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지린성 대법제자
[명혜망] 1996년, 여섯 살이던 저는 어머니 수련생과 함께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우리집은 법공부 모임 장소였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마을 수련생 수십 명이 우리집에서 단체로 연공하고 법공부를 했습니다. 새로운 수련생이 올 때마다 제가 먼저 나서서 연공 동작을 교정해주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바로 그때부터 ‘진선인(眞·善·忍)’의 씨앗이 제 마음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 파룬궁 탄압 이후, 어머니는 잠시 수련을 중단하셨지만 저는 매일 방과 후 부모님 몰래 할머니 댁에 가서 할머니와 함께 법공부를 했고, 할머니는 제가 법을 외우도록 도와주시고 명혜망 소식을 들려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데리고 진상 자료를 배포하기도 하셨습니다. 한번은 할머니와 제가 준비한 진상 자료를 들고 막 집을 나섰는데, 마을 동쪽 끝 가로등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가로등이 꺼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자료를 배포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가로등이 꺼졌고 저와 할머니는 순조롭게 진상 자료를 모두 배포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저는 읍내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갔습니다. 저와 할머니가 보는 명혜망과 진상 자료는 모두 읍내 수련생 집에서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매주 일요일 학교로 갈 때면 먼저 그 수련생 집에 들러 지난주 모은 용돈을 자료 제작비로 드리고 진상 자료를 조금 가져왔습니다. 밤에 친구들이 모두 잠든 후 저는 몰래 진상 자료를 들고 나가 배포했습니다.
2005년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방학이 돼 집에 돌아와 평소처럼 할머니 댁에 갔습니다. 할머니는 이제 명혜망에서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하라고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도 탈퇴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격렬한 내적 갈등 끝에 학교로 돌아가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공청단을 탈퇴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탈퇴하려면 부모님께 말해야 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수도 있다” 등 저를 위협하는 말씀을 하셨지만 저는 흔들리지 않고 탈퇴 의사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학교 공청단 서기를 찾아가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서기를 찾아가 제 의사를 밝혔고 서기는 결국 제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야 그들이 사실 제 공청단 가입을 삭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당시 저는 그저 순수하고 확고한 마음만으로 한 고비 한 고비를 순조롭게 넘겼고, 사부님께서 계속 저를 보호해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2007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저는 한 달에 한 번 집에 갔습니다. 예전처럼 집에 갈 때마다 할머니 댁에 들러 할머니로부터 현재 정법(正法) 형세를 듣고 정법 노정을 알아봤습니다. 세인들에게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저는 기숙사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습니다. 동시에 저만의 법공부 환경도 만들어 방과 후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법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6.4’(천안문 사태)를 겪었던 한 서점 주인에게 진상을 알려주었는데, 그 주인은 제 말에 크게 공감하며 제 나이와 하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면서 안전에 유의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저는 교실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창밖으로 그 서점이 보였습니다. 오후 수업 중에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서점 주인이 신고한 줄 알고 불안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당신이 두려워하면 그놈은 붙잡을 것이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 수련하는 사람은 법을 간직하고 있다네 정념을 발하면 썩은 귀신 터져버릴지니 신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음이로다”(홍음2-두려울 것 뭐냐)를 속으로 외웠습니다. 잠시 후 사이렌 소리는 사라졌습니다.
2010년, 저는 성(省) 소재지 도시의 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후 법공부 환경을 벗어나게 되면서 마음이 무척 괴로웠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인연이 닿았는지, 대학교 2학년 때 고모(수련생)가 저를 법공부 팀에 데려가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이 낯선 도시에서 드디어 안식처를 찾은 느낌이었고, 더 이상 혼자 수련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그곳 수련생 중에는 사부님께서 직접 법을 전하실 때 현장에 참가했던 분들이 많았는데, 그분들이 들려주는 사부님 전법(傳法) 이야기를 들으며 무척 부러웠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단체 법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법공부를 하지 않아 일반인 여자친구를 사귀게 됐고, 남녀의 정에 깊이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준마 한 마리가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잠에서 깨어 저는 ‘지금 멈추지 않으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라고 깨달았습니다. 일어나서 법공부 팀에 가서 수련생과 이 일을 교류했습니다. 수련생은 법에서 저와 교류하며 대법을 수련하는 기점이 무엇인지 인식하게 해주었습니다. 법공부 팀에서 일주일 동안 계속 법공부를 하면서 제 정념(正念)은 점점 강해졌습니다. 미련을 끊고 저는 단호하게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일주일 후, 동북 5개 대학 연합 채용박람회 지린(吉林) 대학 부스에서 저는 한 합자회사에 순조롭게 취직했고 면접도 통과했습니다. 제 기점이 바로잡히자 모든 것이 바로잡혔습니다.
2014년, 저는 홀로 천리 밖 낯선 도시에 가서 일하게 됐습니다. 좋은 수련 환경을 갖기 위해 회사에서 제공하는 아파트 기숙사를 나와 회사 근처에 난방과 에어컨이 없는 방을 얻었습니다. 아낀 돈으로 프린터를 사서 직접 진상 자료를 만들고 자전거를 타고 나가 배포하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에는 방 온도가 겨우 8℃였고, 여름에는 32℃까지 올라갔습니다. 혼자 사는 외로움과 열악한 환경이 겉보기에는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마음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틈나는 대로 저는 구이저우(貴州) 깊은 산속의 ‘장자석(藏字石, 중국공산당이 멸망한다고 기록된 고대의 예언석)’을 보러 갔고, 타이안(泰安)에 가서 태산(泰山)에 올랐으며, 산시성에서 안문관(雁門關)을 보았고, 탕인(湯陰)의 악비(岳飛) 고향에도 갔으며, 관현(冠縣)의 무훈(武訓, 평생을 걸식하며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운 민국 시기 인물) 고향에도 가면서 사부님께서 지나가신 곳을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몇 년간의 홀로 수련에서 느낀 그 외로움, 떠돌이 생활, 무력감으로 제 마음은 점점 안식처를 갈망하게 됐습니다. 저는 수련 환경이 필요했고 수련생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침대에 앉아 있는 저의 무력감은 거의 무너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고향에 날아가 수련생들과 교류했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저는 제 기점이 반드시 바로잡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추구해서는 안 되며 모든 것을 사부님 안배에 맡겨야 했습니다. 직장으로 돌아온 후 저는 고향의 한 합자회사로부터 채용 통지를 순조롭게 받았고, 동시에 고향의 한 여성과도 알게 됐습니다. 제자의 기점이 바로잡히기만 하면 모든 것이 그렇게 순조로웠습니다.
4년 동안 정들었던 곳을 떠나기 전에, 저는 이곳 중생들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간을 이용해 동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전하며 유감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2018년, 저는 순조롭게 고향으로 돌아와 일자리를 구했고, 고향의 법공부 팀에 합류하여 저만의 수련 환경을 만들었으며 여자친구와 결혼했습니다. 2년 후에는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책임은 더욱 막중해졌고 자신을 수련하는 동시에 어린 제자도 잘 이끌어야 합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제 직장 생활은 점점 순조로워졌지만 시련도 점점 커졌습니다. 직장에서의 권력과 명예에 대한 집착, 금전의 유혹이 끊임없이 저를 시험했습니다.
지금 저와 아내 수련생은 매주 법공부 팀에 꾸준히 참석해 정기적으로 법공부를 하고 있으며, 현재 저는 정법 노정에 바짝 따라가기 위해 법 암기를 시작했습니다.
이상은 제 수년간의 수련 과정입니다.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수련생들과 교류하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지난 길을 돌아보면 제자의 기점이 바르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응당 얻어야 할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예전 어린 제자들이었던 우리는 공동의 염원을 품고 대법이 전해질 때 이 세상에 올 수 있는 인연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중생들의 매우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젊은 대법제자가 됐고 사명을 짊어지고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제자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에 끝없이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세 가지 일을 잘해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고 대법제자의 길을 바르게 걸어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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