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시 자신의 사상 반응에 주의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정진이란, 그것은 바로 그가 시시각각 자신의 언행에 주의할 수 있고, 자신의 사상반응에 주의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할 수 있고, 늘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인데, 이렇게 하고 있다면 곧 개인수련 중에서 비교적 정진하는 것이다.”(각지 설법7-미국수도법회 설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시시각각 자신의 언행에 주의하고 자신의 사상 반응에 주의하며 수련을 진정으로 실천할 수 있을까?

한번은 큰 장터에서 한 노인을 만나 진상 잡지 한 부를 그의 자전거 바구니에 넣으며 집에 가서 보라고 했다. 뜻밖에도 노인은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잡지를 집어 들고 넘겨보기 시작했다. 원래 그에게 진상을 더 자세히 설명하려 했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처음에는 아주 잘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안전을 책임지는 행동이라 여겼다. 그리고 속으로 ‘사부님께서도 거듭 안전에 주의하라고 강조하시지 않았는가!’라고 생각했다. 내 행동이 대법에 완전히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생각해보니 올바르지 않은 행위에 대한 핑계를 찾는 것이었다! 왜 떠났을까? 결국은 두려웠기 때문이다! 붙잡힐까 봐 두렵고 신고당할까 봐 두려우며 감옥에 갈까 봐 두려운 등 수많은 집착심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고 원만할 수 있겠는가? 답은 불 보듯 뻔하다.

왜 두려워했을까? 나는 스스로를 사부님께서 주관하시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는가? 사부님 외에는 아무도 나를 관할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여전히 두려워했을까?

깊이 반성한 끝에 두려움의 근본 원인이 사상 깊은 곳에 뿌리박힌 올바르지 않은 관념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중공 악당이 파룬궁을 관할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진상을 알리러 가기만 하면 그것의 관리를 받고 그것에게 붙잡히며 박해를 받는다고 여겼다. 만약 그것이 나와 무관하고 나를 관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그래도 두려워했을까?

근본 원인은 사상 관념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반성을 통해 내 부족함을 찾았다. 부족함을 알았으니 마땅히 거센 물결을 헤치며 용감하게 나아가야 했다.

얼마 전 진상을 알리러 큰 장터에 막 도착했을 때 경찰차가 질주해 오는 것을 보고 마음이 또 불안해졌다. ‘떠나야 할까 아니면 계속 진상을 알려야 할까? 만약 들켜서 붙잡히면 어떡하지?’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대법제자다! 사부님께서 주관하시는데 그것이 애초에 대법제자를 관할할 수 없거늘 무얼 두려워하는가? 이건 나에 대한 시험이 아닌가? 사부님 말씀만 들을 수 있는지 시험하고 어떠한 공포에 직면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지 시험하며 진정으로 사부님을 믿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이다.’ 문득 웃음이 났다! 그들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태연하게 장터로 들어가 계속 진상을 알렸다. 경찰 두 명이 장터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떠나는 것이 보였다. 알고 보니 그들은 정말 나와 무관했다! 그 이후로는 다시 경찰이나 경찰차를 만나도 두렵지 않았고 머릿속에 즉시 반응이 왔다. ‘그들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나는 대법제자이므로 오직 사부님께서 관할하신다.’

물론 수련은 순조롭기만 한 것만은 아니어서 늘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법을 기준으로 삼아 시시각각 부족함을 찾으며 올바르지 않은 사상 관념을 바로잡기만 한다면 반드시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수련에 대한 작은 깨달음이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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