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억울한 옥살이를 마친 한 수련생이 우리 시에서 차를 갈아타기 위해 하루 머물게 됐는데, 우리집 근처 가게에 묵게 됐다. 그녀들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다는 이유로 중국공산당(중공) 감옥에서 박해받을 때 알게 된 사이였다.
수련생은 우리가 감옥으로 발정념을 하러 간다는 말을 듣고 “감옥에 가서 아무개라는 사람이 있는지 좀 알아봐 주십시오. 30대인데 7~8년 동안 돌보는 사람도, 묻는 사람도 없어 생사조차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지역의 협조인이었습니다”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남편과 감옥에 가서 발정념을 하고, 겸사겸사 면회실 창구에 가서 “여기에 아무개라는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한 여경이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더니 “그 사람 파룬궁 수련생이죠?”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벌써 8~9년이나 됐는데 돌보는 사람도, 묻는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몇 년형을 선고받았습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11년입니다. 내일이 면회일이니 가족이 와서 면회하십시오”라고 답했다.
돌아와서 저녁에 법공부 팀에서 이 일을 이야기했다. 마지막에 내가 “내일 면회하러 가라고 합니다”라고 했으나 아무도 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협조인에게 “우리 둘이 같이 갈까요?”라고 물었지만 그녀는 응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상의한 끝에 우리 노부부가 가기로 결정했다. 남편은 나보다 정념이 강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온갖 잡념과 부정적인 생각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생각할수록 어렵게만 느껴졌다.
나는 생각했다. ‘이번에 가는 곳은 환경이 다르다. 마주해야 할 대상이 감옥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경찰인데, 자칫 잘못해 허점을 보이면 앞문에서 뒷문으로 바로 이송되는 게 아닐까.’ 1999년 9월, 나와 시의 한 협조인은 1차로 구치소에 납치된 적이 있었다. 당시 시장, 공안국장, 정법위 서기,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직원들이 우리를 밤새 불법 심문한 뒤 구치소로 보냈었다.
또한 감옥 면회에는 신분증이 필요한데 컴퓨터에 넣으면 바로 조회된다. 게다가 그 수련생은 우리가 본 적도 없고 상황도 모르며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몰라 무엇을 물어도 대답할 수 없는데 어찌해야 할까? 생각할수록 복잡해져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일어나 발정념을 하며 사부님께 제자를 가지(加持)해 주시어 부정적인 사고를 없애달라고 청했다.
사부님의 도움 속에서 나에게는 정념이 생겼다. 나는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며 낮은 층차의 이치에 통제되지 않는다. 나는 사부님의 정법을 돕고 사명을 완수하러 온 대법제자이며, 이것은 구호가 아니라 실천해야만 이 신성한 칭호에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정념이 강해지자 자비심이 나왔다. 감옥에 있는 수련생이 8년 동안 보살피는 이 하나 없이 온갖 고문을 당했을 것을 생각했다. 8년간 돈 한 푼 없이 옷과 신발도 갈아입지 못했을 것이니 아마 생명이 위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수련생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부탁받았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1999년 ‘7·20’ 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할 때, 감옥에 있는 이 수련생은 수련을 포기하지 않아 경찰이 잡으러 오자 깊은 산속으로 도망쳤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산속에서 춥고 배고픈 상태로 초가집 하나를 발견하고 달려갔으나 문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방 안에는 양을 치는 노인이 있었는데 문밖의 소리를 듣고 나와 그를 방으로 끌어들여 살려냈다. 수련생의 뒤꿈치는 이미 동상에 걸려 손상된 상태였다.
날이 밝자 노인은 경찰이 이곳을 찾아낼까 봐 큰길로 나가 차를 한 대 세워 수련생을 시내로 보냈고 시내 수련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수련생은 나중에 자료점에서 붙잡혔고 그 후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됐다. 얼마나 훌륭한 수련생인가! 이토록 신념을 굳건히 지킨 확고한 대법제자였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그를 꼭 면회하러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친척 관계로 면회해 옷과 먹을 것, 일용품을 전달하고 꿋꿋하게 버텨 하루빨리 마굴에서 나오라고 격려해주고 싶었다. 이때 나는 감옥경찰과 나의 관계가 박해자와 피박해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도 천상에서 법을 얻으러 왔으나 인간 세상에 미혹돼 중공 악당에게 이용당해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데 가담한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대법제자에게는 적이 없으며 이곳의 중생들도 모두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환경에서는 반드시 이지와 지혜로 수련생을 구해야 한다. 나는 사부님께 제자의 신의 면을 가지해 주시고 사부님께서 부여하신 신통을 발휘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감옥 안 모든 중생의 주원신(主元神) 중 선한 면을 일깨우고 악한 면을 억제하여,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감옥 내 모든 생명의 미세한 부분까지 주입해 달라고 빌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2-사도은) 나는 온몸이 에너지에 둘러싸인 것을 느꼈고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안배해 주셨으며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침에 출발하며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자들이 협력하여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감옥 수련생 면회 길에 오릅니다.” 우리는 가는 내내 발정념을 했다. 이 길이 비록 험난하고 위험할지라도 우리와 마주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며, 우리의 사명을 이행해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차에서 내린 후 우리는 감옥경찰이 어떤 친척 관계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했다. 친척이 아니면 면회를 시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남편에게 “나를 형수라고 하세요”라고 했으나 남편은 “안 돼요. 그집 상황을 모르는데 형이 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우리 나이가 일흔이 넘었으니 아마 부모님보다 나이가 더 많을지도 몰라요”라고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빌었다. ‘사부님, 제자는 적당한 호칭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창구 경찰이 부르는 대로 따를 테니 친척 관계를 묻지 않게 해주세요.’
창구에 도착해 나는 가급적 말을 아꼈다. 감옥경찰이 “누구를 면회하십니까?”라고 물어 “아무개를 보러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이모님이시죠?”라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은 다시 “이분은 이모부님이시죠?”라고 묻고는 신분증을 요구했다. 나는 발정념을 했다. 감옥경찰은 컴퓨터에 입력하며 “파룬궁을 수련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남편에게 “우리가 돈을 얼마나 영치금으로 넣을까요?”라고 물어 그녀의 질문을 돌렸고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감옥경찰은 신분증과 전표 한 장을 건네주며 “동쪽 건물의 610 사무실에 가서 도장을 받아오십시오”라고 했다. 도장을 찍고 다시 1층 홀로 돌아오니 전광판에 접견인 이름이 떴고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홀에는 철창으로 구분된 창구가 많았다. 입구의 경찰이 제 손의 전표를 보더니 “몇 번 창구로 가십시오”라고 했다.
창구에서 잠시 기다리니 들것에 실린 한 사람이 우리 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죄수 두 명이 수감된 수련생을 부축해 창구 맞은편에 앉혔는데 그의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남편이 먼저 입을 열어 우리를 소개했습니다. “제가 이모부고 이쪽이 이모입니다. 좀 어떻습니까?” 수련생은 박해를 받아 말할 기운조차 없어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를 간호하던 죄수가 말했다. “매일 설사를 하고 갈아입을 옷도 없습니다. 지려 놓은 요와 이불을 찬물로 헹궈서 다시 깔고 지냅니다. 이가 좋지 않아 음식을 못 먹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합니다.”
나는 그 수련생에게 말했다. “반드시 굳세게 살아남아야 합니다. 당신의 아버지(사부님)께서 기다리고 계시고 그렇게 많은 친척(중생)이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가족들은 당신이 어디 있는지 몰라 면회를 오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매달 보러 올 테니 먹고 싶은 것이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다음에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조금 후에 영치금을 넣어줄 테니 간호하는 사람에게 부탁해 이불과 요를 바꾸고 옷도 사서 보내주겠습니다. 춥지 않게 해야 설사도 나을 겁니다. 오늘 가져온 물건들도 곧 받게 될 겁니다.” 수련생이 오래 앉아 있지 못해 면회를 마치고 영치금을 넣으려는데 한 경찰이 다가와 말했다. “돈은 영치할 필요 없이 저에게 주시면 됩니다. 제가 담당 감옥경찰이니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면회를 마치고 돌아와 협조 팀에 수감된 수련생의 상황을 전했다. 우리 팀 수련생들은 그의 집을 찾아가 상황을 파악하고 병보석 신청을 돕기로 했다. 우리는 차로 거의 7시간을 달려 현지 수련생의 도움으로 그의 집을 찾았고 가족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했다. 수련생에게는 아버지가 계셨고 어머니는 아들 때문에 돌아가셨으며 형이 두 명 있었다. 수감된 수련생은 아내와 이혼했고 아이는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가족들 중 누구도 감옥에 면회하러 가려 하지 않았다. 병보석을 신청하려면 가족이 있어야 했기에 우리는 그의 둘째 형에게 가달라고 부탁했다. 둘째 형은 “내가 가면 하루 일당 300위안은 누가 줍니까?”라고 했다. 남편이 주머니에서 300위안을 꺼내 그에게 주었다. 수련생 두 명은 각각 담당 감옥경찰의 집을 찾아가 진상을 알렸다.
두 번째 면회를 갔을 때 수감된 수련생은 간호하는 사람의 등에 업혀 나왔다. 담당 감옥경찰이 그를 간호하던 사람을 박해받는 다른 수련생으로 바꿔준 상태였다. 내가 “스스로 걷지 못하십니까?”라고 묻자 그는 “산속에서 뒤꿈치가 동상에 걸려 망가진 뒤로 걷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아이가 대학에 들어갔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이번에는 병보석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가족의 서명을 받았으며 감옥경찰에게 건강검진비로 1000위안을 주었다. 감옥 수련생의 둘째 형은 또 “내가 하루 일을 못 하면 300위안 일당은 누가 줍니까?”라고 했고 남편은 다시 주머니에서 300위안을 꺼내 주었다. 저녁에 변호사와 함께 식사하는데 둘째 형이 말했다. “제가 정말 사람 도리를 못 했군요. 당신들은 제 동생을 위해 이렇게 정성을 쏟는데 저는 돈이나 밝히다니 정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수감된 수련생의 병보석 처리가 거의 다 되어갈 즈음 마침 만기 출소일이 됐다. 출소 날 수련생들이 차 세 대를 나누어 타고 갔다. 감옥 마당에는 대법제자들이 가득했는데 이는 610 요원들이 출소하는 수련생이 어느 차에 타는지 확인하고 미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둘째 형은 진상을 완전히 이해했기에 610 직원의 전화를 받고 지혜롭게 대처했다. “내가 먼저 짐을 좀 내리고 나서 당신들을 데리러 가겠습니다.”
둘째 형이 감옥에 도착했을 때 마침 감옥경찰이 휠체어에 동생을 태워 정문으로 나오고 있었고 대기하던 수련생들이 그를 차에 태웠다. 수련생의 둘째 형은 감옥 마당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울면서 크게 외쳤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감옥 2층의 창문들이 일제히 열렸고 감옥경찰들과 중생들은 이 감동적인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대법제자들의 바른 에너지와, 깨어난 생명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전하는 감사를 목격했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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