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4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얻은 노수련생으로, 사부님께서 창춘(長春)에서 여신 7기 파룬궁 전공(傳功) 설법반에 참석해 설법을 경청하고 영광스럽게 대법제자가 됐습니다. 사부님 설법은 심오한 뜻을 알기 쉽게 말씀하셨으며, 저는 사부님께서 사람들을 높은 층차로 데려가시는 것, 즉 중생을 구하시는 것이며 우리 대법제자는 수련하는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제도한다’라는 이런 용어는 제가 소설에서나 보았던 것인데, 지금 저는 직접 들었으며 이제 수련을 하게 됐고, 저에게 사부님이 계시게 됐습니다. 그때 저는 무척 감격했습니다.
첫날 사부님 설법을 듣고 저는 전반적으로 완전히 변했습니다. 저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큰 변화가 일어났고, 사람이 왜 사는지 알게 됐으며, 생명의 의미를 깨달아 스스로 수련해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득한 천국이 자신의 진짜 고향이며, 세간의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고 수련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전까지 제 몸은 계속 좋지 않았습니다. 메니에르 증후군, 심장 박동 일시 정지, 담낭 질환으로 매일 아팠고, 유산 후 산후풍을 얻어 일 년 내내 바람을 두려워했습니다. 한여름에도 방에서 머리를 감을 때는 문과 창문을 닫아야 했으며, 종아리와 발은 사계절 내내 추위를 많이 탔습니다. 한여름 밤, 남편이 더워서 잠을 못 자고 문가에 앉아 있을 때도, 저는 침대에 누워 다리를 이불로 덮어야만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늘 온몸에 힘이 없고 몸이 무거웠으며, 평소에는 전혀 뛸 수가 없었습니다.
첫날 사부님 설법반으로 가는 길에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저는 뒤에 앉았습니다. 당시에는 자전거로 사람 태우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 빨간불이거나 교통경찰이 있는 곳을 지날 때면 저는 내려서 자전거를 따라잡은 다음 뒤쪽 짐받이에 뛰어올라야 했습니다. 길에는 교통경찰이 근무하는 사거리가 여러 곳 있었는데 저는 오르락내리락,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설법반에 들어가기도 전에 사부님께서 저를 돌보신 것입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한번은 사부님께서 설법반에서 수련생들의 몸을 조정해 주실 때, 모두 아픈 곳을 생각하면서 사부님의 구령에 따라 발을 한번 구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저의 담낭 쪽을 생각했는데, 발을 구르는 순간 둥근 무언가가 등 뒤에서부터 굴러 내려가 다리와 발뒤꿈치를 거쳐서 밖으로 굴러 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저를 병들게 하던 그 영체(靈體)를 사부님께서 없애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예전에는 동료들이 제가 바람만 불어도 넘어질 것 같다고 말했지만, 지금 저는 병이 없어 몸이 가볍고 온몸에 다 쓰지 못할 힘이 넘칩니다. 자전거를 타고 아무리 가파른 언덕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병근을 없애 주신 것입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때 저의 눈은 근시여서 거의 20년 동안 안경을 썼습니다. 도수가 높지는 않았지만 안경을 쓰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으며 땅이 평평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잠들지 않는 한 안경을 벗을 수 없었고 매일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 안경집은 매일 잠자리에 들 때 베개 옆에 놓여 있었고 눈을 뜨기 전에 안경을 손에 쥐고 안경을 쓴 후 눈을 뜨고 옷을 입었습니다. 설법반이 끝난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아직 눈을 뜨지 않았을 때 저는 문득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 몸을 정화해주셨으며 부정확한 상태를 조정해주셨음을 떠올렸습니다. 근시는 부정확한 상태에 속하니 사부님께서 이미 조정해주셨고 안경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안경을 찾지 않고 눈을 떴는데 머리도 아프지 않고 어지럽지도 않았으며 일어나 앉아 보니 땅이 평평했습니다. 저는 정말로 나은 것입니다! 출근하기 위해 길을 걸을 때 나무를 보니 나뭇잎 하나하나가 다 보였고 잎사귀 사이의 틈을 통해 푸른 하늘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나무 윗부분이 희미하게 한 덩어리로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신선하게 느껴졌고 마시는 공기조차 유난히 상쾌하게 느껴져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직장에 도착하자 동료들이 제가 안경을 쓰지 않은 것을 보고 모두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저는 “눈이 좋아져서 안경을 쓸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지 않고 제가 콘택트렌즈를 낀 것으로 생각해 제 앞으로 와서 한참 동안 관찰한 후에야 제가 정말 안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들 제 눈이 정말로 나았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지금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제 눈은 여전히 아주 좋으며 근시도 노안도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직접 조정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시 저는 매일 기분이 매우 좋았고 남이 저에게 무슨 말을 해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저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는데 수련 후 화낼 가치가 없다고 느꼈으며, 남들이 몹시 화를 내는 것을 보고 저는 오히려 우스꽝스럽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정말로 홍진(紅塵)을 꿰뚫어 보고 세속 밖에 있는 듯한 느낌이 있었으며 그 행복감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매일 아침 연공 장소에 가서 연공하고 오후나 저녁에는 법공부 팀에 가서 법공부를 했는데 활력이 넘쳤습니다. 저는 사부님 따라 끝까지 굳게 수련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또 한 가지 제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1996년에 사부님의 경문 ‘시간과의 대화’가 발표된 후 저는 수련이 곧 끝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간에서 제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대법서적이었습니다. 제가 원만하면 이 대법서적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 공간의 물질은 다른 공간으로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마음속으로 이 일을 계속 생각해서 그런지 어느 날 밤 잠을 자다가 저는 사부님을 꿈에서 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여쭈었습니다. “사부님, 제가 원만하면 제 대법서적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님께서는 미소 지으시며 자애롭게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져가야 할 것들은 모두 가져갈 수 있다.” 저는 그때 저의 대법서적을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 공간의 물질은 가져갈 수 없으며 가져가야 할 것은 ‘법’이었습니다. 대법을 마음속에 담으면 가져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거듭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당부하신 것인데 이는 우리가 이 우주 대법을 모두 마음속에 담아 영원히 간직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현재를 안배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까지 염려하셨고, 수년 동안 사부님께서는 거듭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는 반드시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을 잘 배워야 합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북방의 겨울은 특히 추운데 특히 밤에는 영하 30도가 넘는 것이 예사이며 새벽에는 더욱 춥습니다. 어느 해 겨울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연공장에 갈 준비를 하는데, 늦게 일어난 탓에 면장갑 찾을 시간이 없어서 가죽으로 된 얇은 장갑을 아무거나 들고 나왔는데 약간 끼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연공장으로 갔습니다. 우리 집은 거리가 비교적 멀었습니다. 가는 길 내내 손이 시려서 한 손으로만 핸들을 잡고 두 손을 번갈아 가며 손을 녹여야 했습니다. 연공장에 도착해 연공을 시작하는데 장갑이 너무 시렸습니다. ‘이 장갑은 너무 얇고 꽉 끼어서 끼고 있어도 시린데 차라리 벗고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장갑 벗고 연공을 했는데 손이 전혀 시리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으며 장갑을 꼈을 때보다 더 따뜻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셨고 제 손을 보호해주셨음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을 늘 배려하십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1999년 ‘7·20’ 장쩌민 마귀와 중공 악당이 미친 듯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하면서 중화의 대지는 순식간에 피바람이 불었고 사악한 기운이 신주(神州)를 휩쓸었습니다. 우리의 수련 환경은 한순간에 파괴됐고 대법제자들은 박해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몰렸습니다. 경찰들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을 여기저기서 찾았습니다. 중공이 중국인들을 수십 년간 박해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공산당이 무슨 나쁜 짓이든 할 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당신에게 수련하는지 묻거든 수련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집에서 몰래 수련하세요.” 어떤 수련생도 “물으면 수련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집에서 몰래 수련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박해 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수련했고 억만 명이 혜택을 받고 몸이 좋아졌는데 수련하지 말라고 하니 다 수련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악당에 영합하기 위해 대법에 대해 안 좋은 말까지 했는데 이렇게 하면 사부님께 면목 있을까?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가? 사부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평상인 사이에도 ‘하루라도 스승이면, 평생 아버지와 같다’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수련인입니다. 우리 사부님은 보통 스승이 아니시고 우리를 반본귀진의 길로 이끄시는 사부님이시며 우리 본원 생명을 만들어 주신 사부님이십니다.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위해 그렇게 많이 감당하셨는데 게다가 그렇게 큰 억울함까지 감당하셔야 했습니다. 이는 얼마나 드높은 도량입니까!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경찰이 저에게 “(파룬궁을) 누구에게 배웠지?”라고 물었을 때 저는 “사부님으로부터 배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또 물었습니다. “당신 사부는 누구지?” 저는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리훙쯔(李洪志) 대사님이 저의 사부님이십니다.”
그때는 거의 매일 파룬궁수련생들이 체포돼 구치소, 노동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한 수련생이 노동수용소에서 출소했을 때 우리가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악당에 세뇌돼 세뇌 교육의 사악한 궤변을 믿었는데 그곳 경찰이 사부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 아니며 가장 높은 분을 따라 배워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누가 가장 높든지 상관없이 나는 나의 사부님만을 인정하며 다른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2004년 5월 12일 제가 직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문득 다음날이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저는 직장에서 대법 진상 스티커를 몇 개 만들었는데 많지는 않았고 퇴근 후에 나가서 붙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퇴근할 때 밖에 큰 비가 내렸습니다. 제가 출근할 때 우비를 가져오지 않았고 직장에 둔 우산 하나만 있었습니다. 저는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탔습니다. 비가 매우 많이 내려 길 곳곳에 빗물이 넘쳤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스티커를 붙일 곳을 찾았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건물 복도 안에만 붙일 수 있었습니다. 건물 입구에 도착하면 자전거를 한쪽에 세워두고 우산을 든 채 복도에 들어가야 해서 매우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산을 자전거 바구니에 넣고 자전거도 잠그지 않은 채 안에 들어가서 붙이고는 바로 나왔습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우산을 쓰는 것은 매우 불편해 저는 아예 우산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주의하지 않았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맞은편에서 우비를 입지 않은 채 온몸이 흠뻑 젖어 머리에서 빗물이 흘러내리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어쩌다 저렇게 심하게 젖었을까?’ 다시 저 자신을 봤더니 몸이 젖지 않았습니다. 그날 제가 원피스를 입었기 때문인데 단지 핸들을 잡은 양쪽 소매에만 빗방울이 조금 튀었을 뿐 다른 곳은 빗방울 하나 없었습니다. 다시 자전거 바구니 속의 우산을 보니 물에 잠겨 있는 듯했습니다. 다음 날 저와 같은 방향으로 퇴근한 동료(역시 수련생)에게 물었습니다. “어제 비에 흠뻑 젖었나요?” 그녀는 물에 빠진 오리처럼 흠뻑 젖었다고 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저는 그저 그 정도의 일만 했을 뿐인데 사부님께서는 저를 보호해 쏟아지는 비에 젖지 않게 하셨습니다. 사부님은 너무나 자비로우셔서 시시각각 제자들을 보호하고 격려하십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2003년 여름 하루는 밤에 우리집 가스통 가스가 떨어져서 저는 전기밥솥으로 물 한 솥을 끓였습니다. 물이 끓자 저는 오른손에 보온병을 들고 왼손으로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한 바가지씩 보온병에다 부었는데, 제가 실수로 잘못 부어서 끓는 물이 제 오른손 등 위로 쏟아졌습니다. 보온병을 내려놓고 오른손을 보니 손등 전체가 새빨갛게 변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할 때는 별로 아프지 않아 식사하는 데 지장이 없었습니다. ‘오늘 밤에 잠을 잘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화상 입으면 몹시 아픈 건 모두들 알지 않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침대에 누워 곧바로 잠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손등에 물집이 생겼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물집은 점점 커졌습니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천천히 스스로 흡수돼 나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하루가 더 지나자 물집이 오리알만 하게 커졌습니다. 연공할 때 몹시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물집을 터뜨렸고 종이컵으로 액체를 거의 한 컵이나 받아냈습니다. 물집 껍질은 한 번에 손등에 달라붙었습니다. 제가 보니 쭈글쭈글하고 화상을 입은 사람이 남기는 흉터와 같았습니다. ‘이거 너무나 보기 흉하겠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연공할 때 기제(氣機)가 그 ‘흉터’ 아래로 지나가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 흉터는 제 것이 아니며 다만 이 껍질로 저의 완전히 낫지 않은 부분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고, 제 손에는 어떤 흉터도 남지 않으리라는 것이죠. 제 손에는 정말로 어떤 흉터도 남지 않았고 조금도 화상을 입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곧바로 나았습니다. 전체 과정에서 아프지도 않았고 저는 이 일을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습니다. 하루는 제가 정미소에 쌀 사러 갔는데 어떤 사람이 제 손을 보고는 “손이 왜 그래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끓는 물에 데였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더운 날씨에 얼마나 고생이세요!” 이때 저는 제가 전혀 아프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셨고 대법이 저를 보호해주셔서 화상의 고통을 면하게 해주셨으며, 흉터도 남기지 않으셨음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에게는 4GB짜리 작은 USB 메모리가 하나 있었는데 진상 자료를 저장하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략 2012년 봄 어느 날, 그 USB 메모리를 가지고 수련생 집에 갔으며 아마 두세 집 정도 방문했던 것 같습니다. 돌아올 때는 버스타고 왔는데 버스 안에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곧 내릴 때가 돼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는데 문득 자리에 무언가를 떨어뜨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잠시 생각했지만 별다른 것이 없다고 느껴 보러 가지 않고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이 돼 USB 메모리를 사용하려고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늘 일정을 자세히 되짚어 보았고 한 수련생 집에서만 USB 메모리를 꺼내 사용했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제 물건을 그녀 집에 놓고 오지 않았는지 찾아보라고 했지만 없었습니다. 저는 아마 버스 안에서 가방 물건을 꺼낼 때 USB 메모리가 함께 나왔고 하차할 때의 그 느낌이 사실 USB 메모리가 떨어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깨달음이 좋지 않아서 그때 바로 깨닫지 못했고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간청해 제 법기(法器)인 USB 메모리를 찾도록 도와주시기를 빌었습니다. 간청한 후에는 다른 일로 바빴습니다. 때로는 USB 메모리가 돌아왔는지 살펴보기도 했지만 없었습니다. 약 열흘 정도 지난 어느 날 밤, 제가 다시 이 일이 생각나서 USB 메모리에게 “그렇게 오래되었으니 이제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니?”라고 말한 후 잠자리를 펴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제가 이불을 걷어 올리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 USB 메모리가 돌아와 이불 밑에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싱글 침대를 사용하는데 매일 이불을 개서 침대 한쪽에 두었다가 잘 때 펴므로 하루에 아침저녁 두 번씩 이불 펴고 개지만 USB 메모리는 없었습니다. 오늘 USB 메모리가 돌아왔던 것입니다. 저는 기뻐하며 USB 메모리를 들어 올리고 되찾아주신 사부님께 감사를 표했습니다! 저는 이 작은 USB 메모리를 지금까지도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년 동안의 수련 과정을 통해 저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안배해주신 것은 모두 최고이며 난(難)을 겪게 되는 것은 많은 경우에 우리 자신이 사부님의 안배대로 가지 않았기 때문임을 깊이 느꼈습니다. 이것은 제가 직접 겪은 후의 체득이며 정말 후회막급하고 사부님의 깊은 뜻을 저버렸으며 스스로에게 또 난을 더했습니다. 주변 수련생들을 봐도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31년의 수련 여정은 괴로움도 있었고 달콤함도 있었습니다. 제가 잘 수련하지 못해 줄곧 비틀거리며 정진실수(精進實修)하지 못했지만 사부님께서는 저를 계속 보호하시고 독려하셨습니다. 저처럼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제가 대법을 수련하는 마음은 한 번도 변하지 않았으며 저는 영원히 대법제자입니다. 한 번은 제 몸에 난이 나타났을 때 제가 안으로 찾을 때 머릿속에 ‘과객(過客)’이라는 정보가 분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맞습니다. 수련인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인간 세상의 지나가는 손님(과객)이 아닙니까? 우리가 수련을 잘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수년 동안 법회에 투고하지 않았는데 늘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해 드릴 말씀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여러 해 동안 많은 신기한 일을 겪었기에 이번에는 그중 몇 가지 직접 겪은 일을 글로 써서 대법의 신기함과 신성함, 사부님의 위대함과 자비로움을 실증하려 합니다. 사부님! 제자로서 영원히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1/5008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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