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을 수련해 내 운명이 바뀌다

글/ 중국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저와 남편은 이모의 중매로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부모님은 저희를 분가시켰습니다. 이유인즉슨 이모 댁과 가까이 살면 이모가 우리집 물건을 먹을까 봐 겁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 집은 생활 조건이 좋지 않아 아주 가난했습니다. 결혼할 때 신혼방 내벽도 칠하지 않아 신문지로 도배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이 혼사를 동의하지 않았지만 반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모가 재차 설득해서 그렇게 억지로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분가할 때 시부모님은 옥수수 18근과 밀 조금(대략 60근 정도)만 주셨습니다. 제가 시댁에 들어간 후 시부모님은 저를 무시했고 남편은 자주 저를 때렸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게 매를 맞았고 맞은 후엔 가끔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자전거를 타고 도망가는데 남편이 오토바이를 타고 쫓아와 저를 들이받아 몇 번이나 나뒹굴었습니다. 저는 남편을 원망해 때로는 그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죽여버릴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남편과 이혼하려 했지만 몇 번이나 시도해도 이혼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저와 이혼하려 하지 않았고 서명하러 가지도 않았습니다.

시부모님은 아주버님 댁만 편애했습니다. 제가 딸을 낳은 것과 형님이 아들을 낳은 것은 불과 한 달 남짓 차이였지만 시어머니는 저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고 돌보지도 않았습니다. 형님이 산후조리 중일 때 보러 갔는데 마침 시어머니도 오셨습니다. 시어머니는 흑설탕과 계란을 가져오셨고 저는 그들을 질투하며 시부모님과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제 아이를 돌봐준 적이 없어 딸이 마당에서 닭똥을 먹고 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으니 온갖 병이 다 올라왔습니다. 불면증으로 며칠씩 잠을 못 자기도 했고 위장병으로 차갑거나 딱딱한 것은 먹지도 못했으며 갑상선 기능 항진증, 심장 박동 간헐증, 경추병, 치질에 걸렸습니다. 또한 손에 쥐가 나서 한 번 경련이 일어나면 손이 변형돼 펴지지도 않았고 힘껏 펴야만 바르게 펴졌습니다. 류머티즘으로 관절이 부어올라 매일 아침 일어나면 먼저 침대를 짚고 천천히 한 바퀴를 돈 후에야 걷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 일을 마치고 밤에 침대에 엎드리면 두 아이가 벽을 짚고 번갈아 가며 제 몸을 밟아주게 했는데 그래야 몸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삶의 불행은 저로 하여금 살아갈 희망을 잃게 했고 저는 살고 싶지 않아 죽어버리려 했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죽으려 했지만 죽으려 해도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법을 수련해 인생이 즐거워지다

1998년 여름방학, 친척이 딸에게 보충 수업을 해주러 집에 왔다가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가져다주었고 이후 저는 또 전법륜(轉法輪)을 모셔 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게 됐습니다! 제 두 아이도 따라 함께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했으며 아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먼저 30분 동안 가부좌를 한 후 숙제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제 병은 다 나았고 두 아이도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자주 병원에 입원했으나 대법을 배운 후 튼튼해지고 병도 안 걸렸으며 딸의 몸에 있던 완고하고 심각한 건선도 기적처럼 나았고 저와 남편도 더 이상 싸우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그것을 보며 기뻐 사람들에게 자주 “이 공법은 정말 좋습니다. 우리집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병이 다 나았고 아내가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게 됐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비록 대법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매우 지지해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틀기 위해 비디오 플레이어를 사려고 시내 전체를 돌아다니며 하나를 사 왔습니다. 어떤 이웃들은 우리집에 와서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았고 어떤 사람들은 책을 달라고 해서 보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비록 우리처럼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하지는 않았지만 귀동냥으로 보고 들으며 조금씩 접했습니다. 대법 수련은 제 인생을 크게 변화시켰고 저는 기쁜 인생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대법을 배운 후 저는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요구해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하고 남의 잘못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이로부터 저는 더 이상 시부모님과 남편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선하게 대했습니다. 때로 좋지 않은 일과 마주쳐도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겨 그것을 좋은 일, 업을 없애고 빚을 갚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때는 사람 마음을 참으로 담담하게 내려놓았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 기간에 또 한 가지 신기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사부님께서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호주법회 설법)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연공하니 남편도 혜택을 보았습니다. 한번은 남편이 전기 작업을 하다가 감전돼 멀리 튕겨 나갔고 당시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 했으나 나중에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게 했더니 나았습니다. 정말 놀라기만 했지 위험하지는 않았으니 사부님께서 그를 구해주신 것입니다.

‘7·20’의 가정 난

1999년 ‘7·20’, 장마두(江魔頭, 장쩌민)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질투해 수중의 권력을 이용해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일으켰고 피비린내 나는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시부모님은 일찍이 중국공산당(중공)에 의해 우파로 몰려 중공의 박해를 겪었기에 중공의 사악함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시부모님과 남편은 두려워하며 모두 제가 대법을 배우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남편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야. 당신들이 공산당과 싸워서 좋은 꼴을 보겠어?”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저와 아이가 대법을 배우는 것을 극력 반대했고 심지어 저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집에 없을 때만 몰래 대법서적을 보았는데 하루는 남편이 일찍 집에 돌아왔습니다. 당시 저는 방에서 마음을 다해 책을 보느라 알아채지 못했고 그는 창밖에서 제가 책을 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들어온 후 처음에 그는 저를 보며 웃었고 제가 고개를 들어 그인 것을 보고 서둘러 책을 감추자 그는 저와 책을 빼앗으려 했으며 다투는 중에 한 페이지가 찢어졌습니다. 이후 저는 테이프로 붙였습니다. 남편은 딸이 배우지 못하게 하려고 문을 걸어 잠그고 철근으로 딸을 때렸으나 딸은 속으로 ‘날 때려죽이지 못하면 나는 배울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점차 저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게 됐고 그도 묵인하며 신경 쓰지 않게 됐습니다. 이렇게 우리 모녀는 굳건히 걸어왔습니다.

두 차례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하다

‘7·20’ 이후 저는 두 차례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했는데 모두 남편 몰래 갔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못 가게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하는 수련생이 아주 많았습니다. 첫 번째로 잡혀 돌아온 후 시 교통경찰 대대에 감금됐는데 많은 수련생이 감금돼 있었습니다. 저와 다른 두 수련생은 그들에게 한바탕 맞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돌아와 보니 남편이 제 대법서적과 사부님 법상을 찢고 태워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시어머니도 “네가 우리를 살게 할 거냐, 못 살게 할 거냐”라며 저를 욕하셨습니다.

두 번째 베이징에 갔을 때는 남편이 출근한 이후에 갔습니다. 당시 저는 남편에게 편지를 써서 이번에 가면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알렸고, 제가 서명한 쪽지를 남기며 만약 제가 돌아오지 못하면 이 쪽지를 가지고 가서 저와 이혼하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 잡혀 돌아온 후 저는 먼저 향 정부에 감금됐는데 남녀가 모두 한 방에 있었습니다. 다음 날 그들이 저를 다른 방으로 부르자 사람들은 맞을 줄 알았습니다. 제가 들어가 보니 방바닥에 담배꽁초가 가득해 아주 지저분해서 빗자루를 들고 깨끗이 쓸었습니다. 아마 제가 그때 보여준 선함 때문이었는지 그들은 저를 어떻게 하지도 않았고 심한 말도 하지 않은 채 저를 돌려보냈습니다. 이후 모두 시 구치소에 감금됐고 강제노동을 보낸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남편이 4만여 위안을 써서 저를 빼내 왔고 나머지 많은 사람은 강제노동에 처해졌습니다. 돌아왔을 때는 설이 다가와 섣달 20며칠쯤이었습니다. 제가 방에 들어가 보니 생화가 여러 화분 놓여 있었는데 그중에는 진달래도 있었고 소파도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제가 이해가 안 돼 “이게 뭐예요?”라고 묻자 남편은 “당신 환영하는 거지! 당신이 돌아와서 다들 기뻐해”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또 저에게 “그분들(시부모님)에게 4만여 위안 썼다고 말하지 마. 그렇게 되면 나한테 당신과 이혼하라고 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럼 이혼해요, 내가 서명해 준 것 있잖아요?”라고 하자 남편은 “난 이혼 안 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구치소 안에서 우리는 물과 음식을 끊고 박해에 반대해 단식했는데 많은 사람이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당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짓눌려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당하는 수련생들의 몹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저는 강제 주입이 두려워 밥을 먹었습니다. 그 단식을 거치며 구치소에서는 사람들이 법공부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베이징에 가기 전에 사부님의 ‘홍음’을 옷 안에 꿰매 숨겨 와서 다들 번갈아 가며 보고 번갈아 가며 법을 베껴 썼습니다(그때 구치소에서는 종이와 펜을 사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밤에 베껴 쓰는 차례가 되면 잠을 자지 않았는데 그때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순정했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도 다 내려놓았고 아무런 미련도 없었습니다.

남편이 마침내 깨닫다

그 후 몇 년 동안 남편은 제게 특별히 잘해 주었고 늘 예전에 우리 모녀에게 미안했다며 아무 일도 못 하게 했으며 쓰레기 버리는 것조차 못 하게 했습니다. 때로는 “예전에 당신은 얼마나 힘들게 살았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그렇게 많은 대법서적을 찢고 사부님의 법상을 태운 업보가 결국 너무 커서 이후 그는 암에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그에게 숨겼으나 나중에는 더 숨길 수 없어 그에게 알렸습니다. 이미 암 말기라 병원에서도 좋은 방법이 없어 그의 동의를 얻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조리했습니다.

하루는 그가 차고에서 전법륜 한 권을 찾아 저에게 주었는데 그가 예전에 숨겨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보니 글자도 아직 고치지 않았고 어떤 곳은 이미 누렇게 변해 있어 저는 책을 먼저 한쪽에 놓아두려 했습니다. 그가 서둘러 “아, 가져가지 마. 그건 내 책이야, 나도 봐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남편도 마음속으로는 대법이 좋은 줄 알았지만 그들 가족이 한때 우파로 몰려 공산당에게 시달린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 암은 마치 무거운 망치처럼 남편을 때려 깨웠고 그 자신도 생명이 곧 끝날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남편은 대법을 얻었고 남편은 엄정성명(嚴正聲明)을 써서 진심으로 사부님께 참회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으며 엄정성명은 명혜망에 발표됐습니다.

남편은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대법이 정법(正法)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병문안을 온 친척과 친구들에게 “이 대법은 정말 좋습니다. 여러분도 빨리 대법을 수련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파룬(法輪)이 도는 것도 보았습니다. 나중에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자 누워서 연공했고 몸이 너무 아플 때는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우며 사부님께 구해달라고 빌었습니다. 남편은 결국 떠났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4년이 됐습니다.

심성을 수련해 마음이 밝아지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안으로 찾는 법리를 여러 번 강조하셨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시부모님과 남편이 제게 잘못했던 온갖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괴로워 울었지만 지금은 원망하지도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으며 동요하지 않게 돼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시부모님과 남편이 저에게 만들어 준 그 시련들이 사실 저를 성취시키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시련을 만들어 주어 제 업을 없애도록 돕지 않았다면 저는 어쩌면 아직 대법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점을 놓고 볼 때 저는 그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게다가 모든 일에는 다 인연이 있으니 어쩌면 제가 생생세세 그들에게 빚진 것일 수 있고 이번 생에 고생을 좀 한 것으로 갚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저는 시부모님을 선하게 대했고 지금까지도 시부모님은 여러 번 남들 앞에서 제가 잘해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열등감이 수십 년 동안 저를 괴롭혔습니다. 집이 가난하고 아버지가 무능해서 저는 열등감이 있었고 결혼 후 남편에게 맞고 시부모님께 무시당해 열등감이 있었으며 몇 년 전에 남편이 또 세상을 떠나자 이제 겨우 60대인데 남편이 없다고 남들이 말할까 봐 또 열등감이 생겼습니다. 열등감 때문에 저는 남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단체 법공부 때도 한 번도 수련생들과 교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게는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는데 난 얼마나 행운아인가! 내가 왜 열등감을 가져야 하지? 나는 열등하지 않아. 그 열등감은 내가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점을 인식하게 되자 저는 정말 열등감이 없어졌습니다. 사부님께서 그 열등감이라는 물질을 떼어내 주신 것입니다. 지금은 저도 말하기를 좋아하게 됐고 단체 법공부 때 수련생들과 제 심득을 교류하기도 좋아하게 됐으며 수련생들의 말에 따르면 지금의 저는 마치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같이 밝아졌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해 사부님께서 제 운명을 바꿔 주셨고 대법은 제 생명을 다시 태어나게 했습니다! 저는 세상에 온 목적이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부님의 크나큰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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