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1998년 봄, 나는 시부모님을 뵈러 농촌에 갔는데 그때 그곳에는 이미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편에게 심장병이 있었기에 시누이가 내게 말했다. “새언니, 오빠도 파룬궁 연마하게 하세요. 이 공법은 병을 치료할 수 있고 성격도 고칠 수 있어요.” 돌아와서 남편에게 이 일을 말했는데 남편은 당시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
1. 법을 얻어 수련하며 고생을 낙으로 여기다
가을이 되자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이 일이 생각나 시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파룬궁 책을 보고 연공하고 싶다고 했다. 시아버지가 알려주셨다. “너희 그곳에도 있어, 그곳에서 연마해라.” 말하자면 신기한데, 며칠도 안 돼 우리집 옛 이웃을 만났는데 그녀가 파룬궁을 연마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파룬궁 책을 한 권 부탁하고 싶다고 했고 그녀는 “좋아요, 잠시 후에 갖다 드릴게요”라고 했다. 얼마 안 있어 이웃이 내게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가져다주었고 이렇게 남편이 법을 얻었다.
이 기간 나는 어머니를 천 리 밖 고향으로 모셔다드려야 했다. 매번 고향에 갈 때마다 길이 멀어 몇 달씩 머물며 친척 집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저히 머물 수 없어 자꾸 집에 가고 싶었다. 겨우 한 달 머물다 더는 있을 수 없어 돌아왔다. 집에 오기 전 남편이 전화해 물었다. “집에 모신 저령(低靈, 동물이나 저급적인 영체)을 어떻게 하지(향 피우는 것을 말함)?” 나는 대뜸 말했다. “당신 버릴 줄도 몰라요? 버려요!” 이렇게 남편은 집에서 수년간 모셨던 저령 위패를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사부님께서 제자의 집 환경을 청리(淸理)해주신 것이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남편이 제약공장에서 도매로 사 온 서랍 가득한 약을 보고 그에게 물었다. “당신 연공한 후에 이 약들 먹었어요?” 그가 말했다. “안 먹었어, 한 알도 안 먹었어!” 나는 이어서 그와 상의했다. “안 먹었으면 우리 버립시다.” 남편은 동의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편은 27년간 수련하며 다시는 약을 한 알도 먹지 않았다.
대략 일주일쯤 지나 남편이 수련생 집에 사부님 설법 비디오를 보러 가면서 내게 갈 거냐고 물었고, 나는 “나도 가요”라고 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수련생 집에 도착해 사부님 설법 비디오를 조금 보다 나는 잠이 들었다(나중에 사부님께서 내 몸을 정화해주신 것임을 알았다). 집에 돌아온 후 속이 무척 편안했고 그때부터 내 위장병이 나았다. 며칠 연속 사부님 설법 비디오를 다 보고 나니 나를 수년간 괴롭히던 통풍과 발가락 짓무름이 다 나았다. 당시 나는 집에 있던 통풍 치료용 약술을 버렸다. 파룬궁의 신기한 치유 효과가 내 몸에서 확실하게 나타났다. 그때부터 대법이 내 마음에 뿌리를 내렸고 중공(중국공산당) 악당이 아무리 먹칠하고 탄압해도 조금도 내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
득법한 지 얼마 안 된 1999년 설 초엿새, 우리집에서 운영하는 상점이 개업하게 돼 청소하러 갔는데, 걸레질할 때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 바닥에 세게 넘어졌다. 먼저 앞으로 무릎을 꿇고 넘어진 후, 막 일어나려는데 또 다리가 양쪽으로 쫙 벌어지며 일자(一字)가 된 채 넘어졌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나는 한참을 진정한 후에야 일어났고, 일하고 있던 남편에게 말했다. “나 먼저 집에 가서 좀 쉴게요.” 집에 와서 조금 쉰 후 이어서 저녁 식사를 준비했고, 먹고 난 후에도 별로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밤에 자고 난 다음 날 아침에는 아파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일은커녕 집에 혼자 있을 때 화장실도 갈 수 없어 조금씩 기어서 갔다.
고통스럽긴 했지만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내 업을 없애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사부님께서 나를 관리하고 계시니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흐뭇했다. 일주일 후 나는 완전히 나았다.
2. ‘작은 꽃’을 피워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다
1999년 ‘7·20’에 중공 악당이 파룬궁을 광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과 함께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반(反)박해에 뛰어들었고, 사악한 세력의 수차례 가택수색, 납치, 구류에 직면했지만 우리 부부는 한 번도 동요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대법이 가장 바르고 사부님께서 가장 바르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상 스티커를 붙이고 자료를 배포하고 친구와 지인들에게 대면해 진상을 알렸으며,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사람 구하는 중에 지냈다.
2005년, 협조인이 우리 부부와 상의했는데, 집에서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과 각종 진상 자료를 제본할 수 있느냐고 했다. 우리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동의했다. 그때부터 우리집에 ‘작은 꽃’(가정 자료제작소)이 하나 피었고, 이렇게 20년이 됐다.
사존의 자비로운 보살핌 아래, 나는 매일 쉬지 않고 사람 구하는 데 필요한 진상 자료를 만들었다. 그때는 정말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시내와 농촌 수련생들이 모두 와서 가져갔다. 가끔 아무도 오지 않은 날에는 나와 남편이 직접 나가 중생들에게 배포했다. 사람 구하는 수요에 따라 우리집에는 또 복사기가 추가돼 진상 CD를 제작했고, 호신부(護身符), 카드, 목걸이 등도 만들어 기본적으로 현지 중생구도에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켰다. 동시에 집에는 또 법공부 팀이 만들어져 대법제자들의 수련 환경을 원만하게 했다.
2012년, 남편이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악당에 납치돼 불법적으로 3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평소 자료와 ‘9평’ 제작은 우리 둘이 협력했는데, 이제 그의 몫까지 내가 모두 새로 배워야 했다. 다행히 수련생이 나와 협력해 주어서 나도 빠르게 상태를 바로잡고 온 마음을 사람 구하는 데 쏟았다. 매일 연공을 잘하고 법을 잘 배우는 것을 보장하는 기초 위에서, 수련생들의 협력 아래 대법서적, ‘9평’,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등을 한 권 한 권 제때 잘 만들었다.
우리집에는 또 진상용 작은 연꽃 만들기, 코팅된 양면 접이식 진상 현수막, 크고 작은 진상 게시판, 탁상 달력, 벽걸이 달력 등이 추가됐다. 명혜망에 무엇이 있으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다 만들 수 있었고, 수련생들이 법을 배우고 사람을 구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켰다. 2015년이 되어 남편의 억울한 옥살이가 끝나고, 나와 남편은 다시 사람 구하는 협력을 시작했다.
3. 사부님께서 내게 미용을 해주시다
2019년 어느 날, 내 얼굴이 갑자기 부어올랐는데 머리가 두 개만큼 커졌고, 입술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부분이 모두 부었으며, 아프고 팽팽하고 가려웠다. 피부가 아파서 감히 만지지도 못하고 건드리지도 못했다. 나는 이것이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으며, 매일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 외에는 안으로 찾으며 끊임없이 법에 부합하지 않는 자신의 행위를 바로잡았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사부님께 향을 올리며 웃으면서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자가 예쁜가요?” 나는 사부님의 법상이 웃으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행복하게 웃었다. 일주일 후, 나는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됐을 뿐만 아니라 안색이 붉고 윤택해졌고, 피부가 한 겹 벗겨진 후 매끄럽고 부드러워져 정말로 전보다 훨씬 예뻐졌다.
비바람 속에 27년을 수련했고, 지금 남편은 이미 79세, 나도 76세가 됐다. 제자가 걸어온 모든 걸음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를 떠날 수 없다. 제자의 사부님께 대한 감사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정법의 마지막 시각에 제자는 더욱 정진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것이며, 우리집 작은 꽃은 정법이 끝나는 그날까지 계속 피어있을 것이다.
제자 삼가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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