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찾으며 협조인 역할을 잘해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9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사악한 박해가 광적으로 몰아치던 시절, 기존 협조인들은 여러 수준의 박해와 교란을 겪었습니다. 저는 대법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느새 협조인이 됐고, 27년을 하루같이 협조 업무를 맡아왔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속에서 늘 안으로 찾으려 노력했고, 마음속에는 항상 타인의 장점을 담아두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 눈에 아무리 부족해 보이는 수련생일지라도 제 눈에는 모두 반짝이는 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높은 기준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끊임없이 층차를 높여야만 법의 기준, 나아가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박해받는 환경에서 협조인으로 일하다 보면 심성을 높일 기회가 매우 많습니다. 박해받는 수련생 구출, 누군가 겪는 병업 고비, 심성 관을 넘지 못하는 상황, 혹은 기술적인 문제 해결 등 심성을 시험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때로는 사악의 압력을 견뎌야 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며, 때로는 수련생들로부터 협조인이 법 위에 있지 않다거나 심지어 공금을 유용했다는 비난을 듣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느끼는 고락과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법에 자신을 비춰보며 뿌리 깊은 원망심, 불평하는 질투심, 체면, 쟁투심, 그리고 자신이 옳은 일을 했음에도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 마음을 닦아냈습니다. 이는 모두 자아에 집착하는 표현들입니다. 또한 알아차리기 힘든 수련생 사이의 정에서도 벗어나 그 속에 빠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가끔 심성을 잘 지키지 못해 마음 깊은 곳에서 안으로 찾지 못하고, 수천 년간 뼛속까지 굳어진 사람의 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나중에 몹시 후회하곤 했습니다. 사실 갈등이 나타나는 것은 모두 제고의 기회입니다. 나쁜 일을 좋은 일로 여기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사람 마음을 버려 해당 층차의 법이 요구하는 기준에 도달한다면, 수련의 길은 점점 더 넓어질 것입니다.

정법 수련 과정에서 구세력은 모든 대법제자에게 정교한 안배를 해두었습니다. 구세력이 안배한 길은 파괴적인 소위 ‘시험’을 통해 대법제자가 자신들의 기준에 도달하는지 보려는 시금석입니다. 모래라면 휩쓸려 갈 것이고, 금이라면 단련을 통해 광채를 내뿜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갈등에는 우리가 제고해야 할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송나라 문인 소동파(蘇東坡)는 승려 불인(佛印)과 자주 도를 논했습니다. 어느 날 소동파는 자신의 수양이 크게 진보했다고 느껴 즉흥적으로 시 한 수를 지었습니다. “천중천(天中天)에 머리 숙여 절하니, 상서로운 빛이 온 세상 비추네. 여덟 가지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금련 위에 단정히 앉았도다.” 그는 동자를 시켜 강 건너 불인 선사에게 이 시를 보냈습니다. 불인은 시를 읽은 뒤 두 글자만 적어 돌려보냈습니다. 기대에 부풀어 종이를 펼친 소동파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방귀’라는 두 글자였습니다. 화가 난 소동파는 즉시 강을 건너 불인을 찾아가 따지려 했습니다. 하지만 절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문 앞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습니다. ‘여덟 가지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더니, 방귀 한 번에 강을 건너왔구려.’ 소동파는 그제야 크게 깨닫고 부끄러워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심성 관을 넘지 못할 때마다 저는 즉시 ‘내가 사람 마음을 움직였구나’라고 알아차립니다. 이는 제 수련이 견실하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마음이 흔들리겠습니까? 설령 제 방식이 중생 구도에 큰 효과가 있더라도 타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화를 내거나 마음을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만 정법 수련 속에서 착실히 제고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제 마음에는 오직 대법만이 있습니다. 법을 수호하고 중생 구도에 유익하다면 수련생이 저를 어떻게 대하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수련생들이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며 거절하고 뒤에서 험담할지라도, 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소통하려 노력합니다. 구세력의 계략에 빠져 수련생과 간격이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교류와 토론을 통해 오해는 사라지고 심성의 포용력은 더욱 넓어집니다. 수련생의 잘못이 보이면 선의로 소통하되,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집착하지 않고 법의 기준에 따라 제 심성만 잘 지키면 됩니다. 수련이란 모든 일을 제 생각대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갈등에서 벗어나는 관건은 구세력이 안배한 음모를 간파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부족함 뒤에도 구세력의 요소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를 명확히 인식하면 수련생의 부족함에 이끌리지 않고 그들의 잘못만 보지 않게 되며, 구세력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사람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협조인으로서는 더욱 인내심과 포용심을 갖고 타인의 다양한 제안을 수용하며, 올바른 방안을 마련해 수련생들과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또한 개인 수련을 중시해 사람 마음을 버리고 각종 관념을 고집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을 끊임없이 승화시키고 수련생들을 잘 협조해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전체적인 제고와 승화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27년의 비바람 속 여정에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깊이 배어 있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에 감사합니다! 또한 제가 협조 일을 할 수 있도록 묵묵히 지지하고 협력해준 수련생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우리 함께 정진해 사전(史前)의 큰 소원을 이행하고 더 많은 중생을 구하며 함께 천국으로 돌아갑시다.

이상은 개인적인 깨달음이며,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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