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법회] ‘사(私)’를 닦아버리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따라 수련을 시작했고, 올해로 벌써 30년이 됐습니다. 저는 수련 중에서 제 ‘자아(自我)’가 강하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남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남을 이해하지 않으며 항상 제가 옳다고 여기는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저는 또 ‘자아’가 ‘사(私)’의 일종의 표현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저는 최근 업무와 생활 중에서 ‘사’를 닦아버린 경험을 공유하여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업무 중에서 ‘사(私)’를 닦아버리다

제가 속한 회사는 작지만 정예 팀이고, 저는 팀 책임자로 부하직원 3명이 있는데, 그중 부하직원 A와 B는 같은 직무이고 C는 다른 직무입니다. 제 본성이 매우 ‘개인주의적’이어서 남을 별로 신경 쓰지 않기에, 저는 사람 관리하기를 원치 않았고 또 잘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네 사람은 각자 자기 업무를 독립적으로 책임지며 아무 일 없이 지냈는데, 최근 몇 달간 팀 내 문제가 집중적으로 폭발했습니다.

사건 1:

회사에서 올해 새로운 복지 혜택을 추가했는데 직원들에게는 매력적인 것이었지만, 규정 준수와 관련된 일부 원인으로 B는 이 혜택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B는 이 혜택을 간절히 원해 스스로 자신의 인맥을 통해 규정 준수 문제에 대해 다방면으로 자문했습니다. 저 역시 타 부서 동료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소통했습니다. 당시 제 업무도 꽤 바빴지만 B의 일을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갖가지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B가 다른 지역에서 근무했기에 그녀는 제가 그녀를 위해 한 이런 일들을 몰랐습니다. 어떤 수속을 밟아야 했는데 시간이 매우 촉박해 저는 A에게 어서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A는 당시 처리하긴 했지만 매우 화가 나서 제 상사를 직접 찾아가 상황을 알렸습니다. 이와 동시에 B는 이 방안이 자신의 이익에 일정한 손해를 끼친다고 여겨 회사에 보상을 요구했고, 보상해주지 않으면 이 복지 혜택을 받을지 고려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화상으로 B는 제게 불만을 쏟아내며, 제가 그녀의 일을 신경 쓰지 않아 무슨 일이든 다 자신이 직접 알아봐야 했다며 섭섭해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그 순간 견딜 수 없었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녀 일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A에게 원망을 사며 상사까지 찾아가게 했는데 B는 고마워하지도 않는구나.’ 저는 이 상황을 상사에게 보고했는데 상사도 제가 처리를 잘 못했다며 저를 질책했습니다.

퇴근길에 생각할수록 억울해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습니다. 법리(法理)상으로는 이것이 저를 시험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지만 마음은 몹시 괴로웠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전법륜)를 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우선 억지로 참으며 강제로 그 일 자체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사부님의 시를 외웠습니다.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억울함이 끊임없이 치밀어 오르면 저는 끊임없이 외웠습니다. 다음 날이 그달 처리 마감일이었는데, 안 그러면 다음 달로 미뤄야 했고, 게다가 A는 우리 쪽 수속을 다 마쳤고 B가 있는 지역의 수속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전에 억울함을 참고 상사와 함께 B에게 줄 보상 방안을 상의했고, 확정한 후 B에게 전화했으며 상사는 옆에서 듣고 있었습니다.

B의 태도는 지난번 소통할 때와 마찬가지로 제게 각종 불만을 표했고, 저는 이번에는 정면으로 대하며 사실대로 제가 그녀를 위해 한 갖가지 일들과, A가 그녀 일 때문에 야근하며 협조한 상황을 다 말해줬습니다. 그녀는 듣더니 보상 방안을 받아들였고 자신이 우리를 오해했음을 알았으며 전화상으로 제게 사과했습니다. 당일 B는 거주지 수속을 밟았고 모든 일이 해결됐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저의 많은 억울해하는 마음을 닦아버렸습니다. 또한 저는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내 관점에서 문제를 고려했고 부하직원의 관점에서 고려하지 않았구나. 여전히 사(私)다. 내가 사람 관리를 싫어했기에 B의 일을 마지막까지 미루다가 B가 기다리다 못해 재촉해서야 비로소 해결하기 시작했지 않은가. 근본적으로 따지면 내가 먼저 책임을 다하지 못한 문제가 있어 부하직원의 불만을 초래한 것이다.’

사건 2:

사건 1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두 가지 일이 생겼습니다.

첫 번째 일: 사건 1 때문에 A가 몹시 화가 나서 제 상사를 찾아가 업무상 저의 많은 문제점을 말했는데, 주로 제가 관리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제게 불만이 매우 컸습니다.

그들이 면담을 끝낸 후 상사는 곧장 저를 찾았습니다. 저는 A의 피드백을 듣고 첫 반응은 역시 억울함이었고 그다음에는 답답했습니다. 관리 문제에서 제가 잘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노력해서 고치고 있었지만 부하직원과 상사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다 듣고 나서 상사에게 말했습니다. “팀장님이 만족하지 못하신다면 저를 교체해주세요.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겠습니다.”

두 번째 일: 업무 분장 일로 B가 또 제게 문제를 제기하며 A와 업무 분장 경계를 확실히 해달라고 요구했고, A의 업무 습관과 방식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동시에 제게 몇 가지 일을 열거하며 증명했습니다.

이 통화는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는데 그녀는 시종일관 강한 태도였고 몹시 화를 냈습니다. B가 말한 상황에 대해 저는 대부분 잘 몰랐지만, B가 말한 상황이 확실히 A에게 존재하는 문제임은 분명했습니다.

통화 중에 저는 먼저 태도를 분명히 했습니다. “A의 업무 중에 나타난 이런 문제는 주로 제가 관리 책임을 다하지 않아 명확한 요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동시에 두 사람의 업무 분장에 대해서도 제가 전혀 관여하지 않아 두 사람의 협력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머리가 지끈거렸고 이것이 또 저를 시험하러 왔음을 알았습니다. B의 태도가 어떠한지는 이제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내심 매우 괴롭고 하기 싫고 두려운 생각이 또 올라왔습니다.

이 두 가지 일이 연달아 발생하자 저는 이것이 또 제게서 ‘사’를 닦아버리게 하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상사에게도 이 상황을 보고했고, 상사의 피드백 역시 제게 조속히 문제를 해결하고 업무 분장 문제부터 시작해 매주 주간 회의를 열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해결 방안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매일 이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부하직원의 업무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내가 원하고 원하지 않고를 생각지 말고, 자아의 느낌을 내려놓고 남을 위해 생각하자.’

약 2주 정도 시간을 들여 방안을 생각한 후, 저는 억지로 머리를 들이밀고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사전에 충분히 준비했기에 업무 절차상의 모든 세부 사항부터 발생할 수 있는 문제, 그리고 후속 해결 방안까지 팀원들에게 하나하나 말해줬고, 회의에서 A와 B도 개선 건의를 내놓아 최종적으로 의견 일치를 보았으며 다음 달부터 실행하기로 했습니다.

회의 후 상사도 이번 결과에 만족을 표하며 이것이 저의 진짜 능력인데, 이전에는 저의 의지 문제로 마땅한 수준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날 퇴근하고 집에 오자 마음의 짐을 반쯤 던 것 같았고, 제게 이런 기회를 배치해 또 일부 ‘사심(私心)’을 닦아버리게 해주신 사부님께 매우 감사드렸습니다.

하지만 이어서 또 도전이 닥쳤는데 바로 매주 주간 회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팀이 월초에 한 번 회의하고 그달의 업무를 배정한 뒤 각자 독립적으로 일했는데, 이제 매주 하는 것으로 바뀌니 마음속으로 몹시 두려웠습니다. 매번 회의 전 저는 많은 시간을 들여 마음을 다잡아야 했고 매번 회의 때마다 억지로 머리를 들이밀고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두려운 걸까? 왜 회의하기 싫은 걸까?’

얻은 답안은 이러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내 관점에서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잘 못하는 일이라고 여기지, 팀의 관점, 부하직원의 관점, 상사의 관점에서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 여전히 사(私)의 표현이다.’

매주 회의 전 저는 끊임없이 법을 외우며 자신의 ‘사심’을 이겨냈고, 점차 두려운 정서가 점점 약해졌습니다. 또한 이렇게 정례 회의를 한 이후 과거에 존재하던 문제들도 하나하나 해결됐습니다. 최근 A, B의 업무 상태도 많이 좋아졌고 두 사람 사이의 갈등도 부지불식간에 약화됐음을 느낍니다.

2. 생활 속에서 ‘사(私)’를 닦아버리다

얼마 전 이모가 전화해 우리집에 오시겠다고 했는데 무슨 일인지는 말하지 않았고, 제가 집에 있을 때 오시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듣자마자 어머니(수련생)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마 돈 빌리러 오시는 걸 거예요.” 왜냐하면 작년에 이모가 사촌 동생 때문에 제게 두 번 돈을 빌린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이유도 말하지 않고 급히 쓴다고 해서 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바로 송금해드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모가 또 돈을 빌리려 했는데 이번에 제가 이유를 묻자 사촌 동생에게 빌려주는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이유는 사촌 동생이 상사에게 비행기 표를 사줘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집에 손을 벌린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비행기 표 가격을 조회해보니 이모가 빌리려는 금액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저는 돈을 이모에게 송금해드렸지만 이번에는 이모에게 사촌 동생에게 속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그들이 돈을 빌리러 온다면 대다수 사촌 동생 때문일 거라 짐작했습니다. 주말에 그들이 와서 상황을 말했는데, 사촌 동생이 끊임없이 집에 돈을 요구해 집안의 예금을 다 가져갔고, 이모와 이모부의 연금으로도 부족해 이모부가 신용카드 여러 장으로 현금 서비스를 받았으며, 친척과 친구들에게도 돈을 빌렸는데, 지금 저에게 빌리려는 것은 신용카드 만기일과 이웃에게 빌린 돈을 갚을 시간이 됐는데 갚을 수 없어서였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듣고 매우 불쾌했고 그들이 그렇게 무한정 사촌 동생에게 돈을 주는 것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촌 동생은 1년 넘게 집에 오지 않았기에 우리 둘 다 사촌 동생이 밖에서 무슨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저도 이모부에게 제가 빌려주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빌려드릴수록 이모부는 사촌 동생에게 돈을 주셔야 하고, 그러면 악순환이 됩니다. 제가 안 빌려드리면 이모부도 돈이 없고 사촌 동생이 돈을 달라고 해도 줄 능력이 없으니, 이모부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입니다.” 이모부는 제 말을 듣더니 바로 가려고 했습니다. 돈을 빌리러 온 것 자체가 창피한데 제게 거절당하자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모부가 너무 격동한 것을 보고 붙잡을 수 없어서 이모를 남게 했습니다. 이모는 어머니와 상의해 돈을 좀 적게 빌려서 우선 이모부의 신용카드 금액이라도 갚을 수 없는지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동의했고 저는 속으로 몹시 싫었지만 저도 태도를 표명했습니다. “이 일은 엄마 말을 들을게요. 엄마가 빌려주라고 하면 빌려드릴게요.”

이모가 간 후 저는 생각할수록 답답해 소파에 앉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전에 우리집에서 집을 살 때 계약금이 부족해 이모에게 돈을 빌리려 했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이모네는 돈이 있었지만 전화로 어머니에게 “우리 집은 돈 없어, 안 빌려줄 거야”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게다가 우리집이 가장 어려웠을 때 이모는 1년 내내 우리를 보러 오기는커녕 전화 한 통 없었습니다. 또 한번은 이모가 어머니를 데리고 친척 장례식에 가려고 왔는데, 어머니가 이모 전화를 못 받자 문을 들어서자마자 어머니를 마구 쏘아붙였고, 저는 당시 듣다 못해 이모에게 바로 말대꾸해버렸습니다.

과거의 온갖 일들이 하나하나 떠오르자 생각할수록 답답했습니다. 어머니는 제 상태를 보고 빌려주기로 동의한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모는 박해 전에 수련했지만 1999년 박해가 발생한 후 연마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해 기간에 이모네는 실제 행동으로 우리의 수련을 지지했습니다. 어머니는 이번 일을 통해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고 이모가 다시 수련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했던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이성적으로는 찬성했지만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이모의 과거 일에 앙금이 남아있었습니다. 저도 제가 틀렸고 이것이 자신의 ‘사(私)’와 어머니에 대한 정(情)을 건드려서 마음을 풀지 못하고 이렇게 분해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파에 앉아 마음이 평온해질 때까지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전법륜)를 외웠습니다.

다음 주 이모부의 신용카드 상환 만기일 전, 어머니는 이모에게 계좌번호를 물으면서 그들이 빚진 돈이 총 얼마인지 물어보셨습니다. 어머니는 전화를 끊고 저와 상의하며 그들이 빚진 돈을 전부 빌려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듣자마자 답답한 마음이 또 올라와 여전히 싫었지만, 이번에는 이성이 조금 더 우위를 점해 어머니가 결정하시라고, 어머니가 빌려주고 싶은 만큼 빌려드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이모에게 다시 전화해 빚을 다 갚을 수 있게 빌려주겠다고 하자 전화기 너머로 이모와 이모부가 감동하여 울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집에 돈을 가지러 왔을 때 어머니는 그들에게 “내가 수련인이기에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하며, 동시에 지난 몇 년간의 수련 경험과 직접 겪은 체험을 말해줬습니다. 이모는 다 듣고 나서 큰 감동을 받았고 그 자리에서 다시 수련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퇴근하고 집에 오자 어머니가 낮에 있었던 일을 말해줬는데, 저는 감개무량하면서도 한숨이 나왔습니다. 감개무량한 것은 이 돈을 헛되이 빌려주지 않았고 이모가 다시 수련할 수 있게 된 것은 확실히 큰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주: 이모는 이전에 수련한 적이 있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고, 이번 일도 사부님께서 이모를 관리해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돈을 빌려줘서 수련하고 안 빌려주면 수련하지 않는다는 게 아닙니다). 한숨이 나온 것은 제 ‘사심’이 너무 무거워서, 과거 이모가 어머니에게 줬던 상처 때문에 이모를 계속 용서하지 않아 하마터면 수련의 기연(機緣)을 놓치게 할 뻔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너무 형편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사부님의 신묘한 배치에 감사드렸습니다. 저의 문제를 폭로해 이 ‘사심’을 닦아버리게 해주셨고, 이모에게도 다시 수련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최근의 경험을 통해 저는 사심이 정말로 사람을 해치며, 제게 여전히 많은 ‘사’의 표현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끊임없이 정진해야만 사부님의 제도해주신 은혜에 보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허스(合十)

(명혜망 제22회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2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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