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현대인은 실리주의와 도덕 상대주의를 매우 강조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말을 바꾸면서도, ‘말이 통하고 받아들여질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융통성’, ‘현실성’, ‘변통성’을 장점이자 강자의 능력으로 여기기도 한다. 도덕 상대주의는 사실상 도덕적 기준이 없이 목적만을 중시하는 것이다.
진실한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인류의 기본적인 보편 가치이다. 도가의 진(眞) 수련, 유가의 성실함, 불가의 거짓말 금지, 기독교의 거짓말하지 말라는 가르침 모두 정직과 신용을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필수 덕목으로 간주한다.
유가에서는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라고 했고, 불가에서는 ‘거짓말은 모든 선의 근본을 잃게 한다’라고 했다. 즉, 진실함과 신용을 잃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나 근원 없는 물과 같다. 나무에 뿌리가 없으면 가지와 잎이 번성할 영양분을 얻을 곳이 없고, 샘에 근원이 없으면 졸졸 흐르는 작은 시내조차 끊기게 된다. 파룬궁수련자가 진(眞)을 수련하지 않으면 법을 얻을 수 없고 정과(正果)를 이룰 수도 없다. 진을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선량함이 부족하고, 고생을 견디는 마음과 포용심, 동정심, 공감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을 수련하며, 진(眞)은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 “참말을 하고, 참된 일을 하고, 참된 사람이 됨으로써”(전법륜)라는 말은 단 몇 글자뿐이지만, 실제로 이를 실천하기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중국공산당(중공)이 통치하는 사회 아래의 중국에서는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매체가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상품은 가짜이고, 의료계조차 양심을 저버려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말에 속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중국인, 특히 문화대혁명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어려서부터 ‘고도로 도구화된 사고’를 배웠다. 언어(서면 문자 포함)는 진실한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원칙, 가치, 이유는 언제든 ‘나를 위해’ 갈아치울 수 있는 도구가 된 것이다. 오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의 명분을 찾다가도, 내일은 그 일이 자신에게 필요 없거나 쓸모없어지면 전혀 반대되는 이유로 이를 부정한다. 이런 사고가 도구화되고 목적성이 강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사람을 만나면 사람의 말을 하고, 귀신을 만나면 귀신의 말을 하는 것’을 정상으로 여기며, 도덕적 일관성이 없는 것 또한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전통문화 속의 거짓말, 충효, 진실에 대한 가치 정의를 잃어버렸다.
현재 중국에 거주하는 수련자들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거짓말의 세계에서 살다 보니 거짓말은 이미 일상이 됐고, 많은 이가 세속에 휩쓸려 가끔 거짓말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사실 정상적인 사회에서 거짓말은 남을 속이는 부끄러운 일이며, 거짓말은 파룬궁수련자가 반드시 고쳐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수련자는 진(眞)을 수련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아 수련 중에 끊임없이 누락이 생겼고, 이는 구세력이 박해할 구실을 주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어느 한 수련자는 가방에 진상 자료를 넣은 채 타인의 신분증을 가지고 기차를 타려다 역에서 불법적으로 납치돼 억울한 판결을 받았다. 또 다른 수련자는 몇 달간 무단결근 후 출근했다가 회사의 강요에 못 이겨 가짜 서류를 제출해 직장을 유지했으나, 이후 사오(邪悟)에 빠졌다.
중국인은 ‘작은 선이라 하여 행하지 않으면 안 되고, 작은 악이라 하여 행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이 수련자들은 많은 장점이 있었음에도 진실을 수련하는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이를 대수롭지 않은 작은 일로 여겼을 수 있다. 하지만 수련에서 작은 일은 결코 작지 않다. 그것은 변이된 사상과 사람의 마음에 대한 집착을 반영하며, 스스로 영리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과 남을 모두 속이는 행위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정직한 사람이 진실한 것이며, 마음과 입이 하나가 돼 숨김없이 말하고 속이거나 과장하지 않는 것이 바로 진실이다. 그러나 공산당 당문화 분위기 속에서 많은 중국인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며, 가짜를 말하면서도 얼굴을 붉히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만약 세속에 휩쓸린다면 그것은 진실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며, 바르게 걷는 것도 아니다.
어떤 수련자들은 항상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빈번하게 문제가 발생하고 거듭 박해를 당하곤 하는데, 이런 수련자들은 자신을 반성해 봐야 한다. ‘나는 진(眞)을 수련했는가? 참말을 하고, 참된 일을 하는 면에서 어떻게 했는가?’라고 말이다. 내실 있게 수련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일부 수련자가 왜 평온하게 걸을 수 있고 교란을 적게 받는가? 그것은 하는 일이 법에 부합하므로 사부님과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한 결과 중 하나는 진정한 법을 얻지 못하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고통스러운 업보를 받는 것이다. 거짓말은 수련인에게 중대한 장애물이다. 사실 깊이 생각해 보면 명확해진다. 진(眞)조차 해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선(善)과 인(忍)을 논할 수 있겠는가? 어떤 불도(佛道)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며 일을 처리하겠는가? 거짓말과 속임수로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하여 진인(眞人)이 될 수 있겠는가? 공을 가로채고 잘못을 떠넘기며, 속임수를 쓰고 과장하는 것을 모든 신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반드시 실질적으로 진을 수련해야 한다.
우리는 습관적이고 의도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거짓말과 가짜들이 모두 변이되고 바르지 못한 현대적 관념이며, 단호히 고쳐야 할 악습임을 인식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고 행실을 곧고 바르게 해야만 진정으로 법을 얻을 수 있고 견실하게 향상할 수 있다.
개인적인 소견이므로 부적절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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