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풍죽(豊竹)
[명혜망] 저는 어릴 때부터 별일이 없을 때면 기공을 연마하곤 했으며 줄곧 이런 취미가 있었습니다. 1996년 상반기 어느 날 저는 신화서점에 기공 서적을 사러 갔습니다. 판매원은 제게 ‘전법륜(轉法輪)’을 추천하며 이 책이 꽤 괜찮다고 했습니다. 저는 펼쳐서 보고 아주 좋다고 느껴 두말하지 않고 바로 사서 돌아왔습니다.
1. 대법을 배우며 인생의 미혹을 걷어내다
저는 처음으로 ‘전법륜’을 다 읽었을 때 인생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수많은 문제를 단번에 깨달았습니다. 제 세계관 전체가 바뀌었고 더는 예전처럼 흐리멍덩하게 살아서는 안 되며 적어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법륜’을 읽는 과정에서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나 의문이 생기면 뒷부분을 읽는 가운데 해답을 얻게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른 의문이 생기면 책에서 또 해답을 주었습니다. 저는 당시 ‘이 책은 정말 너무 신기하다. 어떻게 내 마음속 생각을 알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때로는 제 마음속 의문이 한 단계 한 단계 깊어졌는데, 책에서 제 내면의 의문에 주는 해답 역시 한 단계 한 단계 깊어졌습니다.
예전에 제가 읽었던 많은 책에는 ‘천목’, ‘숙명통’, ‘현관설위’ 등 많은 신기한 현상이 언급돼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기공사가 말하지 못했고 명확하게 설명하지도 못했습니다. 오직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만 ‘전법륜’에서 이 모든 현상을 아주 분명하고 명백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이것은 만고에 만나기 어려운 기회입니다! 제가 이번 생에 대법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더없이 큰 행운입니다!
2. 수련하며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하다
어느 날 삼촌이 저를 만나더니 어디 어디에서 파룬궁(法輪功)을 가르치고 있으니 배우고 싶으면 가서 연마해보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저는 우리집 근처 연공장을 찾아 수련생과 함께 파룬궁을 배우고 연마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연공장에 가서 연공했습니다. 당시 매일 아침 모두 함께 연공했고 저녁에는 함께 법공부하며 교류했습니다.
그때 저는 매일 새벽 4시경 일어나 5시에 연공장에 도착해 연공했습니다. 당시 가부좌를 1시간 하고 포륜을 45분 동안 했는데 다리와 손이 매우 아팠지만 모두 함께 연공하는데 혼자 내리기가 민망해 매일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텼습니다. 연공을 마치고 자세를 풀면 정말 온몸이 가벼워 걸을 때 둥실둥실 뜨는 듯했습니다. 예전에 저는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겨울에는 밤새 이불 속이 따뜻해지지 않아 늘 서늘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눕기만 하면 잠이 들었고 겨울에도 자고 일어나면 이불 속이 따끈따끈했으며 정신도 충만했습니다. 저의 비염, 편도선염, 두통도 아주 빠르게 나았습니다.
예전의 제게는 좋지 않은 사상이 아주 많았습니다. 쟁투심, 원망심, 색욕심이 있었고 심지어 매우 무서운 극단적인 보복 심리까지 있었습니다. 법공부를 한 이후 이런 좋지 않은 생각들은 마치 법의 힘에 단단히 억제된 것처럼 점차 사라지거나 옅어졌습니다. 대법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이후 저는 진심으로 어디서든 최대한 잘하려 했고 매일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연공과 법공부를 꾸준히 견지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심성 고비를 넘길 수 있었지만 때로는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심성을 지키지 못해 몹시 후회했고 다음에는 꼭 더 잘하려 노력했습니다. 그 시절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기쁜 마음으로 대법 이야기를 해주었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대법서적을 가져다주어 읽게 했습니다.
한번은 직장의 한 여자 동료가 제 대법서적을 빌려 갔습니다. 다음 날 그녀가 출근했을 때 기뻐하며 제게 말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책을 베개 옆에 두었는데 귀에 선명하게 선풍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다다다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하지만 제 방에는 선풍기를 전혀 켜지 않았거든요.” 그녀가 제게 이야기할 때 표정에는 기쁨과 놀라움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파룬(法輪)이 회전하는 소리예요. 당신은 인연이 참 깊네요!” 그러자 그녀는 제게 연공 동작을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몇몇 주변 사람들도 이를 계기로 대법 수련에 들어왔습니다.
그 시절 저는 매일 수련 속에서 단체 법공부 환경도 있어 하루하루를 매우 충실하게 보냈습니다.
3. 사악한 박해 속에서 굳건히 대법을 수호하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체 법공부를 할 때 모두 다시 중점적으로 ‘뿌리를 캐다’, ‘대폭로(大曝光)’ 등 경문을 공부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제자는 말하기를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머리가 떨어져도 몸은 여전히 가부좌를 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정진요지-대폭로(大曝光)] 이 말씀은 마치 제 머릿속에 깊이 새겨진 듯했습니다.
당시 저는 박해 앞에서 첫째, 절대로 중공에 대법서적을 넘겨주어서는 안 되고 둘째, 절대로 그들에게 자신이 ‘더는 연마하지 않겠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셋째, 어떤 구실로도 수련생을 팔아넘겨서는 안 된다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또 제 인식을 수련생들과 교류했습니다.
저는 수련생들과 함께 성도(省都)에 청원하러 가서 대법을 위해 공정한 대우를 요구했습니다. 성도에서 돌아온 이후 직장 공청단 지부 사람들이 저를 회의에 부르더니 더는 연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라고 했습니다. 회의에서 저는 제 몸에 일어난 변화와 도덕적 승화, 그리고 직장에서 여러 방면으로 보여준 좋은 모습을 통해 대법을 실증했습니다. 현지 파출소에서 저를 불러 연공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했지만 저는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저는 구류소로 납치돼 15일간 불법 감금됐습니다.
나온 이후 저는 베이징에서 돌아온 현지 수련생 한 명을 만났습니다. 그는 많은 대법제자가 생사를 내려놓고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정말 눈물겹고 감동적이어서 저는 깊이 감동했습니다. 당시 수련생은 대법제자들이 작성한 대법을 실증하는 자료를 많이 가져왔습니다. 그때 저도 두렵지 않아 한 복사점을 찾아 이 자료들을 복사해 다른 수련생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저 역시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모두 잘 정리하고 집과 직장에 각각 편지 한 통씩을 남긴 뒤 10월경 다른 수련생 한 명과 함께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는 길에 올랐습니다. 그 후 여러 해 동안 숱한 비바람을 겪으며 오늘까지 걸어왔습니다. 불법적으로 강제노동을 당한 적도 있고 억울하게 징역형을 선고받은 적도 있습니다. 구치소든, 노동수용소든, 다른 곳이든 어디에 있든지 저는 최대한 연공을 견지했고 머릿속으로 가능한 한 법을 외웠으며 외울 수 있는 만큼 외웠습니다.
어디를 가든 저는 먼저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렇게 사람들과 친숙해지고 사람들이 진상을 알게 되면 환경도 서서히 조화로워졌습니다. 정말 검은 소굴 안에서 연공하려면 생사를 내려놓고 모든 것을 각오할 용기가 필요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며 줄곧 견지해야 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부님의 보호가 있었기에 저는 한 걸음 한 걸음 무사히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아주 중요한 체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중대한 시련 앞이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대법을 향한 진실한 마음을 지니고 생사를 내려놓으며 대법을 수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그 고비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감옥 안의 사악한 ‘전향기지’에서는 감옥 전체 대법제자들을 상대로 강제 ‘전향’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감옥 전체에는 하늘을 뒤덮을 만큼 대법을 모독하는 표어가 가득했습니다. 그 기간에 들려오는 것은 온통 수련생들이 사악에게 미친 듯이 박해받고 있다는 소식뿐이었습니다.
우리 감방 구역의 한 수련생은 이미 ‘전향기지’에 갇혀 두 손이 벌려진 채 수갑이 채워진 상태로 며칠 밤낮을 서 있었고 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그 수련생은 매우 굳건해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시 머릿속으로 은연중 큰 압박을 느꼈지만 마음속으로 ‘죽더라도 대법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대법을 위해서라면 정말 목숨을 잃는다 해도 아깝지 않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구역 감옥경찰 대장이 저희를 작업장으로 데려가 일을 시킬 때였습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다가 저는 복도에 붙어 있던 대법 모독 표어를 그대로 뜯어냈습니다. 저는 그 경찰에게 진상을 알린 적이 있었는데, 그는 “당신이 뜯어낸 그 표어를 가지고 가서 버리세요”라고 했습니다. 작업장에 도착한 이후 저는 또 작업장 입구에 붙어 있던 표어를 뜯어냈지만 아무도 저를 찾지 않았습니다. 저녁에 감방 구역으로 돌아온 이후 저는 칠판에 적힌 대법 모독 글도 지워버렸습니다.
이후 칠판 글을 쓰던 수감자가 이 일을 상부에 보고했고 ‘전향기지’ 사람들은 저를 독방에 가뒀습니다. 그곳에서는 식사로 끼니마다 아주 작은 찐빵 하나만 주었습니다. 어느 날 노동개조국의 한 처장이 감옥에 왔고 사오(邪悟)한 ‘유다(배신자)’ 몇 명도 저를 ‘전향’시키러 왔습니다. 하지만 대법을 향한 제 마음은 반석처럼 굳건했습니다.
며칠 뒤 그 처장이 저를 찾아와 아주 온화한 태도로 말했습니다. “당신이 전향하지 않고 대법이 좋다고 하니, 그렇다면 대법이 어떻게 좋은지 한번 써보시오.” 저는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날 저녁 그들은 저를 기지 안의 한 방으로 데려가 종이와 펜을 주며 쓰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 상황과 결부해 대법이 사람을 건강하게 하고 선을 지향하도록 가르친다는 등의 내용을 썼습니다. 그것을 건네주자 저를 독방으로 돌려보내 쉬게 했습니다. 10여 일이 지난 후 저는 독방에서 감방 구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중대한 시련 앞에서는 바로 생사를 내려놓고 대법을 굳게 믿으며 사부님의 가지(加持)를 청해야만 그 고비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4. 생명의 위험에 부딪혔을 때 사부님께서 여러 차례 보호해주시다
한번은 제가 일하는 가게 입구 복도 천장에서 전선 한 가닥이 늘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사장에게 “전선에 전기가 흐르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사장은 “전기 안 통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철제 사다리를 가져와 올라가서 전선을 위로 걷어 올리려 했습니다. 전선 끝을 만지는 순간 제 오른손 바닥이 갑자기 강하게 저릿했습니다. 저는 서둘러 사다리에서 내려와 검전기를 찾아 측정해 보았습니다. 검전기에 즉시 불이 들어왔습니다. 놀랍게도 전선에는 전기가 흐르고 있었고 전압은 무려 220볼트였습니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한번은 제가 가게 입구에서 한 손님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 손님은 플라스틱 샌들을 신고 있었는데 발에 무언가 닿은 듯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고개를 숙여 보니 그녀는 전선 끝을 밟고 있었습니다. 저는 서둘러 검전기를 가져와 측정해보았고 전선에는 전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전선 끝은 바로 옆 철제 난간 가까이에 있었는데 일단 난간에 닿기라도 하면 철제 난간 전체에 전기가 흐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희는 때때로 가게 앞 철제 난간에 물건을 널어 말리곤 했습니다. 만약 제때 발견하지 못했다면 정말 너무나 위험했을 것입니다.
또 한번은 제가 가게에서 잠을 자며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갑자기 유선전화가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자 여자 사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빨리 일어나서 좀 봐요. 우리 가게 옆에 불난 거 아니에요?” 저는 셔터를 열고 밖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큰일이었습니다. 우리집 북쪽으로 10여 미터 떨어진 이발소에서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습니다. 불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우리 가게 쪽으로 번져왔습니다. 그때 누군가 “여기 안에 사람이 있어요. 빨리 나오세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황급히 안으로 돌아가 대법서적을 챙기고 셔터를 내린 뒤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정말 일촉즉발의 위기였습니다.
나중에 사장에게 들으니, 야시장에서 장사하는 지인이 가장 먼저 불이 난 것을 보고 곧바로 사장에게 전화했고 사장도 즉시 제게 전화했다고 합니다. 저는 밖으로 나온 이후 사부님께 저희 가게가 무사하도록 보호해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사장도 대법 진상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저희 가게는 무사했지만 셔터는 불에 그슬려 변형되는 바람에 열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제때 나오지 못해 안에 갇히기라도 했다면 거센 불길과 자욱한 연기 속에서 정말 매우 위험했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압니다. 이 여러 해 동안 모두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주셨습니다.
5. 시간이 긴박하니 서둘러 중생을 구하다
이 수년간 정법 수련을 하면서 제게는 버리기 힘든 완고한 집착심이 있었고 불필요하게 굽은 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신이 확고하게 법공부를 하고 그 무엇도 가로막을 수 없는 결심을 지니며 설령 생사 앞에서도 대법을 향한 마음이 반석처럼 굳건하다면 많은 일을 갈수록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오늘에 이르러 자신을 잘 수련하고 중생을 구하며 자신의 신성한 사명을 완수하기에는 시간이 더욱 부족하고 긴박해졌습니다. 저는 가능한 모든 기회를 이용해 사람들과 접촉하고 기회를 찾아 진상을 알립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이 청첩장을 보내면 반드시 참석했지만 장례가 있어 조문하러 가야 할 때는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후 장례가 있을 때도 최대한 참석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과 접촉해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저는 분명히 느꼈습니다. 그 기간 법공부와 연공 상태가 좋지 않으면 진상을 알리는 효과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머릿속 장애와 저항도 컸습니다. 만약 법공부와 연공 상태가 좋으면 진상 알리는 효과도 좋았으며, 다른 사람에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며 친근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고 말할 때도 지혜가 넘쳤습니다.
가게 사장도 저를 이해해 진상 알리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주 화제를 찾아 손님에게 말을 걸었고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대법 진상을 알렸습니다. 이외에도 저는 일을 마친 뒤 때로는 밤 1~2시가 지나 밖으로 나가 진상 소책자를 배포했습니다. 먼저 발정념해 그곳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했고 출발 전 사부님께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가지해주시길 청했습니다.
어느 날 밤, 제가 밖에 나가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데 커다란 검은 개 한 마리가 제 스쿠터 옆을 따라왔습니다. 물지도 짖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천천히 10여 미터 앞의 어느 대문 앞에 이르자, 검은 개는 대문으로 달려가 앉아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즐거워하며 ‘알고 보니 이 검은 개가 자기 집 주인에게도 진상 자료 한 부를 전해달라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서둘러 사람을 구하고 사전(史前)의 서약을 완수하며 사부님을 따라 천국 고향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10/51182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8/10/511826.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