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면서 매일 많은 일을 마주칠 수 있는데, 어떤 것은 영향이 좀 크고 어떤 것은 좀 작다. 하지만 마음이 움직였다면 그것은 작은 일이 아닐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요구에 따라 수련한다면 심성(心性)을 제고할 수 있어 일거사득(一擧四得)이 될 것이다. 반대로 속인과 같다면 제고할 수 없다.
어느 날, 나는 마음을 움직이는 세 가지 일을 겪었다. 모두 평범하고 작은 일이었지만, 그 이면에 수련해야 할 것은 매우 컸다.
아침에 출근할 때 사무실 건물과 좀 가까운 곳에 차를 세웠다. 경비 주임이 그것을 보고 나에게 “상사가 여기에 차를 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라며 어디에 주차해야 하는지 알려줬다. 당시 속으로 조금 언짢아져서 ‘다른 사람도 여기에 세우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지? 저 사람 참 참견도 많아’라고 생각했다. 사실 마음이 움직인 것이었다.
수련인으로서 나는 갑자기 일어난 이 일이 우연이 아님을 금방 깨달았다.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생각들은 모두 밖을 보며 다른 사람의 문제를 찾는 속인의 생각이었다. 그 생각대로 흘러간다면 속인과 똑같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것이고, 자칫하면 갈등이 생길 수도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으로 찾으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어떤 수련생은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왜 찾지 못하는가? 예를 들어 이 일로 마음이 움직였고 속으로 언짢아졌으니 찾아보자.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언짢았을까? 집착심은 어디에 있을까?’ 만약 ‘다 남이 나한테 뭐라고 했기 때문 아닌가? 그가 말단 관리랍시고 저러니까’ 등으로 대답하며 이런 식으로 찾는다면 영원히 찾을 수 없다. 왜일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은 모두 남을 찾고 남을 탓하는 것이지, 전혀 자신을 찾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바로 대답할 때 한 글자를 고쳐서 ‘남’ 때문을 ‘나’로, 즉 ‘나 때문에’로 바꾸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내가 차를 가까이 세우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이 나에 대해 말하는 걸 듣기 싫어하기 때문에’ 등이다. 만약 아직 찾지 못했다면 그에 따라 계속 아래로 물어본다. ‘왜 편한 것을 찾는가? 왜 남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기 싫어하는가?’ 여기에 세우면 덜 걸을 수 있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어쨌든 자신에게 이롭기 때문이며, 내 체면이 손상되고 깎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대답하면 이기적인 사심과 명예욕이 찾아진 것이 아닌가?
이러한 관념이나 집착심이 작용해 내 마음을 불평하게 만들었을 수 있음을 인식하고, 대법의 요구에 따라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을 내려놓을 때 마음이 즉시 평온해지고 나아가 남에게 감사하는 마음마저 생기지 않겠는가? 이렇게 되면 이 문제에서 내 심성은 이미 제고된 것이 아니겠는가? 이기적인 마음은 작은 집착심이 아니다. 쟁투심, 과시심, 질투심 등이 모두 그것과 관련이 있으며, 오랜 시간 수련을 거쳐야만 제거할 수 있다.
또 다른 일이 있었다. 우리 사무실은 세 사람이 한곳에 있는데, 그날 맞은편 동료가 내가 조용히 책을 보려 할 때 컴퓨터 영상 소리를 아주 크게 틀었다. 대놓고 말하기는 좀 뭣했지만 속으로는 또 언짢아져서 생각했다. ‘왜 알아서 소리를 좀 줄이지 못할까? 같은 사무실에 있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지.’ 하지만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이 문제를 다시 보았을 때는 달랐다.
수련인이 마주치는 일은 모두 우연이 아니기에, 시끄러운 소리의 교란을 겪을 때 밖으로 남의 원인을 찾지 말고 안으로 자신을 보아야 한다. 나는 왜 언짢아졌을까? 조용한 환경에서 책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 깊이 물어본다. 왜 책을 보고 싶었는가? 책을 통해 얻는 것이 있고 자신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짢았던 진짜 이유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인데, 이 역시 이기적인 마음이 아닌가? 어떤 사람은 선의로 동료에게 주의를 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수련인이 겪는 일은 심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지, 문제만 해결하고 자신을 수련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세 번째 일은 내가 동료와 탁구 연습을 할 때였다. 내가 서브를 넣고 그가 커트로 넘기면, 내가 하회전 공을 드라이브로 치기로 했다. 그런데 동료가 커트하는 공이 자꾸 제자리에 오지 않고 좌우로 빠져서 내가 드라이브를 걸기 힘들었다. 그래서 동료에게 공을 좀 더 정확하게 커트해 달라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정확하지 않으면 자네가 먼저 커트로 넘기고, 내가 다시 커트로 넘길게. 정확하게 올 때 그때 드라이브를 걸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뜨끔했다. 그렇다. 왜 문제에 부딪히면 내 첫 일념은 늘 속인처럼 먼저 밖으로 찾고, 수련인처럼 반대로 먼저 자신의 원인을 찾지 못하는 걸까?
사실 이 세 가지 일은 모두 공통된 문제를 반영한다. 내가 속인처럼 밖으로 찾는다면 바로 속인이니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수련인처럼 대법의 요구에 따라 안으로 찾아야만 집착을 발견하고 집착을 제거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수련이고 진정으로 자신을 제고할 수 있다. 우리는 속인 사회에서 속인의 각종 관념과 각종 집착에 둘러싸여 있으며 많은 것이 습관으로 굳어졌다. 문제에 부딪히면 먼저 밖으로 찾거나, 늘 자기가 옳다고 먼저 말하려는 것처럼 모두 습관이 돼버렸다. 이러한 습관은 많은 관념과 많은 집착을 덮어 감추고 보호해서 쉽게 발견되지 않게 한다. 만약 이렇게 밖으로 찾는 습관을 바꾸지 않는다면 수련하려 해도 제고하기가 매우 어렵다.
수련 중에 문제에 부딪히면, 밖을 보고 밖으로 찾는 것을 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보고 자신을 찾는 것으로 바꿔야겠다. 내 마음이 불편하거나 언짢거나 마음이 움직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겠다. ‘나는 왜 언짢은가?’ ‘나는 왜 마음이 움직였는가?’ 대답해 보면 그 집착과 그 관념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이렇게 끊임없이 그것을 제거해 나가면 결국 한 걸음 한 걸음 수련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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