악독한 언어로 저를 공격했으며 게다가 제 이름을 직접 부르며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고 제가 자기 엄마가 될 자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딸이 이렇게 저를 대하니 저는 마음이 칼에 찔리듯 아팠습니다. 제가 딸을 욕하면 딸은 저보다 더 지독하게 욕했고, 제가 때리면 딸은 제게 맞서 싸웠습니다.
딸은 어린 나이에 말을 듣지 않았고 만약 제가 어느 점이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게 하면 엄하게 질책하며 성난 표정을 지었습니다. 예를 들어 딸은 아침에 일어날 때 저보고 6시 5분에 깨워달라고 했는데, 그때가 마침 전 세계 발정념 시간이어서 제가 깨우는 것을 잊자 딸은 제가 연공할 때 쓰는 녹음기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제게 크게 화를 냈습니다. 다음 날에는 6시 8분에 깨워달라고 해서 제가 깨우자, 1분만 더 자겠다며 제게 6시 9분에 깨워달라고 했고 제가 부르자 딸은 또 1분만 더 자겠다고 했으며 결국 제가 깨우는 것을 잊자 딸은 일어난 후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나갈 때 문이 “쾅” 울리도록 세게 닫았습니다. 나중에 딸이 언제 깨워달라고 하면 저는 딸이 만족할 때까지 그대로 해주었습니다. 어떨 때 딸이 너무 심하게 말하면 아빠조차 보다 못해 “너 엄마한테 그렇게 대하면 안 돼”라고 말했습니다. 너무 괴로울 때면 저는 사부님의 법상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하소연했습니다. “사부님, 제자는 너무 힘듭니다, 너무 힘듭니다.” 하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서 한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
그 무렵 친정 식구들도 저의 수련을 반대했습니다. 어머니는 저와 인연을 끊으려 하셨으며, 언니는 제가 자기 집 문에 들어서지 못하게 했고, 올케는 사람을 시켜 제게 오지 말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시댁 식구들 역시 반대했는데, 가족 식사 모임 때면 다들 저를 냉대했고 시어머니는 저를 나무라셨으며 남편은 더욱 불난 데 부채질을 했습니다.
딸은 제 부족한 점을 엄하게 꼬집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요리를 성의 없이 하고 일을 건성으로 하며 매일 그저 빨리 집안일을 끝내고 법공부만 하려고 일을 대충대충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행동을 살피며 세 가지 일에 바쁘다는 이유로 집안일에 소홀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족함을 인식한 후 저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조금씩 고치기 시작했고 일을 할 때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저는 이런 힘든 환경 속에서 안으로 찾으며,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듯한 심정으로 집착심을 제거하는 중에 자신을 변화시켜 나갔습니다.
8개월 후, 딸은 다시 저를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제 편에 서서 대법을 수호하며 아빠의 대법에 대한 좋지 않은 관념을 반박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구류소에 불법 감금됐을 때 딸은 수련생과 협력해 석방을 요구하러 가기도 했고, 경찰에게 전화해 자기 엄마는 좋은 사람이니 풀어달라고 말했습니다.
딸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저는 자주 박해를 받았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딸과 밥을 먹다가 딸에게 아주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아빠는 네 엄마랑 이혼하고 싶다.” 딸은 듣자마자 젓가락을 탁 치며 말했습니다. “저 지금 학교 다녀요, 저한테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그러자 남편도 감히 이혼 얘기를 다시 꺼내지 못했습니다. 딸은 이로 인해 복을 받아 순조롭게 중점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대학을 가고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우리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출국하여 지금 외국에서 무척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제 수련을 이해하지 못했고 진상을 알려도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수련을 갓 시작한 첫 달에 남편은 낮밤으로 다투고 욕하고 때리며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남편은 목청이 커서 이웃들까지 편안하게 지낼 수 없을 정도로 다퉜습니다. 나중에 이웃 부부가 와서 남편에게 권했습니다. “당신 부인이 파룬궁을 배워 좋은 사람이 되려는 건 개인 신앙이고 나쁜 짓 한 것도 아니잖아요, 외국에는 파룬궁 하는 사람이 엄청 많아요.(이웃은 갓 출국했다 돌아왔음)” 그제야 남편은 다소 자제했습니다.
제가 남편 동창에게 진상을 알린 일이 남편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남편은 퇴근해서 돌아오자마자 성큼성큼 제 앞으로 달려와서 크게 다퉜고 심지어 손찌검까지 하려 했습니다. 저는 즉시 남편 배후의 사악한 요소가 남편을 조종해 제게 사납게 군다는 것을 깨닫고 남편을 응시하며 발정념을 해 남편을 조종하는 사악을 제거했습니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했고 저도 남편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수련 초기 몇 년간 제 시련은 아주 컸고 남편과는 항상 정사대전(正邪大戰)이었습니다.
제가 불법 감금됐다가 돌아온 지 불과 사흘째 되던 날, 수련생과 나가서 진상을 알리기로 약속했습니다. 남편이 출근해서 저는 진상 자료가 든 큰 가방을 들고 막 문을 열었는데 뜻밖에 남편이 마침 문에 들어서며 딱 마주쳤습니다. 남편은 제가 진상 자료를 들고 있는 것을 보자 억세게 저를 낚아채더니 침실로 끌고 가 침대에 밀치고는 커다란 진상 자료 가방을 있는 힘껏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큰소리로 고함치고 포효했습니다. 목소리 톤까지 바뀌면서 욕했고 저와 이혼하겠다며 파출소에 전화해 저를 잡아넣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 부딪혀 저는 즉시 냉정해졌고 남편 배후의 사악이 남편을 조종해 벌인 짓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즉각 발정념을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한다. 내가 하는 일은 가장 바른 일이며 구세력은 교란할 자격이 없다.’ 저는 사부님께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청했고 끊임없이 발정념을 했습니다. 약 10분쯤 뒤 전화 한 통이 와서 남편을 불러냈고 저녁에 남편은 돌아와 낮에 일어난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이런 가정 난은 늘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어느 날, 저는 자신이 신의 길을 걷고 있는 대법제자이므로 남편에게 맞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아주 진지하게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 아내예요, 당신은 사람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다신 날 때리면 안 돼요.” 남편이 발로 한 대 걷어찼지만 저는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습니다. “사람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그 후 남편이 저를 때리는 횟수는 크게 줄어들었고 끝내 사라졌습니다.
2013년 남편은 반장에서 일반 직원이 되어 저와 같은 조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그 무렵 인원 분산이 무척 심해서 부부가 아직 본사에서 출근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부장이 제게 통보하기를 저를 우리 회사에서 제일 더럽고 제일 힘든 곳으로 보내 교대근무를 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듣자마자 제게 사직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나는 사부님께서 내게 안배하신 수련의 길을 걸으니 함부로 사직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점심때 남편이 잔뜩 신이 나서 퇴근해 돌아와서는 연해 도시에서 전화가 와 지원해 보라고 했다며(예전에도 한 번 전화 온 적 있음), 흥분해서 그날 밤차를 타고 바로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면접을 본 매니저는 “우린 바로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하늘에서 떡이 떨어진 격이어서 우리집이 마침 힘들 때 복이 하늘에서 내려왔고, 게다가 월급도 전 직장보다 두 배나 뛰었으며 노동 강도도 세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모두 사부님의 은사임을 알았습니다.
남편은 떠나기 전 제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내가 늘 당신 통제하려고 했는데 도통 통제가 안 되네. 내가 이제 가니까 당신 통제할 사람도 없고 당신 앞으로 맘대로 다 쑤시고 다녀도 되겠어.” 저는 듣고 미소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원래 날 통제해선 안 되는 거예요.’ 대법제자에게는 사부님의 보호가 있고 대법의 지도가 있는데 어떻게 마의 교란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현재 저와 남편은 새로운 환경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제가 세 가지 일을 해도 남편은 참견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저는 많지 않은 시간 동안 사부님께서 연장해주신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하루빨리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28/50759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8/28/507590.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