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중국 통신원)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과 장쩌민(江澤民) 정치 폭력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후, 2025년 11월 25일까지 층층의 봉쇄를 뚫고 민간 경로를 통해 이름과 신원이 확인된 파룬궁수련자 박해 사망자는 5283명에 이르렀으며, 그중에는 파룬궁을 수련하던 회계사 15명도 포함된다. 파룬궁수련자들은 단지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을 따르며 바르게 살고자 하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중공 관련 인원들에게 고문, 강제세뇌, 직위 박탈, 구금, 강제노동, 징역형, 심지어 살해까지 당했으며 생체 장기적출로 이윤을 추구한 사례까지 있다.
박해로 사망한 일부 회계사 직업의 파룬궁수련자 사진
이 15명의 회계사는 진선인을 따르며 바르게 살고자 하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많은 다른 수련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매도하고 경제적으로 차단하며 육체적으로 소멸시킨다”, “때려죽이면 헛되이 죽는 것이고 자살로 친다”는 등 소멸성 박해를 받았다. 그들이 학대당하고 살해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선양 루쉰미술대학 회계사 가오룽룽, 용모 훼손과 살인멸구 당해
파룬궁수련자 가오룽룽, 여성, 1968년생,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 루쉰(魯迅)미술대학 재무처 회계사. 집에서는 부모님의 효녀였고 직장에서는 좋은 동료였다. 또한 어려운 학생들을 후원하며 지도자와 동료, 이웃에게 칭찬을 받았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굳건히 수련했기 때문에 가오룽룽은 1999년 4월 25일 이후 중앙에서 지방까지의 정법위(政法委),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국가안전부, 공안, 소속 단위, 랴오닝성 고등교육공작위원회 등으로부터 다양한 박해를 받았으며 여러 차례 납치, 불법 구금, 고문을 당했다. 2005년 6월 16일 박해로 사망했으며 향년 37세였다.
다음은 가오룽룽이 당한 주요 박해 경험이다.
◎ 여러 차례 합법적으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으나 지독한 구타, 음식물 강제 주입, 노역 등을 당함
1999년 7월 23일 가오룽룽은 법에 따라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1999년 8월부터 10월 사이 가오룽룽은 세 차례 법에 따라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으나 베이징과 선양의 공안에 납치당했으며 경찰로부터 머리카락을 잡히고 목을 밟히고 앞가슴을 맞는 등 폭행을 당했다.
1999년 10월 26일 가오룽룽은 라디오 방송에서 장쩌민이 프랑스를 방문하는 동안 파룬궁을 “X교”라고 모독하는 말을 들었다. 이에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톈안먼(天安門) 광장으로 나아갔다.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사부님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가오룽룽과 광장에 있던 일부 수련자들은 베이징 서부역 구류소로 끌려가 몸수색 당하고 심문을 받았다. 가오룽룽은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타당했으며 13일간 단식으로 박해에 맞섰고 코에 호스를 꽂아 음식물을 강제 주입당했다. 1999년 12월 29일 베이징 경찰은 가오룽룽을 베이징에 머물지 못하도록 기차에 직접 태워 보냈다. 선양 공안과 610은 계속해서 그녀를 불법적으로 체포하려 했고 가오룽룽은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떠돌아다녀야만 했다.
2000년 2월 4일 중국 음력 섣달그믐날 밤 가오룽룽은 부모님을 뵈러 타지에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집 문턱에 들어서기도 전에 건물 아래에서 잠복해 있던 공안과 선양 루쉰미술대학 보위처 직원들에게 납치됐다. 그들은 가오룽룽을 선양시 구치소로 끌고 가 불법 구금했으며 강제노역을 시키고 ‘비행기 타기’ 등의 벌을 가했다.
2000년 5월 가오룽룽은 불법으로 2년의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고 파룬궁수련자들을 전담해 가두는 마싼자(馬三家) 노동수용소 여성 제2소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매일 강제로 제품을 만들어야 했다. 2001년 1월 가오룽룽은 집으로 돌아왔으나 계속해서 직장의 불법 감시를 받았다.
◎ 선양시 구치소에서 고문과 학대를 당하다
2003년 6월 20일 가오룽룽은 동료에게 진상을 알리려 했다는 이유로 그 동료의 아내에게 신고됐다. 이후 직장 지도부, 시 공안국 10처, 시 교육·과학·문화·보건 업무위원회 서기가 함께 가오룽룽을 불러 이야기하며 학생들과 접촉하지 말 것, 파룬궁에 대해 말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또 현지 파출소와 결탁해 가오룽룽을 납치하고 선양시 구치소로 끌고 가 박해했다. 구치소의 불법 경찰들은 가오룽룽에게 ‘뒷수갑(背銬)’을 채워 복도 홀 바닥에 눌러 앉히고 경찰 4명이 전기봉 4개로 가오룽룽을 전기고문했는데, 그중 한 전기봉은 입만 집중적으로 찔렀다. 이후 그녀를 ‘기결수 감방(이미 판결이 난 수감자를 가두는 방)’으로 끌고 갔다. 가는 동안 한 경찰이 계속 세게 발로 차서 그녀의 몸에 대면적의 검푸른 멍이 생겼다. 가오룽룽은 족쇄가 채워진 채 바닥에 고정된 쇠고리에 묶였고 손은 수갑에 짓이겨져 상처가 나며 많은 피를 흘렸다.
2003년 6월 말 가오룽룽은 불법 구금과 박해에 저항하여 단식했고 이에 호스를 통해 강제로 음식물이 주입됐는데 내용물은 소금이 많이 섞인 옥수수 가루 죽이었다. 죽은 그녀가 더 이상 삼킬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주입돼 질식에 이를 정도였다. 관을 뽑은 후 가오룽룽의 머리는 터질 듯이 심한 통증을 느꼈고 곧바로 구토와 설사를 했다.
◎ 선양 룽산 노동수용소에서 또 고문과 학대를 당하다
2003년 7월 8일 가오룽룽은 선양시 룽산(龍山) 노동수용소로 강제로 끌려갔다. 그곳의 불법 경찰들은 가오룽룽이 신앙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각종 체벌과 세뇌 수단을 사용했다. 그날 가오룽룽이 문 앞에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치자 룽산 노동수용소 제2대대 부대장 탕위바오(唐玉寶)가 다가와 얼굴에 주먹 두 대를 날렸다. 그녀는 얼굴이 붓고 한쪽 귀는 여러 날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가오룽룽은 또 쪼그려 앉는 벌을 받았으며 연속 4일 24시간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을 가는 것을 통제당하는 괴롭힘을 당했다. 가오룽룽은 매일 10시간 이상 강제노동에 참여해야 했으며 독성 제품을 다루는 작업, 예를 들면 밀랍 공예품이나 꽃 장식품 제작 등의 수공예 일을 시켰다. 가오룽룽의 신체 상태는 점점 악화됐으며 앞가슴, 등, 목 근육, 어깨뼈가 모두 아팠고 손과 팔도 다쳤다. 눈은 피로로 뜰 수 없었고 옷 세탁할 힘도 없었다. 2004년 중국 설 전후 가오룽룽은 메스꺼움과 구역질, 간 통증, 위 통증을 느꼈으며 조금 뛰거나 움직이기만 해도 심장이 견디지 못했고 온몸에 힘이 없었다.
2004년 3월 22일 제2대대 부대장 탕위바오는 불법 경찰 왕지창(王吉昌), 쩡샤오핑(曾小平)에게 가오룽룽을 관리과로 끌고 가게 했다. 탕위바오는 방 안으로 들어가 가오룽룽에게 주먹과 발로 폭행을 가했고 전기봉으로 가오룽룽을 전기고문했다.
2004년 5월 초 가오룽룽은 다행히 사부님의 경문을 얻었으나 ‘바오자(包夾, 수련자를 감시하는 죄수)’ 비수화(畢淑華)에게 빼앗겼다. 불법 경찰 장자오화(姜兆華)와 왕지창은 가오룽룽에게 경문이 어디서 났는지 캐물었고 가오룽룽은 대답을 거부했다. 이에 그녀는 전기봉으로 입을 여러 차례 전기고문 당했다.
2004년 5월 7일 오전 10시가 조금 지난 시각 가오룽룽은 2층 대대장 사무실로 불려갔다. 불법 경찰 장차오화는 그녀를 발로 차고 뺨을 때리며 두 개의 전기봉으로 얼굴과 손을 전기고문했다. 불법 경찰 왕지창은 그녀를 난방관에 수갑으로 채웠다.
2004년 5월 7일 오후 3시경 2층 대대장 사무실에서 제2대대 부대장 탕위바오와 장자오화는 가오룽룽을 바닥에 눌러놓고 전기고문을 시작했다. 그들은 전기고문을 하면서 물었다. “경문이 어디서 난 거냐? 말만 하면 오늘 끝난다.” 가오룽룽은 대답을 거부했고 불법 경찰은 계속해서 고압 전기봉으로 그녀를 전기고문했다. 동시에 탕위바오는 구두를 신은 발로 그녀의 허벅지와 종아리를 세게 차고 구두 뒤꿈치로 발을 짓밟았다. 맞은 부위에는 검푸른 멍이 남았다. 오후 4시 불법 경찰 장자오화는 퇴근하고 탕위바오는 오후 9시가 넘을 때까지 가오룽룽에게 전기고문을 계속했다.
가오룽룽의 얼굴 전체, 귀, 목, 등 뒤, 발목 등 여러 부위가 고압 전기봉으로 반복적인 전기고문을 당해 피부와 살이 화상으로 부풀고 물집이 생기고 그을었다. 얼굴은 주먹 하나 높이까지 붓고 심하게 변형됐다. 눈은 겨우 틈만 남았고 콩알만 한 노란 액체가 끊임없이 얼굴에서 스며 나왔다. 머리카락은 얼굴과 귀에 달라붙어 있었고 목의 물집은 엄지손가락만 했다.
가오룽룽은 고문으로 죽지 않기 위해 살길을 찾다가 사람들이 방심한 틈을 타 2층 사무실 창문에서 뛰어 내렸다. 그러나 장기간의 잔혹한 박해로 이미 극도로 쇠약해진 몸은 충격을 견디지 못해 크게 다쳤고 곧바로 선양 의대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다. 병원 진단 결과 왼쪽 다리 대퇴골두 골절, 골반 두 곳 골절, 오른쪽 발꿈치 뼈 균열이 확인됐다.
◎ 살인멸구를 당하다
가오룽룽이 위독하자 선양의 일부 파룬궁수련자들이 선양 의대 병원으로 가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가오룽룽을 구출했다. 그리고 가오룽룽이 전기고문으로 얼굴이 훼손된 사진과 사건 경위를 명혜망에 공개해 국제 사회의 강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공안부는 가오룽룽 탈출 사건을 ‘26호 대사건’으로 규정했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당시 중앙정법위 서기 겸 610 책임자였던 뤄간(羅幹)은 “이 사건은 국제적 파장이 너무 크므로 ‘잘 처리해야 한다’”라고 지시했다. 뤄간의 지시에 따라 랴오닝성 정법위, 610, 검찰, 사법, 공안 등 부처가 합심해 가오룽룽 관련 정보를 봉쇄했다. 당시 공안부장 저우융캉(周永康)이 직접 선양에 나와 지휘했으며 선양 주변 모든 시와 지역의 공안국, 철도·민항·유전 공안 부서들은 차례로 가오룽룽을 불법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랴오닝성 선양시 610, 선양시 공안국은 뤄간의 지시대로 엄격히 배치하고 다수의 공안과 특무(스파이) 인력을 비밀리에 파견하여 역, 부두, 모든 공공장소에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감시했다. 이들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현지 파룬궁수련자들을 도청, 수사, 추적했다.
2005년 3월 6일 가오룽룽은 다시 납치당했다. 그리고 3개월 후인 2005년 6월 16일 가오룽룽은 박해로 인해 사망했으며 향년 37세였다. 그녀의 구출에 참여했던 파룬궁수련자들 또한 모두 불법적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2. 반복된 고문과 박해 – 회계사 천추쥔, 정신병원에서 학살당해
파룬궁수련자 천추쥔(陳楚君)은 여성으로 대학을 졸업했으며 후난(湖南)성 화이화(懷化)철도남역의 회계사였다. 1999년 ‘7·20’ 이후 중공과 장쩌민 정치 폭력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으나 천추쥔은 꾸준히 파룬따파를 수련했다. 그녀는 파룬궁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7차례 청원했으며 그 과정에서 각종 불법 구금과 고문을 당하며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2009년 3월 화이화 제4병원(정신병원)에서 박해로 사망했으며 당시 나이는 30대였다.
◎ 후난 주저우 바이마룽 여자 노동수용소에서 중추신경 손상 약물 주입당해
2000년 9월 천추쥔은 불법으로 강제노동 처분을 받아 후난성 주저우(株洲) 바이마룽(白馬壟) 여자 노동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날 천추쥔은 ‘전향팀’에 수감되는 것에 항의했으나 불법 경찰이 감시 인력들을 선동하여 우르르 달려들어 그녀를 바닥에 눕힌 뒤 두 손을 줄로 묶고 얼굴을 붙잡아 고정시키고 머리를 강제로 잘랐다. 그녀의 긴 머리는 마구 잘려나갔다. 천추쥔은 박해에 항의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6일 후 그녀는 의료실로 끌려가 수액을 맞았고 약 반 달 후에는 감옥경찰이 감시인 두 명을 붙여 그녀가 의료실에서 지내도록 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불법 인원들은 수액용 포도당 약병에 ‘둥몐링(冬眠靈, 동면령)’과 ‘둥몐1호(冬眠一號)’라는 약물을 주입했다. 이 약물은 뇌 중추신경을 손상시켜 그녀의 뇌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기억력을 저하시켰다. 진실을 숨기기 위해 불법 경찰들은 매일 소량의 ‘둥몐1호’를 주사했는데 그것은 마치 만성 중독처럼 작용했다. 이 약을 맞으면 사람은 마치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졸리며 깨어난 후에는 아무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마치 백치처럼 행동하게 된다.
의무실은 천추쥔에 대한 소식을 철저히 봉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추쥔은 해당 노동수용소의 연계 기관인 주저우 화공제련공장 직원 병원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녀에게 강제로 위관을 삽입하던 중 그녀의 위, 담낭, 간에 모두 문제가 있는 것이 발견됐다.
노동수용소 불법 경찰은 방 안의 모든 파룬궁수련자를 서로 수갑으로 연결하고 공중에 매달아 고정시키고 발끝만 바닥에 닿게 하는 방식으로 고문했다. 천추쥔은 이러한 형벌을 받은 후 온몸이 심하게 떨렸는데 침대마저 같이 흔들렸다. 불법 경찰은 작은 일에도 방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밤새 서 있게 강요했으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기봉이나 주먹과 발로 폭행했다. 여성 수련자들이 자는 곳에는 전기봉을 든 사나운 남성 특경이 문을 지키며 밤을 보냈다. 한 방마다 한 명씩 배치됐고 밤에 파룬궁수련자가 연공을 하면 남성 특경이 전기봉을 들고 달려왔다. 파룬궁수련자 대부분은 몸 곳곳에 전기고문 흔적이 남아 있었으며 보는 사람 모두 경악할 정도였다.
◎ 후난성 여자감옥에서 장기간 고문과 박해를 당하다
2002년 8월 중순경 천추쥔은 법에 따라 베이징에 청원하러 간 이유로 후난 화이테운송법원에서 불법으로 3년 형을 선고받고 후난성 여자감옥으로 끌려가 계속 박해당했다. 후난성 여자감옥은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검은 소굴이었는데 특히 ‘교전중대(教轉中隊, 전향 교육 중대)’는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가장 사악한 곳이었다. 예를 들면 파룬궁수련자는 일상생활에서 서로 돕는 것이 금지됐고 노동 중에도 서로 돕는 것이 금지됐으며 항상 ‘바오자 죄수’가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감시하며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불법적으로 제한됐다. 파룬궁수련자끼리 입을 열기만 하면 누군가가 끼어들어 막았고 서거나 앉을 때도 반드시 작업 죄수를 끼워 넣었으며 심지어 밤에 화장실을 가도 따라가서 지켜보았다.
2004년 6월 파룬궁수련자 천추쥔은 엄격관리대(嚴管隊)에 수감돼 박해당했다. 천추쥔과 옌훙(言虹), 샤오루이린(肖瑞林) 등 파룬궁수련자들은 감옥경찰 리춘후이(李春暉) 등의 지시를 받은 죄수 옌메이잉, 장건린(張根林) 등에 의해 공중에 매달려 구타당했으며 의식을 잃기도 했다. 또한 그녀들의 몸을 더듬는 등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
2005년 3월경 파룬궁수련자 천추쥔, 옌훙, 샤오루이린, 허리자(何麗佳), 쉬안허화(宣荷花) 등 다섯 명은 함께 파룬따파 경문을 외우며 파업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이에 리링(李玲)을 중심으로 한 여러 명의 불법 경찰과 바오자 죄수들은 40일 이상 지속적으로 그들을 고문했다. 고문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전기봉 구타, 각종 수갑 채우기, 외발 의자에 앉히기, 벌서기, 악독한 강제 급식, 독방 감금 등 다양한 고문 교차 반복. 박해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끊임없이 이루어졌으며 식사조차 강제로 외발의자에 앉게 했다. 샤오루이린은 전기고문과 매달아 수갑 채우기(懸銬)로 여러 차례 기절했다. 약 20일간 단식한 천추쥔은 강제로 달리기를 당하고 5층에서 1층으로 거꾸로 끌려 내려가 독방에 갇혔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죽다 살아날 만큼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천추쥔은 과거 고문으로 눈이 실명한 적이 있었고 두 다리도 걷지 못할 때가 있어 화장실에 갈 때 사람의 등에 업혀야 했다. 한번은 천추쥔이 다리 때문에 걸음이 불안정하고 달리기와 팔굽혀펴기를 할 수 없자 불법 경찰은 바오자 죄수 장건린과 다른 바오자 죄수에게 천추쥔을 바닥에서 빙빙 끌도록 명령했다. 그 후 다시 독방에 감금하고 수갑과 족쇄를 주야로 채워 잠을 잘 때도 엎드린 자세로만 자야 했다. 바오자 죄수 장건린은 플라스틱 원형 통으로 천추쥔의 목을 연속으로 수십 차례 세게 찌르며 “재밌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바오자 죄수는 “나도 해보자”고 했다. 천추쥔은 찔린 목 부위가 심하게 아프고 부어 침을 삼키는 것도 고통스러웠고 말도 할 수 없었다. 한번은 불법 경찰 리링이 전기봉으로 천추쥔을 전기고문하며 공중에 매달아 기절시키기도 했다. 바오자 죄수 옌메이잉은 천추쥔을 힘껏 잡아당기고 꼬집더니 “살아있으니 괜찮다, 계속 매달아라”고 말했다.
◎ 올림픽 전에 납치돼 살해당하다
2008년 5월 올림픽 ‘안전’과 올림픽 성화 후난 입성을 명목으로 화이화시의 악당 정부와 ‘610’ 등 사악한 조직은 시 전역에서 파룬궁수련자들을 대상으로 납치, 가택수색, 괴롭힘 등 박해를 자행했다. 수십 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납치돼 구금됐다.
2008년 5월 10일경 천추쥔은 화이화시에서 차량을 이용하던 중 ‘610’ 등 불법 인원들에게 납치당했다. 천추쥔은 다른 지역인 지강(芷江) 구치소에 구금됐으며 그 기간 마약 범죄자 샤오첸룽(肖前蓉), 천야동(陳亞冬)에게 폭행당해 머리가 터지고 피가 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추쥔은 또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고 재차 주저우 바이마룽 여자 노동수용소로 납치됐다. 그 후 건강 문제로 인해 ‘610’에 의해 화이화시 세뇌반으로 끌려가 박해를 당했다. 2009년 3월 천추쥔은 또 화이화 제4병원(정신병원)으로 납치돼 고문을 당했고 결국 박해로 사망했다.
3. 헤이룽장성 다칭 유전 회계사 가오슈란 부부 박해로 사망
파룬궁수련자 가오슈란(高秀蘭)은 원래 다칭(大慶) 유전 채유 3공장 작업대대 재무총괄이자 회계사였다. 그녀는 젊었을 때부터 심한 신경성 두통을 앓아 잠을 잘 수 없었고 자주 눈살을 잔뜩 찌푸렸으며 두통이 심할 때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견디기 힘들어했다. 또한 위장도 좋지 않아 먹기만 하면 바로 토하기 일쑤였고 성질도 까칠하고 난폭해졌다. 1998년 4월 가오슈란은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온몸의 병이 기적처럼 치유됐다. 오랜만에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남편 자오청샤오(趙成孝)도 이에 영향을 받아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가오슈란과 자오청샤오 부부는 모두 1947년생으로 원래 사얼투(薩爾圖)구 채유 3공장에 거주하다가 이후 랑후루(讓胡路)구 촹예청(創業城) 단지로 이사했다. 중공과 장쩌민 정치 폭력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 가오슈란 부부는 진선인을 지키며 선한 사람으로 살려는 신앙 때문에 수년간 중공 불법 인원들의 괴롭힘, 납치, 구금, 형사처벌, 경제적 갈취 등 박해를 받았다. 부부는 신체적·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으며 건강 상태는 날로 악화됐다. 결국 가오슈란은 2021년 4월 27일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났고 자오청샤오는 2022년 2월 19일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파룬궁수련자 가오슈란과 자오청샤오 부부가 박해당한 경험은 다음과 같다.
◎ 여러 차례 납치, 갈취, 강제노동 등
2000년 12월 22일 가오슈란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허베이(河北)성 청더(承德)에서 납치돼 다칭 구치소에 4개월 이상 구금됐으며 다칭 유전 채유 3공장 종합사무실에 의해 현금 1759위안을 갈취당했다.
2000년 12월 자오청샤오는 법에 따라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파룬따파를 칭송하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먼저 톈안먼 무장경찰에게 납치돼 첸먼(前門) 파출소로 끌려갔다. 그 후 주베이징 다칭 사무소로 강제로 이동됐고 다시 채유 3공장 융쥔(擁軍) 파출소 경찰에 의해 다칭으로 납치돼 4개월 이상 불법 구금됐다. 그 기간 주베이징 다칭 사무소에 현금 2000위안을 갈취당하고 채유 3공장 종합사무실에 2982위안을 갈취당했다.
2001년 3월 24일 가오슈란 부부는 치치하얼(齊齊哈爾)시 톄펑(鐵鋒) 공안국 경찰에 의해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당했고 현금 1만4000위안을 압수당했다.
2009년 가오슈란은 밖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납치됐으나 소위 ‘처분보류’로 집으로 풀려났다.
2010년 4월 1일 가오슈란은 다칭 랑후루구 쓰신(四新)진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랑후루구 룽강(龍崗) 공안분국 경찰에 의해 구금됐고 이후 불법 강제노동 1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건강 상태로 인해 노동수용소에서 수용을 거부했고 소위 ‘처분보류’ 1년으로 귀가했다.
2011년 가오슈란은 다칭 싸구 신촌에서 진상 DVD를 배포하던 중 납치됐다가 이후 집으로 풀려났다.
◎ 진상을 알리다 납치·가택수색, 불법 판결을 당하다
2014년 8월 5일 오후 가오슈란은 다칭 촹예청 단지에서 진상을 알렸다. 션윈(神韻) 공연 CD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단지 내 주민들에게 “지금 천재지변이 많으니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경건하게 외우면 불행을 피하고 재난을 면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는 사람들에게 재난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큰 선행임에도 불구하고 랑후루구 청펑(乘風) 공안분국 경찰에게 추적당하고 납치됐다. 경찰은 그녀의 가방에서 버스 노인카드를 발견하고 이름, 주소, 신분증 번호를 확인한 뒤 가방에서 집 열쇠를 찾아내어 그녀의 집을 불법으로 수색했다. 집에서 진상 자료를 출력하고 있던 자오청샤오도 납치됐다. 집 안의 파룬궁 서적, 대법사부님의 초상, 진상 자료, 컴퓨터, 프린터, 종이 등 개인 물품은 모두 약탈당했다.
가오슈란과 자오청샤오 부부는 각각 다칭 제1구치소와 제3구치소로 납치돼 불법 구금됐다. 그 기간 가오슈란은 혈압이 240까지 치솟고 피부에 궤양이 생기며 어지럼증과 두통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때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변호사가 가오슈란을 위해 ‘보석 조치’를 신청했으나 불법적으로 거부당했다. 다칭시 공안국 청펑 분국, 랑후루구 검찰원, 랑후루구 법원은 서로 결탁하여 악의적으로 공모하고 증거를 날조하며 자오청샤오와 가오슈란 부부를 상대로 총 세 차례 불법 공판을 진행했다. 결국 부부에게 각각 3년 6개월의 불법 형벌이 선고됐다. 부부는 법에 따라 항소했으나 다칭 중급법원은 부당하게 원심을 유지했다.
자오청샤오는 2015년 5월 13일 헤이룽장성 후란(呼蘭) 감옥으로 납치돼 계속 박해받았고, 가오슈란은 2015년 5월 20일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돼 계속 박해를 받았다.
◎ 가오슈란 억울하게 세상 떠나다
가오슈란은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된 다음 날 검진 결과 좌측 유방암으로 확진됐다. 감옥은 그녀에게 ‘전향’을 강요하며 사악한 ‘4서(四書, 네 가지 수련 포기 각서)’를 쓰도록 강요했으나 가오슈란은 거부했다. 3개월 후인 2015년 8월 감옥경찰은 사악하게 깨우친 자들을 시켜 가오슈란을 속였고 가오슈란은 속임수에 넘어가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후 가오슈란은 감옥에서 속임수로 4서를 베껴 쓴 것에 대해 깊이 뉘우쳤다. 또한 지역사회 등 불법 인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며 극심한 고통 속에서 건강이 점점 악화됐고 기존 병이 재발하며 참을 수 없는 두통에 시달렸다. 결국 2021년 4월 27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2021년 6월 자오청샤오는 집에서 청펑 공안분국 소속 두 명의 사복 경찰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불법으로 영상 촬영을 당했다. 2021년 12월 초 어느 날 오전 누군가 자오청샤오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날 저녁 동네 경찰이 자오청샤오의 집을 찾아와 괴롭혔다. 2022년 정월 17일 바쁘게 일하던 아들이 아버지 자오청샤오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자오청샤오는 이미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상태였으며 향년 76세였다.
4. 그 밖에 12명의 회계사 직업을 가진 파룬궁수련자들이 박해로 사망한 상황
표 1. 12명의 회계사 직업을 가진 파룬궁수련자들이 박해로 인한 사망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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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
이름 |
성별 |
박해로 사망 당시 나이 |
전직 직위 |
명혜망 공개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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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저우수제(周淑傑) |
여 |
66세 |
전 자무쓰(佳木斯)시 융훙(永紅)구 직속 인쇄공장 주임 회계사 |
《헤이룽장 17명 회계사, 신앙 고수로 박해 사례》【명혜망 2025년 2월 15일】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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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왕쥐안(王娟) |
여 |
54세 |
전 치치하얼시 건축기계공장 회계사 |
《헤이룽장 17명 회계사, 신앙 고수로 박해 사례》【명혜망 2025년 2월 15일】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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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진춘셴(金春仙) |
여 |
66세 |
헤이룽장성 둥닝(東寧)현 전력발전소 퇴직 회계사 |
《헤이룽장 17명 회계사, 신앙 고수로 박해 사례》【명혜망 2025년 2월 15일】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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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궈슈전(郭秀珍) |
여 |
44세 |
치치하얼 푸라얼기(富拉爾基)구 우유회사 회계사 |
《헤이룽장 17명 회계사, 신앙 고수로 박해 사례》【명혜망 2025년 2월 15일】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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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루구이팡(魯桂芳) |
여 |
63세 |
전 랴오닝성 잉커우(營口) 권연공장 총회계사 |
《원 잉커우시 국안국 규검 서기 마텐융 박해로 사망》【명혜망 2007년 8월 31일】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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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리펑쥔(李鳳君) |
여 |
52세 |
랴오닝 진저우(錦州) 진톄(錦鐵)건축공정 2단 조수 회계사 |
《박해 중 수련 포기, 진저우 리펑쥔 병 재발 사망》【명혜망 2005년 4월 6일】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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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오영자(吳英子) |
여 |
68세 |
지린(吉林)성 왕칭(汪清)현 사회복지공장 회계사 |
《지린 조선족 오영자 노인 박해로 사망》【명혜망 2010년 11월 12일】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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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위이(余毅) |
여 |
49세 |
후베이(湖北)성 전력건설 2회사 회계사 |
《우한 파룬궁수련자 20년간 박해 종합(3)》【명혜망 2019년 12월 19일】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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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어우쉐윈(歐雪昀) |
여 |
37세 |
윈난(雲南) 항공물류회사 재무총감, 회계사 |
《윈난 제2여자감옥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자 사례 분석》【명혜망 2021년 1월 8일】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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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마오쿤(毛坤) |
여 |
57세 |
청두(成都) 우수 회계사 |
《2021년 상반기 쯔촨 파룬궁수련자 박해 종합》【명혜망 2021년 8월 17일】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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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자오위린(趙玉琳) |
남 |
약 60세 |
광둥(廣東)성 알루미늄 합금 성형공장 회계사 |
《광둥 포산 파룬궁수련자 13년간 박해 개요》【명혜망 2012년 12월 9일】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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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량후이링(梁惠靈) |
여 |
61세 |
스쟈좡(石家莊)시 39중 회계사 |
《량후이링 노인 생전 7회 납치(사진)》【명혜망 2011년 5월 3일】 등 |
중공이 정권을 탈취한 이후 ‘삼반 운동’, ‘오반 운동’,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1989년 ‘6·4사건’(천안문 사태)에 이르기까지 각종 운동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1999년 7월 20일부터는 선량한 파룬궁수련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연이은 피로 물든 학살에 8천만이 넘는 중국 동포가 희생됐는데 이 사망자 수는 두 차례 세계대전의 총합보다 많다. 말하자면 공산악당(중공)의 죄악은 너무 많아 죽간을 다 써도 다 적을 수 없다.
사람이 다스리지 않아도 하늘이 다스린다. 중공의 해체는 임박했다! 2002년 구이저우(貴州)성 핑탕(平塘)현 장부(掌布)향 마을에서 500년 전에 약 2억 7천만 년 된 거대한 바위가 갈라졌고 그 위에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産黨亡)’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중국 지질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이 글자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2004년 《9평 공산당(九評共産黨)》(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이 세상에 등장하여 중공의 죄악을 체계적이고 생생하게 폭로했고 공산악당의 본성을 체계적이고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현재 천재지변과 인재(人災)가 난무하여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명석한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모두 중공을 향한 경고이며 중공을 지지하는 사악한 당파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중공의 사악함을 깨닫고 천멸중공의 징조를 이해하며 더 이상 중공과 함께하지 않는바 속속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선택하고 있다. 지금까지 4억 5천 5백만 명 이상이 중공 악당이 조종하는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하여 자신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이 구원의 기회를 잡아 중공이라는 도적선에서 뛰어내리고 삼퇴하여 안전을 지키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3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30/5030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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