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전편에 이어)
3. 선념이 나오자 심신이 변하다
구(區) 검찰원이 고소를 접수하지 않자 저는 시 검찰원 고발·신고과에 갔습니다. 시 검찰원도 접수하지 않자 시 공안국 민원실에 들러 구 공안분국 정보(政保, 정치안전보위) 경찰의 위법 집행을 신고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보조 경찰이 저를 맞이했는데 얼굴에 심술보가 가득했고 태도가 차가웠습니다. 그는 ‘파룬궁 사건을 민원실에까지 와서 신고하다니?’라는 듯 믿기 힘들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제가 온 목적을 설명하자 그는 제 개인정보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저도 펜과 종이를 꺼내 그의 이름과 경찰번호를 물었습니다. 그가 이름을 말하지 않아 저는 그의 경찰번호를 적어두었습니다.
뒤이어 정식 경찰이 왔는데 얼굴에 선하지 않은 기색이 좀 보였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파룬궁은 사교(邪敎, 사이비 종교)가 아니고, 국가는 파룬궁을 어떤 성격으로도 규정한 적이 없으며, 언론 보도는 법률을 대표하지 못합니다. 우리 어머니의 행위는 범죄가 아니고, 이는 시민의 신앙 자유, 언론 자유에 속합니다.”
제가 파룬궁은 사교가 아니라고 말하자 그는 큰소리로 제지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런 인식이라면 우리는 더 이야기할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경찰 역시 구원을 기다리는 생명”(각지 설법12-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이라는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경찰의 표면에 미혹되지 않고 39호 문건, 50호령을 들고 특별히 의자를 옮겨 그의 곁에 앉았습니다. 저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토론할 여지가 있습니다. 당신은 파룬궁을 사교라고 생각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저는 제 법률 근거를 제시하겠습니다. 당신이 저를 설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 좀 보세요. 이것은 당신들 공안부에서 발표한 문건이며, 여기 컴퓨터가 있으니 조회할 수 있습니다. 다년간 파룬궁에 대한 박해는 모두 법률 근거가 없습니다. 정보 경찰이 우리 어머니를 ‘사교 조직을 이용해 법률 실시를 파괴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불법 기소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어떤 법률 실시도 파괴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 경찰은 제 말에 반박하지 않았고, 눈빛에 서려 있던 선하지 않은 기운도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정보에서 처리하는 모든 사건은 다른 사람이 간섭할 수 없고, 우리에게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시 전체가 파룬궁 사건을 다 그렇게 처리합니다. 구 공안국에 가서 상황을 알리고 서면 답변을 요구하세요.”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오늘 당신네 공안 민원실에 와서 제 민원을 설명했는데, 당신은 경찰 제복을 입고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당신이 정보 사건을 처리할 수 없으니 저더러 구 공안국에 돌아가 서면 답변을 요구하라고 한 것을 저는 이미 기록했습니다. 당신 이름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는 감히 이름을 알려주지 못하고 경찰번호만 적어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네 당당한 공안국 입구 간판에 ‘인민공안은 인민을 위한다’고 얼마나 근사하게 써놨습니까. 저는 당신들이 무슨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치라도 따질 곳이 있기를 바랐고, 인민이 억울할 때 목소리를 들어줄 곳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어머니 일로 저는 먼 길을 돌아다녔습니다. 구 공안국, 구 검찰원, 구 정부, 시 검찰원 그 누구도 받아주지 않고 서로 미루기만 했습니다. 제가 이름 하나 묻는 것도 감히 알려주지 못하는데, 만약 정말 정당하다면 이름을 못 댈 이유가 뭡니까? 제 말을 들어주고 제 호소에 응답해준 것에 감사합니다. 저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 두 경찰은 다소 감동한 듯 우리에게 어떻게 왔는지,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걱정하며 물었습니다. 제가 자료를 남겨두려 하자 그는 감시카메라를 가리켰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들이 직접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일이 지난 후 저는 공안·검찰·법원에 갈 때마다 전날 읽었던 법을 떠올렸고, 사부님께서 바로 제 곁에 계신다고 느꼈습니다. 전날 읽은 법은 반드시 그날 제 수련을 지도해주며, 제가 법만 떠올릴 수 있다면 정념을 갖고 모든 문제에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과정 중에 제 몸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전에는 생각이 조금만 많아져도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으며, 조금만 일이 있어도 생각을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 일이 터진 처음 며칠간 제 머리는 쉴 새 없이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에 심하게 어지러웠습니다. 저는 앞길을 바라보며 마음속 정념이 아주 바르고 강력함을 느꼈습니다. 신호등 하나를 지나자 머리가 마치 동전 뒤집듯 순식간에 어지러움이 사라지고, 그때부터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그 후로는 아무리 큰일이 생겨도 머리가 맑았고,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머리는 늘 맑고 깨어 있었습니다.
동시에 한 가지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조사정법(助師正法)하는 과정에서 쉽게 마음을 움직여서는 안 되고, 함부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의 근원은 매우 복잡하므로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기고, 사부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4. 선을 닦고 진념으로 타인을 위하다
어머니에게 일이 생긴 지 한 달 후, 저도 우편으로 고소장을 보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불법 가택수색을 당하고 10일간 구류됐습니다.
하루는 파출소 경찰이 거짓으로 소장이 어머니 일에 대해 제게 답변을 주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곧이듣고 다음 날 파출소에 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날 아침 파출소에서 또 전화가 와서 소장이 회의하러 갔으니 집에서 잠시 기다리면 회의 끝나고 연락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집에서 전화를 기다렸고 아버지도 우리집에 계셨는데 파출소 경찰 네 명이 들이닥쳐 가택수색을 하려 했습니다. 저는 무방비 상태였고, 오직 대법서적을 잘 보호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저는 경찰의 가택수색을 저지하며 10여 분간 대치했고, 법 집행 근거를 따져 묻고, 경찰증과 수색 영장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며 휴대폰으로 전 과정을 녹화했습니다. 바로 이 틈에 아버지는 제 침실에 있던 대법서적을 모두 숨겨 대법서적을 지켜내셨습니다.
저는 파출소로 끌려가 조서를 작성했습니다. 저는 침착하고 냉정하게, 수색에 참여한 경찰에게 회피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제가 수련자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그들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에도 지혜롭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저를 소환한 것은 제가 고소장을 썼기 때문이지요. 저는 당신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지도부와 사건 담당자들이 제가 쓴 내용을 보고, 또 진지하게 읽었기에 저를 붙잡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어머니는 죄가 없고 저도 위법하지 않았음을 당신들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보니 당신들도 쉽지 않은 것 같아 잠시 당신들에 대한 고소 권리를 유보하겠습니다.”
파출소 담당자는 제 상황을 알아듣고 저를 존중해주었으며, 정보 대대의 명령이라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구류소에 갇힌 후 처음에는 마음이 무척 불편했고, 특히 저녁 식사로 찐빵과 절임 채소가 나온 것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홍음 2-정념정행)를 몇 번 외우자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세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1) 기왕 왔으니 이 열흘을 잘 이용해 집에서보다 더 정진하는 상태를 닦아내야 헛걸음하지 않게 된다.
2) 수련인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수련인의 선량함을 보여줘야 한다.
3) 나는 현지에서 법률을 이용해 박해를 반대하는 첫 주자이니 많은 수련생이 이 일을 지켜보고 있다. 내가 나간 후에 모두에게 더욱 확고한 모습을 보여주어 나 때문에 소극적인 마음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이 열흘 동안 저는 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하고 대법 노래를 불렀으며, 사람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사부님의 보호를 느꼈고, 대법의 힘이 저를 가득 채웠습니다. 동시에 제가 여전히 어머니가 집에 돌아올 시간에 집착하고 있음을 찾아냈고, 그로 인해 틈을 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은 제게 “집착을 남김없이 수련”(홍음-미혹 속의 수련) 하라고 일깨워주셨고, 저는 이것이 누락이고 닦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사부님의 시간과 관련된 법을 외웠습니다.
“대법은 또 시간·공간·수많은 종류의 생명 및 만사만물(萬事萬物)을 만들었으며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고 빠뜨리는 것이 없다”(정진요지-논어)를 외울 때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와 거대한 에너지가 저를 감싸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겸손하고 공경하게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모든 것은 사부님의 안배 하에 있습니다. 미혹 속에 있는 제자가 어찌 감히, 어떻게 사부님의 시간에 대한 안배를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사부님, 제자는 겸손히 받들겠으니 사부님께서 안심하십시오.”
그 후 구류소를 나올 때까지 저는 매일 법 속에서 충실히 지냈고, 몸소 선(善)을 실천해 구류소 사람들에게 젊은 수련인이 고생을 견디고 도량이 넓으며, 남을 선하게 대하는 대법제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같은 감방에 있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저를 바보 같고 그럴 가치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제 선행을 보며 그들은 모두 생각을 바꾸어 모두 제 어머니가 빨리 집에 돌아가길 축복해주었으며, 저에게도 안전에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열흘 뒤, 저는 홀가분하게 구류소를 걸어 나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법공부에 몰두했고, 사부님의 최근 짧은 신경문 몇 편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제대로 자신을 찾아봐야 해. 문제는 내 고소장에 있어. 그럼 나는 왜 고소를 썼지? 정말 중생을 위해서였나? 정말 그렇게 순수했나?’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 자신이 선을 닦음이 부족했고, 비록 중생에게 진상을 알리려는 마음은 있지만 제 목적은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선하지 않고, 바르지 않으며, 순수하지 못한 점이 틈을 타게 했던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자는 매일 전날보다 더 나아지겠습니다.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사부님을 돕는 길에서 최대한 발목을 잡지 않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매일 법리를 깨우쳐 주셨고, 저는 매일 제고하며 제 신의 일면이 깨어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사건 담당자에게 선을 권하는 편지,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 행정심판 신청서, 고소장을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이런 일을 할 때 제 기점에 더욱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로지 중생을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면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행정심판 신청서를 쓰려고 할 때 사부님께서는 “진념(真念)이 펼쳐지니 온 하늘이 개이네”(홍음4-감개)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저는 행정심판 신청서를 쓰려는 기점이 바르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지 남을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다음 날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사법기관이 대법 진상을 보고 중공의 비방과 거짓말을 씻어내고, 대법 진상이 체제 내에 널리 퍼지게 하기 위해 신청서를 썼습니다. 저는 제 선의와 대법의 힘이 제가 쓴 청구서에 스며들었다고 믿습니다. 열흘간 구류의 교훈은 저를 더욱 안정적이고 착실하게 걷게 했습니다.
특히 저는 발정념 상태를 바로잡았습니다. 예전에 발정념은 이기적인 것이었고, 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허리와 목을 곧게 펴고 손실을 줄이기 위해, 중생을 구하기 위해 발정념을 했고 발정념 시간을 늘렸습니다.
그 후 저는 조사정법한다는 사명감과 영광을 느꼈습니다. 뚜렷하게 느낀 점은, 좋지 않은 생각이 감히 오지 못하고 제 공간장이 마치 아주 뜨겁고 발이 데일 듯하여 나쁜 생각이 솟아나자마자 바로 데어 움츠러들었습니다. 마치 1초만 늦어도 제거될 듯 말입니다.
5. 재판 과정이 나를 바른 길로 이끌다
나중에 지원 변호사의 전화를 받고 법원이 어머니에 대해 재판을 열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가족과 저는 마지막 공판 단계에서 인권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친족 변호를 신청했고, 변호사 의견서를 준비하기 위해 긴장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이 기간 공의포럼(公義論壇)의 수련생들이 제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관련 법률을 꼼꼼히 공부했고, 특히 핵심인 법정에서의 증거 대질 절차를 중점적으로 이해했습니다.
처음에는 법률이 너무 난해하고 지루해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면 멈추고 잠시 법을 배우며 제가 가야 할 이 길을 확고히 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변호 의견서를 정리해 포럼 수련생에게 보냈습니다. 포럼 수련생이 그중 한 단락을 삭제하라고 했는데, 바로 제 사상이 바르지 못한 단락이었습니다. 저에게 법을 첫 자리에 놓지 않고 일반인의 방식으로 대법제자에게 공정함을 얻어내려는 요행심이 있었는데 이것은 바르지 못한 관념이었습니다.
변호사와 협력하는 과정에서 저는 조율하기 어려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변호사는 늘 협력을 강조하고 다른 수련생들을 설득하라고 하며 제가 법을 연구하는 것은 소용없다고 여겼습니다. 반면 공의포럼 수련생들은 법률 전문가여서 법률적인 측면에 집중해 제게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또한 일부 현지 수련생들은 제가 수련생들 사이에서 공안·검찰·법원에 진상을 알린 경험을 교류하는 것은 연설 난법으로 개인숭배를 조성하고, 법을 배우지 않고 사람을 배우게 한다고 여겼습니다.
이 기간에 저는 법정 변호를 준비하느라 일사일념을 진지하게 찾을 시간이 없어 대강 마음만 닦는 상태였고, 수련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다음 날 재판할 때 길에서 저는 법을 외웠습니다. “당신들이 어려움을 크게 볼수록, 일은 더욱 어려워지는 것으로,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 그 일은 더욱 번거롭게 될 것이다.”(각지 설법10-에포크타임스 회의 설법) 맞습니다. 재판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저는 사부님의 제자이기에 당당해야 합니다.
그렇게 재판 과정에서 처음의 긴장을 제외하고 저는 준비한 말을 다 했습니다. 어머니 상태도 아주 좋으셨고 머리가 맑고 정념이 매우 족했습니다. 판사는 아주 공정하고 객관적이었으며, 제가 처음 변호인을 맡아 긴장한 것을 많이 이해해주고 제 의견을 존중했으며, 제가 재판 전에 제출한 법률 신청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차를 몰고 집에 오는 길에 저는 사부님의 일깨움을 느꼈습니다.
알고 보니 변호사가 협력을 강조하고 포럼 수련생이 법률을 강조한 것은 사부님께서 두 가지를 융합해 모두 잘해내라는 뜻이었습니다. 수련생들이 제 문제를 지적한 것도 사부님께서 제가 수련의 길에서 모두가 저를 떠받들며 잘한다고만 하면 저를 망칠까 봐 걱정하신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지적하고 제지해야 제가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며, 더 큰 지혜와 전면적인 사고로 문제를 보게 됩니다.
알고 보니 제게는 바르지 못한 관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갈등이 생기는 것을 싫어했고, 갈등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이 ‘싫어함’과 ‘두려움’이 바로 집착이며, 수련인은 마땅히 적극적으로 갈등에 대응하고, 갈등을 직시해야 하며, 갈등 속에서야 수련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았습니다.
재판 후 저는 곧바로 포럼에 상황을 피드백했습니다. 한 포럼 수련생은 계속 격려하고 칭찬해주었으며, 다른 포럼 수련생은 계속 제 부족함을 지적하며 엄격하게 요구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사심 없는 도움에 진심으로 고마웠고, 덕분에 법률로 박해에 맞서는 길에서 의지할 힘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포럼 수련생들에게 감사드리며, 수련생은 하나의 정체(整體)임을 느꼈습니다.
6. 2차 개정에서 심성을 연마하고 마음가짐을 바로잡다
재판이 끝나고 일주일 뒤, 변호사는 판사에게 새로운 증거가 있어 2차 재판을 연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고, 막막하고 서글프고 무력했습니다. 마치 그동안 발정념한 것이 효과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하마터면 소침해질 뻔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一個不動能制萬動)”(각지 설법5-2005년 캐나다법회 설법)
두 번 외우자 마음이 많이 평온해졌습니다. 맞습니다. 제 마음이 움직여 소극적인 생각이 나온 것입니다. 수련인이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입니까. 만약 다시 재판을 여는 것이 중생이 진상을 아는데 유리하다면 저는 갈 것이고, 아니라면 발정념하여 박해를 제거하고 막아야 합니다.
차분해진 후 법원에 가서 새로운 증거를 확인했습니다. 가는 내내 발정념하며 사부님께 판사가 직접 나오게 해주시길 부탁드렸는데, 정말로 판사가 직접 나와 증거를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제 어머니가 불법이나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당신들 법조인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평범한 국민이 어떻게 법률 실시를 파괴할 수 있겠습니까? 제 어머니는 1999년 이전 자유로운 환경에서 파룬궁을 수련하셨고, 수련의 유일한 목적이 좋은 사람이 되고 남을 선하게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장쩌민이 법을 초월해 가짜뉴스를 날조하고, 증오와 대립을 조장하며, 불법적인 운동을 일으켜 먼저 박해를 시작했기에 제 어머니가 나중에 사실을 해명한 것입니다. 장쩌민은 권력을 이용해 파룬궁 박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파룬궁 박해에 열을 올린 관리들을 중용하여 나쁜 사람이 관직에 있게 했습니다. 지금 그들이 줄줄이 조사받고 낙마하는 것은 하늘에 눈이 있어 선량한 사람을 박해한 업보를 받는 것입니다.”
판사는 말했습니다. “날 겁주지 말아요. 파룬궁을 탄압하지 않은 사람도 많이 조사받고 있던데요. 젊은 사람이 너무 급진적으로 굴지 말고, 여기저기 다니며 선전하지 마세요. 나중에 내가 피고석에서 당신을 보게 되면 걷어찰지도 몰라요.”(농담투로 안전에 주의하라고 경고함)
저는 말했습니다. “그들이 직접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한 지방의 관리로서 인민의 부모가 돼야 합니다. 재임 기간에 파룬궁 박해가 발생했는데 그 관리에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저를 생각해 안전에 주의하라고 귀띔해주니 저도 당신을 위해 알려주겠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무사히 빠져나오길 바랍니다. 우리 둘 다 자신을 잘 보호합시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당신은 요즘 제가 만난 체제 내 사람 중 유일하게 저에게 선의를 보여준 분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한테 고마워하지 마세요. 말은 듣기 좋게 하지만 내가 만약 당신 어머니에게 실형을 선고하면 당신은 당장 날 직권남용으로 고소할 거잖아요. 그때 되면 당신이 날 여기저기 고소하겠죠.”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릅니다. 어머니 일에 대해서는 당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소는 저의 권리이며, 저는 항소나 형사 재심 청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고소가 목적이 아니며, 당신이 책임을 떠안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차 재판은 판사가 공안국에 왜 감정의견통지서를 피고인과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는지 소명하라고 요구해서 열린 것이었습니다. 이 소위 증거 자료는 우리에게 해가 없기에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다시 재판을 여는 것은 그들에게 진상을 명백히 알릴 좋은 기회이니 잘 준비해야겠다.’ 포럼 수련생들이 준 심문 논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숙지한 후 마음이 아주 든든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을 데리러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날씨도 좋고 법정 변호 준비도 다 됐으니 아이와 밖에서 놀아준 지 오래라 잠깐 놀아주기로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온 가족이 아이와 함께 장난치고 노는 것을 보고 마음이 살짝 움직였지만 그때 곧바로 눌러버리지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남편이 택배를 찾아오라고 하자 저는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때 아들이 집에서 “엄마, 빨리 돌아와요”라고 외쳤고, 듣고 나서 마음이 좀 서글펐습니다. 택배를 찾으러 가는 길에 부정적인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다른 집은 다 이렇게 화목한데 우리집은…’ 저는 서둘러 이 생각을 억제하며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일반인이 이런 것을 추구하는 건 정상이지만 내가 추구하는 건 뭐지? 내가 추구하는 건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끊어내고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것이지 인간 세상의 행복이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자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은근히 서글펐습니다. 그래서 또 “사부가 있고 법이 있다”를 몇 번 외우자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2차 재판 당일, 떠날 때 저는 법을 외웠습니다. “그 일을 별것 아닌 것으로 보고, 사람을 구도하는 이처럼 큰일을, 당신들이 해야 할 바를 해야 한다. 마음속으로 좀 착실히 하고, 무슨 그다지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과 그다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마주치거나 듣게 되더라도 마음에 두지 말며, 정정당당하게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라. 사악의 교란을 받지 말고 그것에 이끌리지 말라. 그런 좋지 못한 요소가 자신에게서 생기지 않으면 사악은 보잘것없어지고, 당신들 자신은 높고 크며, 정념이 족해질 것이다. 정말로 모두 이러하다.”(각지 설법10-에포크타임스 회의 설법)
가는 내내 저는 이 법을 외우며 마음이 점점 든든하고 확고해졌습니다. ‘맞다. 이번 재판은 사람을 구하러 가는 것이지 사람이 우리에게 공정을 베풀어주길 바라는 게 아니고, 어머니 사건이 어찌 되길 바라는 게 아니며, 검사를 설득하려는 것도 아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이고 그들에게 선의 힘을 전해주기 위해서이다.’
이번 재판 효과는 매우 좋았습니다. 판사는 재판석에 앉지 않고 대부분 우리 변호석 쪽에 서 있었고, 가끔 어머니 쪽에 서 있기도 했습니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제게 지난번처럼 긴장하지 말라고 했으며, 1차 재판 때 말을 아주 잘했고 이번에도 매우 괜찮다고 칭찬해주었습니다.
공소인이 제 변론에 반박할 때 판사는 그녀를 제지하며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녀대로 변론하고 당신은 당신대로 말하세요. 내가 재판 후에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변호인도 매우 잘 변론했고, 각지의 파룬궁 사건 판례를 제시했습니다. 불기소, 체포 불승인, 사건 철회 사례도 있었고, 실보실소(實報實銷, 구금 기간만큼만 형기 선고) 판결도 있었습니다.
각지 공안·검찰·법원의 깨어있는 사람들이 기술적으로 이런 사건들을 처리해 ‘되도록 체포하지 않고, 되도록 기소하지 않으며’ 어떤 판사는 병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고, 어떤 사건은 처분보류로 흐지부지 끝나기도 했으며, 보석이나 감외집행 등으로 마무리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윗선이 이 사건에 서명해 책임을 져주지 않았기에 결국 담당자가 스스로 책임을 떠안고 처리한 것이었습니다.
판사는 아주 진지하게 들었고 자신도 지금 골치 아프다며 이 사건 처리가 아주 번거로운데 공안, 검찰이 사건을 철회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판사가 이제 진상을 알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재판이 끝났을 때 중국법회 원고모집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급히 글을 완성했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지적을 바랍니다.
어머니 사건에 구원받을 수 있는 생명을 안배해 진상을 듣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공안·검찰·법원 사람들도 정말 어렵고 쉽지 않으며, 그들은 구원받을 희망을 우리에게 걸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제고해 올라와 중생이 구세력이 안배한 생명 도태의 대재앙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안으로 찾는 것은 하늘로 통하는 법보(法寶)입니다. 매번의 제고는 모두 제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자신의 문제를 찾았기 때문이고, 그러면 사부님께서 더 많은 법리의 함의를 보여주셨습니다.
법을 잘 배우고 안으로 찾으면 험난한 길도 탄탄대로로 변합니다. 젊은 수련생들이 마지막 시간을 다그쳐 젊은이의 장점을 이용해 용맹정진하여 함께 집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공의포럼 수련생들에게 감사드리고, 작년에 우리 지역에 법률 지식을 보급하고 정념을 강화해준 수련생들에게도 감사드리며, 여러분 덕분에 저는 정체의 힘을 느꼈습니다.
우리 함께 정진하여 원만해서 사부님을 따라 돌아갑시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명혜망 제22회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21/50248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1/21/502480.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