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환경에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박해하던 초기, 저는 어느 평범한 대학교에서 전공과 학생 관리 및 강의를 맡고 있었습니다. 업무량이 꽤 많았죠. 특히 학생 관리 쪽은 매일 아침 조회부터 저녁 자율학습까지 챙겨야 했고, 기숙사 생활을 하는 폐쇄적인 관리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리직 교사들은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고, 학교에서 숙직해야 하는 경우도 잦았습니다.

이곳이 제 수련 환경인 이상, 우선 본직 업무부터 잘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대법제자는 어디에 있든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고, 자연스레 수련 환경도 열릴 테니까요. 처음에는 몇 개 반의 담임을 맡았고, 나중에는 한 부서의 학생 관리 전체를 책임지게 됐습니다. 동시에 수업도 진행했고요. 이 기간 제가 맡은 반은 늘 학교 우수 학급으로 선정됐고, 저 개인적으로도 우수 담임 교사상, 우수 교사상 등을 받았습니다.

또한 국가 교육 15개년 계획 국어 교수법 연구 과제에 참여해 우리 학교에서 실험 연구를 진행했는데, 저와 제가 가르친 실험반이 교육부 우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성과는 제가 대법제자이기에 가능했습니다. 제 업무 태도와 능력, 인품은 학교 교사와 학생들에게 한결같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1. 캠퍼스에서 인연 있는 사람을 구하다

1) 동료 교사 구하기

저는 동료 교사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게 비교적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업무 중이나 대화 중에 자연스럽게 진상을 알게 되면 그들도 삼퇴(중공의 당, 단, 대 조직 탈퇴)를 했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우리 학교 전공과 교사로 부임한 슈닝(가명)은 평판이 좋은 친구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우리 둘은 Z 교사 댁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대화 도중 제가 의도적으로 화제를 삼퇴와 평안을 지키는 일로 돌리며 물었습니다. “누가 삼퇴하고 평안을 지키라는 말을 해준 적 있나요?”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슈닝이 급히 말을 받았습니다. “올 때 보니까 현관문에 ‘천멸중공(天滅中共), 삼퇴하여 평안을 지키자’라고 적힌 큰 스티커가 붙어 있더라고요. 이건 하늘의 뜻이에요.” 제가 말했습니다. “하늘의 뜻이라면 그 뜻을 따라야 하지 않겠어요? 혹시 탈퇴했나요?”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대학에서는 입당이 아주 쉬워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데 저는 안 했어요. 공청단과 소선대만 가입했었죠.”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지금 탈퇴하겠다고 동의하나요?”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머리 위의 전등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저 전등을 증인 삼아 맹세할게요. 예전에 가입했던 공청단과 소선대에서 완전히 탈퇴하겠습니다. 절대 그것들과 함께 순장당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감동했습니다. 젊은 생명 하나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Z 교사는 그전에 이미 진상을 알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중공 악당 조직에서 탈퇴했을 뿐만 아니라, 타지에서 일하는 아들까지 설득해 탈퇴시켰습니다.

저는 함께 일하는 교사들에게 자주 진상을 알렸고, 기회가 무르익으면 삼퇴를 권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됐습니다. 제 주변의 교사 중 대화할 기회가 있는 사람에게는 모두 진상을 이야기했습니다.

학생처의 W 교사는 젊고 업무 추진력이 좋아 대학 시절에 이미 중공 악당에 입당한 상태였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진상을 이야기하자 그녀는 아주 흔쾌히 삼퇴를 했습니다. 우리 부서의 H 교사는 나이는 어리지만 몸이 너무 약해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제게 진상을 들은 후 그녀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기 시작했고, 몸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원래도 수업을 잘했지만 이제는 더 잘하게 됐고, 학급 관리에서도 큰 성과를 냈습니다.

연수처의 A 처장에게는 여러 차례 진상을 이야기했습니다. 때로는 그녀도 저와 함께 중공 악당의 악행을 성토하기도 했지만, 삼퇴 문제에 있어서는 제가 학교를 떠날 때까지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몇 년 후 옛 동료 모임에서 그녀를 만났는데, 그동안 관직 운이 잘 풀리지 않아 보직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다시 그녀에게 진상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그녀는 아주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관운은 역전됐고, 학교 행정실장 자리에 오르게 됐으며,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히던 우울감도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2) 학생 구하기

학생들에게 직접 대면해서 진상을 알리는 건 상대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방법을 썼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대부분 성(省) 내에서 모집했고 농촌 출신이 많았습니다. 저는 사람에 따라 방법을 달리했는데, 직접 말할 수 있는 학생에게는 직접 이야기했지만, 대다수 학생에게는 진상 음성 전화를 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리는 영어 전공 학생이었습니다. 리가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가 그녀를 데리고 아버지를 떠나 이곳 농촌의 한 농부에게 재가했습니다. 리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고 중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학교를 그만두고 도시로 나와 미용실 보조로 일했습니다. 그 미용실 단골이었던 한 한국인 아주머니가 어린 그녀를 딱하게 여겨 양녀로 삼았고, 자신의 딸과 함께 학교에 다니게 해주었습니다. 리는 중·고등학교를 마친 후 우리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교사와 학우들을 돕는 일에도 늘 앞장섰습니다.

한번은 리의 양어머니와 대화하다가 리의 친아버지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다른 성의 감옥에 불법 감금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리는 최근 몇 년간 진학 과정에서 호적과 신분증이 필요해 연락이 끊겼던 아버지와 닿게 됐지만, 아버지의 신앙 때문에 아버지를 다시 만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리와 대화하던 중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레 아버지의 신앙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리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는 술을 너무 좋아하셨어요. 취하지 않으면 끝장을 보지 않았고, 집에 오면 주사를 부리며 엄마를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도록 때렸어요. 엄마는 더는 견딜 수 없어서 저를 데리고 여기로 도망쳐 온 거예요. 저는 성도 바꾸고 이름도 바꿨어요. 이제 저도 다 컸고 종종 아버지가 보고 싶기도 하지만, 하필이면 아버지가 파룬궁을 수련하신다니 아예 생각조차 하기 싫어요.” 말을 마친 그녀는 흐느껴 울었습니다.

저는 리를 위로하며 물었습니다. “너 보기에 선생님이 나쁜 사람 같니?” 그녀가 고개를 들어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정말 좋은 선생님이시죠. 우리 반 애들도 다 선생님을 보기 드문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왜 너희들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불릴 수 있는지 아니?”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제가 말했습니다. “그건 바로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이야.”

저는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습니다. “파룬궁은 사람에게 마음을 닦고 선을 행하며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단다. 예전에 아무리 나빴던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파룬궁을 수련하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 리, 너를 축복해 줄게. 첫 번째 축복은, 네가 대법을 수련하는 아버지를 뒀다는 거야. 너는 아버지 덕분에 혜택을 받게 될 거야. 더 이상 중공의 거짓말을 믿지 마. 하늘이 곧 중공을 멸할 텐데(天滅中共), 삼퇴하고 평안을 지킨다는 말 들어봤니?” 그녀가 말했습니다. “집에 파룬궁 자료가 자주 와서 저도 알고 있어요. 읽어보기도 했고요. 선생님,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다 믿어요. 저도 평안해질 수 있을까요? 저 좀 탈퇴시켜 주세요.” 제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두 번째 축복은, 네가 자신의 생명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다는 거야. 너에게 큰 복이 있을 거야.” 그녀는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아빠가 원래는 좋은 사람이었군요!”

리가 졸업한 후, 양어머니는 베이징에서 그녀에게 아주 좋은 일자리를 구해 주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주중 한국대사관 직원과 결혼해 한국 서울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링은 초등교육과 학생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모두 농민이고 5자매 중 장녀였습니다. 링은 학구열이 높았고 본인의 노력으로 교사의 꿈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업무 관계로 저와 자주 접촉했고,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레 저에게 속마음을 터놓게 됐습니다. 저도 기회를 봐서 틈틈이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어느 날 점심 쉬는 시간에 그녀가 제 기숙사로 찾아왔습니다. 마침 책상 위에 진상 지폐 한 장이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천멸중공 퇴당단대 보명(하늘이 중공을 멸하니 당, 단, 대를 탈퇴해 목숨을 지키자)’라는 문구가 인쇄돼 있었고, 빈 곳에는 누군가의 탈퇴 성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사악한 당의 공청단, 소선대 조직에서 탈퇴함을 성명합니다. 결코 그것과 함께 순장당하지 않겠습니다. 성명인: 다융(大勇).’ 그녀는 그걸 보더니 저를 쳐다봤습니다. 제가 그 성명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어느 반 학생이 썼는지 모르겠네. 점심때 식당에서 거스름돈으로 받은 거야.” 그녀가 물었습니다. “이렇게 쓰면 효력이 있어요?” 제가 답했습니다. “그럼, 있고말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럼 저도 쓸래요.” 그러면서 글을 쓰다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되나요?” 제가 말했습니다. “되고말고. 글씨가 이 학생보다 훨씬 예쁘네. 정말 훌륭해! 너에게는 이제 미래가 생겼고 큰 복을 받을 거야.”

교생 실습 때 링은 고향인 현(縣)의 중심 초등학교로 갔습니다. 그녀는 겸손하게 배우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성실하게 일해 교사와 학생들에게 만장일치로 호평받았습니다. 졸업 후 그녀는 곧바로 그 학교 정교사로 채용됐습니다.

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저는 휴대폰으로 대규모 진상 음성 전화를 거는 방법을 썼습니다. 이 방법은 간편하고 안전하며 광범위하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각 반 학생의 개인 번호와 집 전화번호(방학 때나 평소 가족 구원용으로 사용 가능)를 지역별로 분류해 스마트폰에 입력해 둡니다. 그리고 저녁에 학교에 머물지 않는 주말이나 휴일, 혹은 점심시간에 학교를 비울 때 자동 발신 기능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진상 전화를 걸었는데 효과가 꽤 좋았습니다.

이 방식으로는 혼자 탈퇴하는 경우보다 한 명에서 여러 명이 함께 삼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방학 기간에는 자동 발신 전화로 학생들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학생이 가족과 함께 삼퇴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습니다.

매년 졸업생들이 생명의 희망을 품고 학교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또다시 입학할 신입생들에게 생명의 희망을 전해줄 준비를 합니다.

2. 발정념으로 붉은 깃발을 떨어뜨리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학교에서는 붉은 깃발(오성홍기) 게양식을 거행하는데, 모든 교사와 학생이 빠짐없이 참석해 엄숙히 임해야 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매번 깃발을 올리는 행위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세뇌를 강화하고 짐승의 낙인(獸印)을 깊이 새기는 짓이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사람을 구해야 할 사명이 있으니 이를 방관해서는 안 되며, 사악이 흉포하게 날뛰도록 내버려 둬선 안 된다.’ 저는 사부님께서 부여해주신 불법신통(佛法神通), 즉 발정념으로 세상 사람들을 세뇌하는 이 사악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또다시 깃발을 게양하는 월요일 아침이 왔고, 전교생과 교사들은 관례대로 일찌감치 운동장에 모였습니다. 저는 사무실에 앉아 운동장을 향해 발정념을 했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저도 내려가 다른 교사들처럼 학생 대열 뒤에 서서 계속 발정념을 했습니다.

음악이 울려 퍼지고 붉은 깃발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정념을 확고히 하여 깃발이 떨어지게 하고, 절대 세상 사람들을 망치지 못하게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이 이탈한 음악 소리와 함께, 깃대 꼭대기까지 절반 정도 남았던 깃발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곤두박질쳤습니다. 순식간에 운동장은 술렁거렸고, 교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서로 눈짓만 교환했습니다. 학생들은 웃고 떠들며 난리가 났습니다. 다시 게양을 시도했지만 음악도 나오지 않았고 깃발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몇 주 동안 게양식은 열리지 않았고, 깃대 하단부를 보강하는 공사를 했습니다. 나중에 한 교사에게 듣기로는 “다 망가졌어요. 깃대 밑부분까지 금이 가서 대수선을 해야 한대요”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붉은 깃발 게양식은 잠잠해졌습니다.

어느 해 가을 군사훈련 개막식 때도 학교에서 깃발을 게양하려 했기에 저는 즉시 발정념을 했습니다. 사회를 맡은 부교장이 게양을 선언하자마자 마이크 소리가 끊겼고, 한참을 만져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마이크로 바꿨지만 여전히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음악을 틀려 해도 녹음기가 고장 나 소리가 안 나왔고, 결국 학생들이 육성으로 국가를 부르는 것으로 대체했습니다.

8월 중순, 북방의 태양은 불같이 뜨거웠습니다. 갓 입학한 학생들은 서로 서먹서먹해서 고개를 숙인 채 웅얼거릴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웅얼거려도 붉은 깃발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더위를 먹고 쓰러지는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대열은 엉망이 됐습니다. 개막식을 주관하던 교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했고, 도저히 진행할 수 없어 게양식은 흐지부지 끝나버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교내 방송에서 공산당 찬양가가 나오면 저는 그때마다 발정념을 했고, 한 번만 생각해도 음악은 꺼져버렸습니다.

3. 캠퍼스 내 사악한 선전 포스터 제거

2007년 10월 초, 긴 연휴를 앞둔 어느 날 아침 사무실에 들어왔다가 창문 너머로 강의동 앞 돌기둥에 대법을 비방하는 커다란 사악한 선전 포스터가 떡하니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언제 붙인 거지? 저게 얼마나 많은 교사와 학생을 세뇌할까! 저걸 저렇게 둬선 안 돼.’

저는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마침 수업 종료 벨이 울렸습니다. 저는 학생회 학생 한 명을 불러 말했습니다. “오늘 점심때면 학교 문 닫으니까 관례대로 대청소를 해야지. 오늘 중간 체조 시간은 없으니까 우리 좀 일찍 시작해서 빨리 끝내고 집에 가자.” 그러면서 돌기둥 앞으로 가서 자연스럽게 그 사악한 포스터를 뜯어냈습니다. 학생도 옆에 있던 교내 광고 전단과 포스터 등을 떼어냈습니다. 주변에 있던 다른 학생들도 그 모습을 보고는 기둥과 벽에 붙은 지저분한 것들을 앞다퉈 떼어냈습니다.

퇴근 무렵, 스쿨버스를 타려고 3호 강의동 앞으로 갔는데 이미 많은 교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호 강의동 입구를 보고 저는 경악했습니다. 제가 있는 1호 강의동과 똑같은 비방 포스터가 거기에도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건 안 돼. 내가 떼어내야겠어.’ 저는 제 가방을 같은 버스를 타는 동료 교사에게 건네며 말했습니다. “이것 좀 들어주세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다른 교사 한 분도 같이 가겠다며 따라나섰습니다. 그녀가 먼저 화장실로 들어간 사이, 저는 문 옆 벽에 붙은 사악한 그림을 확 뜯어내며 말했습니다. “청소를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이렇게 빤히 보이는 쓰레기도 안 치우다니.”

스쿨버스가 출발했고 2호 강의동 앞을 지날 때, 저는 숨을 죽이고 그곳에도 사악한 포스터가 있는지 살폈습니다. 역시나 있었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후회하며 자책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을까. 오전에 1호관에서 발견했을 때 왜 다른 건물도 확인해 볼 생각을 못 했을까. 이제 일주일 뒤 연휴가 끝나야 제거할 수 있겠구나.’

버스가 교문을 빠져나갔지만 제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사악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제 주변의 좁은 환경만 중시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연휴가 끝나고 출근한 첫날, 저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2호 강의동으로 달려가 사악한 선전 포스터를 단숨에 뜯어 화장실 쓰레기통에 처박았습니다. 그제야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3/3/50734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3/3/5073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