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생명으로 되기 위해 노력하다

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실질적으로 수련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점차, 무사무아(無私無我)의 경지에 이르려면 수련자는 먼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나의 책임은 무엇인가?’를 명백히 아는, 그런 맑은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법제자는 사부님의 정법(正法)과 함께 존재하며, 사부님께서 우주 대법으로 조성하고 성취하게 하신, 빛과 광염(光燄)이 끝없는 생명이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들에게 지고한 영광과 신성한 사명을 주시어 우리가 우주 대법의 한 입자가 되는 행운을 갖게 하셨다. 각자의 천체 층차에서 우주의 대법을 수호하며, 사부님과 대법이 부여하신 불법(佛法) 신통, 정념, 능력과 지혜로 자신의 천체, 우주와 중생을 보위하며, 우주의 모든 바른 요소에 책임을 져야 한다.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멸망에서 구하는 것은 모든 대법제자의 신성한 사명이며 서약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생명의 의미이자, 사명과 책임이 있는 곳이다.

대법제자는 우리 생명의 매 순간 사부님과 우주 대법을 가장 존귀하고 지고한 자리에 둬야 하며, 사부님을 수호하고 대법을 수호하는 것이 우리 생명의 첫 번째 책임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부님을 수호하고 대법을 수호하는 것은 곧 우리가 속한 층차의 천체, 우주와 무량 중생을 보호하는 것이다.

대법제자 생명의 두 번째 책임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불법(佛法) 신통을 사용해 우리 천체, 우주와 무량 중생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신성한 책임이자 무한한 기대이다.

대법제자의 생명은 다른 이를 위한 것이고, 우주 대법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며, 우리 천국과 중생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무사무아(無私無我)이며 선타후아(先他後我)한 생명이다.

질투심을 닦아 버리다

나는 원래 내가 질투심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설령 조금 있더라도 사소한 것이지 심하지는 않으리라 여겼다. 그래서 중시하지 않았고, 진지하게 안으로 찾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에 L 수련생과 함께 이웃 도시에서 열린 대법제자의 미국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차로 편도 3~4시간이 걸려서 우리는 하루 전날 출발해 그 도시 S 수련생의 집에서 묵었는데, 나와 L은 같은 방을 쓰게 됐다. 밤에 침대에 누워 잡담을 나누는데 L이, 이 도시의 다른 여자 수련생 Y가 내가 그녀를 질투한다고 하더라며, 나에게 정말 Y를 질투하냐고 물었다. 나는 순간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었다. 무의식적으로 즉시 반박했다. ‘내가? 전혀 아니야. 그녀의 뭘 질투해? 질투할 게 뭐가 있어?’ 마음이 정말 분하고 답답해 속이 뒤집히는 듯했다.

잠시 후 나는 냉정해졌고 대법제자에게 우연한 일이란 없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깨달았다. 이것은 분명 사부님께서 내가 안으로 찾아 집착심을 제거하고 대법에 동화돼 심성을 높이도록 하신 것이다. 진지하게 안으로 찾아보니 나는 정말 질투심이 있었고, 게다가 작지도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나는 남이 나보다 더 정진하고, 더 아름답고, 더 능력 있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1~2주 동안 나는 마음이 줄곧 불안했다. 하나는 수련생을 질투했다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해야 이 질투심을 없앨 수 있을까? 나는 절대 이것을 원하지 않아’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부님께서 조성하신 대궁(大穹) 천체는 광활하고 끝이 없다. 그 높은 층차 천체의 생명은 태어날 때부터 낮은 층차 천체의 생명보다 능력이 더 크고, 지혜가 더 많으며, 더 아름답고 훌륭하며, 광염이 끝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다른 생명이 나보다 낫다고 질투하는가? 이 층층의 천체는 무궁무진하고, 나보다 층차가 높은 생명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다 질투할 수 있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내 천체 층차 속에 내 생명을 만드시고, 내게 사명을 주셨으니, 바로 내 천체 층차에서 우주 대법을 수호하고, 나의 천체, 우주와 중생을 수호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 본분을 다하고 사부님께서 맡기신 사명과 책임을 잘 이행하면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내 생명의 영광과 의미다.

사사로움(私)과 분노 때문에 분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너는 내가 아니다. 나는 너라는 이 질투심을 원하지 않으니 너를 없애겠다’라고 생각한다.

사부님의 지혜와 신통은 일념(一念)에 대궁(大穹) 천우(天宇)를 허무 속에서 만드실 수 있고, 일념에 천체 우주를 무형(無形)으로 사라지게 하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대궁 우주 중에서 발생하는 어느 한 가지 일이 우연하거나 불공평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대법제자의 몸에서 발생한 일임에랴? 더구나 말법말겁(末法末劫)에 사부님께서 법으로 건곤(乾坤)을 바로잡으시고 창우(蒼宇) 중생을 괴멸(壞滅)에서 구하시며, 대궁과 중생의 안위존망과 미래를 결정하시는 이 관건적인 시각에 발생한 일임에랴? 우리가 분해할 때, 어찌 우리가 진정으로 사부님과 법을 믿는다는 것을 체현한다고 하겠는가?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아내 제거하다

많은 수련생이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데, 그것이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돼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마치 호흡처럼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분명 집착심인데도 바로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느낀다.

최근 몇 년간 나는 션윈(神韻) 공연 극장에서 션윈쭤핀(神韻作品) 회원 연간 카드 판매를 도왔다. 내 판매 실적은 줄곧 불안정했는데, 가장 잘될 때는 한 극장에서 대여섯 장을 팔았지만, 대부분 2~3장을 팔았고, 어떨 때는 첫 공연에서 5장을 팔고 두 번째 공연에서는 한 장도 팔지 못했다. 매번 나는 안으로 찾았고, 매번 첫 공연 판매 실적이 좋자 환희심이 일어 ‘내가 꽤 능력 있네’라고 생각하며 공로를 모두 자신에게 돌리고, 사부님께서 제자의 정념과 지혜를 가지(加持)해 주셔서 비로소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괴멸에서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잊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드리며 이 환희심을 단호히 없애려 했다. 그러면 다음 공연의 판매 실적은 올라가곤 했다.

올해 한 극장에서 또 이 상황이 나타났다. 안으로 찾아보고 나는 식은땀이 날 만큼 놀랐다. 매년 이 상황이 나타났는데 기본적으로 모든 극장 공연에서 이 상황이 나타났음을 맑게 인식했다. 사실 이것은 환희심이라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그 오만함, 자아에 강하게 집착하는 마음이었다. 자연스럽게 모든 성과를 다 자신에게 돌리고, 심지어 사부님과 대법을 잊고, 자신의 능력이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임을 잊으며, 자신의 생명 역시 사부님께서 대법으로 만드신 것임을 잊었던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근본 집착으로,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내 생명의 아주 미시적인 층차에 뿌리박고 있어서 나 자신조차 느끼지 못했다. 매번 안으로 찾을 때마다 환희심이라 여겼고 최대한 닦아 없앴다고 생각했지만, 다음번에 또 아주 자연스럽게 불거져 나왔다. 이 오만한 마음을 진지하게 닦아 없애지 않는다면 어찌 공성원만(功成圓滿)할 수 있겠는가? 정말이지 이런 집착심에 이끌려 또 어떤 큰 잘못을 저지를지 알 수 없다.

성경 이야기 속의 대천사 루시퍼를 떠올리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인간의 시조 아담을 경배하게 하셨을 때, 질투심이 루시퍼의 마음을 흐리게 해 자신처럼 능력 있는 대천사가 어째서 무능한 인류에게 경배해야 하냐고 생각했다. 질투심의 작용하에 그는 뜻밖에도 3분의 1의 천사를 이끌고 하나님을 배반해 지옥의 사탄 마귀로 타락했다. 역사적 교훈은 이처럼 참혹하지 않은가?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아낸 후 나는 매일 발정념해 그것을 제거하며 감히 자신을 늦추지 않고 있다.

 

원문발표: 2025년 10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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