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올해 86세다. 초등학교 학력의 평범한 가정주부인 내가 돈 한 푼 쓰지 않고 초범적인 고덕대법(高德大法)을 얻게 됐으니 너무나도 행운이다!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면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내 몸에 있던 병들―림프결핵, B형 간염, 위장병, 비염, 류머티즘 관절염, 고지혈증―이 모두 나았다. 그야말로 환골탈태한 느낌이었고 비로소 병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진정으로 알게 됐다. 대법은 정말로 너무나 신기하다. 법을 얻은 이후 지금까지 나는 약을 한 알도 먹지 않았다. 사부님의 은혜로운 하사와 제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진상을 말하는 것이 만능열쇠이다.”(각지 설법 4-2003년 애틀랜타 법회 설법)
나는 이 말씀을 진심으로 믿는다. 여기에서 지난 여러 해 동안 내가 몇 차례 부당함에 직면했을 때, 침착하게 진상을 알렸던 장면들을 적어 보려고 한다.
1. 구치소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다
2000년 6월 어느 날, 우리집은 불법적으로 가택수색을 당했고 나와 남편(수련생)은 동시에 납치돼 구치소로 끌려갔다. 경찰은 쇠사슬로 나를 쇠의자에 묶어 놓고 4일 밤낮 동안 대소변을 볼 때도 풀어 주지 않았다. 그 바람에 내 다리와 발이 심하게 부어 신발조차 신을 수 없었다.
쇠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사부님의 ‘논어(論語)’와 ‘마음고생(苦其心志)’을 외웠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는 현재 청렴한 관리가 없다고 믿지 않았다. 나는 “천안문(天安門) 분신자살 사건은 가짜이며, 대법은 우리에게 진선인(眞·善·忍)을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살생을 하지 않습니다. 자살 자체가 죄인데, 누가 천안문에 가서 분신자살을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쇠의자에 4일 동안 앉아 있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2. 국장에게 진상을 알린 후 말소됐던 호적이 순조롭게 복구되다
2002년, 내가 검은 소굴에서 나온 뒤 직장에서 내 호적을 말소했다. 직장을 찾아갔지만 직장 책임자는 파출소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파출소에 가 보니 그들은 공안국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진정으로 대법을 수련하는 제자인데 호적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그 당시의 심성은 이 정도였다.) 얼른 대법을 찾고, 법공부하여 자신을 잘 닦는 것이 급선무라고 여겼다. 이렇게 나는 호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더는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어느 날 직장 사무실에서 전화가 와서 남편에게 물었다. “어째서 댁 아주머니의 호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까?”
내가 전화를 받아 말했다. “모 국장(현재는 응보를 받아 면직됨)이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제 호적을 말소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한번 오세요. 사무실에서 확인서를 하나 써 줄 테니 호적을 다시 올리세요.” 나는 바로 진상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직장으로 가서 국장실을 찾았다. 새로 부임한 국장은 매우 예의 있게 나를 앉으라고 했다. 나는 입을 열자마자 국장에게 진상을 알렸다. 대법을 배우기 전에는 온몸이 병투성이였다는 것을 직장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병 하나 없이 몸이 아주 가볍다고 말했다. 또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은 가짜이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는 이미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 널리 전해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구치소에서 나와 대법제자들이 어떤 박해를 받았는지, 노동수용소에서 또 어떻게 박해했는지도 이야기했다. 그러자 주임이 말했다. “아주머니, 그만 말씀하세요. 이 국장님은 아주 좋은 분이에요.”(즉, 당신을 박해하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 나는 말했다. “바로 국장님이 좋은 분이시기 때문에 대법의 진상을 들을 자격이 있는 겁니다.” 국장은 의자를 내 앞으로 옮겨와 앉아 자세히 귀 기울여 들었다. 나는 1시간 넘게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에 국장은 호적을 복구하는 확인서를 어떻게 쓸 건지 내 의견을 물었다(파룬궁을 수련한다는 말은 쓰지 말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사실대로 쓰세요.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은 합법입니다. 우리 사부님은 진선인을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고, 그것은 잘못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닙니다. 부끄러운 것은 오직 중공 악당뿐입니다! 국장님, 시비를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국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에게 확인서를 써 주었다. 나는 그 서류를 가지고 파출소에 가서 호적을 순조롭게 복구했다.
3. 국장과 주임에게 진상을 알리자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다
내가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공의 ‘민감한 날’이 올 때마다 나는 직장 지도부가 ‘주시해야 할 대상’이 됐다. 어느 날 국장과 사무실 주임이 선물까지 들고 나를 찾아왔다. 국장은 말했다. “절대 베이징에는 가지 마세요. 당신이 베이징에 가시면 우리는 끝장입니다!” 나는 말했다. “내가 어떻게 당신들을 끝장나게 하겠어요? 지금은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할 곳이 없어요. 우리 사부님께서는 사람을 빨리 구하라고 하셨어요. (박해의 원흉인) 장쩌민이 베이징에 가지 말라고 하니,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는 진상을 이웃들에게 말하고, 대중에게 말하고, 친척과 친구들에게 말하고, 형제자매들에게 말할 뿐이에요. 국장님, 제가 국장님께 말하건대 국장님은 시비를 분별할 수 있는 분이고 반드시 구원받을 수 있어요. 우리 사부님께서 기뻐하시면 저도 기쁩니다!” 국장과 주임은 눈물을 머금고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때 국장에게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해주지 못한 것이었다.
4. 집에 찾아온 시청 직원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다
2008년, 기술 수련생의 도움과 지도를 받아 우리집에 자료점을 세웠다. 인터넷에 접속해 자료를 내려받고 크고 작은 소책자를 인쇄하며, CD를 굽고, ‘9평 공산당(九評共産黨)’과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등의 자료를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신 덕분으로, 배우자마자 곧바로 할 수 있게 됐다.
2013년 어느 날, 내가 자료를 인쇄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아마 사부님께서 인연 있는 사람을 나에게 보내주신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프린터를 멈추고 프린터와 컴퓨터가 있는 방의 문을 잘 닫은 뒤 그들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온 사람은 두 명의 여성이었고 바인더를 들고 와서 말했다. “저희는 시청에서 나왔습니다. 집에 당원이 몇 명인지 조사하러 왔어요.” 내가 말했다. “진작에 탈퇴했어요! 탈당하면 목숨을 지킬 수 있다는 말 못 들어봤어요? 성이 어떻게 되세요?” 한 사람은 장(張)씨라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창(常)씨라고 했다. 내가 물었다. “당원들이죠?”
그녀들은 맞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어서 빨리 탈퇴하세요! 중국인은 모두 염황의 자손이지, 마르크스·레닌의 순장품이 아닙니다.” 그녀들이 말했다. “아주머니, 말씀이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돌아가서 생각해 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내가 말했다.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아가씨들. 나는 정말로 여러분을 위해 말하는 거예요. 내가 가명으로 탈퇴시켜 줄게요. 당신은 ‘장여의(張如意)’, 당신은 ‘창평안(常平安)’이에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꼭 기억하세요!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거예요.”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떠났다. 두 생명이 구원받았다.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5. 집에 찾아와 괴롭히던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들은 손을 흔들며 떠났다
2015년, 나는 박해 원흉 장쩌민을 고소했고 그로 인해 파출소 경찰들이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와 날 괴롭혔다. 2015년 11월 어느 날, 수련생이 나를 도와 A3 용지를 인쇄할 수 있는 프린터 한 대를 사 주어 새해 달력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예전에 나는 다리뼈가 부러졌던 탓에 비록 2~3년이 지났어도 계단을 오르내리며 무거운 물건을 들기는 여전히 힘들었다. 그래서 수련생에게 부탁해 프린터를 위층으로 옮기게 했다. 우리가 계단 입구에 이르렀을 때 수련생이 말했다. “먼저 올라가서 상황을 좀 봐요.” 내가 말했다. “볼 필요 없어요. 그냥 올라가요.” 그런데 수련생이 경찰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봐요!” “어?!” 나는 그제야 문 앞에 경찰차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수련생에게 말했다. “당신은 먼저 프린터를 갖고 가세요. 나는 갈 수 없어요. 나는 올라가서 그들을 구해야 해요.”
내가 막 2층에 올라섰을 때 사복경찰이 우리집에서 나오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돌아오시면 파출소에 한 번 들르라고 하세요.” 그 말을 내가 마침 듣고 그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그들은 내가 돌아온 것을 보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와 나에게 물었다. “아직도 파룬궁을 수련합니까?” 나는 말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어떻게 수련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파룬따파는 이미 100여 개 국가에 널리 전해졌습니다. 여러분은 대학 교육을 받은 분들이죠? 모두 높은 학식을 가진 분들인데 왜 이렇게 초범적인 대법을 어서 살펴보지 않습니까? (원흉인) 장쩌민을 따라 ‘맹목적으로 휩쓸려 다니지’ 마세요.”
그들이 나에게 물었다. “장쩌민을 고소했습니까?” 내가 말했다. “고소했어요! 그는 대법을 박해했고 우리를 박해했으니 당연히 고소당해야 합니다.” 그들이 또 물었다. “처벌을 받았습니까?” 내가 말했다. “가택수색을 당했고, 구금됐고, 쇠의자에 앉혀졌고, 강제노동도 당했습니다.” 그들이 또 물었다.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내가 말했다. “곧 77세입니다.” 내가 되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한 사람은 판(潘)씨이고 다른 한 사람은 뤼(呂)씨라고 했다. 나는 또 물었다. “두 분 다 당원이시죠?” 그들은 맞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어서 빨리 탈퇴하세요! 중국인은 모두 염황의 자손이지, 마르크스·레닌의 순장품이 아닙니다!” 그들은 놀라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그러면서 급히 일어나 떠나려 했다. 나도 일어나 그들을 배웅하며 말했다. “꼭 기억하세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그들은 “배웅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나도 따라서 내려갔다. 그들이 경찰차에 오르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나는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그때의 분위기는 매우 자연스럽고 화목했다. 비록 그들이 내 앞에서 탈당하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전한 진상을 들었고 그들의 표정을 보니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30년의 수련 길을 넘어지고 부딪치며 걸어왔다. 사부님의 보호와 가지(加持) 속에서 숱한 비바람을 지나 오늘에 이르렀고 어느덧 나는 86세가 됐다. 천상이 크게 변하고 세상이 혼란스럽고 복잡한 이 환경 속에서, 대법제자는 더욱 용맹정진하여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더 많은 중생을 구할 수 있다. 아무리 고되고 어려워도 나는 원망도 후회도 없다.
제자는 사존을 굳게 믿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소중히 여기며, 법을 잘 배우고 정념정행(正念正行)으로 세 가지 일을 잘해 나갈 것이다.
개인의 체험이니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발표: 2025년 12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2/20/5034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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