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黑龍江)성 대법제자
[명혜망]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박해를 일으킨 지 이미 26년이 됐습니다. 저는 괴롭힘, 구류, 강제노동, 유랑 생활을 겪었고 직장을 잃었습니다.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하라.” 이는 중공 악당의 파룬궁 박해 정책으로, 이런 고압적인 상황에서 생존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박해 속에서 우리 세 식구는 불안 속에 살았지만, 온 가족이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에게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大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하고 남편과 아들은 수련하지 않지만 두 부자(父子)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굳은 믿음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든 날에도 그들은 절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법을 얻으러 온 생명이며 단지 제가 먼저 얻었을 뿐입니다. 겪은 일이 많지만 생활 속의 몇 가지 조각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997년 가을, 저는 파룬궁 소식을 듣고 마음속에 기쁨이 생겼으며 그때부터 대법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매일 법공부와 연공(煉功)을 하니 무척 충실했고 기분이 좋았으며 생활에 햇살이 가득했습니다. 1999년 7월 풍운이 돌변해 중공의 박해가 갑자기 발생했습니다.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됐지만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 있었습니다.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옳다. 대법은 내가 후회 없이 선택한 것이다.’
시련 속에서 남편과 아들이 시종 나와 함께하다
2003년 가을, 온 가족이 유랑 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시 외곽에 집을 세내어 살았습니다. 그때 경찰이 여전히 저를 찾고 있어서 우리는 감히 우리집에 돌아가지 못했고 남편도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차로 물건을 배달하는 일을 구했는데, 사장은 소자본으로 운영했고 월급도 매우 적었습니다. 남편은 부지런하고 유능하며 업무 능력이 뛰어났고 사람됨이 겸손하고 선량했습니다. 비록 수련하지 않지만 법의 기준에 따라 사람의 도리를 다했으며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대법제자(大法弟子) 가족이다. 절대로 대법에 먹칠해서는 안 된다.’ 남편은 거래처를 확장할 수 있었고 물건을 나르고 정리하며 장부도 명확히 하여 사장의 부담을 많이 덜어주었고 자신의 사업에 확신을 갖게 했습니다. 남편은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며 무척 고생했습니다.
몇 달이 지났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여 정념(正念)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밤 제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집으로 돌아가요. 우리집에 가서 살아요.” 남편이 말했습니다. “당신 괜찮겠어?” 제가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사부님께서 제게 정념을 주셨어요!” 이튿날 남편은 가게에 가서 사장에게 우리의 실제 상황을 말했습니다. 사장에게 알렸습니다. “제 아내는 파룬궁을 연마합니다. 체포됐었기에 어쩔 수 없이 집이 있어도 살지 못하고 직장이 있어도 다니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장래에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는 직면해야 하고 우리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는 또 타지 생활의 경험을 좀 이야기했고, 사장은 듣더니 무척 감격했습니다. 대법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고 그는 우리와 친구가 되기를 희망했으며 우리가 잘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 사장과 아쉽게 작별하고 아르바이트 생활을 끝냈습니다.
아들의 정념
다시 아들에 관한 한 토막을 말하겠습니다. 그해 장쩌민 고소 열풍이 불 때 저도 소원대로 장쩌민 고소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중공 악당은 또 이 일을 빌미로 박해를 일으켰고 경찰이 벌떼처럼 몰려와 저를 납치해 갔습니다. 아들은 즉시 사부님 법상(法像) 앞으로 달려가 사부님께 빌었습니다. “사부님, 제 엄마를 구해주세요. 6년 전의 비극이 재연되지 않게 해주세요.” 6년 전 제가 불법으로 강제노동을 당할 때 아이는 공포에 떨며 끊임없이 사부님께 빌었고, 또 제가 체포된 소식을 수련생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날 납치된 수련생이 많았는데 다들 함께 발정념(發正念)을 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加持)하에 저는 혈압이 높은 증상이 나타나 구치소에서 수감을 거부했고 새벽에 우리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은 기뻐하며 집에서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아이는 첫 일념으로 사부님을 생각했고 경건하게 사부님께 빌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생명입니까!
지난 수년간 대법제자는 줄곧 악당의 박해 압력 속에서 생활했고 박해 형식이 끊이지 않았지만, 우리가 법공부를 하고 마음속에 법(法)이 있으며 사부님이 계시기만 하면 넘지 못할 고비는 없습니다.
저는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법의 요구에 따라 했기에 심신에 변화가 일어났고 사상이 승화됐으며 인생의 목적과 생명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세 가지 일을 하는 동시에 저는 성숙해졌습니다. 비록 두려움이 때때로 맴돌고 명리정(名·利·情-명예, 이익, 정)도 때때로 마음을 건드렸지만, 수련의 길은 더욱 명확해졌고 사부님을 굳게 믿고 사부님의 대법을 굳게 믿으며 진정으로 회귀하는 길에 올랐습니다.
“우리집에 가서 사부님께 절 올립시다!”
악당 통치하에서 대법제자의 생활은 비록 속인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사부님의 보호하에 법의 요구에 따라 착실히 수련하면 모든 것이 변하게 됩니다.
남편은 비록 수련하지 않지만 대법 진상을 알고 사부님을 믿으며 사부님의 대법을 믿고 법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하며, 부지런하고 남을 돕기를 즐깁니다. 사부님께서도 끊임없이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기연(機緣)을 배치해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불법 강제노동을 당할 때 그는 직장을 잃었고, 아들을 잘 데리고 있어야 했으며, 또 돈을 벌어야 했고, 제 안전도 걱정해야 했습니다. 그때 그는 자주 잠을 설치며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 하루가 3년과 같음)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대 불평하지 않았고 제가 노동수용소에서 돌아왔을 때도 원망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남편은 현재의 직장을 얻었습니다. 듣기로는 일반인이 이 일을 얻으려면 20만 위안(약 4천만 원) 이상의 사례비를 써야 한다는데 남편은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집도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바꿨습니다. 지난해 그는 또 차를 샀습니다. 그날 밤을 기억합니다. 하늘에서 드문드문 투명한 눈꽃이 흩날리고 있었는데 제가 길가에 서 있었습니다. 밤이 늦어 길에는 차가 없었는데 한 줄기 강한 불빛이 저를 비추더니 그가 돌아왔습니다. 성(省) 소재지에서 산 새 차를 몰고 돌아온 것입니다. 그는 흥분해서 차에서 뛰어내려 저를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차야. 여보, 내가 당신 태우고 한 바퀴 돌게.” 그 순간 제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또 그에게 상을 주시고 격려해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요?” 그가 말했습니다. “알지, 알고말고. 우리집에 가서 사부님께 절 올립시다!”
우리집 이야기를 하려면 많습니다. 우리는 모두 법을 위해 온 생명이고 모두 사부님의 가족입니다. 단지 제가 먼저 법을 얻었고 그들도 한 걸음 차이일 뿐이며 모두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속에 있습니다! 여기서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집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위해 모든 것을 잘 배치해 두셨으니 대법에 대해 정념만 있다면 세상에 온 숙원(宿願)을 실현할 수 있고, 회귀하는 길에 올라 사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12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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